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시 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4: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아주 조금이라도 맛보아 알면 남은 삶을 어떻게 하면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 수 있을까, 오직 그 생각만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선하심은 어떤 인간에게서도 경험할 수 없는 것이기에 하나님을 인간과 비교하여 설명할 순 없습니다만, 예수님께서 친히 드신 예화를 들어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너무나 좋으신 아버지를 뭐 때문에 그렇게 오해했는지, 누가복음 16장의 작은 아들은 살아있는 아버지에게 유산을 내놓으라고 닦달하다가 자기 몫을 받아내자 먼 곳에 가서 죄를 지으며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결국 아버지가 고생하여 모은 그 재산을 다 탕진합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는 최악의 동물, 돼지를 치는 일까지 하지만 굶주린 배를 채울 돼지 먹이도 얻지 못하는 비참한 지경에 이릅니다.
그는 배가 고파서 아버지께 돌아가기로 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버지가 저 멀리서 달려오더니 자기를 안고 입을 맞춥니다. 저는 이 장면에 저를 직접 대입해 보았습니다. 이 작은 아들은 남자라서 창녀들과 노느라 재산을 다 날렸는데 저는 여자니까, 창남들과 노느라 재산을 다 날렸다고 정말로 감정이입을 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 더러운 나를 안아주려고 달려오는 아버지...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저는 저의 상상 속에서도 그 아버지를 밀쳐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 자신이 너무 밉고, 더럽고 추하다는 생각과 그러한 나를 아무런 질책 없이 다시 안아주려는 아버지의 "선하심"이 저에겐 오히려 "두려움(경외)"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치만 결국 어떻게 해서 아버지의 환대를 받아들였다고 해 봅시다. 다시 집으로 돌아갔고 아버지가 나를 완전하게 받아들여 주셨다는 것을 인식한 뒤에, 아버지에게 유산을 내놓으라고 닦달하던 그 못돼 먹은 강도 같은 짓거리를 다시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아버지의 이 놀라운 선하심에 대한 깊은 경외함으로 아버지를 향한 거룩한 두려움을 갖게 될까?
(다행히 한국어에는 "두려움" 외에도 "경외함"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영어에는 "경외"라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미국 사역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함"을 설명할 때 애를 먹습니다. 우리에겐 경외라는 좋은 단어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저는 어떤 이유로든 타인을 평가해야 할 때, "이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가?"라는 기준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경외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만큼 신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완벽한 사람이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가장 높은 우선순위에 두고 말씀을 모든 것의 판단 기준으로 삼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신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때, 즉 하나님을 만홀히(업수이) 여길 때, 우리는 죄를 서슴없이 짓게 됩니다.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하는 것이 "죄"이기 때문이죠. 하나님이 나에게 별로 중요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그분이 싫어하는 행동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으로 보면 대형 교회 목사가 박사 논문을 표절하고, 교회 돈을 횡령하고, 불륜을 저지르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특별히 사역자들에게 죄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고상한 도덕관념과 자기 절제가 아닙니다. 자기의 도덕성과 절제력을 의지하다간 큰코다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을 조금이라도 맛보아 안 사람이라면 섣불리 하나님 앞에서 그러한 죄를 서슴없이 저지르지 못합니다. 나 같은 죄인에게 놀라운 은혜와 용서, 선대하심으로 다가오신 그 분은, 가장 두려운 대상(경외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분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계시로 아는 것이기에 저의 말과 글로 설득할 수 없어서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 그 선하심의 지식이,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말씀을 묵상할 때 더 큰 계시로 열리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성경 구절을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시 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4: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