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 중년의 여인이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온 적이 있다. 그녀가 말하는 내용은 간단했다.
남편은 오십대에 이미 부자가 됐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모이는 강남역과 청담동 명품거리에 커다란 빌딩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편이 돈을 벌자 부인인 그녀를 학대하고 수시로 폭력까지 행사한다는 것이었다.
부부 사이에는 아이도 없었다. 이혼소송을 하고 재산분할을 청구하면 여자는 큰 돈을 받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여자는 이혼생각이 없다고 했다. 맞더라도 쫓겨나지 않고 끝까지 버텨보겠다고 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돈을 번 남편이 마음이 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며칠 전이었다. 그 빌딩들의 소유주를 잘 아는 사람이 찾아왔다. 나는 그들 부부가 다시 화해했느냐고 물었다. “모르셨어요? 남자가 하도 괴롭히니까 여자가 참다가 이혼해 줬어요. 다른 여자한테는 돈을 써도 본처한테는 인색했죠. 위자료도 몇 푼 받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빌딩주인 그 남자가 집안에서 미끄러졌는데 갑자기 머리를 세면기에 박고 죽어버린 겁니다. 그런수도 있더라구요. 죽고 나니까 그가 소유했던 빌딩들을 상속할 자식이 없는 겁니다. 아내는 이혼을 했으니까 상속권이 없죠. 찾아보니까 조카가 열 한 명이 있더래요. 그런데 빌딩 하나가 천억대가 넘고 그런 게 두 개나 있는데 상속세가 어마어마하죠. 그런데 그렇게 큰 빌딩은 매매가 쉽게 되지 않아요. 조카들이 그런 상속 받지 않겠다고 포기했대요. 결국 그 빌딩은 임자없이 허공에 뜨고 국가 소유가 된 셈이죠.”
그 말을 들으면서 허망한 느낌이 들었다. 죽은 부자는 세상에 나와서 그 빌딩을 가지기 위해서 인생 전부를 바쳤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하던 일을 내던지고 빈 손으로 아무것도 없는 침묵의 저 세상으로 건너간 것인지도 모른다.
그 부인도 좀 더 참았더라면 수천억대의 재산을 상속받았을 지도 모른다. 재산이란 여름철 아름다운 꽃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바람이 불면 마른 풀같이 그렇게 시들어 버리는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비서실장과 중앙정보부장을 했던 분이 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을 가졌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그는 큰 이권에 관여하다 보면 ‘떡고물’이 떨어진다는 말로 유명하기도 했다. 그 떡고물이 그를 엄청난 재산가로 만들었다.
그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권력에서 내려온 후로는 시골로 내려가 도자기를 빚으면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은거생활을 했다. 정치적 폭풍이 다가올 때 마다 잘 피하며 살았다. 그리고 수명을 다하고 죽은 것 같았다. 나는 그가 권력을 이용해서 이룬 막대한 부가 자식에게 상속됐을까가 궁금했다.
나는 평생 그의 개인비서를 했던 분을 잘 알고 있다. 그의 모든것을 관리해 주던 집사였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말도 마세요. 자식 사업을 돕는다고 하다가 그 많은 재산을 다 날렸어요. 마지막에는 가난했어요. 결국 권력도 재물도 다 무상한 것 같아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이인자였던 총리가 있었다. 정권을 바꾸어 가면서 여러 번 총리를 했다. 그의 재산은 어마어마 했었다. 서산과 제주도의 그의 농장은 서양의 장원같다고 했다.
내가 변호를 했던 ‘대도’라고 불리웠던 도둑이 있었다. 그가 총리 집 비밀창고로 들어간 적이 있다고 했다. 그 창고에서 여러 보물을 봤다고 했다. 작은 그림 하나가 르노와르의 진품이라는 얘기를 나중에 듣기도 했다.
그 총리는 늙어서도 돈에 집착하는 면이 있었다. 당대표가 된 그 밑에서 사무총장을 하던 국회의원이 내게 더러워서 그와 결별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몸으로 뼈빠지게 일을 하는데도 공천에 수십억을 요구하더라는 것이다.
그 총리는 장관을 하려는 사람들에게서도 돈을 받았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런데 그 총리는 죽기 전에 이미 아무것도 없는 빈 손이었다고 한다. 아들의 사업에 자신이 끌어모은 돈을 다 털어 넣었다고 했다. 그 자식도 행복한 결말이 아니라는 소리가 전해져 왔다. 그 총리의 재물들도 결국은 잠시 피었다 시든 풀잎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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