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는 인간의 본능이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호이징가의 개념을 굳이 빌려오지 않아도 우리는 이 단순한 진리를 수없이 체득해보지 않았던가! 어린 시절 졸음과 배고픔이 해결되면 곧 놀이에 열중했고, 그 놀이의 중심에는 항상 형형색색의 장난감들이 있었다. 사방이 장난감으로 빼곡히 채워진 가게는 그 어떤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이상향이자,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 헌데 그 어여쁘고 재미나던 장난감들이 어느 순간 몽땅 사라져버렸다. 화려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던 그 장난감들이 한낱 고철 덩어리와 헝겊 조각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그리고 깨닫는다. 그 때 그토록 빛나던 것은 장난감이 아닌 때 묻지 않은 어린 마음에 가득했던 순수의 에너지였음을. ● 이제 젊은 여섯 작가들이 그 순수의 에너지를 찾아 장난감 가게, ‘토이 스토어’(Toy Store)를 열었다. 이 가게 속으로 옛날 옛적 곶감이 무서워 줄달음질쳤다는 줄무늬 호랑이가 실로폰 건반과 병치된 모습으로 뛰어들고(백병기, Tigellophone), 같이 소꿉도 살고 병원놀이도 하던 꼬마인형은 어느새 훌쩍 큰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엄마의 빨강 구두를 신고 사랑에 빠졌다. (김보미, My doll was growing up!!)
백병기_Tigellophone_철, 실로폰_52×92cm_2006
어쩐 일인지 오랜만에 만난 곰인형은 깁스에 링거병까지 매달고 몸져 누워버렸다. (정재원, 곰인형의 입원생활) 달에서 계수나무 떡방아를 찧던 토끼 허물 밑으로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만큼 길게 돋아난 다리가 여기 지구를 향하고 있다. 오래지 않아 강력한 중력을 이기지 못한 몸이 땅으로 떨어져버리면, 그것으로 영영 토끼와는 이별, 다시는 계수나무 그늘 아래 쉴 수 없게 되리라. (김송은 / “애들아, 달에는 토끼가 살고 있단다.”)
김보미_My doll was growing up!!_합성수지, 페브릭_가변설치(사람크기28cm)_2006
정재원_곰인형의 입원생활_곰인형, 모터장치, 철, 링거_40×60×120cm_2006
김송은_애들아 달에는 토끼가 살고있단다_혼합재료_30×30×40cm_2006
김송은_애들아 달에는 토끼가 살고있단다_혼합재료_30×30×40cm_2006
이쯤 되면 토이 스토어는 단순히 어린 시절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섰던 그 때 그 장난감 가게가 아니다. 잡힐 듯 너울거리던 봄날 나비의 날갯짓마저 하얗게 세어버리고 이제는 그 옛날의 꿈으로 박제되었기 때문이다. (이명우, 나비 상자) 하지만 아직 나비는 죽지 않았다. 투명창에 갇힌 나비는 관객들의 손놀림을 동력으로 답답한 칸막이를 뚫고 훨훨 날아갈지 모른다. 이 나비들의 날갯짓과 함께 터져 나올 어린이의 웃음, 그 활력과 생명의 에너지를 받아 ‘토이 스토어’는 다시금 환한 빛을 발한다.
이명우_나비 상자_아크릴, 스테인레스 스틸_60×37×130cm_2006
유화수_장기두기_장기알, 단 채널 DVD 00:05:35(stop motion)_30×50×40cm_2006
유화수_장기두기_장기알, 단 채널 DVD 00:05:35(stop motion)_30×50×40cm_2006
그 빛을 통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토이 스토어’에서 우리는 무엇을 살 수 있을까? 순수함, 한 때 내 안을 가득 메웠던 지난날의 생명의 에너지는 내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 안에 갇혀, 그 때 그 때의 감정에 사로잡혀, 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내 삶을 있는 그대로 관조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지난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는 정말 보아야할 것을 볼 때가 되지 않았는가. (유화수, 장기두기) 장기판을 내려다보며 휴식하는 장기알 인형의 모습에서 우리는 다시금 그 때 그 순간의 희열과 감탄사를 돌려받는다. 아, 이 가게에 놀러온 보람이 있다. ■ 유화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