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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당골, 봄날을 간다
도무지 꽃 볼 생각 없었는데 都無看花意
우연히 나무숲에 이르렀구나 偶到樹邊來
가지 위의 꽃 색이 가련해 보이나니 可憐枝上色
한 송이 한 송이 근심으로 피어난 것이리 一一爲愁開
―― 양형(楊衡, 650~692, 당 시인), 「꽃나무로 시를 짓다(題花樹)」
▶ 산행일시 : 2017년 4월 22일(토), 맑음, 오전에는 미세먼지
▶ 산행인원 : 14명(버들, 모닥불, 악수, 대간거사, 화은, 수담, 상고대, 두루, 신가이버, 해피,
오모육모, 대포, 무불 메아리)
▶ 산행거리 : GPS 도상거리 17.4km(1부 12.7km, 2부 4.7km)
▶ 산행시간 : 11시간 44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4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0 : 25 - 동서울터미널 출발
03 : 06 ~ 04 : 50 - 문경시 산북면 가좌리 산막 마을 근처, 계속 취침, 산행시작
05 : 38 - 750m봉, 첫 휴식, 아침요기
06 : 05 - 안부, 송전탑
06 : 52 - 893.1m봉
07 : 13 - △912.5m봉, 두 번째 휴식
08 : 05 - 국사봉(943.0m)
08 : 43 - 마전령(馬轉嶺, 말구리재, 627m)
09 : 15 - 926.0m봉
09 : 44 - 장구령
10 : 05 - 963.7m봉
11 : 20 - 불당골 마을
11 : 43 ~ 12 : 37 - 아랫갈골 마을, 1부 산행종료, 점심, 대승사로 이동
12 : 57 - 능선마루, 쉼터
13 : 17 - 반야봉
13 : 56 - 공덕산(功德山) 연화봉(蓮花峰, △914.6m)
14 : 33 - ╋자 갈림길 안부
15 : 22 - 천주산(天柱山, 841.6m)
16 : 28 - 천주사
16 : 34 - 천주사 아래, 산행종료
17 : 12 ~ 18 : 54 - 문경, 온천욕(문경온천), 저녁
20 : 55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천주산 정상에서, 두메 님도 천주산에 올랐다. 왼쪽부터 대포, 무불, 신가이버, 두메, 화은,
모닥불, 상고대, 대간거사, 오모육모, 앞줄 왼쪽부터 수담, 악수, 버들, 두루, 메아리 대장
2. 왼쪽은 대미산, 오른쪽 멀리는 문수봉(?)
3. 불당골 사과나무 밭의 민들레
4. 가운데 멀리는 금수산. 천주산 정상에서
▶ 국사봉(943.0m)
산행인원이 많거나 적거나 출발시간이 한밤중이거나 새벽이거나 동서울에 모이는 시간이 썩
잘 지켜진다. 어쩌다 사정이 생겨 늦어지는 경우가 있다 해도 대개 5분 안짝이다. 언제부터
인가 1분이라도 지각하는 경우 산행 마치고 나서 귀경할 때 입가심용 아이스크림을 일행 전
원에게 자진해서 희사하는 미풍양속(?)이 생긴 이후에는 은근히 누군가가 지각해주기를 기
대하기에 이르렀다. 해피 님이 아깝게 그런 기대를 저버리고 5분전에 도착한다. 출발.
문경대간 국사봉을 산행들머리로 잡은 가좌리 산막 마을은 두메산골이다. 고요하다. 도착시
각 03시 06분. 차내 쪽잠은 항상 달콤하다. 자세 고쳐 얼른 도로 눈 감는다. 잠깐 졸았는가
싶었는데 벌써 04시 30분 기상이다. 잠시 몽중에 천지분간 못하다가 주변에 쌓인 배낭을 보
고 차안이라는 것, 산을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뭇가지 사이로 스무엿새 이지러진 조각달을 바라보고 방위를 짐작한다. 당초 산행계획은
산막 마을에서 곧바로 면계(산북면과 동로면)인 893.1m봉에 오르려고 했으나 그러면 1부
산행이 너무 일찍 끝날 것 같아 조금 더 산행거리를 늘려 잡자는 대간거사 님의 의견을 좇아
(과연 탁견이었다) 산막 마을 위쪽으로 간다.
산기슭을 향하는 농로가 보여 냉큼 따르다가 시과 과수원 풀밭을 지나고 덤불 숲 헤쳐 산속
에 든다. 펑퍼짐한 사면의 잡목 벌목지대다. 사실 산행 중에는 이런 데가 험로다.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나뭇가지를 일일이 추려 넘는다. 엷은 능선에 이르고 더뎠던 발걸음을
벌충이라도 하려는 듯 부지런히 속도 낸다.
뭇 새들은 곧 다가올 새날을 맞이하느라 사방에서 재잘댄다. 호랑지빠귀는 음산하게 ‘휘이익
~’ 하며 추임새 넣는다. 등로 주변의 진달래와 산벚나무는 밤에도 꽃을 활짝 피웠다. 꽃길을
간다. 미세먼지가 아침을 가렸다. 여간 침침하지 않다. GPS 고도 750m봉. 아침 요기한다. 입
산주 탁주는 해피 님이 조달한 덕산 명주다.
지난주에 이어 오늘 산행도 퍽 재미적다. 상고대 님이 요즈음 뜻하는 바가 있어 술을 전혀 마
시지 않아서다. 아울러 말수가 눈에 띠게 적어졌다. 때때로 가가대소로 호쾌하던 산행 분위
기는 착 가라앉고 말았다. 이른 아침 입산주 맛이 덜한 건 순전히 그에 기인한다. 750m봉 내
린 안부는 송전탑이 있다. 해는 어느새 반공에 솟았다.
암봉이 나오고 왼쪽 사면으로 크게 돌아 넘는다. 가파른 오르막에 거목의 소나무가 쓰러져
길을 가로 막았다. 오버행으로 넘느니 아래쪽에서 소나무 주간을 타고 통나무 외길을 지난
다. 등로는 꽃길이되 봉봉 바윗길의 연속이다. 선두는 엄청 내뺐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게
멀리 가버렸다. 아무튼 내 걸음으로 간다. 화은 님, 두루 님과 나 셋이 가는 산행이다.
5. 왼쪽은 국사봉 방향, 오른쪽은 대미산
6. 문수봉(?)
7. 왼쪽은 황장산, 해는 어느새 반공에 솟았다
8. 황장산
9. 암봉 우회도 까다롭다, 화은 님
10. 진달래
11. 오른쪽 뾰쪽하게 얼굴 내민 봉우리는 천주산, 그 앞 오른쪽은 공덕산
12. 국사봉 가는 길에서, 두루 님이 좋아하는 풍경이다
13. 왼쪽 멀리는 운달산, 앞 오른쪽은 국사봉
등로 약간 벗어난 암봉에 올라 발돋움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운해 위로 솟은 대미산, 문수봉,
황장산이 미세먼지에도 불구하고 가경이다. 06시 52분. 893.1m봉이다. 능선을 늘려 2시간
남짓 걸었다. 고만고만한 높이의 봉봉을 넘는다. 봉마다 암봉이다. △912.5m봉. 일행 점호할
겸 두 번째 휴식한다. 후미의 비애. 미처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선두는 출발한다.
△912.5m봉 내리막 전망바위 올라 전도를 살핀다. 국사봉과 그 왼쪽 뒤로 첩첩 산 너머 문경
대간(운달지맥)의 맹주인 운달산이 보인다. 국사봉은 멀리서도 대단한 첨봉이다. 다만, 바라
보아 입안의 침이 밭는 느낌이다. 하늘 가린 숲속 길 839.6m봉을 완만하게 내렸다가 냅다 덤
빈다. 국사봉을 네 피치로 오른다. 피치마다 실한 오르막이다. 네 번째 피치는 길기도 하다.
‘고지가 저기’라 게거품 뿜으며 마저 오른다.
미세먼지는 바로 건너편 주흘산 연봉도 가렸다. 마전령 가는 길. 능선 마루금 잡기가 어렵다.
하필 해피 님의 뒤를 쫓아서인가? 골로 갈 뻔하다 어렵사리 능선에 오른다. 수북하게 쌓인
낙엽을 지치며 뚝뚝 떨어진다. 마전령. 우리말로 말구리재다. 예전에 이 고개를 넘던 말이 굴
렀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고갯마루에는 임도가 지난다. 고갯마루 노거수 앞의
치성터는 기도발이 다했는지 허물어졌다.
봉봉 굴곡이 겁나게 심하다. 국사봉을 내린 만큼 오른다. 이 다음 장구령에서도 이럴 것이다.
땅에 코 박고 오른다. 여느 때처럼 복수초나 노루귀, 얼레지, 바람꽃 등이 보였으면 그들과
눈 맞춤하여 힘 드는 줄을 모를 텐데. 926.0m봉. 칼칼한 목, 탁주로 적신다. 장구령. 장구의
허리처럼 생긴 깊은 고개다. 963.7m봉 오름길에 기진하고 맥진한다.
나뭇가지 수렴에 가린 운달산과 성주봉을 일별하고 동쪽으로 방향 튼다. 이제는 눈에 익은
길이다. Y자 갈림길. 대포 님이 교통 정리한다. 오른쪽은 갓산으로 가는 길이다. 우리는 인적
희미한 낯선 왼쪽 길로 간다. 쭉쭉 내린다. 588.2m봉. 오르기 직전 안부. 이번에는 오모육모
님이 교통 정리한다. 오른쪽 지능선으로 안내한다.
산상화원의 길이다. 봄날의 절정을 간다. 화려한 춘색을 눈에 담고 도원을 지나 사과 과수원
을 지난다. 젊은 농부 셋이 사다리 놓고 사과나무 순을 솎아주고 있다. 이 넓은 과수원을 경
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치 내 일인 양 답답해진다. 사과 1개가 성숙하려면 대략 잎 12
장이 필요하다고 한다. 잎이 적어도 많아도 걱정이다.
불당골 농로로 내리다 길을 잘못 들었다. 사과밭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길을 안내해 준다.
사과밭이라기보다는 민들레밭을 간다. 이처럼 너른 민들레밭은 아직 본 적이 없다. 도대체
발 디딜 틈이 없다. 산기슭 돌아 비로자나수행원 혜명암(慧明庵)을 지나고 아랫갈골 ‘호암리
휴식공원’이다. 노송 드리운 가운데 정자가 있다. 점심자리로 이보다 더한 명당이 있을 수는
없을 것.
14. 국사봉
15. 국사봉 정상에서, 신가이버 님은 계속 앞서갔다
16. 수렴에 가린 운달산과 성지봉(오른쪽)
17. 불당골
18. 춘산 춘색
19. 구슬붕이(Gentiana squarrosa Ledeb)
20. 불당골 도원을 지나는 일행들
20-1. 갓산
21. 불당골 도원을 지나는 일행들
22. 도화
23. 도화
24. 공덕산 서릉 833.4m봉
▶ 공덕산(功德山) 연화봉(蓮花峰, △914.6m)
일행 중 의외로 아직 천주산을 오르지 않은 이들이 많다(오늘 산행인원 중에는 대간거사 님
과 나만 어느 해 겨울에 올랐다. 그것도 밤이었으니 보이는 게 없었다). 당초 산행계획을 수
정하여 이참에 천주산까지 가보기로 한다. 하여 공덕산을 가장 빠르게 오를 수 있는 대승사
에서 시작하여 한다. 대승사까지는 차로 갈 수 있다.
절이 멀리 층층 구름 속에 있는데 伽藍遙在白雲層
시내 따라 오솔길 가면 대승사가 있네 細路緣溪是大乘
누가 산속의 성근 종소리를 찾아가나 誰覓疏鍾山影裏
석양에 소매 날리며 스님이 돌아가네 帶風歸袂夕陽僧
송암 권호문(松巖 權好文, 1532~1587)의 「습독 박효창의 산정 10경(朴習讀孝昌山亭十
景)」 중 「멀리 암자로 돌아가는 스님(遠寺歸僧)」이다. 우리는 차로 산허리 돌고 돌아 대
승사 일주문 앞에서 멈춘다.
일주문 현판, ‘四佛山大乘寺’ 퇴경 권상로(退耕 權相老)의 글씨다.
퇴경 권상로(退耕 權相老, 1879~1965)는 누구인가?
일제 강점기에 친일활동을 벌인 불교학자이다. 그럼에도 동국대학교 초대 총장, 대한불교조
계종 원로원장을 지냈다.
사불산이라고도 하는 공덕산은 유서가 깊다. 《삼국유사》 권3 〈사불산조〉에 587년(신라
진평왕9) 커다란 비단 보자기에 싸인 사면석불이 공덕봉(功德峰) 중턱에 떨어졌는데, 사면
에 불상이 새겨진 4불암이었다. 왕이 소문을 듣고 그곳에 와서 예배하고 절을 짓게 하고 ‘대
승사’라고 사액(賜額)하였다.
대승사는 한국 불교사에 많은 고승대덕을 배출한 역사를 지닌 삼한 거찰이라기에 그 고승대
덕이 누구인가 대승사의 홈페이지에서 찾아보았다. 나옹선사, 청담, 성철, 월산 스님이 대승
사에 적을 둔 적이 있었다. 대승사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월산 스님의 임종게는 근현세의
고승들이 남긴 열반게 중 백미로 꼽힌다고 한다.
일생을 돌고 돌았으나 廻廻一生
한걸음도 옮긴 바 없나니 未移一步
본래 그 자리는 本來其位
하늘 땅보다 먼저이니라 天地以前
대승사에서 공덕산 정상까지 이정표 거리로 2km다. 이번에는 얌전하게 사면으로 난 정규등
로를 따라 오른다. 줄달음 20분 걸려 솔바람이 시원한 주릉 쉼터에 오르고 잠시 휴식한 후
반야봉을 넘는다. 반야봉에서 이삭 정도라도 손맛 좀 보련 했지만 빈손이었다. 나뭇가지 사
이로 천주산을 기웃거리며 가파른 오르막인 공덕산 정상을 오른다.
공덕산 정상의 삼각점은 ╋자 방위표시만 보이고 등급 등은 판독하기 어렵다. 조망 또한 무
망이다. 동쪽으로 천주산만 나뭇가지 사이로 감질나게 보일 뿐이다.
25. 산벚꽃
26. 사과나무 꽃
27. 공덕산 서릉 833.4m봉
28. 사과나무 밭 민들레
29. 아랫갈골 ‘호암리 휴식공원’에서 점심을 마치고, 무불 님과 수담 님(오른쪽)
29-1. 아랫갈골 ‘호암리 휴식공원’
30. 대승사 일주문 현판
31. 공덕산 정상에서
32. 천주산
▶ 천주산(天柱山, 841.6m)
공덕산에서 천주산 가는 길은 무수한 산행표지기와 이정표가 안내한다. 우선 북쪽으로 100
m 정도 가면 ┣자 갈림길이 잘 나 있고, 오른쪽으로 간다. 뚝뚝 떨어진다. 드디어 바닥을 쳤
는가 했으나 한참을 평탄하게 지나다 다시 한 차례 가파르게 떨어진다. 안부는 ╋자 갈림길
이다. 등로 상태로 보아 주등산로는 왼쪽 노루미 쪽이다.
배낭 벗어 휴식하고 천주산 오름길에 든다. 천주산은 세 피치로 오른다. 첫 번째 피치는 길고
가파른 오르막이다. 두 번째 피치는 짧고 완만한 오르막이다. 이때 호흡 조절한다. 세 번째
피치는 바위 슬랩의 연속이다. 왼쪽 사면으로 살짝 트래버스 한다. 내려다보게 되는 발밑이
아득하게 깊어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럽다.
밧줄 달린 슬랩과 마주친다. 외길이다. 올려다보아 상당한 위압감을 느낀다. 여기였다. 어느
해 겨울에 천주산을 내릴 때 이 밧줄이 얼어서 미끄러웠다. 고운 님이 밧줄을 놓치고 떨어지
다시피 쏟아져 내렸다. 예상하지 못한 순식간의 일이었다. 먼저 내린 한메 님이 엉겁결에 온
몸으로 받았다. 다행이 두 사람 다 다친 데는 없었다.
계속 이어지는 슬랩에서는 면역되어 주변 경치를 살필 여유가 생기고 짜릿한 손맛을 즐기며
오른다. 무딘 나이프이지만 그 릿지에 올라서고 사방 펼쳐지는 가경에 주춤주춤 지난다. 정
상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전망대를 설치하였다. 천상의 발코니다. 뭇 산들이 다 내려다보
인다. 맞은편 공덕산, 그 너머 조령산, 황장산, 황정산, 가운데 멀리는 아무래도 금수산이다.
초소 근무자는 산꾼으로 보이는 준수한 청년이다. 수시로 망원경으로 사방을 감시한다. 우리
더러 공덕산에서 서성이는 것을 보았는데 왜 이제야 오느냐며 말 건네는 속내는 반가움에서
이리라. 배낭 털어 먹고 마시며 오래 휴식한다. 초소 근무자에게도 떡을 드시라, 빵을 드시
라, 초콜릿을 드시라, 이 과일도 드시라 너도나도 권한다.
초소 근무자가 우리보다 먼저 천주산 정상 반대편의 반가운 목소리를 들었다. 2부 산행을 포
기했던 화은 님과 버들 님, 두메 님이 천주사에서 올랐다. 특히 두메 님이 오지산행에서 처음
으로 산 정상을 함께 오른 것은 길이길이 남을 일대 쾌거이다.
하산! 가드레일 설치한 릿지를 잠시 내렸다가 남벽 아래 대슬랩을 두 차례 가로질러 내린다.
이런 슬랩은 그해 겨울처럼 설벽 혹은 빙벽이어야 신이 나는데 더구나 재등이라 적이 심심하
다. 대슬랩을 다 내려오고 어쩐지 손이 허전하다. 스틱이 없다. 이런, 정상에 놓고 왔다. 다시
오른다. 스틱이 그대로 있다. 사소한 일에 큰 기쁨을 느낀다.
직하하는 내리막은 계속된다. 돌탑군을 지나 녹음 속에 빠져들고 곧 천주사 입구인 대로다.
꽃길이다. 산벚꽃을 일부러 따서 뿌린 듯한 도로다. 낙화인들 꽃이 아니랴만 이런 길을 걷고
싶어서도 천주사 절집에 들린다. 적막하기 절간이다. 대웅전은 닫혔다. 절집 마당에서 바라
보는 남쪽 풍경이 영주 부석사의 그것과 흡사하다.
범종각 주련이다. 첫 연은 멋있는데 대련이 그리 와 닿지 않는다.
念到念窮無念處 생각하고 생각해서 생각이 없는 곳에 이르면
六門常放紫金光 육근문이 항상 자금광(부처님의 빛)을 발하리라
법종각 지나 종무소에는 주련으로 가도(賈島, 779~843)의 시 「은자를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하다(尋隱者不遇)」를 새겼다.
松下問童子 소나무 밑에서 동자에게 물으니
言師採藥去 스승은 약초를 캐러 갔다고 하네
只在此山中 다만 이 산 속에 있기는 한데
雲深不知處 구름이 깊어서 있는 곳을 알 수가 없네
천주사가 돈을 많이 들인 절이다. 거석인 자연석으로 쌓아올린 몇 겹의 축대만 해도 그렇다.
우리 차는 천주사 아래 주차했다. 무사산행을 자축하는 하이파이브 힘차게 나누고 문경으로
온천 하러간다.
33. 천주산 정상에서 바라본 황정산 연봉
34. 천주산 정상에서 남서쪽 조망
35. 공덕산
36. 가운데는 백두대간 황장산
37. 백두대간 황장산
38. 천주산 정상의 진달래
38-1. 천주산 정상에서, 왼쪽부터 화은 님, 두메 님, 버들 님
39. 천주산 남릉, 왼쪽 호수는 경천호(慶泉湖)
40. 천주산 남벽 슬랩을 내리는 중
41. 천주사 들어가는 길
42. 천주사 절집 마당에 핀 산당화(?)
43. 주흘산, 문경시내 음식점 옥상에서
첫댓글 한폭의 수채화 보는 듯 합니다 사진속에서 꽃향기도 나오고~ 첫번째 사진은 자연속에 자유를 마음것 누리는 오지팀! 화은형님도 오랜만에 뵙고~ 두메님도 산행을 아주 좋은 모습입니다 등산화 사드려야 겠네요^^
후덜덜 천주봉. 조망은 굿이었네요. 바위전문 두루를 앞세워 새 루트를 개척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천주봉과 국사봉을 바라보는 느낌이 까마득해 보였습니다...아침에는 먼지가 있었지만 오후에는 개어서 제법 조망도 훌륭했습니다..수고하셨습니다^^
직벽암릉 !! 생각만해도 사지가 얼어 붙습니다.
그래도 어찌합니까 ! 가야죠.
산행길에 부디 그런 코스가 없기만을 바랄뿐입니다.
바위산 정상은 조망이 예술이란 것을
또한번 느낍니다.
두메님 운동화 신고 사뿐히 올라간 곳을~^^
화원에서 노닐다 오셨군요!!
형님이 제 옛 추억을 살려주시네요.
그 깊은 정에 감사드립니다.
2008. 1. 12. 형님 산행기 일부
"빙판이라 사실 발 디딜 데는 없다.
밧줄도 얼어 미끄럽다.
고은님이 잘 내리다 갑자기 뚝 떨어지듯 미끄러진다.
한메님이 온몸으로 막아 엎어진다.
숨 막히는 찰나인데 매우 긴 시간으로 느껴진다.
다행히 둘이 다 다친 곳은 없나보다.
으흐흐 웃으며 일어난다. 박수."
그 때나 지금이나 항상 사실적이며 간결한 명문장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