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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STEN 기관단총(Sten Machine Carbine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이 급히 만든 기관단총.
'대(對)참호용 투척병기', '쇠파이프나 잘라서 대강 만든 쓰레기', '구린내 총 (Stench Gun)', '배관공의 악몽(Plumber's Nightmare)', '배관공의 낙태아(Plumber's Abortion)', '죽음의 탭댄스' 같은 주옥같은 별명이 붙어있는 싸구려 총의 대명사.
그러나 악명과는 달리 됭케르크에서 장비 다 놔두고 급하게 철수한, 그야말로 사람 머리 수만 남은 영국군을 무장시켜 연합군의 승리에 일조한 제 할일은 다한 총. 뿐만 아니라 특유의 간단한 구조 덕분에 약간의 기술로도 자체적으로 조립제작이 가능했기 때문에 유럽, 아시아 각지의 레지스탕스 조직들이 적측 정규군과 그나마 맞서 싸울 수 있게 한 공로가 지대하다.
당시 영국군 무기 분류 기준으로는 자동 카빈(Machine Carbine). 부가 정보를 얻고 싶다면 여기를 참고하면 좋다.
2차대전 이전의 영국군은 이상할 정도로 기관단총에 무관심했다. 1차대전 말기 독일군과의 전투와 아일랜드 공화국군과의 전투 과정에서 기관단총의 위력을 경험해봤음에도 불구하고 영국군에게 기관단총이란 살금살금 다가와서 허겁지겁 총알을 뿌리고 달아날 때나 걸맞는 총 정도로만 여겨졌었다. 1939년의 선전포고 이후 전력 강화에 광분하는 과정에도 기관단총 도입은 미제 톰슨 M1921 10만정 정도를 수입하는 선에서 그쳤다. 그러나...
대전 초기에 톰슨 기관단총으로 훈련중인 영국군 부사관. 일단 이때까지는 괜찮았다.
수입한 톰슨 기관단총 물량이 전부 도착하기도 전에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독일군이 벌이는 소위 전격전 앞에 영불연합군이 데꿀멍 당할 때, 영국군은 독일군의 MP40 앞에서 기관단총을 무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된다. 게다가 됭케르크 철수 과정에서 보병용 개인화기, 특히 미국에서 막 사온 톰슨 기관단총을 포함한 각종 무기들을 대부분 잃었다. 배에 오르기 전 무게를 줄이기 위해 수많은 총을 그대로 두고 간 것이 골칫거리가 된 것이다.
이렇게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자 영국군은 독일군이 본토에 상륙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여남은 소화기들을 허겁지겁 긁어모았지만 그 중 기관단총은 겨우 100정 미만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대부분은 아일랜드에서 노획한 MP18/28였다.
육군은 부랴부랴 미제 톰슨 기관단총을 추가로 주문했지만 필요한 수량을 맞추기에는 물량이 너무 적은데다가 제때 도착한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에 가격도 만만치 않다는 문제가 있었고 한시라도 빨리 무장을 확보해야하는 영국 육군 입장에서 보다 빠르게 양산할 기관단총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런 사정은 공군이라고 다르지 않아서 공군은 비행장이 독일군 공수부대에게 점령당하는 걸 매우 두려워해 비행장 방어용으로 기관단총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해군도 이에 동참하게 되는데 워낙 시간이 촉박하다보니 엔필드 조병창이 MP28을 복제한 란체스터 기관단총을 도입하는 것으로 어떻게 해결한다. 그러나 란체스터 기관단총은 육군에 쥐어주기에는 탄피에 쓰여야 할 비싼 황동부품이 대량으로 들어가는 문제가 있었기에 백만정씩 찍어서 쥐어주기는 부담스러운 물건이었다.
스털링 무기회사에서 생산한 MP28의 카피판인 란체스터 기관단총.
게다가 독일 공군의 맹렬한 폭격으로 대부분의 군수공장이 상당한 피해를 입어서 소총마저도 양산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전쟁성이 앞장서서 엔필드 조병창에서 모든 보병용 소화기를 대신할 총으로 우선 대량생산이 용이한 기관단총의 개발을 추진한다.
1941년, 엔필드 조병창의 R.V. 쉐퍼드와 해럴드 터핀 기사의 주도하에 MP28을 기본으로 하고 MP40을 참조하여 극단적으로 단순화시킨 끝에 싸고 간단한 자동화기를 완성했다. 개발자 쉐퍼드 소령과 터핀, 그리고 개발된 곳인 엔필드의 머리글자를 따서 스텐(Sten)으로 명명된 이 총기는 초기형은 그럭저럭 평범한 기관단총이었다.
하지만 이놈들은 목재부품 하나도 비싸다면서, 다른 의미로 엄청난 물건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생산성을 위해 많은 부분을 잘라내고 삭제해서, 개량형인 스텐 Mk.II와 Mk.III를 만들어낸다. Mk.I에도 목재부품 때문에 제작비가 많이 든다며, 생략을 더 거듭해낸 스텐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이 바로 이 두 모델. 특히 Mk. II
이렇게 탄생한 스텐 Mk.II와 Mk.III는 Mk.I에 비해 더욱 단순해진 나머지 한 자루 값이 고작 2파운드 50펜스, 미국 돈으로 단돈 8달러 되시겠다. 처음에는 11달러나 들었다고.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겨우 20만원도 안되는 가격이다. 동시대의 기관단총인 MP40은 23달러였고, M1 기관단총은 70달러였으니 상당히 싼 가격이다. 스텐과 톰슨의 가격을 비교해보고 열받은 미군은 개량형인 M1A1을 만드는 방법으로 45달러까지 가격을 떨어뜨리려고 했으나, 그마저도 스텐의 벽을 넘지 못해 15달러로 만든 M3 기관단총을 만들어냈다.
솔직히 쌀 수밖에 없었다. 스텐은 쇠파이프와 공업용 스프링을 이용하여 몸통과 완충 스프링을 만드는 등 처음부터 싸고 구하기 쉬운 재료로 만든 데다가, 생산성을 위해 많은 부분이 계속 삭제되었으며, 전쟁 중반에는 부품의 관리기준마저 고의로 낮춰 어느정도의 하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단 수량을 맞추기 위해 그야말로 와플 찍어내듯이 생산되었다. 개량형이라기보단 저가형이었던 셈. 어찌나 구성이 단순한지, 스텐을 찍어내던 레지스탕스 공장에 검열나온 독일군들도 부품을 보고는 이게 총일거란 생각을 안해서 그냥 지나갔다는 말이 있다.
attachment/스텐 기관...
2차대전 당시 덴마크에서 볼 수 있던 팜플렛.
분해된 스텐의 도면을 재구성하여 레지스탕스에 협력하는 공장에서 부품을 조달한 후
독일군의 눈을 피해 스텐을 조립해서 무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스텐의 '모범적인' 사격자세. 사진 속 인물은 윈스턴 처칠.
단, 이 자세로 너무 오래 쏘면 손에 화상을 입는다.
사격 자체도 힘들었던 게, 핸드가드는 방아쇠울 바로 앞에 보이는 저 부분인데, 정석대로 이걸 잡고 쏘자니 옆으로 툭 튀어나온 탄창때문에 이것도 아주 불편할 뿐더러, 앞쪽을 잡으면 총몸이 달아오르기 때문에 전투 중에 정신없이 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화상을 입을 위험이 있었고, 화상을 피하려는 생각에 결국 탄창을 잡고 사격하는 경우가 많았다. 윗선에서는 오발이나 급탄 불량 등의 오작동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금지하긴 했지만, 막상 이걸 직접 쓰는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안 그러면 못 쏘는데 어쩌라고? 그래서인지 콜 오브 듀티나 메달 오브 아너 등의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게임들에서도 탄창을 잡고 쏘는 것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래도 MP40처럼 방아쇠울 앞부분을 잡고 쏠 수도 있었고, 추울 땐 아예 조종사 용의 두툼한 장갑을 끼고 FM 파지를 하기도 했다.
Mk. IV는 특수부대 및 SOE 등 스파이 임무용으로 개머리판을 접을 수 있게끔 개발되었으나, 일선 부대에서 "어차피 개머리판만 떼면 총인지 쇠파이프인지 구분도 안되는 실정인데 굳이 이런게 필요한가?" 라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고, 따라서 양산되지는 않았다.
Mk.V에 이르러서는 영국도 숨통이 트인 덕분에 품질관리가 제대로 되어 기존의 문제점이 크게 개선되었다. 고정형 개머리판에 총열덮개 아래에 수직손잡이를 다시 부착함으로써 병사들이 "탄창 잡고 쏘는" 행동을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기존의 파지법에 익숙해진 일선의 병사들 중에서는 불편하다며 그냥 떼어버리고는 탄창을 잡고 쏘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유명한 게 마켓 가든 작전 당시 레드 데블스가 스텐을 들고 시가전을 위해 전진하던 사진. 당시 스텐의 파지법을 아주 자세히 보여준다.
저 두 병사가 마지막에 웃고 있는 이유는 저 난리에도 운 좋게 살아있어서다.
일선의 불평은 상상을 초월하여 온갖 조롱과 뜬소문, 괴담이 난무했으며 병사들은 이 문서 꼭대기에 소개된 그 수많은 별명들을 일일이 붙여가며 까댔다.
저가형 오픈볼트 총기들은 격발준비가 된 상태에서 외부충격을 받으면 오발사고가 날 수 있으며, 연발로 발사되진 않는다. MP40, PPS-43등도 구조적 한계로 공통적으로 갖는 문제다. 때문에 안전장치와 안전 매뉴얼을 만들어 둔다. 레버식이 아닌 노리쇠를 홈에 걸어 후퇴고정시켜 두는 방식과, 노리쇠가 함부로 움직여 오발사고가 나지 않도록 장전손잡이를 안쪽으로 누르면 장전손잡이가 버튼처럼 안으로 들어가면서 노리쇠가 움직이지 않게 하는 방식이 있다. 또한 교육 시 영국군의 스텐, 독일군의 MP40 모두 약실에 탄을 넣지 않고, 노리쇠를 전진시켜 두도록 했다. 이것만으로 사고를 간단히 예방한다. 부대가 전투에 돌입할 땐 전투지역 2km 밖에서부터 뭉쳐서 행군하던 보병들은 최소 분대단위로 산개하며 다시 전진을 계속하는데, 이때 당겨주고 방아쇠에 함부로 손가락만 안 갖다대면 그만이다.
그리고 스텐의 적은 부품수는 야전수리나 총기 정비를 아주 용이하게 한다. 심지어 메커니즘 오류로 작동불량이 일어날 확률도 엄청 적어지게 된다. 이런 류의 총기들은 아프리카 전선같은 사막지대에서 바람에 날리는 작은 모래알 정도는 가뿐히 씹어버리고 멀쩡히 작동한다. 폴란드나 프랑스 산간지역의 레지스탕스가 열악한 환경에서 카피한 물건이 아닌 이상, Mk.I도 Mk.II도 모두 잘 발사되고 성능도 괜찮은 녀석들이었다.
스텐 설계의 진짜 문제는 더블 컬럼 싱글 피딩 방식이었다. 탄창 입구에 이물질이 들어갈 경우 송탄 불량을 일으킬 가능성이 더블 컬럼 더블 피딩 방식보다 높았다. 더블 컬럼 싱글 피딩 방식은 원래부터 급탄부의 병목부에 무리를 많이주는 방식이라 연사속도가 느린 자동권총 에는 별 문제 없었으나 자동으로 갈겨대야하는 기관단총에 쓰기엔 결코 좋은 방식은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탄창을 잡고 총알을 퍼부어댔으니 고장이 안나면 이상할 지경. 스텐의 개량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스털링 기관단총에서는 더블 컬럼 더블 피딩 방식으로 변경되어 탄창의 신뢰성이 높아졌다.
의외로 연발 사격만 존재하는 MP40과 M3 기관단총과는 달리 단발 사격도 가능하다. 총몸을 보면 동그란 버튼이 존재하는데, 그게 단/연발 셀렉터이나, 대부분 이 기능이 존재하는 줄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버튼을 왼편으로 밀어두면 연발, 오른편으로 밀면 단발로 작동이 된다.
하지만 저 악명이 그냥 남의 떡이 더 커보이던 일선 군인들 + 이야기 좋아하는 밀덕들의 과장으로 붙여진 건 또 아니었다. 애초에 Mk.II 자체가 막 찍어내기 쉽게 Mk.I을 고친 물건이었으므로, 그 급하던 시기엔 당연히 품질검사도 대충대충했을테니 결국 영국산 정품마저도 안전장치 중 하나인 홈이 잘 닳아버릴 정도로 품질이 개판이 되어버렸다.
저 상태에서 실수로 총을 떨어뜨렸는데 노리쇠가 홈 뒤로 움직여버리면 노리쇠가 용수철 압력에 밀려나고 그대로... 망했어요. 게다가 한 번 격발이 시작되면 탄창이 텅 빌 때까지 계속 총알을 뱉어내므로, 교전 직전까지는 노리쇠를 후퇴고정시키는 것을 엄금시켰다. 실수로 땅에 떨어뜨리는 것만으로도 격발할 정도였으니... 그래서인지 글라이더에 장전된 스텐을 들고 탑승한 병사는 총을 안 놓치려고 별짓을 다했다고 한다. 잘못해서 격발되면 글라이더 안이 피바다가 되면서 죽을수도 있으니까.
사실 노리쇠가 전진된 상태에서 떨어뜨려도 발포되기 일쑤였다. 안전장치가 불량인데 스프링이라고 불량이 아닐턱이 없지않은가? 약해빠진 스프링이 충격으로 후퇴했다 전진하면서 홈에 걸리지않아 격발하는일이 심심찮게 일어났기에 들고있는것만으로도 위험한 무기였다. 때문에 적의 무기를 노획하던가, 아니면 바로 던져버리는 게 마음 편했더라는 참전자의 수기도 있다. 그러니까 저 악명이 과장된 측면은 있으나 억울하게 쓴 누명도 아니었다는 말이 된다.
오스텐 기관단총은 2차대전기 호주가 개발한 기관단총이다. 호주 역시 일본군과 전투를 해야 했기에, 빠른 무장을 위해 영국군과 같이 단기간 내에 많은 양의 총기가 필요했다. 호주도 영연방에 속해있기 때문에 영국으로부터 무기를 지원받기도 했지만, 역시 자국에서 총기를 제조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호주는 스텐 Mk.II와 MP40을 참고하여 오스텐 기관단총을 개발하게 된다. 이름의 유래는 '오스트레일리아 스텐' 이라는 단순한 것.
전체적인 모습은 스텐 Mk.II와 흡사하며, MP40과 같은 접철식 개머리판을 사용한다.
외견만 보면 스텐과 다를 바 없지만 아무것도 없는 총 앞부분을 잡고 쏘면 화상을 입어서 탄창을 잡고 쏴야 했던 스텐과 달리 앞부분에 전방 손잡이가 달려있기 때문에 보다 안정적인 사격이 가능했고, MP40을 참고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고장도 적었다고. 이는 1939년에 호주에서 개발한 오웬 기관단총과 같이 쓰였으며, 1944년까지 20,000여 정이 생산되어 호주군과 뉴질랜드군의 주력 기관단총 중 하나로 남태평양 전선에서 활약했다.
폴란드에서 개량한 스텐인 브위스카비차(Błyskawica, 폴란드어 로 '번개'). 사진에서 가운데 것. 공교롭게도 자유 폴란드 해군에 동명의 구축함이 있다.
설계도와 기본적인 금속 가공기술만 있으면 철공소 수준의 공작설비로도 만들어줄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총기이다 보니 금방 저항조직의 지하기지에서도 쉽사리 카피품을 생산할 수 있었고, 이러한 총기 중 일부가 현재도 가끔 발견된다. 사실 저항 조직이 가장 강성했던 국가들 중 하나였던 폴란드에서는 원판의 그지같은 성능에 불만을 가지고 브위스카비차(Błyskawica)라는 개량형을 제조할 정도였다.
1942년, 국내군 소속 기술자인 바츠와프 자브로트니(Wacław Zawrotny)와 세베린 비엘라니에르(Seweryn Wielanier)의 동료들이 스텐의 개량형 총기의 개발을 시작한다. 기본 설계는 스텐으로 격발 방식은 스텐과 MP40처럼 개방 노리쇠 방식이었지만 접이식 개머리판과 탄창 삽입 방향은 독일의 MP40을 참고하여 설계했다. 예를 들어 자동 재장전 방식은 MP40의 것을 본딴 단순 블로우백 방식이었다. 또한 MP40의 탄약통을 노획하거나 구입하여 사용할 수 있게 설계했다. 사용 탄약은 9mm 파라벨럼탄이었으며, 격침(擊針)은 노리쇠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독립한 상태였다. 분당 발사속도는 600발, 무게 3.22kg, 유효 사거리 200m, 장탄수 32발.
하지만 시제품이 만들어진 시기가 1943년 9월로 상당히 늦었고, 제조 수량도 700정밖에 안 되었다. 5정의 시제품을 실험한 뒤 국내군에서는 1천여 정을 주문하고 이후 추가로 300여 정을 주문했지만 1944년 7월까지 바르샤바의 비밀공장에서 리샤르트 비아워스토츠키(Ryszard Białostocki)의 감독 하에 600여 정만이 생산되었다. 이후 바르샤바 봉기 당시 40정이 추가로 생산되고 바르샤바 바깥에서도 소량이 생산되었다.
하지만 국내군 입장에서는 이거라도 써야 했다. 40만 명이 넘어가는 인원 중 제대로 무장한 인원은 3만 2천여 명에 불과했고, 바르샤바 봉기의 경우는 전체 인원 중 4%만이 제대로 무장한 상황이었다. 기실 폴란드 저항조직의 장비 문제는 전쟁 내내 국내군의 골칫거리로 작용했으며, 부패한 독일군이나 친독 동맹군에게 돈을 주고 무기를 구입하거나 심지어 폴란드 침공 당시 폴란드 패잔병들이 묻어둔 폴란드 총기와 수류탄을 파내어 쓰는 형편이었으니... 무엇보다도 스텐 기관단총은 독일 점령지 내에서 유일하게 대량생산된 화기였다. 700여 정이 그리 적은 숫자는 아닌 셈.
이 총 이름 대로 개머리판에 번개 문양이 있다.바르샤바 봉기를 주제로 한 영화 바르샤바 1944에서 등장한다.
포츠담 장비의 모습. 보다시피 스텐과 똑같이 생겼기 때문에 스텐으로 오해받아 연합군이 가져가버려서 이 총을 제외하면 거의 남아있지 않다.
독일의 경우, 처음에는 영국군이나 영국의 지원을 받은 저항조직이 총같지도 않은 스텐을 들고 나타나자 처음에는 비웃었다. 그러나 전쟁 말기 모든 밑천이 거덜난 상황에서 스텐의 장점인 양산 능력에 주목하여 마우저 사에 의뢰, 카피판인 "포츠담 장비(Gerät Potsdam)"를 국민돌격대와 일선의 병사들에게 지급하려고 만들어냈다.
그러나, 영미의 폭격과 소련군의 진격으로 독일 공업이 사실상 붕괴되었고, 국민돌격대용 장비와 관련된 난맥상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3~4만정 내외의 생산에 그쳤고, 전선에 뿌리기 보다 독일 패망 후 게릴라전을 벌이기로 되어 있는 저항조직 "베오울프단"에게 전달해야 한다며 창고에 쌓아놓는 짓을 저지른데다가, 혼란에 달한 보급체계 등등 이래저래 전선의 병사들에게 돌아간 것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독일판 스텐인 이 '포츠담 장비'는 원본이 워낙에 단순한 데다가, 독일인들이 기계에는 통달했기 때문에 3달 만에 완벽하게 베껴냈다고 한다. 스텐은 MP40의 탄창을 쓸 수는 있지만 거꾸로 MP40이 자신의 탄창은 못 쓰게끔 탄창삽입구에 교묘한 가공을 해냈는데, 이것까지 완벽하게 베껴냈다고 한다.
사실 이 총이 있다는 것도 전쟁이 끝난 다음에 마우저 사의 한 직원이 "우리 사실 스텐 베껴낸 적 있습니다."하면서 포츠담 장비 한 정을 보여줬기 때문에 밝혀진 것. 현존하는 스텐+포츠담 장비중에서 확실하게 "이건 포츠담 장비입니다."라고 정품인증 받은 물건은 그 직원이 알려준 그 총 하나뿐이라고 한다. 나머지는 연합군이 도로 회수한 수많은 스텐 Mk.II에 뒤섞여 버렸다고... 이 포츠담 장비가 등장하기 전에도 독일군 역시 이런저런 루트로 진짜 스텐을 입수해 잘 써먹었으므로 연합군이 이 포츠담 장비를 입수해도 "아, 독일놈들이 어디서 또 스텐을 주웠나 보군" 하고 그냥 보급물자 더미에 던져놨다가 전선에서 소모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러나 저러나, 나중에는 포츠담 장비를 생산할 여력마저 부족해지는 심각한 상황을 맞이하면서, 더욱 개악한 MP3008이라는 기관단총이 튀어나왔는데, 그 꼴을 보면 그저 안습.
1944년 말기 독일에서 국민돌격대 및 대파르티잔 전선에 투입된 SS와 경찰부대를 위해 스텐 기관단총을 카피 생산하여 MP40 대신 지급된 총기. 수평이던 탄창이 수직이 되는 등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이건 사진빨이고 전량 동네 철공소에서 만든 개판 5분전의 수준이라 조준장치는 스텐보다 더 엉망이었고 그나마 이런 물건도 수천 정밖에 만들지 못했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를 참조.
스퍼터 건의 모습
미국의 윌리엄 M. 요크(William M. York)라는 사람이 스텐 Mk.II를 기반으로 1982년 세상에 처음 내놓은 물건. 이 물건은 1934년 제정된 NFA에서 자동화기에 대하여 '방아쇠를 한번만 누르면 탄환이 두 발 이상 나가는 화기'라고 정의한 데에서 착안한 꼼수 화기이다. 이 문구를 본 윌리엄 요크는 이 문구에 착안하여 '방아쇠가 없어도 연사를 할 수 있는' 총기로 이 물건을 만들었다.
요크는 이 물건을 만들면서 방아쇠 없이 연사가 가능케 만드는 방법으로 간단하지만 다소 어이없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바로 '장전손잡이를 전진시켜 노리쇠를 앞을 전진시키면 그와 동시에 곧바로 장전된 탄을 전부 소모할 때까지 자동으로 갈기는' 작동구조를 택한 것이다. 쉽게 말해 장전하자마자 탄창이 빌 때까지 풀 오토로 갈기는 것이다.
이렇게 엉망진창인 만큼 언제든지 곧바로 ATF로부터 판매중단 처분을 먹을지 모르기에 윌리엄 요크가 만들기 쉽고 단가도 얼마 안드는 스텐을 기반으로 값싸게 막 팔아서 한탕 장사 한번 거하게 할 자동화기 목적으로 이 총기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도 스퍼터 건은 처음 세상에 나온 해인 1982년부터 1985년까지 대략 3~4년 정도의 생산기간만을 가졌다. 당연히 신뢰성이 거지같기로 유명한 스텐 Mk.II를 기반으로 만들어 처음부터 신뢰성이 바닥을 뚫고, 사용자 편의성은 개나 줘버린 데다, 장전손잡이를 당기기만 해도 총알을 연사로 뿜는 정신나간 작동방식을 가진 위험한 화기를 그렇게 좋아할 사람은 없었기에 판매량은 전무했고, 그 이후에는 당연히 이를 알게 된 ATF에서 곧바로 자동화기와 관련된 규정을 기존의 '방아쇠를 한 번만 당기면 탄이 2발 이상 나가는 총기'에서 '기존의 화기 부품을 제외하거나 변경함으로써 자동발사가 가능하도록 변경된 화기들' 또한 포함시키도록 변경함으로서 스퍼터 건도 단속대상이 되어버렸기에 윌리엄 요크의 한탕장사 프로젝트는 그렇게 망해버렸다.
이렇게 판매량도 적고, 총기 자체도 뭔가 정신나간 듯하기에 이 물건을 다루는 매체는 거의 없다. 심지어는 유튜브나 구글에서도 이 물건을 다루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박막 증착용으로 쓰이는 동명의 전자장비인 '스퍼터 건'이 더 유명하다.
워낙에 안 좋은 소리들이 난무하는 총이기는 하지만, 기본 설계 자체는 그다지 문제가 없었기에 보다 제대로 된 품질관리 하에 나온 초기형 MK.I이나 후기형 MK.V는 내구성과 신뢰성이 우수한 좋은 총이었다고 한다. 명중률이 비교적 뒤쳐질 뿐, Mk.II나 Mk.III도 못 써먹을 물건은 아니었다고.
그 증거로, 득템한 스텐을 써본 독일군 병사들은 MP749라는 제식명까지 부여해 놓고 "진흙밭에 굴려도 고장 안 나는 튼튼한 총"이라며 애용했다. SS경찰사단같은 후방부대는 MP40보다 더 많은 수를 장비했을 정도였고, 친나치 의용군에게도 많이 지급했다고 한다. 독일군이 스텐을 대량노획한 건 영국도 여유가 좀 생긴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부터 라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또, 독일의 각종 고성능 무기들은 한시가 급한 동부전선에 집중되어 있어서 서부전선의 독일군은 기관단총을 대량으로 보유하지 못했다. MP40을 사용하고 있던 병사가 자기 총을 버리고 스텐을 사용한 게 아니라 부족한 기관단총 수량만큼 노획한 무기를 지급한 것.
웃기는 건 독일군은 MP40이 스텐에 비해 "고장이 너무 잘난다"며 불평했으나, 반대로 연합군은 MP40을 튼튼하고 잘 맞는 총이라고 부르면서 애용했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 군대든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건 똑같은 모양인지, PPSh-41과 MP40 역시 서로 소련군과 독일군에게서 스텐 vs MP40과 비슷한 평가를 들었다.
나중에 미국이 본격적으로 참전하여 영국의 공업 생산력에 여유가 생긴 뒤에는 리-엔필드 생산에 더 주력했고 캐나다, 인도같은 영연방국가에서도 리-엔필드가 수입되며 소화기 부족은 해결되었지만 그 시점에 영국 육군의 보병들은 이미 이 가볍고 값싸며 튼튼한 총으로 잔뜩 무장해서 독일군 이상의 기관단총 덕후가 되어있었기에 계속 생산되었다. 그래서 전후에도 사실상 유일하게 일반 보병 분대까지 기관단총을 사용하는 군대로 남았다. 그리고 당시의 암울한 영국의 사정을 생각해보면 성능 이상의 활약을 보여줘 영국을 구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단순히 영국의 총기 부족을 해소했다는 측면 이상으로,만성적 화력 부족에 시달리는 반 나치 저항 조직 등에 대량으로 뿌려져 그들의 무장을 도왔다는 측면에서도 의의가 있다. 굳이 따지지면 2차대전 당시의 AK-47인 셈, 총기 유형만 빼면 딱 판박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AK 시리즈는 본가에서 생산된 무기는 매우 고품질이지만 외국에서 가내 수공업으로 만든 무기는 조악한 반면, 스텐은 본가에서 생산된 무기의 품질이나 저항군이 가내 수공업으로 만든 무기나 품질차이가 별로 없었다는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