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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
시편 20:1~9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구약의 시편을 생각하며 은혜 받기를 시작한 것이 오늘로써 20번째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시편을 다루기 시작하려 할 때, 두 가지 면으로 주저하였습니다.
그 하나는 솔직히 말씀드려 저는 시에 대한 달란트는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이 오묘막칙한 시를 다룰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하나의 주저하게 된 이유는 이 시편은 너무 방대한 책입니다. 150편이나 되는 시이기 때문에 매 삼일 기도회 때마다 하루도 빼지 않고 강해한다고 해도 적어도 만 3년은 걸릴 것이고 이것을 책으로 인쇄해 내는데 네 권 이상의 책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성도 여러분께서 너무 지루해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께서 부족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것을 제가 깊이 느낍니다. 시편은 대할 때마다 제 마음에 새로운 감동을 받고 뜨거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회를 거듭할수록 더욱 많은 분들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 삼일 기도회에 참여하시는 것을 볼 때, 제게는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특별히 많은 젊은이들이 이렇게 함께 모여서 말씀에 잠기는 것을 보는 저로서는 감격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쪼록 부족한 이 사람을 위하여 계속 기도해 주셔서 이 시편 강해를 영감이 흘러넘치고 은혜가 충만하게 성공적으로 끝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그저 죄송한 것은 이 무더운 여름에 예배당에 오신 여러분이 다 함께 본당에서 예배드리지 못하고 선교관이나 베델 그리고 봉사관에서 텔레비전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을 생각할 때, 무어라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지난 주일 삼일 기도회가 끝나고 자유 기도 시간에 기도하고 집에 돌아가려고 나오는데 어떤 청년 두 분이 제게 정중히 그리고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목사님, 저희는 베델에서 예배를 드리고 자유 기도 시간에라도 본당에 들어가 기도 드리고 싶어 같이 기도 드리고 나오는 길이에요.” 저는 이 청년들의 말을 들으면서 가슴이 뭉클함을 느꼈습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기도회가 끝난 다음 남아서 기도하는 것을 금년초부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본당에 모여서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일에 참여하시는 분이 점점 많아져서 본당만으로는 너무 복잡하므로 얼마 전부터는 예배드린 그 방에서 기도하기로 하고 있습니다. 기도하시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무슨 문제를 안고 나오셨든지 하나님께 기도하시면 하나님은 우리 지각 밖에 넘치는 것으로 응답하여 주십니다. 보통 다른 교회에서는 저녁 예배를 여덟 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아홉 시가 훨씬 지나야 끝이 납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에서는 다른 교회보다 적어도 반시간 먼저 끝나는 셈입니다. 물론 인천이나 부천, 수원, 안양, 의정부 같은 먼데서 오신 분은 돌아가시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할 수 없으시겠지만, 그렇지 않으신 분들은 될 수 있는 대로 자유 기도 시간에 꼭 남으셔서 기도하는 대열에 참여해 보시기 바랍니다. 전에 맛보지 못했던 놀라운 경험을 하시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은 흔히 백성들이 왕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백성이 왕을 위해서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왕이 백성을 위해서 기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언제나 기도를 부탁드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저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도 자주 그의 믿음의 동지들에게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기를 요청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8절에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무시로 성령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했습니다.
사도 바울로 말하면 우리보다 높은 차원의 믿음을 가진 능력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다른 이들로부터의 기도의 후원이 요청되었습니다. 기도의 뒷받침이 있는 것처럼 힘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제가 여러분에게 간청하는 것은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시는 교역자님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책임을 맡으신 우리 장로님들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권사님들, 집사님들, 권찰님들, 교회학교 교사님들, 성가대원들, 그밖에 여러 방면에서 책임지시고 수고하시는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기도에 의해서 능력있는 종들로 힘있게 일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나라의 정권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든 저렇게 생각하든 정권을 맡기신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저희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고 특별한 지혜와 은총을 힘입어서 나라를 바로 다스리게 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 다른 사람의 기도가 필요치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스가랴 12장 5절에 “유다의 두목들이 심중에 이르기를 예루살렘 거민들이 그들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를 말미암아 힘을 얻었다 할지니라” 했습니다.
같은 장 10절에는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과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리니” 했습니다. 오늘까지 이 나라가 서 있는 것도 기도하는 성도의 눈물 때문이라 믿습니다.
예수님도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4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심판 받고야 말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먼저 하나님을 믿는 백성의 사명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야고보서에도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은 그 백성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것을 죄로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흔히 나 자신, 내 가정에서 그치기 쉬운데 그 범위를 넓혀야겠습니다. 또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한 기도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나를 위한 기도는 이기적이고 정욕적이어서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기 쉽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이기적일 수가 없기 때문에 순수합니다.
더구나 나를 사랑하고 위해주는 사람을 위해서만 기도할 것이 아니라 나를 욕하고 괴롭히고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서, 원수를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원수들을 위해서 욕하고 저주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기도의 범위는 넓을수록 축복이 됩니다.
오늘 본문 첫부분에는 왕을 위해서 기도할 것을 말씀합니다.
백성이 왕을 위해 기도할 때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말씀에 순종하면 왕은 말할 것 없거니와 백성에게 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왕의 마음이 완악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치 아니할 때 하나님은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이것은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아니합니다. 인류의 역사가 증명합니다.
니느웨 백성을 보세요. 40일 후의 멸망을 선언하는 요나 선지의 말을 들었을 때 왕으로부터 온 백성이 재를 무릅쓰고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세요. 요나 선지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한 적도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요나 선지의 민족적인 감정과 좁은 생각에서 볼 때 니느웨 사람들이 구원받는 편보다는 망하는 편이 속편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요나 선지가 니느웨로 가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해서 그와는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다가 큰 봉변을 당하고 마지못해서 니느웨로 가서 “40일 후에는 이 성이 망한다”고 외친 것뿐입니다.
이 통고를 받은 니느웨 백성이 각성해서 통회자복의 기도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심판하기 위해 들었던 손을 내리시고 구원하셨습니다. 본문 1절에 “환난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했습니다.
5절에는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하였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환난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다윗 자신에게도 종종 환난의 날이 있었습니다. 실의와 곤경의 날이 있었습니다. 억눌림을 당하여 당황하던 날이 있었습니다. 그가 쓰고 있는 왕의 면류관이 그가 당한 환난의 날을 면제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에 기도가 필요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윗으로 말하면 한 나라의 왕으로 그를 위해 기도해 주는 선지자들, 제사장들, 그의 충성된 신하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많은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다윗은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다윗대로 기도해야만 했습니다.
가령 우리 나라의 경우를 말해도 우리 대통령을 위해서 1천만 성도 누구나 기도합니다. 대통령을 모시고 조찬 기도회를 하는 것만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뒤에서 보이게 안보이게, 알게 모르게 그 심령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는 사람이 많습니까? 저도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우리 대통령 위해서 부족하지만 기도드리곤 합니다. 문제는 자신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백성을 가진 지도자는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 지도자는 백성들의 기도에 ‘아멘’하고 응답할 때 더욱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쟁의 위기 속에서도 그의 사람을 보호하시고 그의 생명을 보존하시는 것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너를 대적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두시리라” 했습니다. 환난날에도 야곱을 지키신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의 섭리로 안전케 하시겠다는 보장이 되기도 합니다.
다윗은 그를 지킬 수 있는 용맹한 군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그 자신과 그의 백성들을 전능하신 돌보심에 맡기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마음 든든한 일입니까! 한 나라의 왕이 하나님을 믿으며 자신의 부족을 절감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과 백성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자신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고 나서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우리 나라도 이렇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잠언 18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의 은혜로 너를 악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편히 있도록 하게 하라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을 믿음으로써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 사람에게 피하는 것보다 얼마나 낫습니까? 세상이 우리를 환난에서 건져내지 못합니다. 돈이, 명예가, 권세가 하지 못합니다.
본문 2절에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성소에서 한 기도에 응답하시며 그를 도와주십니다. 시편 50편에 보면 “환난날에 나를 불러라 내가 너를 건지겠고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사무엘상 7장에 보면 이런 사건이 있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전 민족을 향해서 “너희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려거든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다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고 할 때,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의 말을 듣고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의 지시에 의해서 온 백성을 미스바로 모이게 하고 요샛말로 특별 성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저희의 죄를 자복하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 정보가 블레셋 사람에게 입수되었습니다. 블레셋은 온 이스라엘을 정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갑자기 습격을 가해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무엘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그래서 사무엘은 젖먹는 어린 양을 잡아서 온전한 번제를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사무엘이 번제를 드리는데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을 치려고 가까이 오게 되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큰 우뢰를 발해서 그들을 어지럽게 해서 결국은 블레셋이 크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시온으로부터의 힘은 영적인 힘이며, 우리 내면의 힘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입니다. 더구나 환난의 날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하나님은 받으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절에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하노라” 했습니다. 다른 데 보면 “그것이 재가 되게 하신다”했는데 이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제물과 함께 기도로써 그에게 요구했던 승리와 성공을 성취시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엘리야의 제단 제물을 사뤄버렸던 것처럼 그의 기도가 열납되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의미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성령의 불로 우리의 심령을 불붙게 하신다면 우리의 심령이 드리는 제물을 받으신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4절을 보세요.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도모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했습니다.
축복의 기도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복된 기도입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외에는 계획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백성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흐뭇한 관계입니까? 왕이 생각한 것은 무엇이든지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백성들의 기도입니다.
왕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국민의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왕노릇 할만도 하고 이런 왕 밑에서 백성 노릇 할만도 할 것 같습니다. 국민은 지도자를 믿지 않고 지도자는 국민이 마음 놓이지 않아서 그러는 사회하고는 너무 대조적입니다. 책임은 지도자에게 크게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을 자기의 일로 삼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그들을 흡족하게 해 주시리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뜻 가운데 행하는 자들은 그가 그의 뜻을 이루어 주시리라는 것을 그들 자신에게 약속할 수 있습니다.
5절에 “우리가 너희 승리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며”
왕이 승리할 때 백성이 개가를 부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주님이 승리하시므로 그의 백성된 우리들이 개가를 부르며 기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비결도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입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대적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를 세우리니” 사무엘이 블레셋 군대를 물리친 다음 거기에 기념비를 세워 ‘에벤에셀’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 하였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 것입니다.
고난의 날, 다윗의 심령이 심히 슬펐을 때 주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성소에서 그를 도와주시고 하늘로부터 천사를 보내시어 그를 강하게 하시고 그의 영혼을 속죄물로 바쳤을 때 그 제물을 받으셨습니다. 그의 번제물을 열납하시고 그것을 재로 변하게 만드셨습니다. 마땅히 죄인들을 불살라야 했었지만 하나님은 그 제물을 불사르는 것으로 만족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가 소원하시는 대로 허락하셨고 그의 영혼의 고통을 보게 하셨습니다. 또한 만족하리만큼 그의 손안에 기쁨이 충만하게 하셨고 그 자신과 우리를 위한 모든 간구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의 간구를 언제나 들어주십니다.
이제 시편 기자는 기도 속에서 개가를 부릅니다.
6절,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바 기름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 오른손에 구원하는 힘으로 그 거룩한 하늘에서 저에게 응락하시리로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속한 사람, 기름부음 받은 사람을 절대로 싫어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어떤 어려운 환경 가운데 들어간다 할지라도 그를 구원하십니다.
이것은 성도의 확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어려운 자리에 들어간다고 해도 낙심하지 아니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오른손에는 구원하시는 힘이 있습니다.
7절 보세요.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했습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과 하나님께 속한 사람의 차이가 여기에 드러났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세상 것에 근거해서 그것이 그들에게 미소만 짓게 해도 다 잘 되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병거나 말을 의지하기 때문에 그 수효가 많을수록 어떤 싸움에도 승리하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시편 기자 다윗은 그 당시 많은 병력을 소유하고 있던 아람 사람들을 연상하면서 한 말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의지할 만한 병거와 말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런 것들을 원하지도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것들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것 때문에 승리와 성공을 기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고 의지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세상을 의지한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보세요. “병거와 말을 의지한 자들은 굽어 엎드러졌습니다.” 그 병거와 말이 그들을 구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그들을 더욱 패망하도록 만들었고 더 쉽게 더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바로 서서 땅을 지킬 뿐 아니라 일어나 대적을 쳐서 땅을 얻고 승리를 거둡니다.
사무엘하 8장 4절에 보면 다윗이 모압을 칠 때, 그 마병이 1,700, 보병 20,000을 사로 잡고 병거 일백 승의 말만 남기고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절대로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본문 8절에 “저희는 굽어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9절에 “여호와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왕은 응락하소서” 하였습니다. 이 말은 우리 왕이 성공하게 하소서 하는 말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왕으로 하여금 그들을 축복하도록 만들어 주시기를 청하는 기도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 경건의 모범이 될 때, 참으로 이것은 귀한 것입니다. 왕은 백성의 선을 생각하고 백성은 왕의 승리를 즐거워하는 나라가 복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제 오늘 본문은 백성이 왕을 위해 기도하는 것인데, 왕은 아멘으로 받아들일 때 복이 있습니다. 제가 백성이고 여러분은 왕이십니다. 이 기도의 한 대목씩 읽을 때, 아멘으로 화답하시기 바랍니다.
지극한 복(福)
시편 21: 1-6
첫째, 옛 어른들은 인생의 네 가지 즐거움을 말했습니다.
1, 천리타향의 봉고인(逢故人)이라, 객지 나와서 외롭게 살다가 고향사람 만나는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2, 칠년대한의 감강우(甘降雨)라, 오랜 가뭄 끝에 기다리던 단비가 쏟아지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3, 화촉동방에 무월야(無月夜)요, 피 끊은 젊은이가 결혼하고 좋아하는 것이 보름달도 무색할 만큼 기뻐하니, 이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요.
4, 소년금방에 개명신(改名臣)이라, 젊은 사람이 과거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르는 것이 네 번 째 즐거움이라 했습니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고 싶습니다.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나 80년을 살다가, 80년 만에, 8순(八旬)을 감사하는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여러분! 8순 감사예배는, 80세까지 생존하셔야 드릴 수 있는 예배입니다. 79세만 살아도 드릴 수 없는 예배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잘 섬겨야 드릴 수 있는 예배이기에, 8순 감사예배는, 의미가 큰 예배입니다.
둘째, 오늘 8순을 맞는 김분숙 목사님을 축복합니다.
1. 남은 여생, 하나님의 집에서 사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한 주일도 빠짐없이 예배에 참석하여 은혜 받고 은혜생활하는 복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하셔야 하고, 집안이 평안해야 하고, 믿음이 분명해야 합니다.
2. 남은 여생, 앞길이 환하게 열려지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새벽마다, 자손과 교회와 민족을 위해서, 계속 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문이 활짝 열리기를 바랍니다. 입을 열면 전도문이 열리고, 자녀들에는 사업의 문이, 손자 손녀들에게는 진학의 문, 혼인의 문이 활짝 열려 지기를 바랍니다.
3. 남은 여생, 베다니 마을을, 가장 모범을 보이는, 노인장기요양기관으로 운영하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4. 가끔 아프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만, 아무리 80객 이라 할지라도 돈을 써야 할 일이 많습니다. 남은 여생 용돈에 가뭄 들지 않도록, 주머니에 용돈이 쌓여지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5. 남은 여생, 사람들에게 존경 받고, 자녀들에게는 효도 받고, 이후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는 칭찬과 상급 받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자손들에게 부탁합니다.
1. 일찍이 홀로 되어, 1남 2녀, 3남매 키우고 가르치느라고 고생한, 어머니의 눈물과 땀방울을 모으면, 한 사람 목욕시킬 물도 될 것이니, 어머님의 은혜 잊지 말고, 지금보다 노후에 더 잘 보살펴 드리시기 바랍니다.
2. 자식은, 부모님의 혈통의 맥, 학문의 맥, 신앙의 맥을 잘 이어가야 하는데, 신앙의 맥을 잘 이어 가시기 바랍니다. 김분숙 목사님의 가정에 권사가, 장로님이, 훌륭한 주의 종이 계속 일어나게 해야 할 것이니, 하나님 잘 믿고, 교회 잘 섬기시기 바랍니다.
3. 소 한 마리 잡아서 대접한다고 해놓고, 늙으신 어머님 앞에서, 행여나, 큰소리로 다투고 싸우면, 그 소고기가 목구멍에 가시가 되어 걸릴 것 아닙니까? 지금처럼 형제간에 더욱 화목하시기 바랍니다.
넷째, 축하객들을 축복합니다.
1. 오늘, 바쁜 일 제쳐놓고, 8순 감사예배에 참석하시고, 8순을 축하하러 오셨으니, 여러분들도 건강하게 지내시다가, 꼭 8순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2. 뿐만 아니라, 축하객 여러분의 자녀들도, 한없이 잘되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8순을 맞는 김분숙 목사님과 후손들, 그리고 축하객들에게, 하나님의 지극한 복, 더 말할 나위없는 이 복이, 자손 수 천대까지 이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셨으며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그를 영접하시고 순금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그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그에게 주셨으니 곧 영원한 장수로소이다. 주의 구원이 그의 영광을 크게 하시고 존귀와 위엄을 그에게 입히시나이다. 그가 영원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시 21:1-6)
출처: ╋예수님좋다오 글쓴이: 김병훈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