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 49231 글쓴이 플레처
제가 야구를 정말 관심있게 보기시작한 것이 1989년도 부터입니다...
응원팀 돌핀스의 성적이 워낙 안 좋았던지라 그냥 기사만 확인하고, 청룡으로 응원
팀을 바꿀 생각도 많이하던 무렵인데, 89년에 돌풍을일으켰으니까요....
그리고 기대에 차 바라보던 90년, 박동희, 김경기,김동수, 이태일 등과 더불어 해태의
이호성도 주목받는 신인으로 기사화 되었는데, 그해 신인중 유일하게 3할을 치면서 골
든 글러브 수상및 신인왕 후보에 올랐죠... 그리고 이듬해의 20-20클럽 가입과 골든
글러브수상, 한국시리즈에선 김성한을 5번 한대화를 6번으로 밀어내고 당당 3번에 포진
하면서 해태의 차세대로 각광받기 시작하지만, 사실상 91년이 최고전성기...
가장 인상깊었던 모습은 91년시즌 후 스포츠 1면을 장식한 모습이었는데,
양복을 입고 교회성가대를 지휘하는 이호성 선수의 모습이었습니다....
이후 알게된 그의 면모들, 교육자집안 출신으로 신앙심이 깊고 어린 시절 공부도
우등생이었다는 점이며, 운동선수로서 성가대지휘를 맡을 만큼의 음악적 소양등
여러모로 남다른 면이 있어보여 그토록 얄미웠던 해태에서 깊은 호감으로 지켜보던
선수였습니다.* 출처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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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기사보도에 따르면 그의 부친묘은 교회소유 묘지였고 가족들이 모두 교인이었고 어머니도 교회봉사에 열성이라고 합니다. 그도 독실한 교인이었다는 야구감독및 지인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알고보니 온가족이 개신교집안이었네요.
겉으로만 이웃을 사랑하라는 개신교- 물신주의에 빠져 개인기복사상과 예수천국 불신지옥만 가르치니 결국 살인마도 키우네요 , 그래도 하늘나라 어쩌구 유서보니 자신은 회개하고 천국 티켓을 따놓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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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없다는 증거 : 추억- 성가대 지휘하던 이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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