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인류가 다 같이 하나님 사랑의 대상임은 독생자가 증명
하늘 아버지와 독생자 그리스도께서 하늘 총회에서 인간의 구원에 꼭 필요하다고 여기신 것들이 분명하게 성경에 제시되었다. 구원에 대한 무한한 진리들은 너무나도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으므로 진리를 알려고 하는 자들은 누구나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거룩한 계시들은 인간에게 의를 교훈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므로 저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저희 동료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CT 438.1) ‘아담’과 ‘하와’는 범죄로 인해 죄인이 되었으며, 이제 여호와께서는 이 세상에 그분의 “독생자”를 주셨다. 그것은 그분이 율법을 폐기하신 것인가? ‘아담’이 범한 그 율법을 폐기하신 것인가? 그대들은 이것을 이렇게 읽는가? 나는 그렇게 읽지 않는다.
그렇다면“‘아담’에게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아담’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그의 충성심과 순종을 입증하기 위해 주신 시험이었던, 하나님의 금령 중 하나를 범하고자 시도했던 것이다. 지식의 나무 열매 그 자체에는 아무런 위험한 것이 없었으나,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말을 듣고, 범하기로 시도한 것에 위험이 있었다. 여기 ‘하와’가 유혹자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의 말은 범법의 형벌이 죽음이라는, 하나님의 말씀과는 반대되는 것이었다. 사단은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창3:3)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만일 너희가 그것을 먹으면 죽으리라”(창2:17)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누구를 믿어야 할 것인가?(1SAT 227.2)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4,14).(FW 81.3)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이 기별은 세상을 위한 것이다. “누구든지”란 말은 조건에 부합되는 어떤 사람이나 모두가, 축복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개인의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된다. 우리가 영원한 상급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준비가 갖추어져 있다.(FW 105.1)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타락한 상태 그대로 만나시기 위하여, 그분의 거룩한 율법을 일점일획이라도 변개하실 수 없으셨다. 그것은 하늘과 땅을 통치하시기 위해 율법을 만드신,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불신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독생자”를 인간을 위한, 대리인과 보증인이 되게 하셔서 범죄자들이 받아야 했던, 형벌을 받게 하시고 회개하는 영혼들에게, 그분의 완전한 의를 나누어주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죄 많은 인류를 위한, 죄 없는 희생제물이 되셔서 사람들을 소망의 죄수로 만드시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어긴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저들의 대리자요, 보증인이요 의로 믿으므로 하나님께 대하여 충성되고, 그분의 거룩한 율법을 순종하는 자로 회복될 수 있게 된 것이다.(FW 117.3)
성경에 ‘에녹’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그가 65세가 되어 첫 아들을 낳고 그 후,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하였다. ‘에녹’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그 계명을 순종하였다. 첫 아들을 본 후 ‘에녹’은 생애가 더욱 향상되었고, 하나님과 좀 더 친밀히 교제하였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사랑과, 아버지의 보호를 신뢰하는 아이의 단순한 믿음을 보고, 또 자기가 첫 아들에 대해 깊은 애정에 느끼게 되었을 때에, 그 “독생자”를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늘 아버지를 믿고, 의지하여야 할 귀중한 교훈을 배웠다. 그 때부터 그가 더욱 주야[밤낮]로 묵상한 바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내신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모든 열심을 다해 하나님의 사랑을,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내기 위하여 힘썼다.(GW 51.2) 하나님의 참 교역자는 고난이나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의 능력을 간절히 구하는 자를 물리치지 아니하시는,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시험을 물리치며,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임무를 성취할 능력을 얻는다. 또, 그가 받은 은혜로 하나님과, 그의 “독생자” 예수를 점점 더 알게 된다. 그의 영혼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사업을 하기를 갈망하며, 그가 그리스도인의 행로를 밟아 나아갈수록 더욱,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딤후2:1)게 된다.
또 이 은혜로, 교역자는 그가 들은 것을 신실히 증거 한다. 하나님께 받은 지식을 멸시하거나 등한히 하지 않고, 교역자는 그것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며, 충성된 사람들은 다시 그 지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 준다.(GW 108.2) 하나님의 사랑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은혜의 보고(寶庫:진리의 보물창고)가, 교회와 세상 사람들의 앞에 열려졌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음은, 얼마나 놀랍고도 심오(深奧:깊고도 오묘)한 사랑인가!
율법의 엄중함만을 깨닫고 죄가 많이 득실 되는 곳에, 은혜가 더한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큰 손실을 입고 있는가!(GW 157.1) 과거의 모든 잘못을 다 시정한 후에 비로소, 우리는 성령의 지도하심을 따라 고요한 믿음으로써, 병자의 필요를 주님께 아뢸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아시되 이름까지 아시며, 또 지구상에 있는 한 사람을 위하여 그분의, “독생자”를 내어 주신 것처럼 그와 같은 깊은 사랑으로써, 각 사람들을 돌보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고 위대하시므로 병자에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쁨을 누리도록 권장할 것이다. 근심과 걱정은 더욱 몸을 쇠약하게 하고, 병을 얻게 한다.
그러나 누구든지 침울함과 절망에서 벗어나, 희망을 가지면 회복될 전망은 더욱 밝을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는 그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시33:18)시는 연고이다.(GW 217.1)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에게 초자연적인 힘을 부여하시며 무식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오묘함을 가르치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 보이시기 위하여, 죄와 싸워 이기려고 힘쓰는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다. 만일 각 사람들을 위해 구세주께서 행하신 일을, 유효하게 하기 위해서 성령을 주시고, 항상 역사하여 새 사람이 되게 하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께서 자신을 낮추시고, 간교한 원수마귀의 시험을 받으시며 의로우신 분이, 불의한 자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GW 286.1)
그리스도의 종교는, 이를 받아들이는 자들의 사상과 행동을 향상 시킨다. 또 하나님께서 인류를 “독생자”의 희생의 값으로 사셨으므로, 전 인류가 다 같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임을 나타낸다. 예수님의 발 앞에서는 계급이나 지위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부한 자와 가난한 자 그리고 유식한 자가 다 함께 만난다. 우리의 죄로 인해서 찔림을 받으신 그리스도를 쳐다볼 때에, 모든 세상적인 차별은 잊어버리게 된다. 하늘에서 높임을 받으셨던 그리스도의 극기와 겸손과 무한한 동정심은, 인간의 교만과 자존심 및 사회계급을 훨씬 초월한다. 순결하고 깨끗한 신앙은, 진리로 깨끗함을 받은 모든 자들을 모두, 하나가 되게 하는 하늘의 원칙을 나타낸다.
인간은 모두 피로 산 영혼들이며, 다 같이 인류를 구속하여 하나님께 드리신,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이다.(GW 330.1)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지키며, 가르친다고 하면서 계속 율법을 범하는 자들은, 죄인들과 진리를 믿는 자들에게 모두 거치는 돌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율법과 그의 “독생자”의, 선물에 대해서 취하는 애매하고 모호한 태도는, 하나님께 대한 모욕이다. 이러한 편만[널리 퍼져있게]된 죄악을 시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려는 모든 사람들을, 각각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다.
이 일에 책임을 맡은 자들은 대상자가 진리를 믿기로 작정한, 이후의 그의 내력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그 사람의 그리스도인 생애가 어떠한지, 성경을 얼마나 알며 현대진리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에 대해서 모두 알아야 한다. 그가 하나님의 신령한 사물에 대해서, 참다운 산 경험을 가진 것이 보이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사업에 일꾼으로 용납해서는 안 된다.(GW 437.2)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대한 그분의 사랑을 입증[확실한 증거로 증명]하셨다. 주님께서 하신 일에는, 허위나 겉치레가 없었다. 주님께서는 굴욕, 냉대, 수치, 비난을 참아야 하는 산 표본으로, 그분 자신의 생명을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행하신 것은,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
인류가 주님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온갖 계획과 방법들을 주장하고 있을 때에, 무한하신 하나님의 “독생자”께서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위대한 사업의 모본을, 보이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 그러나 오늘날 오만스럽고 불순종하는 자들은, 천부의 재능을 오락에 사용하므로 인간 동료들로부터, 명성과 큰 명예를 얻으려고 애쓰고 있다.(Ev 267.1) 예수님의 사랑이 마음을 감동시킴— 인간에게 실증(實證:확실하고 실제적 증명)된 풍요한 사랑을 나타내므로, 하나님과 그분의 “독생자”를 사람들 앞에 제시해야 한다. 편견(偏見:공정하지 못하고 한 쪽으로 치우침)과 완고(頑固:마음이 고집스럽고 강퍅)한 사상의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모든 설교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역설(逆說:거짓주장에 대한 진리를 바로 전파)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저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며, 그분의 사랑을 입증하시기 위하여, 어떤 증거들을 주셨는지 사람들에게 알려 주라.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하여, 인간에게 나타내신 그 사랑에 비교할 수 있는, 사랑이 어디 있을까? 예수님의 사랑이 심령에 가득 찰 때, 이것은 사람들에게 나타나 보일 것이며, 많은 영혼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것이다.(Ev 285.3) 편견[악으로 치우친 사상]은 빛을 거부함—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진리와 의(義)에 대하여 반대되는 요소가 있다.... 그리스도의 기적적인 능력은, 그가 하나님의 “독생자”였음을 증거 하였다. ‘유대’의 도성들 안에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사명에 대한, 압도적인 증거가 있었다....
그러나 편견은 빛과 진리이신 주님께서도, 매우 다루기 힘든 것이었으며, 유대인들의 마음속에 가득 차 있는 편견은, 나타난 증거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저들은 멸시하는 정신으로, 그리스도의 주장들을 거부하였다.(Ev 302.1) 성령과 주님의 사랑의 정신으로 젖어 있는, 그리스도의 목사는 하나님과 “독생자”의 특성이, 가장 충만하고 뚜렷하게 나타나는 방법으로 일할 것이다. 또한 그는 자기의 청중들이, 하나님의 특성에 대한 개념에 있어서 저들의 이해력이 향상하여, 거룩한 영광이 온 땅에 알려지도록 힘쓸 것이다.(Ev 330.3)
수많은 남녀들이 저들 자신을 타락시키고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의 돈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고 단순하고 열렬하게 저들에게 말해 주라. 인간을 미치게 만드는 것을 위해서, 막대한 돈이 낭비되고 있다. 이 문제를 뚜렷하게 증거 하므로 그 세력을, 볼 수밖에 없도록 분명하게 제시해 주라. 그리고 그대들의 청중에게, 모든 죄악적인 습관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구주에 대하여 말해 주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Ev 530.2)
매일 짧으면서도 교육적 성격을 띤, 예배시간을 가져야 한다. 성경과 그 저자되시는 천지의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주신 위대한 선물되시는, “독생자” 그리스도를 증거 하라. 어떻게 구주께서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 지상에 오셨는지 환자들에게 말해주라. 또한 저들에게 이 세상에 오셔서 사시다가, 돌아가신 주님의 위대한 희생을 증거 하라. 죄 많은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 구속사업을 위하여, 하나님과 협력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한다.(Ev 538.5)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품성에 관하여, 원수가 표현한 것과 정반대되는 것들을, 사람들에게 증거 하셨으며,“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요3:16)신 아버지의 사랑을, 인간에게 감동시키려고 노력하셨다. 주님께서는 기도, 회개 및 자복의 필요와, 죄에 대한 포기(抛棄:세상명예 권리욕망의 헛된기대를 버림)를 권고하셨다. 주님께서는 저들에게 정직, 인내, 자비 및 동정심을 가르치셨고, 저들을 사랑하는 자들뿐만 아니라 저들을 미워하고, 멸시하는 자들까지도 사랑하라고 분부하셨다. 이 모든 말씀 가운데서 주님께서는, 오래 참으시고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아버지의 성품을 나타내려 하셨다.(CT 29.3)
하나님의 아들은 사람들이 그분 속에서 하나님께서만 받으실, 완전한 품성의 표상을 갖게 하기 위하여, 이 세상으로 내려 오셨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인간가족의 구원을 위한 모든 준비가 마련되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은, 관련하는 모든 업무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행하심처럼, 모든 일을 순결하게 처리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품성의 미덕을 받아들이고, 그분 생애의 공로를 인정하는 영혼은,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실 때, 그분의 “독생자”처럼 보배로운 것이다. 성실하고 청렴결백한 신앙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의 아기에게 드린 선물들 즉, ‘황금’과 ‘유황’과 ‘몰약’과 같은 것이며, 주님 안에 있는 저들의 신앙의 증거는, 허락된 “메시야”처럼 소중한 것이다.(CT 60.2)
성경교수는 교사의 거룩한 생애로써, 강력한 감화를 끼치는 것이 되게 하여야 한다. 경건한 교사들은 저들이 어린이들의 정신에 감명을 주고자 하는, 모든 원칙을 몸소 실천할 것이다. 그러한 교사들은 오직 믿음의 눈으로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바라보며 하나님께 대하여 배우고, 가장 괴로운 처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 저들은 받은바 어떤 처분에 의해서 창조주를 판단하지 않으며, 저들은 창조주의 거룩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이 된다. 또한 저들은 그분의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으며 하나님과 함께 할 때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신령하고 영원한 복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주실 것을 알게 될 것이다.(CT 183.3)
우리들은 불완전한 생애에서, 복음의 신앙으로 회개하여 돌이킬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남에게 잘 보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만약 저들이 계속적으로 그리스도의 생애를, 바라본다면 저희의 마음과 정신이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저들은 아무런 인위적인 노력이 없이도, 자연히 빛을 내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선을, 과시하기를 요구하지 않으신다. “독생자”의 은사를 힘입어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내적생애가 천국의 원칙으로 물들게 되도록 섭리하셨다. 내적 생애의 변화야말로, 그리스도를 세상에 나타내는 유일한 섭리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중생의 체험을 맛볼 때, 저희의 정직성, 성실성, 확고부동한 원칙이 틀림없이, 중생[거듭남]의 경험을 증거 할 것이다.(CT 251.3)
만약 이 세상에 인간의 참된 정열을, 불러일으킬 만한 유일한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갈바리’의 십자가일 것이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요일3:1).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그리스도는 받아들여야 하고, 믿어야 하며 높임을 받으셔야만 한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우심 바로 이것이, 대화의 주제(主題:구주의 사랑이 주된 말씀줄거리)가 되어야 한다.(CT 338.1)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들은 장엄하고 영원한 장면들을 바라볼 수 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시고 흑암의 권세를 전복시킨, 신비스런 투쟁에 관여하신 것을 볼 수 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위치에서 “독생자”로서의 굴욕을, 당하시기로 찬성했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우며, 얼마나 믿기 어려운 일인가! 학생들로 이 위대한 사상을, 명상하게 하라. 그러한 명상을 통해서 저희의 심령은, 고상하고 순결하게 될 것이며, 정신은 고결[거룩]하게 될 것이다.(CT 448.2)
우리 병원들과 학교들이, 성취해야 할 위대한 사업이 있다. 때는 얼마 남지 않았다. 이루어야 할 사업은 신속히 성취해야 한다. 이러한 중대한 사업기구에 관련된 자들은, 전적으로 회개한 자들이어야 한다. 저들은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또는, 세속적인 목적을 위하여 살아서는 안 되며,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바쳐 하나님을 봉사하기 위하여, 완전한 헌신을 하게 하라. 저들은 영혼을 구원하는 사업에 종사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몸과 영혼과 마음을 전부 바쳐야 한다. 저들은 하나님께 속하였고 그분의 “독생자”의 생명의 피로 사셨으므로, 저희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없다. 또한 저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법을 배울 때에, 마음속에 이기심을 용납할 자리가 없을 것이다.
저들은 하나님을 봉사하는 가운데, 가장 충만한 만족감을 얻게 될 것이다.(CT 522.2) 우주의 통치자는 그분의 은혜로우신 사업을, 홀로 행하지 않으셨다. 그분에게는 모든 존재들에게 행복을 주시려는, 그분의 목적을 이해하고 그분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역자 곧 동료 한 분이 계셨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요1:1,2)다. 말씀이시요, 하나님의“독생자”이신 그리스도는, 본성과 품성과 목적에 있어서 영원하신 아버지와, 하나이셨으며 하나님의 모든 협의와 의도(意圖:계획)에, 참여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셨다.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사 9:6).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5:2).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은 당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하신다.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내가 세움을 입었나니...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 하였”(잠 8:22~30)다.(PP 34.1)
우주의 왕은 저희 앞에서 그분 아들의, 참된 지위를 드러내시고 모든 피조물에 대한, 아들의 관계를 보이시려고 하늘 무리들을 소집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의 보좌에 같이 앉으셨으며,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두 분을 둘러쌌다. 보좌 주위에는, “만 만이요, 천천”(계5:11)인 셀 수 없이 많은 거룩한 천사들이 모였는데, 수종(隨從:시중 보조) 드는 자들이요 신하로서 가장 높은 저들은, 하나님의 어전(御前:영광의 ‘무지개’ 빛을 두른 창조주보좌앞)에서부터, 비치는 빛 가운데서 기뻐하고 있었다. 회집(會集:배석사열)된 하늘의 거민들 앞에서, 우주의 왕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밖에는, 아무도 그분의 계획에 완전히 참여할 수 없으며, 그분에게 그분의 뜻의 위대한 도모(圖謀:계획과 능력)들을, 수행[성취]하도록 위임(委任:구속의 경륜과 권리의무를 완전히 허락)하였다고 선언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늘의 모든 천사들을 창조하시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다. 그러므로 그분에게도 하나님께와 같은, 존경과 충절을 드려야 마땅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지구와 그 거민들을 창조하는 일에 있어서도, 신적 능력을 발휘하실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있어서 그분은 하나님의 계획에, 어긋나게 자신을 위하여 세력이나 존귀를 구하시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의 영광을 높이고 그분의 은혜와, 사랑의 의도를 실행하실 것이었다.(PP 36.2)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하여 아버지 앞에서 간청하시는 동안, 하늘천사들은 말로 표현할 수없는 큰 관심을 가지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타락한 인류를 위한 신비스런 의논—“평화의 의논”(슥 6:13)은 오래 계속되었다. 구속의 경륜은 지구의 창조 전에 이미 세워졌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창조함으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계13:8 구역)이시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주의 왕에게 있어서도 범죄 한 인류를 위하여, 그분의 아들을 죽도록 내어 주는 것은, 큰 투쟁이 아닐 수 없었다. 오! 구속의 오묘함이여! 그분을 사랑하지 않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여! “지식에 넘치는”(엡3:19) 그 사랑의 깊이를, 누가 알 수 있으리요! 영원한 세월을 통하여 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의 오묘함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불후(不朽:영원히 보존됨)의 지성(至聖:성인)들은 경탄(敬歎:우러러 감탄)하고 숭경(崇敬:더 높이 숭상하고 경배)해 마지않을 것이다.(PP 63 .3)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은, 잃어버린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그분의 “독생자”를 주심에서 나타났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아버지의 품성을, 사람들에게 나타내시려고 세상에 오셨고, 그의 생애는 거룩한 친절과 동정어린 행위로 충만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마5:18)리라고 친히 선언하셨다. 죄인들에게 인내와 사랑의 간청으로 당신께 나아와, 용서와 평화를 얻으라고 초청하시던 동일한 음성이, 심판 날에 그분의 은혜를 거절한 자들에게,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마25:41)라고 명하실 것이다. 온 성경 중에 하나님은 인자하신 아버지로뿐 아니라, 의로운 재판관으로 나타나 있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시고, “악의 과실과 죄를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출34:7)아니하신다.(PP 469.2) ‘갈라디아인’들 가운데 있는 동안 ‘바울’은 후에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갈4:12)고 말할 수 있었던, 그와 같은 생활을 살았다. 그의 입술은 제단에서 가져온 타는 숯불로 지짐을 받았으므로, 그는 신체적인 결함을 넘어서 예수를 죄인의, 유일의 소망으로 제시할 수가 있었다.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가 예수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위로부터 능력을 받아, 그는 영적인 사물을 영적으로 비교하고, 사단의 요새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그가 “독생자”의 희생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제시할 때에, 사람들의 마음이 녹았고,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고 묻게 되었다.(AA 208.2) 너그러운 정신은 하늘의 정신이다. 이 정신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에서, 최고로 나타난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그분의 독생자를 주셨고,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분께서 가지셨던 모든 것을 버리셨으며, 그분 자신을 주셨다. ‘갈바리’의 십자가는, 구주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의 자비심에 호소할 것이다. 거기서 예증(例證:비교예시로 증명)된 원칙은, 주고 또 주는 것이다.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2:6). (AA 339.2)
한 가지의 부절제의 행위로써 하나님을 부인하지 말라— 우리는 값으로 산 바가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소유인 우리의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 우리는 한 번이라도 부절제한 행위로써 하나님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무한하신 희생 곧 그분의 생명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우리를 사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악한 습관의 노예가 되도록,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것이 아니요, 우리가 신체기관의 모든 능력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게, 하시기 위하여 돌아가셨다.(CG 399.2)
우리는 주께서 우리가 서기를 바라시는 바로, 그 자리에 서는 데에 각별(各別:유달리 거룩하게)하기를 매우 원한다.- 즉, 우리가 가치는 없지만,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선하심을 통해, 우리가 받게 될 모든 축복을 인식(認識:사랑의 은혜로 분명깨달아 감사)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여러 면에서, 자아를 선하다고 여기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 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요3:16)이기 때문이다. 백 명이나 천 명 중에, 오천 명이나 만 명 중에, 한 사람도 지금이나 그 때나, 생명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무도 없다.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치 않고 영생을 가질 것이다.(1SAT 1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