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서 우동 성당을 가려면 해운대로 이어지는 큰 도로를 따라가다 육교를
건너 산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육교 옆에는 장애인이나 노인을 위하여 엘리베이터
가 설치돼 있는데 예전에는 속도가 하도 느려 세계에서 제일 느린 엘베라고 이름을
붙였었는데 작년부터인가 새로 교체공사를 하면서 확 빨라졌다. 대로변 차도 옆에는
인도와 자전거 길이 나 있긴 하나 인도의 절반 이상은 가로수가 차지하고 있다.
인도에 갔던 어떤 친구는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라는 책을 썼던데 우리 동네 인도에는
가로수가 2중으로 서 있어서 사람들이 다니기에는 약간 불편하다 차도측 바깥에는
아름드리 가로수가 줄 지어 서 있고 그 안쪽에는 둥치가 좀 작은 가로수가 줄 맞춰 서
있다. 안쪽에 서 있는 사철나무는 바깥에 서 있는 큰 나무 그늘에 가려져 어떤 것은
고사한 것도 있다. 나무도 햇볕을 쬐어야 제대로 성장하는데 가려져 빛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기 전 구청에서 가로수 사철나무에다 짚을 엮어서 둥치에
붙여 놓았다. 추운 겨울이 오니 나무도 겨울 채비를 해야 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몇년전 기온이 많이 내려가니 수목도 얼어버려 어떤 나무들은 봄이 와도 잎을 내지
못하고 얼어 죽는 것도 있었다. 지금까지는 사람만 옷을 입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개도 옷을 입고 다니고 나무까지도 옷을 입으니 문화국가로 많이 발전한 셈이다.
성당에 가면서 가로수가 옷을 입은 것을 보고는 나무 옷을 만들어 파는 사람도 있을텐데
그들은 나무 옷을 뭐라고 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으나 길을 지나쳐버리면 곧 잘 잊어버려
찾아보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잠복소'에 관한 기사가 나와서 일깨워주었다.
잠복소란 원래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게 숨기 위한 장소를 말한다. 잠복이나 매복이란 비슷한
말로 군사용으로 많이 썼다. 후미진 곳에 아군을 매복시켜 두고 적을 유인하여 섬멸하는
작전은 예전부터 잘 알려진 방법중의 하나다.
잠복이라고 해서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혹은
적과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는 필요한 작전을 전개할 수 있다. 잠복소도 이러한 작전중의 하나로
이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수목해중 방제와 나무 보호를 위해 사용되는 장치 또는 시설로
겨울에 나무 둥치나 줄기 주위에 설치되는 것이다. 해충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짚이나 새끼 등
으로 나무 기둥에 따뜻한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 이곳에 유인된 해충은 봄에 걷어서 태워
버림으로써 그 속에 숨어 있던 해충들을 제거하는 병충해 방제의 한가지 방법이다.
그런데 잠복소를 거둬 태울 때 해충만 태우는 것이 아니라 해충을 잡아 먹는 거미 등도 함께
태워진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잠복소가 헤중방제 효과가 별로 없다고도 한다. 각지자체마다
많은 예산을 들여 그 전부터 해 오던 방법이니까 그냥 타성에 젖어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잠복소란 명칭 자체도 해충 방제 도구와는 약간 동떨어진 느낌을 주므로 의미가 통할만한 새 이름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