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늦가을 친구들과 회동 수원지 둘레길을 걸었다. 호숫가 언덕길에서 물가에 축 늘어진
가지 사이로 비치는 수면은 면경알 같이 고왔다. 구절 양장 갈맷길을 따라가다 보니 동네도 나오고
얕은 물가에는 데크 길을 만들어 산책하기에 좋도록 꾸며 놓았다. 동네를 한바퀴 휘돌아 나오니
호숫가 얕은 곳에는 갈대들이 떼지어 서 있었다. 갈대숲속에선 천둥오리 세 마리가 헤엄치며
먹잇감을 찾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눈으로 갈대를 바라본다. 나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갈대숲과 호수 그리고 산을
플레임 속에 가두었다. 고영민 시인은 갈대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양을 보고 어머니가 개밥을
들고 나갈 때 살랑살랑 꼬리를 친다고 보았다. 말라비틀어진 텁수룩한 갈대꽃을 꼬랑텡이로 본 것이다.
또 장석주 시인은 해지는 가을 황혼때 갈대들은 온몸으로 서걱거리며 운다고 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갈대/고영민 (공손한 손,창비 2009)
어머니가 개밥을 들고 나오면
마당의 개들이 일제히 꼬리를 치기시작했다.
살랑살랑살랑
고개를 처박고
텁텁텁, 다투어 밥을 먹는 짐승의 소리가 마른 뿌리쪽에서 들렸다.
빈 그릇 핥는 소리도 들려왔다.
이 마른 들판 한가운데 서서
얼마나 허기졌다는 것인가, 나는
저 한가득 피어있는 흰 꼬리들은
뚝 뚝 침을 흘리며
무에 반가워
아무 든 것 없는 나에게 꼬리를 흔드는가
앞가슴을 떠밀며 펄쩍 달려드는가.
갈대/장석주(크고 헐렁한 바지,문학과 지성사 1996)
가을 저녁의 완만한 황혼에 갈대들이 운다.
온몸으로 서걱거리며 운다.
슬픔은 겨우 바닥에 팬 고랑에
졸아붙은 탕약처럼 가까스로 흐를 뿐이다.
하늘을 찌를듯이 솟아있던 녹색의 피들은 꺾여졌다.
꺾여진 것이 어디 갈대뿐이랴
강변에서는 사사로운 슬픔을 울어서는 안된다.
울어야 할 이유가 사사롭다면
멸망해버린 고대왕국들의 이름이라도 기념하며
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