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어제 읽은 63장 후반부의 기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기도하고 있는 지금 현실은 63:18에 보면 원수가 주의 성소를 유린한 상황입니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다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입니다. 이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사야의 기도는 절망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망이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1~2을 보면 지금 이 상황은 출애굽하여 시내산에 강림하시는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성경에는 종종 하나님이 폭풍, 불, 구름 가운데 땅에 내려오시는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이사야는 이러한 하나님의 위엄을 잘 알고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버리신 것처럼 보였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이 이방신들보다 뒤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렇지만 열방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감히 교만하게 하나님을 비방합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위엄을 보여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러면서 3절에서는 출애굽 사건을 회고합니다. 그 때에 산들이 주의 앞에서 진동하였습니다. 하물며 주의 대적들에겐 문자 그대로 불이 섶을 사르고 물을 끓임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날 때에 열방은 그제야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진노하셨던 것이지 결코 자신들의 신이 위대해서 하나님의 성소를 짓밟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또한 자신들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7절에 보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도 없고,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이사야는 이토록 하나님께서 당신의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죄를 통렬하게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이사야는 이 때 하나님을 붙잡습니다. 8절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하나님을 볼 때 은혜를 구할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그 분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디서 왔습니까? 주께서 지으셨습니다. 우리는 진흙으로 지어진 존재이기에 연약한 존재임을 주께서도 아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같은 사실 때문에 그토록 진노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수 있는 근거라고 보았습니다. 주께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은혜요 진정한 부흥입니다. 오늘 우리도 더욱 주님께 나아가는 복된 날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고전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