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종(華嚴宗)의 시조는 두순(杜順:557~690)스님이며, 제2조인 지엄(智儼:602~668)스님을 거쳐서 제3조인 법장(法藏:643~712)스님에 의하여 화엄학(華嚴學)이 집대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에서 화엄사상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는, 동진(東晋)의 불타발타라(佛駄跋陀羅:359~429)가 60권 화엄경을 번역할 때 받아쓰는 역할을 맡은 법업(法業)이 최초의 화엄경 연구서인 화엄지귀(華嚴旨歸) 2권을 지은 것을 비롯하여, 그 후 화엄경론(華嚴經論)을 지은 북위(北魏)의 영변(靈辨)과 현창(玄暢), 지거(智炬), 영유(靈裕) 등 여러 화엄의 연구가가 배출되어 이미 남북조시대에 화엄의 교학적 사상이 여러 면에서 전개되었으며, 수(隋), 당(唐)대에 와서 화엄교학이 집대성된 것입니다. 초조(初祖)인 두순스님의 저서로는 오교지관(五敎止觀), 법계관문(法界觀門) 등이 있지만, 오교지관의 저자는 사실 두순이 아니라 법장이라고 합니다. 또 세 가지 관법인 진공관(眞空觀), 이사무애관(理事無礙觀), 주변함용관(周遍含用觀)에 의하여 화엄의 세계를 파악하고자 한 법계관문도 역시 법장의 저서와 관련이 깊으므로 두순이 찬술한 것인지 의심스럽게 여겨집니다. 지엄스님은 12세 때 두순을 따라가서 14세에 출가하였으며, 그 후 섭대승론, 화엄경 등을 연구하고 화엄경수현기(華嚴經搜玄記)를 지었습니다. 그밖에 화엄공목장(華嚴孔目章), 화엄오십요문답(華嚴五十要問答), 금강반야경소(金剛般若經疏) 등의 저술이 있습니다. 그의 사상은 법계연기사상을 비롯하여 기타 화엄교학에 관한 기초적 교리가 많으며 이 지엄스님의 화엄교학을 토대로 하여 법장의 화엄학이 대성하게 된 것입니다. 스님의 제자로는 의상(義湘), 법장(法藏), 혜효(慧曉) 등이 있었으며, 법장은 중국 화엄종의 대성자가 되었고, 신라의 의상스님은 귀국하여 우리나라 화엄종의 개조가 되었습니다. 법장스님의 선조는 원래 강거국(康居國) 출신으로 나중에 중국에 귀화하였습니다. 법장스님의 자(字)는 현수(賢首)로 17, 8세쯤 지엄스님이 운화사(雲華寺)에서 화엄경을 강설하는 것을 듣고 그 문하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현수스님은 지엄 문하에서 머리 기른 제자로 지냈는데, 나중에 지엄스님이 입적할 때 ‘내가 입멸한 후 법장을 스님으로 만들라’라는 유언에 따라 그의 나이 28세에 머리를 깎고 측천무후가 세운 태원사(太原寺)에서 거주하였습니다. 그 이후 화엄사상의 선포와 화엄교학의 확립에 노력하고, 또 경전번역에도 참여하여 실차난다(實叉難陀)가 80권 화엄경(華嚴經)을 번역할 때 필수(筆受)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60권 화엄경의 주석서인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와 화엄교학의 강요서인 화엄오교장(華嚴五敎章) 그리고 망진환원관(望盡還源觀), 유심법계기(遊心法界記), 기신론의기(起信論義記) 등이 있습니다. 법장스님의 제자 가운데 뛰어난 인물로는 여섯 명이 있었으나 그들의 사상이 다소나마 알려지는 것은 문초(文超)와 정법사(靜法寺) 혜원(慧苑:673~743)뿐입니다. 화엄학은 그 뒤에 선(禪), 천태, 화엄사상을 융화시키는 태도를 취한 청량 징관(淸凉澄觀:738~839)과, 그의 제자이며 교선일치론(敎禪一致論)을 주장한 종밀(宗密:780~841)에 의하여 새로이 발전하였으며, 그 이후의 화엄학은 대체로 법장이나 징관 등의 교학 연구에 몰두하였습니다. 화엄종에서 확립한 교판은 오교(五敎)와 십종(十宗)입니다. 오교의 교판은 지엄스님이 세운 소승교(小乘敎), 초교(初敎), 종교(終敎), 돈교(頓敎), 원교(圓敎)의 오교판을 법장스님이 계승하여 다시 정비한 것입니다. 소승교는 소승불교를 상징하는 아미달마론서의 사상을 적용시킨 것으로 구사론(俱舍論) 등이 그 대표입니다. 대승시교는 대승불교 가운데 초보적인 단계라는 의미에서 시교(始敎)라 이름한 것이며, 상시교(相始敎)와 공시교(空始敎)로 구분됩니다. 상시교는 유식학(唯識學)과 이에 관련된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등을 말하고, 공시교는 공사상을 설한 반야경(般若經) 등을 말합니다. 대승종교는 대승불교 종국적인 교의를 설한 것으로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을 그 내용으로 하며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능가경(楞伽經) 등의 경론이 이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대승돈교는 직접적으로 돈오성불(頓悟成佛)을 주요 내용으로 하여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설하는 유마경(維摩經)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화엄종에서는 나중에 이 돈교를 선종에 적용시키지만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법장스님 시대에는 선종 중에서 북종선(北宗禪)만이 장안(長安)을 중심으로 번성하고 그 교단적 위세가 그다지 크지 못하였으므로 돈교를 선종이라고 간주하기는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대승원교는 대승의 최고 진리를 표방하는 것으로, 주체와 객체가 구족하고 사사물물(事事物物)이 무애한 화엄사상을 그 골자로 하며 화엄경을 소의경전으로 합니다. 십종교판(十宗敎判)은 법상종의 팔종교판을 채용하고 거기에 나머지 두 종을 더하여 구성한 것입니다. 그 십종이란, 아법구유종(我法俱有宗), 법유아무종(法有我無宗), 법무거래종(法無去來宗), 현통가실종(現通仮實宗), 속망진실종(俗妄眞實宗), 제법단명종(諸法但名宗), 일체개공종(一切皆空宗), 진덕불공종(眞德不空宗), 상상구절종(相想俱絶宗), 원명구덕종(圓明俱德宗)입니다. 이 교판 중에서 처음의 여섯 종은 소승교이며 나중의 넷은 대승교입니다. 그리고 이상의 오교와 십종 중에서 법장스님 자신이 의지하는 화엄교는 각각 제오교와 제십종에 해당합니다. 법장스님은 이 오교와 십종의 교판에 의하여 삼론종, 천태종, 법상종 등 종래 여러 종파에서 주장한 여러 교판설을 통합 수정하여 화엄경을 정점으로 하는 경론의 체계적 위치를 수립하여 화엄교학의 수승함을 확립한 것입니다. 화엄교학의 중심사상은 고요한 바다에 일체제법의 모습이 여실하게 각인되는 듯한 삼매인 해인삼매(海印三昧)에 들어가 화엄경의 근본 사상인 법계연기를 밝히는 것이며, 그것을 논의한 것이 바로 화엄일승(華嚴一乘)의 가르침입니다. 이 이론의 기본 체계를 이루는 것이 화엄종의 독자적인 삼성설(三性說)과 인문육의론(因門六義論)이며, 그러한 교리 위에서 화엄일승적인 육상원융(六相圓融)과 십현연기(十玄緣起)를 전개하였습니다. 화엄종에서 말하는 삼성설과 인문육의론은 본래 모두 법상종에서 설한 삼성설과 종자육의설(種子六義說)을 수용하여 화엄종의 입장에서 보다 융통적으로 개조하여 화엄교학의 기초이론으로 수립한 것입니다. 법계연기의 참모습을 설하는 육상과 십현 중에서, 육상원융은 원래 십지경(十地經)에서 그 근원이 발생하여 그 후 여러 화엄가의 손을 거쳐 법장스님에 의해 완성되었습니다. 그 의미는 제법이 원융함을 여섯 가지 모습으로 논한 것인데, 여섯 가지 모습이란 총상(總相), 별상(別相), 동상(同相), 이상(異相), 성상(成相), 괴상(壞相)으로 어느 한 가지 법을 거론하면 나머지 상들을 모조리 구족한다는 것입니다. 십현연기는 두순스님의 학설을 지엄스님이 수용하고 다시 이것을 법장스님이 발전시킨 것입니다. 십현이란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 광협자재무애문(廣狹自在無碍門), 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即自在門), 은밀현료구성문(隱密顯了俱成門), 미세상용안립문(微細相容安立 門), 인다라망법계문(因陀羅網法界門), 탁사현법생해문(託事顯法生解門), 십세격법이성문(十世隔法異成門), 주반원명구덕문 (主伴圓明具德門)이니, 이들에 의해 일체제법이 그대로 상즉상입하여 하나가 일체와 상즉하고 일체가 하나에 상즉하는 무애한 법계가 설명되는 것입니다. 화엄종에서는 법계를 여러 가지로 설하는데 그 중에서 자주 거론되는 것은 사법계(事法界), 이법계(理法界),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의 네 가지 법계입니다. 사법계는 만물의 현상이 천차만별로 드러난 것을 말하고, 이법계는 제법의 체성이 공적하여 일체가 차별이 없고 평등한 것을 말하며, 이사무애법계는 차별의 모습을 설하는 사법계와 평등의 체성을 설하는 이법계가 상즉상입하여 무애한 법계를 말합니다. 사사무애법계는 체성의 이치를 현상의 사상(事相)에 융화시켜 사사물물(事事物物), 진진법법(塵塵法法)의 일체 현상계가 서로 교섭하고 융통하여, 하나가 일체에 들어가고 일체가 하나에 들어가서 중중무진한 무장애법계를 이룸을 말합니다. 이 사사무애법계가 바로 법계연기의 극치로, 십현연기와 육상원융은 이 법계를 체계적, 조직적으로 관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엄학의 교리를 집대성한 이는 법장스님이었지만 법장의 화엄교학은 전체적으로 이론에 치우치고 구체적인 실천수행은 다소 경시된 듯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이에 비하여 법장스님과 동시대의 인물이며 화엄종의 정통적인 계보에는 속하지 않는 이통현(李通玄:635~730)거사가 있었는데, 그는 만년에 80화엄경(八十華嚴經)을 연구하여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 40권을 완성했습니다. 그의 사상은 법장스님과는 달리 실천적인 면을 중시하였고, 고려의 지눌(知訥)스님 등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