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투어리즘(과잉 관광)으로 몸살을 앓던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지난달 25일부터 관광객들을 상대로 도시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어요. 입장료는 당일치기 관광객 한 사람당 5유로(약 7400원)라고 해요. 시 당국은 공휴일과 주말에 입장료를 부과해 관광객들이 평일에 방문하도록 유도해서 인파를 분산한다는 계획이에요. 코로나가 끝난 뒤 베네치아를 찾는 관광객이 지나치게 많아지면서 소음과 사생활 침해, 환경오염 등으로 주민들의 불만이 커졌기 때문이에요.
최근 이처럼 지구촌 곳곳이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어요. 그런데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도 수많은 사람이 끊임없이 찾아간 곳이 있어요. 대부분 성지(聖地)순례를 하는 종교적으로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성지순례란 종교적 의무를 지키거나 신의 은총을 구하기 위해 성지를 찾아가 참배하는 일을 말해요. 고대부터 존재했던, 힘겹지만 성스러운 여행에 대해 알아볼까요?
예루살렘과 십자군 전쟁
2000년 3월 로마 교황청은 지난 세월 동안 가톨릭 교회가 저지른 잘못들을 공식 인정하는 참회의 문건을 발표했어요. 이 문건에 언급된 잘못들 중에는 십자군 전쟁도 있었죠. 십자군 전쟁은 성지순례와 관련해 발생한 전쟁이었답니다.
그리스도교(가톨릭+개신교)에서 예루살렘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뒤 부활한 성지예요. 이곳에 있는 성묘교회는 예수가 묻힌 곳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최고의 성지인 거죠. 그런데 이곳은 동시에 유대인들이 이집트에서 벗어나 정착한 곳이에요. 고대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시온이라는 언덕에 예루살렘을 세웠다고 전해져요. 이곳에 지어진 유대교인들의 성전은 로마군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는데, 그 일부가 현재 '통곡의 벽'으로 남아 있어요. 이후 뿔뿔이 흩어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은 그들을 단결하게 하는 원천이 되었죠.
한편 이슬람교 신자들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예루살렘의 모리야 바위 위에서 하늘로 올라갔다고 믿었어요. 이 기적을 기념하기 위해 '바위 사원'이 세워졌어요. 그래서 이슬람교 신자들에게도 예루살렘은 중요한 성지였죠.
이렇게 세 종교가 모두 자신들의 성지로 예루살렘을 삼고 있다 보니, 종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어요. 각 종교인들이 평화롭게 성지순례를 했다면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었지만, 한 종교에서 다른 종교의 순례를 방해하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예루살렘 지역은 로마에 이어 비잔티움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7세기에 이슬람 세력권으로 들어갔어요. 이슬람교를 믿는 셀주크튀르크 왕조가 예루살렘 지역을 차지하면서 유럽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성지순례를 하기가 어려워졌죠. 이런 와중에 셀주크 왕조가 비잔티움 제국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공격을 해오자, 다급해진 비잔티움 제국 황제는 교황에게 지원군을 요청합니다.
이에 교황 우르바노 2세는 이번 기회에 자신의 권위를 높이고자 예루살렘을 되찾겠다는 십자군 전쟁을 선포했어요. 서유럽 사람들은 하느님이 전쟁을 원한다고 믿고, 참전을 통해 구원을 얻을 것을 확신하며 전쟁에 참여했어요. 그렇게 1096년 시작된 십자군 전쟁은 약 200년간 이어지다가 13세기 말에 끝났어요.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예루살렘을 결국 회복하지 못했죠.
하지만 십자군 전쟁을 하는 동안 이슬람 세계에서 들어온 서적들은 서유럽 학문 발전을 이끌었고, 지중해 중심으로 무역이 활발해졌어요. 특히 이탈리아 도시들은 전쟁 중에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날라 돈을 벌었고, 이를 바탕으로 상업과 공업 등이 크게 발달하면서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할 수 있었죠.
다섯 개의 기둥과 순례 여행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 즉 무슬림에게는 지켜야 할 '다섯 개의 기둥'이 있어요. 무슬림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5가지 의무로, '신앙고백' '예배' '단식(이슬람력 9월에 해가 떠 있는 동안 금식하는 것)' '희사(재산 기부)' '성지순례'를 말하죠.
'성지순례'의 의무는 건강한 신체와 경제적 능력이 되는 무슬림이라면 일생에 한 번은 꼭 메카를 방문해야 하는 거예요.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 있는 카바 신전을 방문해야 하죠. 무슬림은 이 신전을 선지자 아담 때부터 아브라함, 이스마엘, 무함마드 때에 이르는 동안 건축과 재건축을 반복하며 존재한 역사적인 건물로 생각해요. 해마다 수백만 명의 무슬림이 메카를 방문해, 카바 신전 주위를 7번 돌며 신을 경배하는 의식을 치러요.
카바 신전에는 가로 25.4cm, 세로 30.48cm 크기의 검은 돌 하나가 있어요. 무슬림은 이 돌에 손을 대거나 입을 맞추는데, 아브라함 시대부터 감미로운 향기가 났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무슬림은 이 돌이 심판의 날이 되면 기도의 증표가 되어 줄 뿐만 아니라 돌이 말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불교 순례 여행의 시작, 아소카왕
아소카왕은 인도 최초의 통일 왕조인 '마우리아 왕조'의 제3대 왕이에요. 아소카왕은 많은 정복 전쟁을 벌였는데, 이후 전쟁의 참혹함을 깨닫고 불교의 가르침을 따라 인도를 다스리고자 했어요. 불경을 정리하고, 나라 곳곳에 불탑을 세워 불교를 장려했죠.
불탑은 석가모니의 시신을 화장한 후에 나온 사리(舍利)를 모시고자 만든 것이에요. 불탑이 곧 부처를 상징하는 것이었죠. 석가모니가 열반한 뒤 약 500년 동안은 석가모니의 모습을 그대로 그리거나 만들 수 없었어요. 석가모니가 자신의 모습을 어떠한 형상으로도 만들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불상이 없던 시대에는 불탑에 경배를 드려야 했답니다.
석가모니의 사리는 여덟 나라로 나누어져 각각 불탑에 보관됐는데요. 아소카왕은 이 여덟 불탑에 안치된 사리를 꺼내 고운 가루로 만들고, 인도 전역에 있는 불탑 수만 개에 나눠 안치했어요. 아소카왕이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 산치 대탑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어요. 현존하는 불탑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부처의 행적과 아소카왕의 순례 장면이 새겨져 있어요. 불탑을 인도 곳곳에 만들어 불교를 전파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그가 순례 여행에도 가장 앞장섰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아소카왕은 자신의 통치 방침과 불교의 가르침을 새긴 돌기둥을 부처 탄생지인 네팔 룸비니 동산 등 순례객이 모이는 성지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큰길에 세웠대요. 또 그는 순례객을 위해 길을 정비하고 우물도 만들었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