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본지를 통해 장산 곳곳에 있는 안내판들의 문제점에 대해 여러 번 지적한 바 있다. 안내판을 볼 때마다 얼굴을 붉히던 차에 지난 2월 9일 몇몇 안내판들이 교체된 걸 보았다. 반가운 마음에 안내판을 쳐다보다 이내 실망하고 말았다.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 낡은 스테인리스 판 대신 읽기 좋은 안내판으로 교체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내용이 엉망인 점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새로 교체된 장산 폭포사 아래 등산로에 있는 이산표석 안내판
특히 이산표석 안내판 내용 수정에 대해 해운대구청의 의뢰를 받은 해운대문화원이 본지로 의논을 해 온 터라 더욱 실망이 컸다. 표석의 제원이나 재질, 개수 등은 알려준 대로 기재되어 있었으나 이산표석을 세운 주체와 목적에 대한 설명은 정말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에 대해 해운대문화원 측에서도 구청으로부터 최종 시안은 받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새 안내판에는 일제강점기 때 임야수탈에 맞서 대한제국이 이산표석을 세웠다고 나와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이면 나라를 빼앗긴 때인데 난데없는 대한제국이라니….
장산 폭포사 아래 등산로에 있는 이산표석과 안내판
그동안 이산표석을 연구하면서 내린 결론은 최소한 일제의 임야 강제수탈에 대항한 산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왕가(李王家)나 조선(대한제국)이 이산표석을 만들어 세우지 않았다고 추정한다.
왜냐하면 일제의 임야 강제수용에 대항해 일제 몰래 표석을 세웠다고 보기엔 표석의 수가 너무 많고 설치 지역이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산표석의 이산을 이왕가의 산으로 볼 경우, 이왕가는 1910년 한일병탄 이후 생겨난 명칭이라 식민지 시대에 이왕가가 나서 추정 수량 총 300여 개의 이산표석을 장산 일원에 세웠다는 것은 인정하기 힘들다.
교체되기 전 이산표석 안내판
백번 양보해 임야수탈에 대항하기 위해 이왕가나 대한제국이 이산표석을 세운 것이라면 먼 변방인 해운대가 아닌 한양 근처의 임야부터 이산표석을 심어 조선의 것이라 주장해야 합리적이다. 더구나 대한제국은 이미 강제병합에 따라 사라져버린 제국이므로 더욱 이산표석을 설치할 수 없다.
장산 일원의 이산표석이 박영효와 김홍조, 이토 히로부미 3자 간 이해관계의 산물로 보는 충분한 개연성을 10회에걸쳐 본지에 연재했다(해운대라이프인터넷신문 omhl.co.kr 이산표석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