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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늘 새땅 너는 나의 황금나비
2024년 3월 3일 제 928회.
사드배치 결사반대 김천시민 촛불집회
순국선열의 피와 땀으로 엉긴 이 자리..
그들의 무덤 위에 세워진 대한민국..
3.1절을 맞아.. 우리가 지나온 여정과
앞으로 가야할 길을 되짚어 본다..
나라와 민족의 정기를 무너뜨리고,
존재이유를 망각한 채 폭주하는 정부와 하수인들..
나라는 혼탁하고, 백성은 미몽에 잠겨있으며
기득권의 카르텔은 국민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가야할 길이 멀고 험해도
촛불은 사명을 멈출 수 없으니..
구수한 호박죽으로 마음의 온기를 나누며..
작은 거인 김종희 팀장의 힘찬 구호,
패기와 열정으로 가득한 촛불시민의 함성이
이 밤을 깨우고 있다.
순국선열을 기리는 묵념과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 첫번째 순서. 교육너머 이동욱 대표님 발언.
" 해가 조금씩 길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집회 시간을 변경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8시에 집회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시겠죠? 나중에 저희들 밴드나 이런 것을 다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저께는 3.1절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1919년 31 만세운동을 하는 날이죠. 그리고 많은 분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열심히 투쟁한 날이기도 합니다.
김천에서도 개령과 직지사 쪽을 비롯한 여러 군데에서 만세운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김단야 선생님도 있었고요.
그런데 현 정권은 좀 이상합니다. 이건.. 뭐..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얘기도 못하는 이 정권 보면서 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우리가 계속 독립운동하고 있죠? 예 맞습니다. 우리가 독립운동하고 있습니다. 1945년 8월 15일에 우리가 일제로부터 일제의 탄압으로부터 벗어났는데요. 그게 진정한 우리의 독립 맞습니까? 아니죠..
일제가 물러나고 그다음에 바로 미군이 들어왔어요.
미군이 이 땅에 점령군으로 들어왔는데 그게 어떻게 진정한 독립이 되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미군 나가라고 하는 게 진정한 독립운동 아니겠어요?
그죠? 현재 우리가 열심히 독립운동하고 있습니다.
사드 나가라 미국 나가라라고 외치며, 우리가 현재 독립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나름대로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것이 나름대로의 독립운동이다.
힘들지만 그래도 일제 강압기에 결국은 독립운동하시는 분들보다는 그래도 좀 안 쉽겠나, 좀 쉽죠.. 그래도 그래서 우리 좀 힘이 들지만은 동기들 서로 어깨 감싸고 함께 계속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내일 모레 화요일은 우리 김천이 소성리 미군들 들어오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2시간 담당하는 날입니다. 아마 제대로 잘 모르시는 분도 계실 것 같은데 지금 공지하겠습니다.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2시간입니다. 함께해서 미군들 자기들 마음대로 좀 다니지 못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3월이고요. 지금부터 또 저희들도 지난한 사드 반대 투쟁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사실 힘들고 어렵습니다. 또 특히 농사짓는 분들 시간도 많이 빼앗길 거고요. 지금까지 우리가 8년 정도 사드철거 투쟁을 계속해 왔는데 지금 여기서 그만두기는 너무 아쉽지 않습니까? 저는 많이 아쉬워요.
그래서 우리가 어떤 일이 있어도 사드 빠지는 날까지 열심히 함께 투쟁해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안내 한 가지 드리겠습니다. 수요일은 세월호 참사 10주년 시민행진이라고 해서 구미와 안동에서 시민행진이 있습니다.
구미 행사에는 저도 참석을 해볼 생각인데요.
함께하실 분들 같이 가서 세월호 유가족들 위로도 하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수요일 오전 10시입니다. 감사합니다."
** 두번째 순서. 구미 한국옵티컬하이테크에서 방문하신 노동가 최현환 동지의 현장소식 전달.
https://v.daum.net/v/20240112080511822
옥상 위의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여성노동자들 “우리 편이 없다”
9m 높이 출하동 옥상에선 두 여성이 텐트 위에 쌓인 눈을 치우느라 분주했다. 건물 아래 에어매트는 바람이 빠진데다 눈까지 쌓여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소방당국이 만일의 사고를 대비해 깔아놓은 것이라고 했다. 시선을 다시 옥상 쪽으로 돌리니, ‘닛토’(Nitto)라고 적힌 간판 옆에서 두 여성이 아래를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지난 10일
v.daum.net
"구미에 있는 한국옵티컬하이테크는 일본계 외국투자회사로서, 토지를 무상으로 50년간 제공받았습니다. 토지뿐만 아니라 각종 취득세, 법인세, 수입, 원재료 수입, 관세 등을 각종 혜택을 제공받으면서 영업을 계속 이어오면서 18년 동안 7조 7천억이라는 매출 영업을 올렸습니다.
그중에 6조 3천억을 일본 자국으로 빼돌리고 얼마 전 저희 회사에 화재가 발생하자 일본 기업 한국 옵티컬 하이테크는 이를 무시하고 노동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시키고 폐업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한국 옵티컬 하이테크 닛토덴코 자본으로 설립되었는데, 이 기업에게 준 혜택은 여기 계신 시민들의 세금으로 준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정부는 이 니토덴코 한국 옵티컬 하이테크가 폐업을 하고 먹지를 하겠다고 하는데 방관만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를 도와서 법원 또한 사측 편에서 판결을 해주는 게 이 증거와 재판부입니다.
얼마 전 저희들은 공장을 사수하면서 고용승계를 요구한다는 이유로 재판부로부터 950만 원이라는 간접 강제금을 부여받았습니다.
이는 쉽게 말하면,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강제 경매하겠다는 얘기입니다. 저희 두 여성 동지가 1월 8일부터 온몸을 던지면서 고공농성에 들어가는 날, 구미시청은 공장 해체 계획을 승인해 주었습니다.
구미시청뿐만 아니라 이 땅에 자리 잡고 있는 모든 외투 기업들은 정부로부터 온갖 혜택을 받고 사업을 하고 있을 겁니다.
이 문제는 저희 사업장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두다 누구나에게 닥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 기업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 노동자들을 일을 부리고 모든 매출을 올려서 이익만 자국으로 빼돌리고 노동자가 쓸모 없다 이럴 때에는 일회용 취급하면서 버리고 돌아가는 길 일본 기업입니다.
지금 미국 사드가 소성리에 들어왔죠? 사드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9년입니다. 3월 1일은 독립 만세 한 지 105주년 되는 날인데, 아직까지 일본 기업으로부터 일제강점기에 살고, 미국으로부터 억압된 한국땅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다 같이 함께 싸워서 사드 뽑고 이 땅에 평화 심고 일본 기업에게 책임을 묻는 투쟁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투쟁~!!"
** 세번째 순서. 박석민 공동대표님 발언
" 3월입니다.혹시 3월을 기다리셨나요? 그래요. 따뜻한 봄을 모두 기다렸지요.
3월 March는 로마 신화의 군신 Mars의 달이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봄을 나타내는 spring은 약동한다는 뜻으로, 계절은 어김이 없고 자연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올해 봄, 우리 삶이 약동했으면 합니다.
참, 오늘 삼겹살데이인데, 2000년 구제역 파동으로 돼지고기 소비가 줄어 2003년 파주연천축협에서 제안해서 시작된 날인데, 위원장님, 오늘 집회 끝나면 삼겹살 먹습니까? 준비가 안됐다고 하시네요...
3월 3일 오늘은 1973년에 제정된 납세자의 날로 작년 윤석열이 기념식에서 “정치”“이념” 사로잡힌 무리한 과세 안한다고 큰소리치고는 작년 심각한 세수 부족 사태를 만들었습니다.
세수 부족으로 제일 큰 어려움을 겪는건 복지 예산을 줄여 사회적 약자가 힘들어졌고, 과학을 발전시킨다고 뻥치면서 R&D 예산을 5조원 이상 줄여 큰 반발을 불러왔고, 최근 카이스트 졸업식때 이에 항의하는 학생 입을 틀어막아 국민과 소통은 안한다는 걸 유감없이 보여줬습니다.
신년 기자회견도 집권 2년째 거부하고 똘만이를 사장으로 앉힌 KBS와 녹화한 내용으로 대체했는데, 혹시 보셨나요? 백악관에서 영어로 노래하는 장면에선 구역질이 납디다.
총선을 앞두고는 무슨 민생토론회라는 지랄을 벌이면서 이번에 김건희 손잡고 해외여행 못나간 대신 지금은 전국을 돌아다니면 각종 공약을 쏟아내고 다니면서 국민의힘 선대본부장 역할을 열시미 하고 계십니다. 덕분에 지지율도 8개월만에 40%로 올라섰다지요?
1981년 오늘 전두환 제12대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는데, , 당시 KBS에서 뉴스를 통해 보도했던 내용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뉴스 진행하는 메인 앵커가 “악랄한 북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에 전두환 장군같은 대통령이 내려주신 하늘에 감사드린다”고 했었습니다. 참 지ㄹ도 가지가지로..
그리고 1984년 오늘 북한 남북체육회담 제의, LA올림픽과 아시아 및 세계선수권대회 공동출전 논의 제의하기도 했는데, 남과 북이 대치하면서도 박정희때도 전두환때도 대화를 해왔는데, 윤석열의 힘에 의한 평화 정책은 북을 부정하고, 괴멸시키겠다는 망언도 서슴지 않은 결과 북도 민족도 통일도 부정하고 적대국으로 남을 점령하겠다고 공포하는 지경에 이르러 언제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남은 힘에 의한 평화 억제정책을 중단하고 북은 핵법령 폐기 등 최근 발표에서 돌아와 평화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의하시지요?
엊그제는 일제 식민지 지배에 맞섰던 3월 1일, 만세운동, 만세운동이라기 보다 거대한 '민족해방운동' 105주년 이었습니다. 역대 올해 만큼 31절 기사가 적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윤석열은 이번 3.1절 축사에서 “3.1운동은 모두가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통일로 비로소 완결되는 것”이라며 “이제 우리는, 모든 국민이 주인인 자유로운 통일 한반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해 노골적으로 흡수통일을 말하고 작년에 이어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가 아니라 이제는 한일 양국이 교류와 협력으로 새시대를 열어가자는 미친 소리나 하셨는데... 이런 대통령과 같은 하늘에서 숨쉬고 살기 참 힘들어요.
저는 우리나라의 많은 국경일 가운데 3.1절이 가장 값지고 가치 있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위해 주먹 한 번 쓸 줄 모르는 비참한 백성들”로 제대로 된 전쟁 한 번 없이 이웃 나라에 어처구니없이 병합되어 버린 별 볼 일 없는 나라의 인민들이 “우리는 우리 조선의 독립국임과 우리 조선인의 자유민임을 선언”하며 일본이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미개인이라며 일본이 지배했지만 그 낫으로 일본놈 목을 자를줄 알았던 민족. 미국, 러시아, 중국, 만주 등 그들이 살아가던 모든 곳에서 들고 일어났던 3월 1일은 ‘운동’이 아니라 ‘혁명’이었고 가장 큰 민족해방운동이었습니다.
일제의 통계만으로도 1919년 3-4월 두달간 전국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은 1214건으로 경찰관서 습격이 159건, 일반관서 습격이 120건에 이를 정도로 일제의 식민지배 기구에 대한 직접적인 항의와 투쟁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사망자가 7509명, 부상이 15961명, 검거된 인원만 46948명으로 단순히 태극기를 들고 벌인 해방을 원했던 모든 사람들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참여한 홍수였고, 식민 지배를 끊어내기 위해 처절하게 싸운 독립을 위한 민족해방운동입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싸웠던 3.1 운동은 중국의 5.4운동. 인도 간디의 평화운동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런 3.1절을 행안부가 29일 홍보한답시고, 사회관계망에 올린 내용이 1919년 3월1일 하얼빈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 선언과 만주 한국 일본등에서 일어난 대규모 항일 운동이라고 올렸는데, 임시정부는 4월 11일 구성된 것으로 3.1 운동 정신을 계승해서 세워졌고, 그 장소도 상하이였어요.
무지한건지 왜곡하력한건지 알수가 없네... 그래서 바로 카드뉴스를 내렸어요. 게다가 보훈처가 올해 1월의 독립운동가로 이승만을 정했는데, 1992년부터 시작한 이래 464번째로 조선일보는 이제야 이승만을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지ㄹ을 해댔고, 최근 건국전쟁이란 영화로 이념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첫번째 독립운동가는 1923년 1월22일, 일본경찰 1천명과 싸우다 마지막 남은 한발로 자결하면서 죽어서도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유해를 중국에 묻어 달라고 했던 김상옥. 마지막 남긴 말은 "조선은.. 독립..." 이었습니다. 분단과 반공국가를 세운 이승만을 독립운동가로 선정한 건 '글쎄' 올시다.
일제와 맞선 31 해방운동이 이곳 김천에서는 3월 11일 시작됩니다. 유관순 누나의 아우내장터가 4월 1일인데 김천이 이렇게 빨랐던건 바로 김천역이 있고, 세상의 소식이 가장 빨리 전해진 조건과 김천에서 민족운동, 사회주의운동을 했던 어른들이 있었기 때문인데, 김천의 역사 이야기는 다음에 구자숙 선생님이 해주시겠습니다. 아무튼 총선을 앞둔 지금 3.1운동과 같은 그런 기운이 다시 일어서야 할텐데....
3.1 민족해방운동이 식민지 조선에서 터져 나오게 된 시대적 배경을 먼저 살펴보면, 당시 독점 자본주의 체제가 형성되면서 식민지와 시장 확보를 둘러싸고 벌어진 1차 세계대전후 영국이 몰락하고 미국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한편 러시아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고, 레닌은 자국 내 100여 개 소수민족에 대해 ‘민족자결’을 원칙으로 하는<러시아 제민족의 권리선언>(1917. 11. 15)을 선포해 제국주의 지배로 신음하던 수많은 식민지 국가들의 민족해방운동에 영향를 주게 되었고, 조선 역시 그러한 영향을 받아 민족해방운동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일제하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은 사회주의 사상에 기초했다고 볼 수 있는데, 분단후 이승만에 의해서 친일파와 미군정을 기반으로 분단된 반공국가가 성립된 한국은 일제 운동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이유가 일제하 민족해방운동을 가르치려면 사회주의도 가르쳐야 하는데 이를 용납할 수 없는 반공체제가 역설적으로 일제하 민족해방운동을 가르치지 않고, 외면해온 것으로 실제 우리나라 사람 절대 다수가 별처럼 빛나는 독립운동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이 이를 웅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편 1918년 1월 미국 윌슨도 전후 식민지 문제 처리방안으로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했는데, 레닌의 민족자결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레닌은 제국주의 타도를 통한 식민지 문제 해결을 말했지만 미국 윌슨은 국제연맹하 위임통치라는 형식으로 식민지 문제를 접근한 것으로 승전국인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던 한국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주 내용은 ‘우리는 민주주의를 옹호하며 민주주의를 확산시켜야 한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옹호하며 자본주의를 확산시켜야 한다.’
‘우리는 폐쇄주의에 반대하며 타국의 문제에 끊임없이 개입해야 한다.’‘우리는 더 나은 민족 자결과 국익을 위하여 타국에 대한 개입을 멈추면 안 된다.’로 식민지 해방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입니다.
올해 3.1운동을 기억하며 유관순 누나(누나가 맞나? 왜 유관순 선생님이 아니고 누나라고 하게 될까? 그건 일제 강점기에는 유관순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고, 유관순 이름이 유명해진 건 해방이후라고 합니다. 해방 이후 남한을 손아귀에 넣었던 우익들에게는 그럴 수 없이 영웅시하기 좋은 조건에 있었다는 것도 큰 이유죠. 기독교인에 우익의 거물 조병옥의 고향 사람이었고 일찍 죽어서 변절하지도 않고 사회주의 따위에 빠지지도 않았죠. 나이도 “한국의 잔다르크”에 딱 걸맞게 열일곱에 독립만세 부르다가 열여덟 우리 나이로는 열아홉 나이에 옥사한 유관순은 우익들에게 딱 맞는 독립운동가로 영웅시하기에 아주 좋았던 거고, 잔다르크 이미지처럼 18살 유관순이 머릿속에 깊게 남아 있게 돼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 이야기..
민족해방운동에 나섰던 여성들로 서울보다 한시간 먼저 31운동이 시작된 평양. 그 선두에 섰고 일명 여자폭탄범으로도 불린 안경신, 1심에서 여성에게는 이례적으로 사형을 언도받은 안경신은 1962년 독립운동 훈장이 수여되지만 아무도 받아가는 사람이 없었던 안경신과 평양의 민족해방운동, 일제 심장부인 동경에서 3.1보다 먼저 터져나온 2,8 독립선언, 그 자리에 함께 했던 김마리아, 김마리아를 고문했던 일제 경찰조차 한번도 꺽이지 않는 그녀에게 "김마리아는 위대하다. 그녀를 낳은 어머니는 더 위대하다"는 말을 남길 정도로 민족해방운동에 나섰던 김마리아, 의열단 김원봉의 아내 박차정, 윤보선 대통령 부인 공덕귀, 박정희도 누님이라고 불렀다는 야당의 맹장 박순천 등 여성 독립운동가를 가장 많이 배출한 부산 일신여고(현 동래여고) 여고생들의 부산 지역 3.1 운동도 감동으로 오늘 발언으로 생각했던 내용이지만 시간관계상 다음에 하겠습니다.
대신 폭탄을 던지고 일제와 싸웠던 방식이 아닌 독립운동이야기를 현재 우리사회 이슈와 엮어서 짧게 하겠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 가장 큰 이슈는 아마 의사증원 문제를 놓고 벌이는 정부와 대치하는 의사 파업일텐데, 의사가 노조도 아닌데 무슨 파업이래요. 그냥 국민 생명을 담보로 하면서 지들 기득권 지키려는 진료 거부일 뿐이지...
어떠세요? 정부가 이길까? 이번이 세 번째인데, 두 번 모두 의사가 이겼어요.
첫 번째는 1999년-2000년 의약분업으로 결과는 의약분업이 시행돼서 의사가 진 것 같지만 내용적으로는 의료수가를 올려주는 등 의사의 수입 보장을 해줘서 의사가 진 싸움은 아니지요. 두 번째는 5년전 의대 500명 증원인데 그때는 개업의도 파업에 나서서 정부가 완패했고, 이번엔 진행중인데, 결과는 아직 두고봐야겠지만 벌써 의료 사고에 대해 면책을 주겠다고 당근을 내놓고 있어 국민 생명을 아랑곳하지 않는 의사들이나 정부나 실상 똑같은 새ㄲ들이예요.
서울대 공대 다니는 신입생 60%가 수학공부를 한답니다. 왜? 전교 1등인데 의대를 못간게 한이라서 다시 의대에 들어가려고요...
우리나라 고등학교가 2373개인데 의대 들어가는 애들이 3058명이니까 전교 1등 아니면 의대에 못들어가요. 1등만 기억하는 사회, 나라라서 정부도 지는 거겠지요. 저는 의대는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가는게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1등은 공대 가고 과학대에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의대는 공부보다 사람을 귀히 여기고, 생명을 존중할줄 아는 품성이 있는 친구들이 가야 지금 같은 돈 중심의 의료가 아니라 사람 중심의 의료와 병원이 된다고 생각해요.
1등 얘기를 이어서 해봅시다. 우리나라 마라톤 1등은 누구? 정봉주라고요?
아마 이봉주선수를 헷갈리신듯 한데, 이름이 비슷한 코오롱 정봉수 감독하고 갈등이 있던 이봉주선수가 2000년 2월13일 도쿄마라톤에 무소속으로 출전해서 세운 2시간7분20초가 아직 한국 기록이지만 그래도 마라톤의 1등은 20여년 전에 돌아가신 손기정 선수지요.
3등은 누구? 우리는 3등은 잘 기석하지 않습니다. 바로 2000년 2월 20일 돌아가신 남승룡 선생입니다.
1912년생으로 손기정과 동갑으로 순천이 고향입니다. 순천 공립보통학교 학적부가 남아 있는데 교사는 남승룡 어린이에 대해 “침착, 과묵하고 진실한 편이나 좀 화를 잘 낸다.” 조금 까칠했나봐요. 사촌형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하는 걸 보고 그도 마라톤을 시작합니다.
1932년 전 조선 육상 선수권대회 5천미터와 1만 미터를 휩쓸고 손기정과 함께 육상 명문 양정고보를 다니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 배달과 학업을 병행하며 달리기에 매진했는데, 1934년, 1935년 일본 건국 기념 마라톤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합니다. 특히 35년 대회에선 별안간 달려든 자동차에 치어 나동그라져 다들 깜짝 놀랐지만 더 놀란건 남승룡은 벌떡 일어나더니 이를 악물고 4Km 가량을 피를 흘리며 뛰어 결국 1등으로 골인합니다. 이 사고로 6개월 동안이나 병원 신세를 졌지만 재활 훈련을 독하게 했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일본 대표 선발전에 기어코 출전합니다.
각 나라마다 출전이 3명으로 제한돼 있었는데 일본은 1932년 LA 올림픽 때도 조선인이 김은배, 권태하 이렇게 둘씩이나 나갔는데, 또 그렇게 되는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 세계 기록 보유자인 손기정은 어쩔수 없지만 남승룡은 3등으로 만들어 떨어뜨리려는 꼼수를 부립니다. 이를 눈치챈 손기정과 남승룡은 작전을 짜 일본선수 시아오쿠와 스즈끼 두명을 오버페이스하게 만들어 남승룡 선수가 1등을 합니다.
그래도 일본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베를린에 일본 선수 두 명을 데리고 가서는 “일본의 국책(國策)이다. 너희 둘 중 한 명은 빠져 줘야겠다.”고 통보하지만 이미 스위스 망명까지 생각한 손과 남은 대회 출전 포기까지 각오하고 서로 양보하는 작전으로 일본을 난감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일본은 올림픽 역사에 다시 없을 대회 개막 3일 전에 ‘최종선발전’을 치르는 말도 안되는 짓을 벌입니다. 정말 마라톤을 잘쌨던 조선의 두 선수는 “번갈아 가며 일본 선수를 오버웍시켜 몸살이 나게 만들어 15일간 병동에 입원”시켜 버렸고 나머지 한명은 도저히 안되니까 지름길로 뛰었다가 들통나 남승룡에게 분노의 주먹세례를 맞았지만 항의도 못했다고 해요.(위 남승룡 증언) 입원했던 일본 선수는 최종선발전에 나섰지만 쓰러져 버렸어. 나머지 일본인 선수는 도저히 안되겠던지 지름길로 뛴게 들통이나 남승룡의 분노의 주먹을 맞고도 찍소리 못했다고 해요.
손기정 1등, 남승룡 3등. 시상식 사진을 한번 검색해보세요. 두선수 모두 무슨 죄 지은 사람처럼 어두운 얼굴로 상을 받습니다. 그나마 손기정은 히틀러가 준 회분으로 일장기를 가릴수 있었지만 남승룡은 바지를 최대한 끌어올려 일장기를 가려보려고 애쓴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 있는데, 남승룡은 메달 색깔보다 손기정의 그 화분이 더 부러웠다고 회고 했습니다.
이후 남선생은 1947년 조선 마라톤 팀은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코치 겸 선수로 출전했는데 나이가 서른 여섯. 마라톤 선수로는 환갑이 넘은 나이였지만 "태극기를 달고 우승해 보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과 새까만 후배 서윤복의 페이스 메이커 역할까지 해 서윤복 1등을 만들고 자신은 12등을 합니다.
진정한 한국 마라토너지만 1등에 목매는 우리 사회는 남승룡 선생이 3등이라 기억하지 못합니다.
1996년 베를린 올림픽 60주년을 맞아 후배 체육인들이 손기정과 남승룡에게 나란히 ‘금메달’을 선사했을 때 정작 기뻐한건 손기정 선생으로 “후배들 덕분에 남 선배에게 진 빚을 갚는 기분입니다.” (동아일보 1996년 9월 8일)
2001년 2월 20일 조용히 세상을 떠난 남승룡 선생. 유족들은 “1등과 3등의 차이는 엄연한 사실이고 1등이 우대받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3등으로 인해 느꼈던 서글픔도 컸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손기정, 남승룡의 달리기는 폭탄을 들고 일제 총을 쏜 독립운동가 못지 않게 달리기로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일제의 억압에 두선수의 우승 소식은 조선을 들뜨게 했습니다.
1936년 8월 어느날 두선수의 우승 소식이 뿌려진 호외를 대문앞에서 줏어든 심훈이 호외 뒷면에 휘갈겨 쓴 시의 일부.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 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 부를 터이냐.”
두선수는 누구보다 독립운동, 민족에게 일본을 이겼다는 자긍심을 선물했습니다. 전국에서 손군, 남군 만세소리가 드높았다고 합니다.
1등만 기억하는 이상한 사회가 아니길 바라면서 3등 남승룡 선생을 기억합니다.
최근 김천대책위 유선철 선생님이 <슬픔은별보다많지> 시집을 내셨습니다.
호랑쥐빠귀라는 제목의 시를 소개하면
"잠깐 살다가는 건데
무슨 말 그리 많아
딱 한 줄, 이게 다야
밑줄 그어 이것들아
휘이익.
외마디 소리
움찔하는 새벽하늘"
마지막 부분만 바꾸어서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딱 한 줄, 이게 다야 / 밑줄 그어 이것들아
'사드뽑고 평화심자' "
** 네번째 순서. 이근우님의 오카리나 연주와 조선동님의 화려한 하모니..
" 짧은 배움에 연습시간도 부족했지만, 많은 격려와 응원해주신다면.. 앞으로 더 자주 뵐 수 있을 것같습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
1) 봄이 오는 길
2) 고향의 봄
3) 앵콜송.. 양희은 / 네 꿈을 펼쳐라
4) 김민기 / 바다
김종희팀장의 마무리 발언
" 피로를 다 푸셨죠? 네.. 타인의 삶에 공감하지 않는 삶은 삶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옥티칼 박혜정, 소현숙 동지도 생각하고 그러면서 또 우리 사드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소성리의 어머니들도 생각하면서 평화와 연대의 정을 갖고 편안히 돌아가시고, 다음 주에는 8시에 이 자리에서 또 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힘차게 구호 외치겠습니다.
" 사드 뽑고 평화 심자"
이상으로, 김천시민대책위 928회 사드 집회를 모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전쟁을 반대한다 /평화에 살자/ 사드뽑고 평화심자 /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주에 더 건강한 모습으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