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인 이민사 - 사탕수수밭
2013년 1월 13일은 대한민국 국민이 미국 이민 110주년 기념일이고
매년 1월 13일을 한국의 날로 정해졌다 한다.
일반적으로 정부의 공식적인 절차를 밟고 미국으로 떠난 이민은 대한제국 말
1902년 12월 22일 하와이로 떠난 사탕수수밭 노동 이민자들이 첫 이민자였으나
그 보다 먼저 1901년에 이미 개인적으로 들어온 5명과 1902년에 들어온 12명의
한국인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와이로 노동이민을 떠난 배경은 미국이 중국인에 대해서는
이민 금지법이 발효되어 그 빈자리를 채우는 과정에서 일본인이 대체 인력으로
선정되어 하와이로 대거 이주하게 되자 1902년경에는 일본인이 하와이
전체 인구의 45%가 넘어 일본인들이 거의 하와이를 점령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따라서 일본인들이 요구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져갔다.
* 임금을 올려 주시오.
* 환경을 개선해 주시오.
커져가는 일본인들의 목소리에 놀란 사탕수수밭 농장주들은 일본인을 몰아내고
그 대체인력으로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인을
이민 시키기로 계획을 세웠다.
하와이 사탕수수 협회 회장 "팩손 비숍"은 주한 미국 공사 "호레이스 알렌"을
하와이로 초청.이민 대책을 협의 한 후 자신이 직접 한국을 방문하여
알렌 공사와 함께 대한제국 고종 황제를 알현하고
하와이 이민 취업에 관한 설명을 한후
허락을 받아 내었다.
고종황제는 이민사업과 신문화 교류 업무를 맡을 "수민원"이라는 부서를 설립하여
외국 물정을 잘 아는 '민영환"을 총재로 임명하여 이민사업을 지원하게 하였다.
한편,동양광산회사 지사장 "데실리"라는 사람으로 하여금 인천에 동서개발 회사를
설립하게 하여 전국적으로 하와이 이민 노동자를 모집하였다.
하와이는 아름답고 추운 겨울이 없는 상하(常夏)의 섬으로서 지상낙원이 따로 없고
선전하고 월급은 16달러. 하루 10시간 노동, 일요일은 쉰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고향을 떠나 언제 돌아 올지 모르는 낯선 타향으로 이민 간다는게
쉬운 결정이 아니었고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인천에 있는 내리 교회 "죤스" 목사가 교인을 설득하고 인천 부두 노동자,
교인,농부등으로 첫 이민자 121명을 모집했다.
1902년 11월 20일 눈물 바다를 이룬 인천 제물포 항을 떠나
일본 고베에 도착한 이민자.
1차로 행해진 신체검사에서 20명이 탈락되고 .남자 55명,여자 21명,
어린아이 25명으로 구성된 101명이 미국 상선 '겔릭호"로 갈아 타고
33일만에 하와이에 도착,
하와이 보건당국의 2차 신체검사에서 4명이 탈락.
탈락자는 귀국하게 되고.
1903년 1월 13일 97명이 하와이 수수밭 농장에 도착. "몽골리아" 농장에
처음으로 취업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서 16척의 선편으로 1,133명,
1904년 33척의 선편으로 3.434명
1905년 16 척의 선편으로 2,659명이 떠났다.
한인 이민은 그 총수가 7,226명(남자 6,348명.부녀자 737명.남여 아이들 141명)이
되었다.
이들의 직업과 신분의 분포는 기독교인이 많았고.미국 유학을 기대한 학생,
선비 출신, 구한국 군인 출신, 농촌 머슴. 막벌이 노동자 출신,건달 출신도 있었다.
이민자 그들에게 닥친 하와이 생활은 지상낙원이 아니라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된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낮에는 사탕수수밭에서 중노동을 하고
밤에는 움막에서 하루 하루 고생의 연속이었다.
사탕수수밭.열대 뙤약볕 아래에서 허리 한번 제대로 못펴고 하루 10시간
중노동으로 받는 임금은 남자 67센트.여자 50센트였다.
모진 학대속에서 반항하면 길거리에 쫓겨날 판이니
반항도 못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억울한 일을 당해도 속수무책이었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미국 본토로 가겠다는 기대도 1905년 일본의 치욕적인
을사보호조약으로 일제치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국땅에서 나라없는 설움을 당하게 된다.
그후 오랜 세월이 흘러 이민 2세 3세들이 선조들의 이민사를
추념하고 기리기 위하여
1980년대에 마우이섬 "이아오 벨리" 주립공원에
한국 공원과 이민정(移民亭)을 건립 하였다.
*마우이(Maui)섬은 하와이 호놀루루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50분 비행 거리에 있는
하와이제도 8개 섬중의 하나이고
백두산 보다 더 높고 달 표면과 닮았다는
해발 3.055m의 "할레아칼라" 국립공원
사화산 분화구가 있는 섬이다.
한반도 모형을 닮은 한국지도마을(사진 위쪽)
이민자 후손들은 고국을 그리면서 마우이섬 이아오벨리 주립공원에
한국공원과 이민정(移民亭)을 건립 하였다.
한국공원
이민정
끝없이 넓은 평야 사탕수수밭 넘어 보이는 산은 백두산보다 더 높은 정상 봉우리에 달표면과 닮았다는분화구가 있는
할레라칼라(해발 3,055m) 국립공원이다.
산 정상으로 오르는 매표구에서 올려다 본 정상 부근
해발 3,000m 분화구가 있는 정상에서 내려다 본 구름.
구름을 내려다 보고 있으니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행기에서 창밖으로 내다 본 구름과 같다.
해발 3,050m위치에 있는 할레아칼라 분화구
해발 3,000 m 이상의 고지대 이니까 영하의 온도에 매우 추웠고
조금만 빨리 걸어도 숨이 차 올랐다.
달면과 닮았다는 할레아칼라 분화구 모습 |
첫댓글 좋은 곳에 다녀오셨네요.
한국공원이나 이민정에 가셨을 때에는 정말
감격스러웠겠어요.
좋은 경치 잘 보고 머물다 갑니다.^^
아름다운 풍경들 모르고 가보지않아 몰랐든것을
알려주어 고마워요
늘건강하시구 좋은소식 알려주세요.......
이정님 사진속의 하와이 구경 감사 합니다.
좋은 곳 다녀오심을 부러워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함께 다녀 온 하와이
정말 좋았습니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