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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hoto 이경민 조선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아직도 매맞고 사는 아내들…
여성들의 눈물에 24시간 잠 못드는 1366
<이 기사는 주간조선 2084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1 지난 11월 25일 법무부는 아동 성폭행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형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아동 성폭행범에 대한 유기징역 상한선은 현행 15년에서 최대 20년으로 늘어나고, 가중 처벌 시 징역 30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 또 범인이 잡히지 않아도 피해 아동이 만 20세 성인이 될 때까지 공소시효를 정지하도록 했다. ‘조두순 사건’ ‘혜진·예슬이 사건’ 등 최근 잇달아 벌어진 아동 대상 성범죄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다.
#2 여직원과 단둘이 회식할 것을 강요한 상사, 여직원의 팔과 어깨를 주무른 사장, 여자 후배의 손바닥을 손가락으로 긁은 상사….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성희롱 시정 권고 사례집’에서 밝힌 ‘성희롱’ 인정 사례다. 앞서 지난 여름 서울행정법원은 성희롱 피해 여직원을 보호하라는 인권위의 권고 조치를 이행하지 않은 회사(삼성전기)에 대해 처분 취소 신청 패소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엔 대법원이 성희롱을 일삼은 대기업 간부의 해고 조치가 정당하다며 항소심 재판부의 결정을 뒤집기도 했다.
#3 지난해 전남 순천에선 부부 싸움 도중 홧김에 아내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쳐 숨지게한 40대 남성이 구속됐다. 남편 박씨는 평소 아내에게 폭언과 폭행을 서슴지 않아 이웃에게도 눈총을 사던 사람이었다. 2007년엔 상습 폭행 혐의로 법원에서 ‘접근금지’ 명령을 받은 남편이 하루 만에 집으로 다시 찾아와 아내와 딸을 무차별 폭행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가정폭력은 지난 1997년 제정된 ‘가정폭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으로 제재되고 있지만 감시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위 사례들은 △아동 성폭력 △성희롱 △성폭력 △가정폭력 등 ‘4대 여성폭력’에 관한 각각의 흐름을 나타낸 것이다. 이 중 처벌 강도가 높아지고 있는 아동 성폭력·성희롱 등에 반해, 가정폭력은 상대적으로 미비한 법 제도와 인식 속에 방치되고 있다. 특히 부부간 폭력은 ‘남의 가정사’ 혹은 ‘부부끼리 알아서 할 일’이라는 이유로 경찰도 외면하기 일쑤였다. 그러는 사이 ‘때리는 남편’의 주먹은 더욱 잔인해졌고 ‘매맞는 아내’의 무기력은 점점 깊어졌다.
이 같은 가정폭력의 ‘사각지대’를 파고들어 피해 여성들의 상처를 아물게 해주는 응급기관이 있다. 전국 16개 시·도에 설립된 여성부(장관 백희영) 산하 ‘여성긴급전화 1366’ 센터다.
지난 2001년 설립된 ‘여성긴급전화 1366’ 센터는 성폭력·성희롱 등의 피해에 시달리는 여성들에게 상담과 휴식을 제공하고, 필요한 법률 구조·의료 지원과 사회복지 서비스를 연계해준다. 전국 어디서나 국번없이 ‘1366’(휴대전화는 ‘지역번호+1366’)만 누르면 24시간 전문 상담원과 연결된다는 뜻에서 ‘1366’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혼 후 경제자립 위한 자활 프로그램
지난 11월 28일 찾은 대전광역시 오정동 ‘대전 여성긴급전화 1366’ 센터엔 적막감이 흘렀다. 사무실과 전화 상담방으로 흩어져 있는 3명의 전문 상담원들은전화를 받을 때도 목소리가 조근조근하고 나직했다.
상담원들은 “용기를 내 찾아온 분들에게 누가 되는 일이 없도록 우리끼리도 말조심한다”고 했다. 사무실 한구석에 마련된 쉼터엔 따뜻한 난방 기운이 돌았고, 이부자리와 옷가지, 목욕도구까지 모두 갖춰져 단 하루를 있어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이곳 ‘대전 1366 센터’에 “제발 도와달라”며 걸려오는 상담 전화는 하루 평균 약 30통 정도다. 이 중 절반이 가정폭력 피해 관련 상담이다. 하루 1~2명 정도는 직접 센터를 찾아와 상담을 요청한다. 남편에게 얻어 맞고 피를 흘린 채 센터를 찾아오는 여성, 치아가 깨진 어린 자식의 손을 잡고 온 피멍 든 얼굴의 여성, 남편의 성폭행에 시달리다 밤중에 몰래 도망쳐나온 여성…. 사연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남편이 이곳에 있는 걸 모르게 해달라”고 애원한다고 했다.
‘1366 센터’는 기본적으로 ‘원스톱 지원센터’를 지향한다. 의사와 변호사 등이 상주하는 게 아니라 사회복지사 자격을 가진 상담원들이 센터를 찾은 피해 여성들에게 상담-의료-수사-법률구조 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전문 기관을 연결한다. 피해 여성은 쉼터에서 지내며 일정 기간 몸을 피할 수 있고 동시에 성폭력상담소나 가정폭력상담소 등 전문 기관의 본격적인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지원은 이뿐만이 아니다. 피해 여성이 이혼을 원할 경우, 경제적 자립을 위한 자활 능력 개발 프로그램도 연계해준다. 신체적 피해 정도가 심각해 입원을 해야 할 때에는 치료비의 일부도 지원하고 있다. 또 부부가 화해를 원하면 ‘가해자 프로그램’을 제공해 남편에 대한 심리 상담도 제공한다. ‘가해자 프로그램’은 폭력적인 성향을 억누르기 위한 분노 조절 치료와, 남편 스스로 자기의 문제를 알 수 있게 하는 심리 상담 치료로 이뤄진다.
지난 5월부터는 ‘찾아가는 현장상담 서비스’도 실시하고 있다. 여성부는 “경제위기로 가정 내 갈등이 많아지면서 폭력 피해도 점점 늘고 있다”며 38억원의 추경 예산을 확보해 이 서비스를 만들었다. 전국 240명의 현장 상담원이 가정폭력 현장을 직접 찾아가 상담과 지원 활동을 벌인다. ‘찾아가는 현장상담 서비스’를 이용하는 피해 여성들은 오는 연말까지 전국적으로 약 8000명에 이를 전망이다.
“소장님,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곳에 다녀왔습니다. 여자분이 남편이 혹시 자길 찾아낼까봐 노심초사 고시원을 전전하나봐요. 센터에 하루이틀 정도 들어와도 되냐고 하는데, 남편이 여기 다녀왔다는 말 해줬더니 깜짝 놀라더라고요….”
‘찾아가는 현장상담 서비스’를 마치고 돌아온 안효진(51) 상담원이 김홍혜 ‘대전 1366 센터’ 소장에게 ‘오전 보고’를 했다. 전화상담으로 못다한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고 피해자가 처해 있는 환경까지 확인할 수 있어 피해자와 센터 상담원 모두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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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66센터에 마련된 쉼터 / 24시간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전화를 받는 대전 1366센터. photo 이경민 조선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부부 5쌍 중 2쌍이 배우자 폭력 경험
지난 5월 말 김홍혜 소장도 현장 상담원과 함께 ‘찾아가는 현장상담 서비스’를 위해 한 병원을 찾았다. 전화로 방문상담을 요청한 20대 여성 A씨는 입원실에 누워 처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함몰된 두개골, 주저앉은 코뼈와 광대뼈, 부러진 손가락, 실명된 오른쪽 눈…. 한마디로 ‘성한 곳’이 없었다. 담당의사는 “A씨가 앞으로 정형외과·정신과·안과·신경외과 등 다양한 진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를 이렇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남편이었다.
결혼 10년차인 A씨는 이른 나이에 결혼해 아들 딸 둘이 있었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편은 가장 역할을 도맡아 밤낮으로 일을 나가는 A씨를 의심했다고 한다. “자식 놔두고 바람났냐”며 A씨를 때리고 “같이 죽자”며 저수지로 끌고 갔다. 참다못한 A씨가 이혼을 요구하자 남편은 “다신 안 그러겠다”며 애걸복걸했다. A씨는 한번만 봐준다는 생각에 넘어가기로 했지만 결국 그날 남편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A씨와 장모에게 망치를 휘둘렀다.
A씨의 전화를 받은 ‘1366 센터’가 긴급히 움직였다. 남편은 구속됐지만 A씨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었기 때문이다. ‘1366 센터’는 입원 치료비 중 일부를 A씨에게 지원하고 “1000만원을 줄 테니 합의하라”는 남편 측 요구에 대한 법률적 소송도 준비하고 있다. 이혼과 자녀 친권 문제는 더 큰 난관이다. 앞으로 센터는 A씨의 정신적 안정을 위해 꾸준한 심리 상담을 연계하고, 직업 훈련을 통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대충 덮고 가면 폭력의 악순환 못 끊어
지난해 여성부가 발표한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부부 폭력 발생률은 40.3%에 이른다. 부부 5쌍 중 2쌍이 최근 1년간 배우자의 폭력을 경험한 셈이다. 이 가운데 절반은 상호 폭력이었고 나머지 절반 중 70%는 남편의 아내에 대한 폭력이었다. 영국과 일본, 미국 등 선진국의 부부 폭력 발생 비율은 약 10~20% 사이다. 김홍혜 소장은 “전통적인 남녀 역할 고정관념이 강한 데다 여성들이 밖에 나가 일을 하기 시작하자, 현실과 전통의 인식 차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센터에서 3년째 일하고 있는 백미숙(45) 전문상담원은 “가정폭력은 억지로 대충 덮고 넘어가려고 할수록 꼬이게 돼 있다”고 했다. 폭력의 원인이 워낙 근본적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때리는 남편’의 마음속엔 ‘자격지심’과 ‘열등감’이란 심리적 장애가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부부 상담 등은 하지 않은 채 남편의 사과만 받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여성이 많아 안타깝다고 했다.
“아내든 남편이든, 변하지 않으면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해요. 남편의 보복이 두려워서, 남편이 불쌍해서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가는 건 결국 폭력을 ‘통제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남편의 행동을 인정하는 거거든요. 우리는 기본적으로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여성들도 정말 ‘이게 아니다’ 싶으면 그 틀에서 뛰쳐나와야 해요. 그리고 본인이 활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법적·제도적 장치를 이용해 잘못을 바로 잡아야지요. 최소한 ‘앞으로 어떻게 살겠다’는 자기 삶에 대한 확실한 생각만 있어도 무기력하게 맞고 살지는 않습니다. ‘1366’으로 전화하세요. 저희 센터가 모든 걸 도와드릴게요.”
|인터뷰| 김홍혜 ‘여성긴급전화 1366’ 전국협의회 회장
“가정폭력을 집안일로만 취급하는 사회인식이 문제
근본치유 안되면 폭력 반복… 악순환 고리 끊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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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혜(58) ‘대전 여성긴급전화 1366’ 소장은 “‘1366 센터’는 일종의 병원 응급실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긴급한 환자가 응급실에서 기본 치료를 받고 일반 병실로 옮겨지는 것처럼, ‘1366센터’도 피해 여성들이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진단한 뒤 필요한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현재 ‘1366 전국협의회’ 회장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1980년대 중·고등학교 상담실에서 진로·고민 상담 자원봉사를 한 게 인연이 돼 교육심리학 석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사회복지에 뛰어들었다. 1997년 가톨릭 여성 교인들 상담을 시작으로 가톨릭 가정폭력상담소에서 근무했고 2006년부터 ‘대전 여성긴급전화 1366’ 소장을 지내고 있다.
‘여성긴급전화 1366’은 어떻게 설립됐나.
“1997년 ‘가정폭력범죄 처벌법’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인 여성 폭력 문제가 대두됐다. 그전에 ‘성폭력상담소’와 ‘가정폭력상담소’가 있었지만 사후 처리를 종합해 연결해주는 상담소는 없어 보건복지부 주도로 ‘1366 센터’를 만들었다. 같은 해 ‘위기여성 긴급지원’을 해주는 특수 전화번호인 ‘1366’이 지정됐고 2001년 여성부가 신설되면서 복지부에서 업무가 이관돼 여성부 산하 기관으로 들어왔다. 이때부터 365일 24시간 운영체계를 구축했고 현재 우리 센터 상담원들은 2명씩 야간 당직을 서면서 피해 여성들의 전화에 대기 중이다.”
센터에서 직접 상담하면서 느꼈던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최근엔 경제위기 때문에 돈 문제로 갈등하는 부부가 늘었다. 또 사람들의 인식이 바뀐 만큼 이전까진 쉬쉬하던 엽기적인 사건들도 새롭게 밝혀지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피해 여성들의 호소에 제대로 귀 기울여 주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친정 식구나 우리 같은 센터를 제외하고, 경찰이든 검찰이든 시댁 식구든 반응은 모두 싸늘하다. ‘집안 시끄럽게 하는 게 아이들한테 부끄럽지 않냐’ ‘아저씨가 잔소리 좀 했다고 너무 흥분하시네’ ‘알아서 좋게 해결하라’는 등 상식 밖의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정폭력 문제를 여전히 개인적인 사건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한 폭행의 충격은 모르는 사람에게 당했을 때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부 사이 폭력의 원인은 무엇에 있다고 보나.
“모든 사례에서 예외없이 관찰되는 것이 ‘자격지심’과 ‘열등감’이다. 심리적인 부분이라 고치기도 어렵고 모르고 넘어가면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아내의 사소한 잘못도 밉게 보고 자기 의견을 무시했다고 폭력을 휘두르게 된다. 힘으로 아내를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 부모가 살던 모습을 지켜보면서 잘못 배운 사람도 많다. 알게 모르게 익숙해지면서 ‘아내를 때려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때리고 나면 ‘아내가 떠나면 어떻게 하지’ 걱정돼 매달리지만 근본적인 치유가 안 되면 폭력은 반복된다. 더 큰 문제는 매맞는 아내다. 남편의 비난과 폭력에 익숙해져버리면 자아 존중감을 잃고 무기력과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뭘 해도 멍 하고, 넋이 빠져 있다. 나중엔 그 상황을 빠져나오려는 노력도 하지 않게 된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근 우리 센터에 들어오는 여성 10명 중 2~3명은 ‘폭력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나간다. 예전과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우리 센터는 ‘이혼하라’고 말하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가정을 보호하라’고 한다. 문제의 원인이 뭔지, 해결책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 조언하고 관련 기관을 연계해준다. 그렇지만 그래도 안 될 경우 ‘맞지 말고 과감히 뛰쳐 나오시라’고 한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인생을 생각하면 답은 나온다. 하지만 섣부른 결정도 금물이다. 남편과 대화하고 남편에게 ‘가해자 프로그램’ 등 최대한의 치료 기회를 준 뒤 결정해야 한다. 우리 기관은 절대 비밀이 보장되고 24시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니 무엇이든 언제든지 마음 놓고 전화주셨으면 좋겠다.”
도움 필요한 여성은 이곳으로!
여성긴급전화 : 국번없이 전국 1366
(휴대전화로 걸 때 ‘지역번호+1366’)
www.women-net.net (채팅 메뉴)
※외국인 아내 피해 상담을 위해 통역 서비스 지원
이주여성긴급지원 : 전국 1577-1336
www.wm1366.or.kr
※외국인 아내 피해 전문 상담을 위해 독립 설립된 상담소
/ 대전 = 박세미 기자 runa@chosun.com
첫댓글 참으로 ......... 안타깝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