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담주潭州 연수사延壽寺 혜륜慧輪 선사의 법손
여산廬山 귀종歸宗 제12세 도전道詮 선사
그는 길주吉州 안복安福 사람으로서 성은 유劉씨이다. 어릴 때부터
누린내와 비린내를 싫어하더니, 귀밑머리를 딸 나이가 되자 고향의
사思 화상에게 귀의하여 업을 닦다가 혜륜慧輪 화상이 장사長沙에서
교화한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는 마馬씨가 외람되이 왕을 자칭하고 형초荊楚와 건강建康의 접경지대에 있었다.
대사가 25세의 나이로 도반을 맺어 위험을 무릅쓰고 멀리 와서 찾아뵈었는데,
이때 마씨는 다시 유언劉言을 멸망시키고 그 땅까지 차지하여 왕규王逵로 하여금 유언의 대를 잇게 했다.
이에 왕규가 대사를 강표江表의 간첩으로 의심하고
대사를 붙들어다가 강에다 던지게 했다.
그러나 대사는 태연히 앉아 겁이 없으니,
왕규가 이상히 여겨 혜륜慧輪 화상에게 물었다.
이에 혜륜 화상이 대답했다.
“이는 모두 불법을 위해 몸을 버린 사람이다.
나의 헛된 이름을 듣고 멀리서 물으러 왔을 뿐이오.”
왕규가 기뻐하면서 풀어 준 뒤에 더욱 존중히 여겼다.
대사가 연수延壽에서 머문 지 10여 년 만에 혜륜 화상이 입적하니,
다시 여산廬山의 개선開先으로 돌아가서 살았다.
건덕乾德 초에 산동山東에 있는 남우수봉南牛首峰 밑에다 띠집을 짓고 살았는데,
개보開寶 5년에 대장군[洪帥]인 임인조林仁肇가 균양筠陽의 구봉九峰 융제원隆濟院에 살면서 종지를 드날리라고 청했다.
그리고 본국에서 대사문大沙門이란 호를 하사했다.
스님이 물었다.
“듣건대 화상께서는 연수를 친견하고 오셨다는데 사실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산 밑의 보리가 익었는가?”
“구봉산 안에도 불법이 있습니까?”
“있다.”
“어떤 것이 구봉산 안의 불법입니까?”
“산 속에 있는 돌이 큰 것은 크고, 작은 것은 작으니라.”
이윽고 강남국江南國에서 스님들을 모아 놓고 경업經業을 시험했는데,
대사의 제자들은 모두가 선관禪觀을 익혔으므로
게송 하나를 지어 군수에게 바쳤다.
말을 잊고 태허太虛에 합함을 겨냥해서
화기和氣에 친소親疎가 있게 하는 것을 벗어났네.
도와 덕이 전적으로 공용이 없음을 누가 알겠는가.
오늘날 스님을 위함은 글 아는 것을 귀히 여길 뿐일세.
比擬忘言合太虛 免敎和氣有親疎
誰知道德全無用 今日爲僧貴識書
이때 군수가 열람한 뒤 관원들과 상의하고 말하였다.
“전단旃檀 나무의 숲 속에는 반드시 잡된 나무가 없다.”
그리하여 대사의 선원 하나만을 특별히 위에 알리어
경전 시험을 면하게 했다.
태평흥국太平興國 9년에 남강南康의 원수인 장남금張南金이
먼저 글을 올려 대사에게 아뢴 뒤에
도속道俗을 모아 놓고
귀종도량歸宗道場에와서 앉기를 청했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귀종歸宗의 경계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천 가지 삿됨이 한 가지 곧은 것만 못하니라.”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눈이 녹기만 하면 봄은 자연히 온다.”
“어떤 것이 학인의 자기自己입니까?”
“자리가 좁으면 먼저 눕고, 죽이 묽으면 나중에 앉아라.”
“옛사람이 말하기를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幡]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한 것은 어떠합니까?”
“내일 길 어귀에 저자가 열린다.”
대사는 옹희雍熙 2년 11월 28일 밤중에 가부좌를 맺고 앉아서대중에 알리고서 입적하니, 수명은 56세이고 법랍은 37세였다.
다비를 마치고 사리를 거두어 우수암牛首庵 곁에다 탑을 세웠다.대사는 노래와 게송을 많이 지었는데 모두 세상에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