카스텔라(Castela)
장석민
전철역으로 가는 길가에 빵집이 있다.
요즘엔 개인이 창업하여 운영하는 빵집은 찾기 힘들 정도로 적고 대부분 빵집은 대기업 브랜드의 제과점이다.
빵을 그다지 즐겨 먹지 않아 빵집에 가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어쩌다 한 번 들르는 정도인데 빵 종류도 참 다양하다.
아이들은 빵을 가끔 사오는데 그럴 땐 조금 먹기도 한다.
빵집을 지나면서 여러 종류의 빵을 본다.
예전에 산골에서는 빵을 먹는 것은 고사하고 빵을 보기도 어려운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빵을 나누어 주던 때가 있었는데 커다란 빵 하나 받아 맛있게 먹던 기억이 평생 간다.
산골에서는 집에서 먹다 남은 막걸리를 이용해서 빵을 만들었는데 밀가루 반죽에 막걸리를 넣어 만든 일명 술빵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특히 명절 지나고 나서 막걸리 남은 것이 있으면 어머니는 술빵을 만들어서 내놓곤 하셨는데 참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먹을 것이 변변치 않던 시절이었으므로 술빵은 좋은 간식이었다.
요즘에도 아파트 단지에 장이 서는데 술빵 비슷한 모양의 빵을 팔기도 한다.
어렸을 때 먹은 빵에 대한 강렬한 기억은 평생 남아 있다.
해가 길어진 초여름 농촌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때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 것으로 기억되는데 학교 수업이 끝나고 운동장에서 놀며 시간을 보내다가 해가 지고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 친구 녀석과 교문을 나섰다.
터벅터벅 신작로 길을 걸어서 집으로 가고 있다.
어느 정도 걷다 보니 깜깜해졌다.
울창한 숲속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무서움이 들기도 하는 초여름밤이다.
하늘엔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고 있는 초여름밤
낮에는 햇볕 쨍쨍하고 더워도 밤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좋은 밤이다.
산에 밤꽃은 피어서 밤꽃 특유의 냄새가 초여름 밤공기를 타고 멀리멀리 퍼져나가고 있다.
평상시에는 잘 다니지 않는 길로 들어섰다.
잔솔이 우거져 있어서 문둥이가 숨어 있다가 아이들을 잡아 간다는 소문이 있는 곳, 공동묘지가 가까이 있어 아이들은 잘 가지 않는 곳을 겁도 없이 아이 둘이서 걸어가고 있다.
한참 가더니 친구 녀석이 멈추어 선다.
보리 타작을 할 때 쓰는 타맥기가 있다.
한창 보리 타작을 하는 시기여서 무거운 타맥기를 이리저리 가지고 다니기 어려우니 일정한 장소에 두고 보리 타작을 하였던 것이다.
그곳은 주변에 보리밭이 많이 있어 타맥기를 그곳에 둔 모양이다.
그 녀석은 타맥기의 구조를 잘 아는지 손으로 이리저리 더듬더니 가지고 간 보자기를 펼치고 보리를 꺼내서 담는다.
타맥기는 보리 타작을 하는 기계인데 보리밭에서 베어 온 보리를 기계에 집어 넣으면 보리 알곡과 보릿대를 분리해서 털어내는 기계다.
그런데 보리 알곡이 분리 되어서 나올 때 기계 어느 부분을 지나는데 그곳이 약간 움푹 파여 있어 보리 타작 하는 사람들이 신경써서 꺼내지 않으면 남아 있게 된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곳까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녀석은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었는지 남아 있던 보리를 꺼내는 것이다.
타맥기에 남아 있던 보리를 다 꺼내서 보자기에 담아 들고 왔다.
구멍가게에 와서 부어 보니 두어 되 정도 되었다.
그 보리를 카스텔라 빵과 바꾸었다.
카스텔라(castela)는 밀가루에 설탕, 달걀, 물엿 따위를 넣고 반죽하여 오븐에 구운 빵이다.
빵 열 개쯤 받은 듯하다.
빵이 꽤 컸다.
둘이서 배가 터질 듯이 부른데도 실컷 먹었다.
그 당시에는 그런 빵을 사 먹을 돈이 없던 시절이었으므로 정말 맛있게 먹었다.
부드럽고 달콤한 빵을 입에 넣으면 그냥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요즘에도 가끔 카스텔라 빵을 먹게 되면 그때 그 기억이 떠오른다.
그 후엔 한 번도 그렇게 할 기회가 없었다.
그 친구 녀석은 그런 방면에 소질이 있다고나 할까
약간 엉뚱한 면이 있었는데 같이 어울릴 기회가 많진 않았다.
같은 동네지만 집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런 듯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서로 다른 일을 하면서 지내다 보니 만나기도 어려웠고 세월이 빠르게 흘러 추억 속에 남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40대 초 중반 쯤인가, 언젠가 한 번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때 그 얘기를 꺼냈더니 짐짓 모른척한다.
실제로 기억을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그 녀석은 어쩌면 아주 사소한 일중의 하나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그것은 하나의 절도 행위다.
그렇지만 그 시절에는 동네에서 한두 집 빼고는 너나 할 것 없이 배고프게 살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웬만한 것은 모른 척 넘어가기도 하곤 했다.
동네 사랑방에 모여 새끼도 꼬고 가마니도 만들고 하던 머슴이나 젊은 청년들이 밤중에 배가 고프면 닭 많은 집에 살그머니 가서 한 마리 잡아다가 끓여먹고 하던 시절이었다.
그것을 닭서리라고 하였다.
닭 주인은 그것을 알면서도 추궁하지 않았다.
물론 자주 그런 일이 있는 것은 아니고 어쩌다 한 번 정도 있었다.
우리집 닭도 몇 마리 없어지곤 했었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 고향 마을에는 보리를 심는 사람들도 없고, 옛 모습도 찾아볼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기억 속에만 옛 모습이 남아 있을 뿐이다.
진초록의 울창한 숲과 별이 총총한 초여름 밤의 하늘, 맑고 시원한 공기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산골의 그 모습이 그리운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첫댓글 어린시절 카스테라 빵은 참 고급스런 간식이었지요.
요즘 아무리 맛있는 빵도 그때의 빵 맛에 비할 수 없고요 ㅎㅎ
집집마다 엄마표
막걸리 빵은 정말 일품이었답니다.
퇴근시간이 다가오니
살며시 배도 고프고
빵이 더욱 먹고 싶어지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敍琳 선생님!
감사합니다.
빈곤했던 어린 시절엔 작은 것 하나라도 귀하고 감사했는데요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물질적으로 풍족해졌는데도
옛날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날씨가 쌀쌀해졌어요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옛날엔 꼴망태 메고 무, 고구마 등 많이도 캐먹었죠. 지금 법으로 치면 상습절도. ^^
開東 선생님!
감사합니다.
기억 공간에는 어렸을 때의 기억이 또렷하게 자리 잡고 있나 봅니다.
어렸을 때의 기억이 불쑥불쑥 나타납니다.
쌀쌀해진 날씨에 건강하게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그 친구는 창의성이 있군요.
어른이 되어 기술자 또는 과학자가 되었는지도~
당시 카스텔라는 귀한 빵이었는데 친구 덕분에 횡재하셨군요.ㅎㅎ
배고픈 그 시절에 저는 밥 대신 밀가루로 만든 개떡을 많이 먹곤 했지요.
흐뭇한 수필 배람합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그 친구가 평생 간직할 수 있는 추억 하나를 만들어 준 것이죠.
초여름밤의 카스텔라!
고향의 옛 추억이 하나하나 작가 님의 좋은 수필 소재가 되는군요.
전 두 군데 고향이 있는데, 한 곳은 아예 흔적조차 없어져 버렸고,
또 한 곳은 길만 남고 집도 사람도 모두 통째로 바뀌어 버렸더군요.
많이 변했다 해도 옛 친구들과 집이 남아있는 고향을 가진 사람들이 한없이 부럽습니다.
화원 선생님!
감사합니다.
산골에서 살았던 유년기, 청소년기 때의 기억이 평생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고향 동네도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제 기억은 어릴 때의 그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