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마로
미뤄왔던 일감으로
자고나면
마음이 심난하였으나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개운하네
마음이 껄쩍지근하면
정리부터하라
맑게 사는 방법이다
임실 도반으로 부터 받은글
[찬샘통신 250/0923]아버지와 찰수수를 털면서
아버지와 함께 저녁 어스름, 1시간 반 정도 찰수수를 털다. 마당에 천막 쪼가리를 넓게 펴놓고, 처마 밑에 ‘ㅅ’자로 묶어 매달아 열흘 정도 말린 수수단을 하나씩 내려와 대막대기로 마구마구 내려쳤다. 수수는 참깨와 달리 세게 내리쳐야 수수알들이 떨어진다. 참깨는 가망가망 애 달래듯 털어야 작은 알맹이들이 우수수 쏟아지는데, 수수는 쏟아지는 게 아니고 마구마구 떨어진다. 올 봄에 친구가 잘 말린 수수 목 두어 개를 주었는데, 아버지가 일일이 털어 뒷밭에 심은 것이다.
요즘은 수수방아 찧는 곳도 없을 정도로 수수 농사를 짓는 사람이 없다. 다행히 인근 면에 한 곳이 있다한다. 모두 정성스레 모아 방아를 찧어오리라. 아내에게 수수밥도 해먹고, 수수경단瓊團(찰수수 가루를 반죽해 밤톨만 한 크기로 동글동글하게 빚어 끓는 물에 삶아 만든 떡. 모양이 구슬같다 하여 ‘구슬 경’자를 썼나보다)도 해먹자고 떼를 쓸 생각이다.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줄 나눠줄 것이다. 지난해 조금 해먹어보니 붉으스레한 밥이 맛도 더했다. 장腸 건강에 특히 좋다는 수수를 보면, 중국영화 ‘홍고량紅高粱’이 생각난다. 수수는 고량주 만드는 원료이다.
참깨나 수수를, 또는 마늘을 까는 작업은 단순한 작업이지만(물론 심고 키우고 수확하는 데까지는 여름내 비지땀 등 엄청난 공력이 들어간다), 나는 이런 일을 비교적 재밌어라 하는 편이고 어쩌면 즐긴다. 아무생각없이 한 개, 한 개 털거나 까다 보면 내가 세월을 낚는 농부가 된 듯하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아도 일을 벌여놓았으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아닌가. 그런 뒷처리도 확실하고 깨끗하게 못하는 편이지만 ‘내가 다 하겠다’는 장담 하나는 잘해 늘 지청구를 듣곤 한다. 쉴 생각을 눈곱만큼 하지 않는 아버지와 작업을 하는 것은 무척 힘들다. 처음에는 재밌다가도 조금 더 하니 싫증이 나고 힘이 든다. 무슨 일이든 그렇지 않겠는가. 아버지의 무념무상無念無想 경지에는 언제나 이를까.
아버지는 깨끗이 털어낸 수수 줄기를 묶어 비짜리(빗자루의 사투리)를 만들 것이다. 비짜리를 만드는 데는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아무라도 만들 수 없는 비짜리를 아버지는 예전부터 잘 만드셨다. 약간의 도구가 필요한데, 고향집 대청소때 모두 없애버려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수수비짜리 만드는 장인匠人의 모습을 보고 싶다. 얼마나 짱짱하게 매고 묶었는지, 몇 년이 가도 그대로이다. 아직도 창고에는 서너 개가 마치 구시대 유물처럼 남아 있다. 비짜리는 대비짜리, 싸리비짜리가 있다. 요즘의 플라스틱비짜리는 잘 쓸어지지도 않는다. 비짜리는 무조건 잘 쓸어져야 하고, 오래 가야 한다. 오일장에 가끔씩 나오는 수수비짜리를 볼 때마다 우리 아버지가 만든 것보다 몇 배 못한 것같고 날림이라는 생각이다. 이제는 이런 사소한 생활필수품도 귀물貴物이 된 세상이다.
비짜리 하니까, 이 새벽에, 친히 알고 지내는 인생도반 방외지사方外之士가 떠오른다. 이 분이 얼마나 대단한가 하면, 전국의 도산·병산·필암서원이나 오죽헌, 추사의 유배지, 소쇄원 등에서 자라는 오래된 대나무 가지들을 취합해 비짜리 300여개를 만든 것이다. ‘마음을 씻는 비’라 하여 ‘세심비洗心비’라 명명했다. 이 대비짜리들을 트럭에 몽땅 싣고 청와대 바로 코밑에서 전시를 한 게 2016년 11월 11일 11시 11분, 박모 대통령 탄핵정국으로 어수선할 때였다. 전시회 소제목이 ‘마음을 닦는 行의 시작이 빗자루입니다’였다. 아마도 이전에도 없었지만, 이후에도 없을 기발하고 창의적인 빗자루 전시.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마주친 선시禪詩같은, 그분이 지어 걸어놓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깜찍하고 걸걸한' 운문韻文이 지금도 기억난다.
빗자루 하나 현관 입구에 걸어놓고 보소
이쁘요
내 발 딛고 서 있는 곳부터
깨끗이 치우고 살면
마음이 맑아집디다
맑게 사는 게 행복이지요
그렇다. 행복이 뭐 별 것인가. 맑게 사는 게 행복이지. 참말로 멋졌다. 마음을 비우고 도인道人처럼 사는 그가 부러웠다. 세상에, 아니 우리의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온갖‘삿된 마음’들을 일거(한방)에 쓸어버리는, 그런 엄청나게 큰 빗자루는 없는 것일까? 그는 아마도 쓱쓱 싹싹 쓸다 보면 저절로 마음을 맑게 해주는 청량제같은, 그런 빗자루를 오래도록 소망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마음을 닦는 行의 시작’이 바로 빗자루라고 당당히 말했을 터. 사미승沙彌僧(출가하여 십계를 받은 어린 승녀)에게 어떤 법문도 알려주지 않고, 그저 ‘절 마당이나 쓸라’고 했던 선지식善知識들의 무언의 가르침도 바로 이 빗자루에서 시작되었지 않은가.
그가 마침내 세상과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씻고 쓸어주는 빗자루인 ‘세심비’조형물(100% 구리로 만든 3m 33cm짜리 모형)을 은둔하고 있는 장성 축령산 정상 세심원 주변에 제막했으니 얼마나 가상한 마음씀씀이인가. 우리 마음 속에 세심하는 대빗자루 하나씩은 간직하고 살 일이다.
첫댓글 돈만 알아 오망지게 살아도 세월은 가고.
조금 모자란듯 살아도 손해 볼것 없는 인생사라.
속을 줄도 알고 질 줄도 알고. 믿고 사는 세상을 살고 싶으면
네가 남을 속이지 않으면 되고^^*... 댕겨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