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은 어느덧 새벽 2시!
렌트카를 몰고서 아직도 이름모를 산자락에서 방향모를 밤의 산길을 헤메는 병춘씨와 나.
네바다산맥(Sierra Nevada)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북미대륙 중앙에 위치한 요세미티 밸리를 찾아가다가 길을 잘못들어 지칠대로 지쳐있는데다 메마른 캘리포니아 사막기후는 우리들을 더욱 기진맥진하게 만들었다.
도로안내판 역할을 못하는 이정표는 수킬로에 한개 있을까 말까 한데다가 내가 소지한 지도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이정표. 피로에 지친 김병춘씨는 어디 적당한 곳에 차를 세워놓고 눈이라도 붙이고 날이 샌 후에 길을 찾아보자고 했지만, 식량이 든 차를 곰이 습격이라도 하면 어떡하냔 한숨섞인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마치 주소가 적힌 편지봉투만 달랑 들고서 자식이 사는 집을 찾기 위해 서울거리를 황황히 헤메이는 70년대의 한 촌노처럼 안절부절하며 차를 몰다가 너무 답답하여 차를 도로가에 세워두고 언덕 위로 올라가 보았다.
아...!
상상할 수 없는 이상한 현실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계속 달려온 숲길은 바로 요세미티 북측 3,000여m 가 넘는 산마루길이 아닌가! 멀리 눈에 익은 하프돔인 듯한 암봉이 어슴프레 보였다.
달빛아래 펼쳐지는 멋진 장관을 한번 구경하라는 내 말에 지친 병춘씨는 귀찮은듯 꿈쩍을 안했다. 여기까지 온 신경을 바짝세워 운전을 해온 나보다도 김병춘씨가 더 힘들어하는게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내 예감에 이 길이 맞은것 같으니 계속 더 가봅시다."
누군 속이 타는데 예감이라니... 하긴 방법이 없다. 이 길로 계속 달려가 볼 수 밖에는...
그렇게... 우리들은 지칠대로 지친 몸을 견디며 차를 몰아 마침내 오매불망의 요세미티 밸리로 들어선 바로 그 순간, 하늘을 찌르는 울창한 아름드리 소나무숲 너머로
돌연!
우뚝!
숨막히게 하늘을 가로막고 서 있는 거대한 엘 캐피탄(El-Capitian)!
아... 이게 그 유명한 요세미티의 엘캡인가!
인터넷 자료들에서 이미 눈에 익어 만만하다고 여겼던... 달빛 아래 서 있는 그 회색빛 바위산의 엄청난 위용 앞에 우리는 순간 기가 질려 버렸다.
나는 "흡~"하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우리들이 그토록 오르고 싶어했고, 그래서 바리바리 장비며 식량을 싸들고 태평양을 건너 이역만리 아메리카 대륙으로 달려와 마주대해보는 지금, 바로 이 순간을 그토록 기다려 왔건만... 상대는 상상의 건너편에 있는 너무나도 엄청난 바위산이었다.
"형님, 앞으로 조금만 조금만 더..."
워낙 엄청난 장면에 놀란듯 피로감과 잠기운을 순식간에 잊고 긴장하는 우리의 백마왕자...^^;;
★ 해외원정 준비를 마치며
내가 00산악회에 들어선지도 벌써 5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그 5년전 어느날,
나는 이상하게도 전혀 다룰줄 모르는 암벽장비(바위를 하자는 친구의 꾐에 산 자일.하네스.카라비나 등)를 작은 베낭에 메고 오봉산을 지나게 되었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한무리의 바위를 타는 산꾼들...
가파른 바위절벽(3봉)을 줄지어 오르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다가가 같이 산행할 수 없냐고 물었었다.
맨 앞에서 흰옷에 흰 헬멧을 쓰고 리드를 하던 잘생기고 멋있는 한 사나이(백마왕자)가 선하고 자연스런 미소를 띄우며 언제 어느때든 산악회에 들어올 수 있다고 흔쾌히 승락하였고, 뒤 이어 나는 생전 처음으로 실같이 가느다란 자일에 매달려 그야말로 아찔하고 짜릿한 30m 오버행의 레펠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주말마다의 산행의 연속!
세상물정 웬만큼 아는 중년의 나이인데다 오랜 워킹산행에 단련된 몸이라서 그랬는지 산악회원들의 용인 하에 나는 그렇게 암벽에 필요한 전문교육도 안 받은 상태에서 산악회원들과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들과 환상적인 설악산의 천화대 릿지코스 등 여러 산행을 함께하다가 얼마 후 기본적인 암벽교육도 받게 되었다.
산악회에 입문하여 얼마 되지않아 북한산을 오르던 어느날 나는 해외원정(요세미티)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때 나는 20대 청년시절에 중동 건설현장에서 외국인들과 생활했던 해외여행 경험을 살려 미력하나마 작은 도움이 될테니 꼭 참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했었다. 그러던 게 5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드디어 올해에 두달 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외원정 훈련에 내가 포함되게 되었다.
가슴 벅찬 미국 요세미티 해외 원정 훈련!
설악산 적벽에서 있었던 4일간의 하계 원정훈련서 원정대장이 선택한 단 하룻만의 묘한 원정훈련을 마칠때는 원래 그러려니 했었고, 나야 등반력도 떨어지니 사진이나 찍고 대외 섭외나 기록을 확실히 하면서 후등하는데 짐만 안되도록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럴 자신도 있었다.
김병춘씨와 나, 결국 확정된 단 두사람만의 해외원정!
비자문제로 원정에 참여하실 수 없는, 내일 모레가 회갑이신데도 산악회의 지원을 받아 Big Wall 교육훈련을 받으시고 여러 전문 산악지를 독파하신... 자상하신 노익장 김종운 형님의 지도아래 훈련을 받으면서 나는 그 유명한 '엘 캐피탄'의 등정에 대한 꿈에 마냥 부풀어 있었고, 내 우상이나 다름없는 백마왕자 김병춘씨와 자일파트너가 되어 엘캡에 오른다는 그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마음벅찰 따름이었다.
해외원정에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의정부 샤모니 암장으로 종운 형님과 같이 찾아가 남자 뺨치는 기량과 근기를 지닌 김점숙씨에게 여러가지 자문을 얻기도 했다.
2002년 9월 17일~ 10월 1일!
마침내 일정은 확정되었고, 준비를 마친 병춘씨와 나는 출국 하루전에 독산동에 있는 대형 '롯데마트'에서 원정용 식품류 등을 구입했다. 물론 등반의 기본식인 미숫가루와 쇠고기 양념다짐은 우영이 엄마가 수고를 해 주셔서 준비되었고, 빵과 과일 기타식품은 현지에서 구입하기로 했다. 김병춘씨는 몇년 전부터 이 구상을 하고 있었고 원정기도 여러권 독파하여 준비에 한치의 오차도 없다하니 내 마음 든든할 뿐이었다.
우영이 엄마, 우영이, 계영이와 함께 광명시의 김병춘씨 아파트에서 저녁을 먹고서 술 한잔씩을 하면서 최종적 의견교환과 일정을 정리한 후에 세계최고의 바위산에 오르는 부푼 꿈을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시중은행에서 교환한(매입환율 1,244원) 1,000달러의 두툼한 주머니속 지폐... 사용하기 편한 1달러, 10달러, 20달러, 50달러, 100달러의 지폐들...
★ 9월 17일(화) 인천공항을 떠나며
출국일시: 2002년 9월 17일 17시 20분.
정리되지 않은 짐을 최종적으로 두개의 홀백에 가득 채우고도 남는 물건은 각자의 작은 등반베낭에 넣어가기로 했다.
현지에서 사용할 렌트카 문제에 대해서 물으니 아직 확정을 못짓고 있다하여 나는 깜짝 놀랬다. 부랴부랴 여행사에 연락하고 우영이 엄마는 인터넷을 뒤지고....
여행사에선 예약을 안했으니 두곱의 렌트비가 든다며 1시간후에 연락을 해 주겠단다. 이런 낭패가...
차를 몰고 배웅을 나온 김용준 회장과 김주삼 회원이 집으로 도착한 후 우리들은 병춘씨 가족들과 작별을 나누고 인천국제공항으로 차를 몰았다.
여행사에서 전화가 왔다. 출발 때 2일, 돌아올 때 2일로 총 4일을 예약했다고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하지만 국내면허증을 가지고 가야한다는 말에 나는 또 한번의 큰 낭패감을 맛보았다. 국제면허증이 있는데... 왜?
내가 인터넷을 통하여 수집한 자료 중에는 국내면허증을 소지해야 한다는 언급이 없었고 또한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나는 참을 수 없어서 여행사 직원을 향해 심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준비를 철저히 못한 내 자신에게 잘못이 있는데도 치미는 울화를 괜한 사람에게 터뜨리는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무실로 전화를 하여 김주임에게 면허증을 찾아서 택시로 보내라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나오질 않는다고 하여 내 마음이 더욱 심란해졌다. 잠시 후 면허증을 택시로 보냈다는 송실장의 전화를 받고서 나는 팩스로 렌트카 예약확인서를 송부받기위해 윗층에 있는 Guest Office로 갔다.
영문으로 된 원본이 먼저 왔고, 두장으로 된 번역본이 30분 후에 팩스로 도착되었는데 서로 순서가 틀리게 작성되어 있어 통화하면서 이해하느라 애를 먹었다. 시간은 흐르고 맘은 바쁜데, 이런 일에 바둥거리는 내 모습이 정말 싫었다.
예약된 렌트비는 1일당 106달러이며, TAX(세금)+Sub Charges가 추가되어 122달러가 되니 4일이면 488달러에다 연료비는 얼마가 나올지 몰랐다.
면허증을 가진 택시기사는 그로부터 1시간 후에 도착했다. 개포동에서 온 요금은 7만원, 급행료를 더하여 8만원을 건네 주었다.
(휴우~~ 더이상의 문제는 없어야 할텐데...)
내가 할일을 겨우 처리하고 화물창구로 가 보았더니, 동료들이 적정량의 패케이지를 새로 만드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홀링백의 무게가 많이 나가 짐을 새로 꾸려서 32kg이내로 맞추다보니 포타렛지와 박스 1개가 추가된 4개의 화물을 화물칸에다 보내고서 늦게서야 우리들은 함께 햄버거를 먹으며 배고픔을 달랬다.
"아, 이렇게 힘들어서야 어디 해외원정을 함부로 하겠어?"
허기진 배를 햄버거로 꾸역꾸역 채우는 우리들을 돌아보며 미안한듯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김병춘씨.
"이런게 바로 삶의 과정, 그 과정의 사는 재미 아니우?"
나도 일부러 호탕하게 웃으며 맞장구를 치면서 분위기를 바꿔보았다.
모두들 정리를 마치고서 숨을 돌리고 있는데 배병춘씨와 이현숙이 우리를 발견하고 웃으며 공항문엘 들어선다.
모두들 정겨운 악수....
"고문님이 우기더라도 엘켑에서 3피치만 끊고 내려오세요?"
걱정스러운듯 키 크고 코 큰 교육대장 배병춘씨가 나에게 다가와 속삭이듯 말했다.
3피치... 3피치라.......
잠시 내 마음을 어둡게한 말이었지만 나는 탑승구 30번 플렛폼으로 들어서는 승객들 뒤를 따라가면서 손을 흔드는 와중에 잊어먹고, 들뜬 마음으로 Check-in을 한 후 우리는 보무도 당당히 활주로로 통하는 길다란 통로를 따라 승객대기실로 걸어 들어갔다.

첫댓글 문학이라고 하기엔 쑥스럽고... 20편이 넘는 이런 글은 도데체... 어떤 게시판에다 써야 하는지...? 아무래도 번짓수가 틀린 것 같아...-,.-;;
도전에 대한 설레임, 그리고 미지에 대한 열정, 부러움과 함께 박수와 찬사를 보냄니다. 계속해서 빅월을 마치고 귀꾹때 까지의 연재를 기다리겠습니다.
해외원정 산행을 하신것이 대단하십니다.산에 대한 열정 부럽습니다.
재미없는 제 글에 관심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제보니 제 글의 주소지는 이곳이 아니로군요. 주제가 산악원정등반이니 앞으로 <산악동호회>에다 연재하도록 할 생각인데... 아무래도 그곳 또한 동호회 산행후기를 쓰는 곳이라 결국 '문학의 향기' 메뉴에 든 <감동적인 글과 사진> 게시판에다 써야겠습니다....죄송합니다. -,.-;;
오~~~~~~~~우!! 대단하십니다~~그리고 부러워용~~~!!
태산님! 무슨말씀이세요 ? 여행이던 산행이던 좋습니다 계속 연재해주신다면 고맙지만 ... 편하신대로 하시고 여행방에 자주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요세미티 여행은 가보아서 더욱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후속을 기대합니다.
샤방샤방님, 고맙습니다. 꼭 한번 가 봐야 할 나라기에 만사 제껴두고 일탈을 시도한 여행이였습니다. 후속을 기대하신다니 문학의 향기방에서 뵙겠습니다. 문학이랄 것도 없는 본대로 느낀대로의 주절거림일 뿐입니다. 그런데 샤방샤방... 아내와 함께 재밌게 봤었던 코메디같이 웃겼던 연속극이 떠오르군요. 물론 님에게선 남다른 포스가 느껴지지만...^^
저도 2007년 미국 75일 동안 혼자 26개주를 미친년 널뛰듯 돌아다녀보니 버릴게 없고 경이롭고 배울 게 많았습니다. 필자가 암벽을 타는 분이라 담력도 좋아 보이는데 신대륙 발견하는 기분으로 자세하게 써놓은 글에 관심이 생깁니다. 여긴 아무런 제약이 없습니다. 두 번씩 읽어보았습니다. 펜들이 많으니 기죽지 말고 계속 올려보이소!
거서리님, 반갑습니다. <미친년 널뛰듯....> 하하하~~ 재밌군요, 재밌어. 미국에서 장기간 여행도 하시고, 더우기 너저분하고 재미었는 제 글을 두번씩이나 읽어 보셨다니 갑자기 오금이 저립니다...^^;;
엘케피탄 암벽등반이라... 대단하시네요. 작년에 요새미티 하프돔갔다가 다리에쥐가나서 정상을 눈앞에두고 그냥하산했었는데. 흥미로운 글 잘보고갑니다 계속연재해주면 더 고맙겠네요..
아, 그러세요. 3,000m급에 이르는 하프돔 등반... 멋진 경험하셨군요. ^^
대단한 정열이십니다 ~~~앞으로도 계속 전진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