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단상 62/수제手製 천자문]이런저런 추억의 언저리
마침내 우리집 ‘가보家寶’를 찾아냈다. 큰아들 돌상에 올려놓았던 ‘수제手製 천자문千字文’책자가 그것이다. 수제 천자문이라니, 무슨 말인가? 사진을 보면 그것이 무엇인지 금세 알 수 있다.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시작하여 <언재호야焉哉乎也> 로 끝나는 넉 자 250구로 이뤄진 천자문. 중국의 주흥사周興嗣가 하루밤새 지어놓고 보니 머리가 백발이 되었다하여 백수문白首文이라 불린다는 천자문. 흔히 <한석봉 천자문>으로 알고 있으리라.
1986년 7월 14일 큰아들이 태어났을 때, 생각만 해도 좋아서 웃음이 비죽비죽 나왔다. 그즈음 어느 일간지의 고정칼럼 <이완용 천자문> 얘기를 읽었다.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이완용이 태어났을 때 그의 외할아버지가 외손자 탄생을 축하하며 100일상에 올려놓으려고 만들었다는 천자문이 경매에 나왔다는 것이다. 얼마나 기뻤으면 100일 동안 1천명에게 각각 한 자씩 받아 천자문 책자를 완성했을까. 거기에서 힌트를 얻었다. 나로선 100일은 불가능, 더구나 1천명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 고심한 끝에 내린 결론이 아들 돌 때까지 1년 동안 250명에게 넉 자씩 받아 책자로 만들기로 했다. 가족, 친척, 선후배, 친구, 전우, 직장동료 등 249명에게 받은 책자에 마지막 한 명이 쓸 글자는 ‘焉哉乎也’였다. 그 자리는 비워놓은 채 돌상에 올린 까닭을 언젠가 쓴 적이 있다(http://yrock22.egloos.com/1676720). 25년 후 잃어버렸던 친구를 만나 마지막 네 글자를 받을 때의 감격도 대단했었다. 1년 동안 ‘각계의’ 250명을 만나 한자漢字 넉자씩을 써달라고 얼마나 발품을 팔았던가. 취지를 듣더니 선뜻 써주신 분이 대부분이었지만 글씨를 못쓴다며 사양한 분도 있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장모님은 넉 자를 일일이 그림처럼 그려 써주셨다.
수 십 년만에 꺼내보니, 250명 중 돌아가신 분이 20여분이나 되고, 그동안 소식이 끊긴 분이 40여명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누구인지 모르는 분이 30여명이다. 벌써 26년 전의 일이니 그럴만도 하지만, 세월이 무상無常하다는 말밖에 무슨 말을 하겠는가. 지금도 생각난다. 한지韓紙를 일일이 잘라 종이와 종이 사이에 책받침을 넣고 네모칸을 사인펜으로 그렸다. 이 책자는 사실 아들의 탄생을 기념하고 축북하고자 한 정성精誠이 아니었다면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너덜너덜해져 이것으로 공부를 할 수는 없어도, 아들이 자라 한자를 많이 알았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아무리 한글이 우수하다해도 한국어는 한글과 한자의 수레바퀴로 굴러가므로, 한자를 많이 알면 알수록 수학修學능력이 몇 배나 향상된다는 게 나의 오랜 지론이었다. 그런데, 100% 한글세대인 아들은 이 1000자 중에 몇 자나 알까? 300자만 알아도 다행일 텐데, 제 이름은 한글이라지만, ‘성 최崔’자와 부모의 이름은 한자로 쓸 수 있을까 모르겠다.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정말 한자공부를 지금이라도 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 천자문은 기초한자들로 구성된 게 아니다. 중국의 숱한 고사로 이뤄진 사자성어四子成語들이 대부분이어서 무척 어렵다. 실용한자가 누락된 것도 되게 많다고 한다. 솔직히 지금도 글자와 뜻을 모르는 한자가 많다. 고교 1학년 겨울방학때 동네 서당에서 배웠던 천자문은 두 음절로 된 실용한자였다. 그러니까 태양, 우주, 가족, 식구 등 두 글자로 된 500개 단어였다. 그때 그거나마 배웠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 천자문을 하루 10시간씩 무조건 외웠다. 주입식 학습 덕분인지 12일만에 1000자를 다 외웠으니 주위에서 ‘책씻이’로 떡을 해오라고 난리였다. 흐흐. 그 덕분에 한문시험은 늘 100점이었으니.
둘째아들이 태어났을 때에는 ‘반야심경般若心經’ 270자를 270명에게 받으려 시도하다 중도포기하고 말았다. 어디 그것이 마음만 먹은다고 될 일인가. 차남에게는 장남과 차별하여 애정이 없는 것같아 늘 그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그것도 만들어놓았더라면 우리집에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문건이 되었을 터인데. 아무튼, 이것으로 농한기에 서재를 정리하다 발견된 문건 더듬기는 끝이 났다. 자랑하려는 게 아니고, 이런저런 추억이 담긴 사연을 기록해놓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엮었다. 혜량하시라.
첫댓글 감동 감탄, 양감! 우천으로서는 만감이 교차했겠네. 가보로서 손색이 없구만.
고교시절 엉뚱하게 보였던 그 이미지는 허상이었고, 실상은 천재성이었던 것 같네.
( 그 당시 오해에 대해서 정중하게 사과드리네)
한울네 할아버지 필체에 엄청난 기세가 느껴지는구만. 천지개벽!
냉천부락 출신 최씨 가문에 영광이 가득차길 기도함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