孝子通政大夫金孝順之閭
위치 ; 한림읍 대림리 1980번지 수원주유소 남쪽 50m 속칭 달가름 비석군 중 하나
유형 ; 비석(효자비)
시대 ; 조선(비석건립 대한민국)
규격 ; 높이 75㎝, 너비 33㎝, 두께 15.5㎝
비문 ; 公金海后人 通政考諱宗仁之子也 配全州李氏 生興鉉興洙 父母在堂定省養志 其父病危篤終無回甦 祈天禱地願以身代 斷指湊血涓涓灌口 更生旣絶之命 鄕隣咸稱天出之孝 自面里擧實修報營庭 己未年 御史嘉尙之題 錫三綱錄孝子完文 荷立短碣以壽其傳焉 檀紀四二八九年丙申秋 於水源境 至誠孫濟濟 (손자와 증손자의 이름) 謹立
내용 ; 공은 본관이 김해인데 통정대부 종인의 아들이다. 부인은 전주이씨이며 흥형과 흥수를 낳았다. 부모가 계셔서 조석으로 잘 섬기었고 그 뜻을 즐겁게 해 드렸다. 아버지의 병이 위독하여 되살아날 가망이 없자 천지신명에게 기도하여 자기 몸으로 대신하기를 원하였으며 손가락을 끊어 피를 내어 조금씩 입에 넣으니 끊어졌던 목숨이 다시 살아났다. 이웃에서 다 하늘이 낸 효자라 하였고 면리에서 사실을 들어 관청에 보고하자 기미년(고종32년, 1859)에 어사가 이를 가상히 여기는 지령을 내려 삼강록과 효자의 완문을 내리게 하였으므로 작은 비석을 세워 길이 전하고자 한다.
金孝順은 金海人이라. 通政 宗仁의 자이라. 洙源里人이다. 父母在堂 定省養志하였으며 其父病危篤終無回소祈天禱□願代斷하여 손가락을 끊고 病父의 입에 놓으니 更生하였니라. 鄕隣感稱하여 出天之孝라. 曰面里擧蹟修報 營庭己未年 御史嘉尙之題賜하니 三綱錄孝之完文이라. 현재 수원초등학교 동쪽 대로변에 旌門이 서기1956년 丙申 秋에 建立하여 있다.(한림읍지 178쪽)
본관은 김해이고 종인(宗仁)의 아들로 수원에 살았다. 7세 때 아버지 상을 당하자 어린 나이에도 哀毁之禮(애훼지례)를 다하였고, 그 어머니가 병으로 눕자 밤낮으로 옷을 벗지 아니하고 侍湯(시탕)하였다. 그러나 위급하게 되자 斷指(단지)하여 수혈하니 소생하였으므로 마을 사람들이 감탄하여 관에 보고하니 고종 32년(1895) 오경림(吳慶林) 관찰사가 완문을 만들어 주고 표창하였다. 비는 수원리에 서 있다.(濟州鄕校誌 655~656쪽)
《작성 090526, 보완 12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