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삭기 수급조절’ 14000명 파업‘믹서트럭 8·5제’ 8개월째 캠페인타워크레인 분쟁, 건설현장 중단 건설기계가 멈췄다. 우렁찬 엔진 소리를 자랑해야 할 건설기계 대여사업자들이 “더 이상 사업하기 힘들다”며 손을 든 것. 일감은 줄고 건기는 늘기 때문. 공급과잉은 대여사업자간 출혈경쟁을 부르고 임대료 인하와 덤핑의 원인이 됐다. 거기에 임대료 체불까지 기승을 부리니 설상가상. ‘갑질’에 ‘을질’까지 감내해야 하는 건기업자. 상식은 사라진지 오래다. 시동을 끄는 외 선택할 게 없는 그들. 속내를 들춰봤다.△멈춰 선 굴삭기=굴삭기대여업자들이 뿔났다. 더 이상 사업을 못하겠다며 27일 사업자등록증을 반납하러 전국에서 굴삭기를 몰고 청와대로 향했다. 전국건설기계연합회(회장 김종성, 이하 전건연) 산하 광역 및 기초 자치단체 건기연 회원들이 100여대의 굴삭기를 몰고 나온 것. 대부분이 고속도로 나들목과 서울 교량 진입 전 경찰에 제지됐지만, 분노와 좌절감은 누그러들지 않았다. 이처럼 분통을 터트린 건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다.전건연 산하 광주전남건기연(당시 회장 김종성, 현 전건연 회장) 산하 시군연 회장들이 지난 2012년 10월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현 대통령과 면담을 갖고 건기 수급조절과 유류비지원을 주문했다. 박 대통령은 실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취임 4년째를 맞는 아직까지 시행되지 않고 있다. 전건연 회원들은 그래서 이번 시위 때 굴삭기에 “박 대통령님, 2012년 대선 약속을 이행하십시오”라고 적힌 현수막을 달았다. 이에 대해 이동희 경기건기연 사무국장은 “생존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자 절규”라고 토로했다. 전건연은 지난 18일에도 회원 1만4천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세종시 국토부 청사 앞에서 ‘굴삭기 수급조절 시행’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가졌다. 수급조절제는 초과공급에 대해 정부가 시장균형을 유도하는 정책으로, 화물차와 택시 그리고 대형마트 등 타 산업에서도 시행중이다. 7월 29일 오후 4시 그 향방이 결정된다.굴삭기대여업자들이 분노한 가장 큰 이유는 굴삭기가 공급과잉이 가장 심각한데도 수급조절에서 늘 제외된다는 점이다. 2007년 법개정 뒤 2차 수급조절위(2009년) 때 덤프트럭과 믹서트럭이, 5차(2015년)에서 펌프카로 수급조절이 확대됐다. 하지만 굴삭기는 거듭 제외됐다. 건기제조업계와 이들의 주무관청인 산업통상자원부의 반대 때문. 수급조절에 따른 내수시장 악영향을 우려한다.국토부 집계에 따르면, 영업용 굴삭기는 2008년 8만2360대에서 지난해 9만3099대로 13.0% 증가했다. 매년 2.0%씩 늘어나는 중이다. 앞으로도 초과공급이 심화될 예정이다. 건기 수급조절 연구용역을 맡은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굴삭기는 이미 지난해 3549대(2.6%) 초과공급을 보였고, 2019년에는 1만2734대(8.3%)가 넘칠 것으로 예상된다.게다가 굴삭기 일감은 매년 줄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집계한 2010년 건설투자 증감률은 -3.7%. 같은 기간 굴삭기는 2.6% 늘었다. 굴삭기 가동률을 봐도 일감감소는 분명하다. 대한건설기계협회(회장 전기호, 건기협)에 따르면, 2010년 58.2%던 굴삭기 가동률이 지난해 47.4%로 떨어졌다. 이병기 서울자주식굴삭기협회장은 “회원 상대 자체조사 결과, 1년에 100~150일 정도 작업을 하니 30%대 가동률”이라며 “사업을 유지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말했다.임대료는 되레 후퇴하고 있다. 대한정책연구원은 2011년 이후 5년간 06자주식굴삭기 하루 대여료가 63만원(유류비 제외)으로 변동이 없다고 연구결과를 밝혔다. 그런데 공급과잉으로 일감다툼이 거세지며 저가 임대료(덤핑)가 횡행하고 있다. 더욱이 2008년부터 전국의 굴삭기대여업자들이 노력해 정착시킨 ‘1일 8시간 작업’ 질서도 점차 와해되고 있다. 장시간 작업은 역시 임대료 저하로 귀결된다. “왜 굴삭기만 매번 제외되느냐” 체불까지 굴삭기대여업자들을 힘들게 한다. 일감도 없는데, 일하고도 돈을 못받는 실정이다. 서울시의 하도급부조리센터가 2011년부터 4년 동안 신고 된 1139건의 체불신고건 중 40%인 500여건(액수 169억원)이 건기임대료 체불 건수였다. 건기협의 임대료체납신고센터에 접수된 임대료 체불액도 2009년부터 지금까지 430억5552만원이나 된다.그러다보니 굴삭기 대여업은 유지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가동률과 임대료를 토대로 순익을 계산해보면, 06자주식굴삭기 하루 대여료가 60만원 정도니 월매출 600만원선. 유류비 170만원(25%), 제세공과금·보험료 30만원, 소모품비 25만원(타이어 포함 연 500만원), 그리고 정비비·세금·감가상각을 빼면 매출의 30~40%인 200~250만원이 순익. 조종사를 고용한다거나 대출이 있다면 손에 쥐는 돈은 없다.그런데도 정부 지원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화물차나 택시업계가 지원받는 유류비도 굴삭기업계는 예외다. 화물차에 있는 업종변경이나 폐차 지원금도 굴삭기에는 없다. 굴삭기 등을 세워놓는 공영주기장도 마찬가지. 화물차공영차고지는 전국에 분포돼 있지만, 공영주기장은 여수 한 곳뿐이다.△‘저녁 있는 삶’, 믹서 사업자에겐 예외?="오전 7시전 레미콘 출하작업을 시작하니 새벽부터 나와 작업준비를 해야 합니다. 늦은 밤에도 출하해 야간에도 대기해야 하고요. 하지만 새벽출근과 야근 등 대기하는 시간엔 보상이 없죠.”콘크리트믹서트럭(믹서트럭) 대여업자 최상철(52)씨. 월 150만원 수입에도 심야·새벽까지 일에 매달려야 한다. 레미콘 한 번 운송비는 3만~3만3천원선. 한 달 70회 정도니 210만원. 수리비·보험료·세금을 빼면 손에 쥐는 건 4인가족 최저생계비 175만원에도 못 미친다.그러니 업계가 생사기로에 섰다. 나아지리라는 희망이라도 있다면 버티는데, 미래가 암울하기만 하다. 작업 여건도 형편없다. 언제 부를지 모르니 새벽 5시부터 나가 준비하고 대기해야 한다. 야간 출하도 마찬가지. 밤늦게까지 대기해봐야 대가는 없다.결국 사업자들이 들고 일어섰다. 사업자단체인 전국레미콘운송총연합회(회장 정융원, 레미콘운송연)는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5시 퇴근(8출5퇴)하는 8·5제를 올 1월부터 추진하고 나선 것. 아울러 임대료 인상과 임대차계약서 작성 캠페인도 함께 진행 중이다. 8·5제는 2013년부터 레미콘제조업체에 요구해 오던 사안이다. 심야·새벽까지, 최저생계비도 못벌어 8·5제 정착을 위한 집회도 간간히 열리고 있다. 지난 19일부터 이틀간 안성의 S레미콘공장 앞에서 회원 70여명이 모여 8·5제시행 촉구시위를 가졌다. 시위에 참가한 장지택씨는 “8·5제에 사업자 모두가 협력·동참해야 하는데, 동료의 휴업을 기회삼아 그 자리를 치고 들어가 사익을 취하는 이들이 있다”며 “업계의 희망은 단합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업계는 지난 2월 국토부와 건설사들을 상대로 8ㆍ5제 관련 간담회를 갖고 해법을 논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입장차이만 확인했다. 정융원 레미콘운송연회장은 “사업자의 ‘인간다운 삶’, 과로에 따른 각종 사고 예방, 고품질 시설건축물 제공을 위해 8ㆍ5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건설업계는 “레미콘사와 운송사업자 간 풀어야 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이날 회의에 레미콘제조업계(산업통상자원부 주무)는 참석하지 않았다. 다만, 레미콘제조업계는 “8ㆍ5제 따른 할증비용을 건설업계가 레미콘제조업계에 떠넘기려 할 텐데 수용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8·5제는 나름의 성과를 내고 있다. 서울 동남부와 경기동부권, 그리고 고양ㆍ파주, 광주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경기권이지만 화성, 용인, 연천, 그리고 부천을 뺀 인천ㆍ송도ㆍ김포지역은 더디게 확산되고 있다. 그 외 지역에서는 대전 일부지역과 청주, 충주, 원주, 제천, 당진 등으로 확대되는 추세. 업계의 단결만이 8·5제 성쇠의 열쇠를 쥔 셈이다.임대료 인상도 추진하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 믹서 1회전 임대료는 3만원에서 3만3천원선. 한달에 70~100회 작업을 한다니 210만원~330만원 매출. 유류·관리비 등을 빼면 순익은 더 적다. 그래서 인상 요구가 터져나온 것. 최근 그 성과가 나왔다. 지난 21일 천안·아산 지역내 17개의 레미콘제조업체가 2900원(9%인상)의 임대료 인상에 합의한 것.업계는 일요휴무와 점심시간 확보 노력도 쏟고 있다. 전춘식 레미콘운송연 사무총장은 “특성상 레미콘제조업체와 수직적 관계라서 대여업계는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 하는 구조라 불평등한 계약에도 울며 겨자먹기로 당해왔다”며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바꾸자는 것”이라고 말했다.△휑덩그런 타워크레인=타워크레인도 멈춰 섰다. 조종사들이 속한 건설노조가 지난 1일부터 한달 가까운 파업에 나서면서다. 노조에 따르면, 2700여명의 조합원 파업으로 853개 현장의 타워크레인이 동작을 멈췄다. 타워크레인 한 대당 50~100명의 철근·목수 등 건설노동자들이 연결돼 있어 타워크레인 가동중단은 건설업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조종사들의 요구 사항은 임금인상과 함께 △소형 타워크레인 등록 기준과 면허 요건 개정 △타워크레인 풍속제한 개정 △타워크레인 안전인증 및 안전검사 공공기관 직접 시행 △타워크레인 조종사 자격시험 격년제 실시 등이다. 한국타워크레인협동조합(이사장 한상길)과 노조의 임단협 협상은 2001년부터 진행돼 왔다. 현재 조종사 기본급은 230여만원. 노조는 애초 기본급 19.8%(45만원↑)과 상여금 150% 인상을 요구했으나, 지난 18일 기본급 7.1%와 상여금 50%로 인상안을 수정했다. 협동조합이 수정 요구를 수용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대여업계가 조종사들의 요구안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데는 이유가 있다. 수익성이 줄고 있기 때문. 2013년 600여만원대의 월 임대료를 800만원~1000만원(12톤 기준)으로 올렸으나 역시 공급과잉으로 출혈경쟁이 심화되는 중이다. 2012년 2900대던 타워크레인 대수가 올해에는 3900대(35%↑)로 크게 증가했다. 경기도의 한 대여업자는 “덤핑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월 600~700만원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임대료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조종사 인건비. 기본급에 위험수당, 면허수당, 초과근무수당 등을 합치면 임대료수익 대부분이 인건비로 빠져 나간다. 그러다보니 대여업계와 노조간 대립은 거세지고 있다. 타워크레인 중단, 건설현장 올스톱 △건기대여업계의 미래=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이후 한국 건설시장이 신축(축소·쇠퇴)보다는 리모델링·도심재생·SOC유지보수 위주로 바뀔 전망이다. 건설투자의 연평균 증가율이 2013∼2020년 0.8∼1.5%에서 2020∼2030년 0.6∼0.7%로 지속 하락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 그러나 2020년 이후에도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가지 않는 건 신축시장은 쇠퇴하지만 유지보수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건설산업의 쇠퇴는 건기대여업계에 큰 영향을 끼칠 게 분명하다. 대형 토목공사와 대규모 신축공사가 줄고 도시 건축물이나 각종시설 유지보수 공사가 늘 것이기 때문. 또 안전과 재해재난 관련 재정투자가 늘고 있어 관련 일감도 늘 것으로 보인다. 김종성 전건연회장은 “안전과 유지보수 등 관련시장에서 건기업계가 역할을 확대하고 위상을 회복할 수 있게 정부나 자치단체와 협력관계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건기대여업계는 사업환경의 악화에도 업계를 지키며 사업자들의 권익을 확보하려면 업계내 광범위한 연대협력이 절실하다. 수급조절만 봐도 그렇다. 성사시키려면 사업자간의 과다경쟁과 편가르기를 중단하고 공동의 이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주성 경기건기연회장은 “건설산업 쇠퇴로 동업자 경쟁과 다툼이 더 심화될 텐데, 이 소용돌이를 잘 이겨낼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전체를 보는 시선으로 업계의 연대협력을 이뤄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정부와 업계간 논의 테이블도 절실하다. 그간 이런 자리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09년 수급조절 정책결정을 할 때 잠깐 자리가 마련되기는 했다. 물론 소통의 자리는 아니었다. 지난해 5월 전건연 광역시도 회장이 국토부를 찾아 현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전건연은 정기적 민관협의를 주문했고, 국토부도 가능하다고 했다. 올해 수급조절 결정을 앞두고 한두차례 모임이 이어졌다. 업계의 어려움이 정부의 고민이 아니라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면 업계활로 찾기에 정부지원이 절실하다. 그 첫 걸음은 민관 협력과 소통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