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일기 – 1
우리가 하롱베이라고 말하는 하롱(Ha Long)의 1월말 날씨는 하루 종일 이슬비까지 오락가락 합니다. 이 동네의 원래 지명은 베트남어로 바이짜이(Bai Chay)이입니다. 그러다보니 하노이에서 하롱베이에 도착하는 모든 버스의 터미널 이름도 바이짜이 정류장입니다. 깟바 섬에 가고 싶은 욕심으로 뚜언쩌우 페리터미널로 가서 8만동(사천 원)씩 주고 깟바 섬으로 향했습니다. 하롱 호텔에서는 바람도 없고 한적했으나 선착장은 태풍이 불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도선하는 배는 사방이 터져 어디 한곳 바람막이가 없습니다. 크루즈 여객선과는 너무나도 차이가 납니다. 지하 디젤 엔진룸에서 나오는 배기가스가 쇠기둥의 원통을 통해 끝에 있는 머플러(소음기, silencer)로 매연을 하늘높이 발산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쇠기둥의 용도를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손을 대보니 배기가스의 열로 달구어져 뜨겁습니다. 추위로 움츠러든 몸을 조금이라도 녹여보려 등을 대봅니다. 등으로부터 뜨거운 열기가 몸으로 전해지면서 몸과 마음이 진정됩니다.
집사람과 쇠기둥을 반씩 나누어 기대고 주변경치를 바라봅니다. 어느 정도 몸이 녹자 집사람이 배 앞으로 나아가 사진도 찍고 합니다. 우연히 집사람이 기댄 쪽으로 몸을 움직여봅니다. 아 그런데 그 집사람 쪽 쇠기둥은 미지근합니다. 제가 기댄 원통의 1/3쪽은 뜨거운데 집사람이 기댄 1/3쪽은 미지근합니다. 저는 원통이 모두 뜨겁다고 생각하며 당신도 따듯하지 하고 물었던 어리석음을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는 마음이 물밀듯이 몰려옵니다. 안쓰럽고 애처로운 심정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에구 이 어리석은 인간이 무얼 안다고 여태까지 집사람을 구박해댔던가. 자기 어리석은 것은 모르고 남 탓하며 지내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나야말로 어리석은 인간의 상징이란 후회감이 가슴을 짓누릅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내가 확신하며 알고 있는 것들도 이렇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퍼뜩 나를 일깨워줍니다. 엔지니어로서의 호기심에서 뜨거운 것을 발견해 기쁘기도 하고 집사람에게 도움을 주어 기쁘기도 했던 마음이 결국 나의 공상이었으며 나의 어리석은 경험의 결과라는 사실과 마주하며 혼란스럽습니다. 바로 내가 기댄 쪽으로 대보라고 하니 집사람은 너무 따듯하다고 좋아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다시는 기둥에 기대지 않았습니다. 추운 바람에 고통을 받아도 싸다는 생각에 나는 스스로를 바닷바람과 마주하며 벌주고 싶었습니다.
깟바 섬은 하롱베이라고 불리는 하롱에서 뱃길로 한 시간 십 분이 소요됩니다. 또한 하이퐁이라는 도시와 더 가깝습니다. 세 곳을 직선으로 이으면 하노이에서 볼 때에 역삼각형 구조와 일치합니다. 우리가 관광하는 대부분의 하롱베이라는 섬들은 그런 역삼각형의 하롱과 깟바섬간의 직선선상 너머에 있는 무수한 섬들을 관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깟바섬 가는 길이 다른 것도 아닙니다. 경치는 똑 같습니다. 깟바섬 안의 산들도 바다의 하롱베이처럼 멋있습니다. 오히려 오래 머물기에는 깟바섬이 더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경치도 해안가에서 바라보는 섬들의 모습도 모두 훌륭합니다.
11시 반에 출발해 한시 반에 깟바섬 남쪽 포구에 도달했습니다. 다시 오후 4시 막배를 타기위해서는 여기서 3시에 출발하는 버스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포구를 산책하다보니 광장에 그 옛날 우리의 2002년 월드컵축구 당시와 비슷한 광경이 섬에서 가장 큰 포구 근처의 광장에 펼쳐져있습니다. 대형 TV전광판에는 3시에 시작하는 청소년축구 결승전 중계방송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섬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오토바이와 차량들이 떼 지어 다니면서 3시에 시작하는 청소년축구 베트남과 우즈베키스탄의 결승전 응원으로 도로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냄비뚜껑까지 들고 나온 아주머니서부터 호각소리까지 시끄럽게 울려대는 광경이 우리의 그때 모습과 너무나도 똑 같습니다. 비록 결승에서 졌지만 하롱의 숙소에 와서 밖을 보니 여전히 경적에 시끄럽기가 대단합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젊은이들이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이슬비속에 거리를 요란스럽게 다니며 열정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도 똑같은 그들의 모습에서 신기함과 함께 무언가 같은 것이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다가옵니다. 붉은 옷에 붉은 머리띠에 붉은 국기에 얼굴에 붙인 스티커부터 돌아다니는 모습까지 너무나도 똑같습니다.
그런 똑같음은 중국으로부터의 문명의 전래를 통한 토착화된 문화의 근원에서 우러나오는 모습으로 나에게는 비쳐졌습니다. 중국 한자가 전해지며 그 발음은 여전히 남아있고 한자는 없어졌으며 그 발음을 로마자로 표기하는 것으로 베트남 언어들이 사용되고 있다고 보여 집니다. 여기는 여전히 유교적인 질서가 남아있습니다. 어른들과 여자들이 들고 타는 무거운 보따리를 남자 차장들이 올리고 내리는 모습에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같은 아시아인들에게 보이는 배타적인 냉정한 모습에서 그들 간의 따듯한 심성이 느껴집니다. 여기는 절들이 많이 있고 깟바 섬에서도 절들이 새롭게 지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절의 대웅전 기둥에도 한자로 글자들이 쓰여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행하며 느꼈던 더운 나라는 게으르다는 나의 단순한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베트남 현지여행을 통해 그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게으르다기보다는 일할 거리가 없어서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일할꺼리가 없으면 대부분 술이나 먹으며 소일하나 그들은 술이 아닌 차를 마시며 소일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그들이 더욱더 사회적 삶에서는 선진국수준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들의 삶은 건전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길거리에 거지들이 전혀 없으며 남의 이유 없는 친절에 고마워하지도 안습니다. 우리는 남의 친절을 갈망하며 그러한 마음 씀씀이에 고마워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거지들이라 할 노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다못해 돈 많은 거지심성을 가진 자들이 토착세력을 형성해가며 더 긁어모으려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눈치의 영악함으로 돈에 취해 삶이 망가지는 것을 모르며 엄벙덤벙 살아갑니다. 술과 담배로 몸을 망쳐갑니다.
베트남인들의 행동거지에서 우리 사회의 무의식적인 삶의 태도를 바라봅니다. 오히려 사계절이 뚜렷하고 추위 때문에라도 노숙자들이 없어야할 것 같은 우리에게는 있고 노숙자들의 천국과 같은 사계절 기온차가 적은 베트남에서는 전혀 없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분명 그것은 자연적인 삶의 터전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자연의 터전으로부터 인간에게 전달되는 정기와 같은 것의 정체가 있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정기가 인간의 삶에 간여함으로서 토속적인 삶의 사회적 정체성이 형성되어왔다고 느껴집니다. 인도차이나반도에 위치한 베트남과 극동아시아에 위치한 우리의 터전은 똑같은 반도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트남은 내륙 쪽으로 무수한 산들에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살아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연안의 베트남인들에게서 열심히 살아가는 자존심 강한 민족적 관습의 모습을 감지해봅니다. 아직까지는 사회적 내실이 부족하다보니 겉으로 보여 지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여행객들이 느낄 뿐입니다. 즉 외국인에게는 두 배의 값으로 흥정하는 것은 그들의 자존심의 발로였지 돈에 대한 욕망의 결과는 이차적인 것으로 보여 집니다.
첫댓글 갈대생각님 반갑습니다.
베트남 일기 - 1
흥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갈대생각님 덕분에 한번도 안 가본
베트남의 이런저런면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정성껏 담아주시는글
참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갈대생각님의 건강과 평안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모리츠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