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비공개 입니다
|
〈시대일보〉 |
〈중외일보〉 |
〈중앙일보〉 |
〈조선중앙일보〉 |
발 행 인 |
최남선(1923)/이성영(1926) |
이상협(1926) |
|
|
사 장 |
최남선(1923)/★홍명희(1925) |
이우식(1927) |
노정일(1931)/★여운형(1933) |
★여운형(1933) |
부 사 장 |
이관용(1925) |
|
|
|
전 무 |
|
|
|
윤희중 |
고 문 |
|
|
|
권동진 |
주 간 |
|
이상협 |
|
|
편집국장 |
진학문(1923)/한기악(1925) |
민태원 |
강 매 |
이관구 |
편집부장 |
|
|
김남주 |
|
논 설 반 |
변영만․★주종건․안재홍 |
|
|
|
정치부장 |
안재홍 |
이윤종 |
★배성룡 |
★배성룡 |
정치부기자 |
★신태악․이시목 |
|
|
|
사회부장 |
염상섭 |
김형원․정인익 |
★박팔양 |
★박팔양 |
사회부기자 |
김달진․나빈․현진건․유지영․★유연화․이건혁 |
|
|
|
경제부장 |
|
김봉기 |
|
|
학예부장 |
|
|
★박영희 |
★김복진 |
지방부장 |
|
서승효 |
유광렬 |
|
영업국장 |
|
|
김찬성 |
|
|
※1924.06.02 普天敎에서 인수 |
|
※改題 |
①〈중외일보〉제외하면 사회주의 계열 인물들(★)이 다수(강만길․성대경 엮음,《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 창작과비평사, 1996 참조)
② 기독교인으로 생각되는 인물 부재
☞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기사가 많이 실릴 가능성 / 허위․과장․왜곡의 가능성 / 기사화될 만한 가치의 문제
Ⅲ. 1920~30년대 일반신문들의 기독교 비판 기사 추이
▷ 기사 추출-‘교회’와 ‘기독’ 등으로 검색한 전체결과(‘천도교회’ 등도 약간 포함)
|
교회 |
기독 |
선교사 |
예수교 |
야소교 |
개신교 |
천주교 |
시대일보 |
53 |
66 |
14 |
6 |
8 |
0 |
3 |
중외일보 |
224 |
151 |
19 |
9 |
23 |
0 |
13 |
중앙일보 |
50 |
15 |
7 |
0 |
6 |
0 |
1 |
조선중앙일보 |
218 |
114 |
28 |
6 |
6 |
0 |
29 |
합계 |
545 |
346 |
68 |
21 |
43 |
0 |
46 |
▷ 주제 선정-기독교 비판기사만 선택
|
분규 |
비행 |
선교사 |
학교 |
유치원 |
청년 |
소음 |
김익두 |
기타 |
합계 |
1924 |
1 |
0 |
3 |
1 |
0 |
0 |
0 |
0 |
0 |
5 |
1925 |
0 |
3 |
2 |
0 |
1 |
0 |
0 |
0 |
1 |
7 |
1926 |
4 |
1 |
6 |
0 |
2 |
0 |
0 |
2 |
1 |
16 |
1927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1928 |
2 |
1 |
1 |
2 |
0 |
0 |
0 |
0 |
0 |
6 |
1929 |
4 |
1 |
0 |
0 |
0 |
0 |
0 |
0 |
1 |
6 |
1930 |
6 |
1 |
0 |
1 |
0 |
0 |
0 |
1 |
1 |
10 |
1931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1932 |
3 |
2 |
0 |
2 |
0 |
0 |
0 |
0 |
0 |
7 |
1933 |
13 |
0 |
0 |
0 |
0 |
0 |
1 |
0 |
0 |
14 |
1934 |
3 |
2 |
0 |
0 |
0 |
1 |
0 |
0 |
0 |
6 |
1935 |
3 |
3 |
0 |
0 |
1 |
0 |
1 |
0 |
0 |
8 |
1936 |
7 |
3 |
1 |
2 |
0 |
2 |
0 |
0 |
1 |
16 |
합계 |
잘못된 계산식 |
잘못된 계산식 |
잘못된 계산식 |
잘못된 계산식 |
잘못된 계산식 |
잘못된 계산식 |
2 |
3 |
5 |
잘못된 계산식 |
▷ 추이
① 교회 분규에 대한 기사, 교회의 내분 및 교인들의 비행에 대한 기사가 다수→기사성 및 객관성의 문제
② 반기독교운동이 고조되는 시기에 기독교비판기사도 증가→반기독교운동 확산에 영향/의도적 기획(?)
③ 선교사비판기사는 1926년 이후 퇴조
④ 1930년대 중반에는 기독청년들의 교회 비판을 부각
⑤ 교회와 학교․유치원의 갈등에 대해 신랄한 비판
Ⅳ. 맺음말
▷ 분석은 제대로 못했지만 교회사 연구자료로서의 활용가치는 확인
▷ 다른 자료에서 찾아보기 힘든,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내용들이 다수 수록
▷ 신문사 필진의 성향으로 볼 때 기독교에 대한 우호적 기사는 기대하기 힘든 정황 고려
▷ 우호적은 아니라도 교회 활동이나 행사에 대한 기사도 다수 수록→다양한 활용 가능
신문별 기사 목록
ꊱ 시대일보
시대 1924-05-17 01 03 교회소송 연기
시대 1924-06-28 02 07 미의 배일과 평양 선교사단, 유감의 뜻을 지사에게
시대 1924-10-02 01 01 봉명교 분규, 학교당국자와 교회목사의 의사충돌로
시대 1924-10-24 01 02 의정여교 교육위원들이 선교사를 불신임, 교인전체 모욕하고 전조선민족 무시해, 횡폭자의를 감행한 백인
시대 1924-12-08 01 08 英대사관원과 米선교사가 도박, 일본에서 급행열차 식당 안에서
시대 1925-01-10 01 04 기독교 청년회장의 갖은 추태와 비행, 취중에 일녀를 능욕하려다, 애꿎은 단장만 세 개나 훔쳐
시대 1925-06-19 03 03 재연되는 정명여교의 분규, 금전으로 학생사는 선교사의 구타, 축출, 무소부지의 폭행
시대 1925-07-08 03 06 기독교인이 成群하여, 본보지국에 殺到, 어린 학생을 상여고에 구금한 유치원 교 사의 기사를 냈다고
시대 1925-07-14 02 11 대남유치원의 椿事, 교회 집사가 원감을 폭행,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을 수용하 는 유치원이 수라장
시대 1925-07-15 03 02 목포 貞明校 문제로 老會席에 질문전, 다른 선교사 배척운동이 可慮
시대 1925-08-18 03 03 구제사업 방해하는, 무도한 교회諸職, 목사와 집사가 附和하여 가지고, 여자청년 회 성의까지 저지해
시대 1925-11-30 03 01 空前&大盛況, 반기독교 대강연, 장내는 살기비등
시대 1925-12-08 03 01 용천입암교회 장노들에게
시대 1926-01-07 03 06 통영교회 신년부터 修羅化, 김만일 목사 유임문제로
시대 1926-05-23 05 02 언쟁하고 상해로 고소, 진해 교회 집사
시대 1926-05-28 03 01 이리 기독교회 항쟁책 결의? 김익두목사 성토 주최측과 사실보도 양신문을 적대 시, 개인옹호? 고의도전?
시대 1926-06-23 03 02 이리교회 金목사 도주
시대 1926-06-28 03 02 종지에 어그러진다고 유치원을 내몰아, 길주 야소교회에서
시대 1926-07-02 02 05 미 선교사 죄상 사과, 위자료도 지불
시대 1926-07-04 02 05 米人 선교사 만행으로 경성 안식교 청년 분기, 그러한 자를 그대로 둠은 교회의 불명예라고, 만행자 축출과 사죄받기를 결의
시대 1926-07-05 01 01 민족적 가치를 보존하라, 평원△ 선교사 폭행을 보고
시대 1926-07-06 02 01 미국 선교사 만행과 경성학련의 결의, 교회 학교의 분리운동 제창, 학생데이를 정하여 선전
시대 1926-07-07 03 05 목사 처 김씨, 비인도적 행위, 교회에서 긴급회의
시대 1926-07-09 02 01 영천교회에 일 풍파, 목사는 교인을 책벌하려 하고, 교인은 목사를 질책하여 야단
시대 1926-07-18 03 01 유치원문제로 곽산교회 대풍파
시대 1926-07-21 02 04 米신문지, 許時模罪, 이후에 △△ 선교사△△
시대 1926-07-31 02 03 私刑한 米人선교사 허시모 공판 상보, 초최한 얼굴로 법정에 나타난 허시모, 冒雨 還至한 방청자로 법정만원, 사실을 일일 시인
ꊲ 중외일보
중외 1926-12-24 02 07 서강교회 장유회의 풍파, 직원간 충돌도
중외 1926-12-09 02 09 마산교회 분규, 내용진술서 공시, 공동처리회에서
중외 1928-01-19 02 08 以德服人할 종교단체, 以力服人으로 초가사면, 우물을 독점하여 음료수로 대곤 란, 비신자는 도저히 몸부처 살수 없다, 덕원천주교회의 처사
중외 1928-06-25 02 03 폐문의 비운에 방황하는 숭덕교, 교회에서도 돕지는 않고 폐리같이 보는 관계목 사
중외 1928-08-06 02 04 원산선교사 소년 구타를 사과, 자복서도 발표
중외 1928-08-07 02 07 검사원보고 끝에 교회당 수라장화, 김교장 횡령사실이 전혀 없음을 알게 된 옹 호파가 반대파를 공격, 숙천양신학교 분규해결 在遷
중외 1928-08-17 04 01 분규로 시종한 慶東部會학생대회, 사회자의 실언으로, 어일교회 기권 퇴장
중외 1928-10-08 04 01 마산기독교회의 분규를 논함
중외 1929-02-16 03 03 지방시론, 숙천야소교회에 일언으로 충고, 숙천지국 일기자
중외 1929-04-01 02 05 기독교 신도로 절도 감행, 본정경찰서에 체포된 中村시계점 절도
중외 1929-04-04 03 04 주광 용천만평, 용암기독교 문제 중외일보
중외 1929-05-04 02 05 분규 첩출하는 경북노회, 회기를 목전에 두고서 각 교회 목사 배척
중외 1929-06-04 03 04 용암포 기독교회 분규, 익익 노골화
중외 1929-08-29 03 09 항구 계속 중의 용암포 교회분규, 쌍방의 양보로 원만 해결
중외 1930-01-07 02 05 김익두 목사 강연하다 봉변, 청중은 여관까지 습격, 철원교회의 소동
중외 1930-01-07 02 07 교회병원 내에 魄惡한 혈투, 거룩한 기독촌을 모독, 광주사회에 一話柄
중외 1930-01-09 04 01 정목사 고소문제로 분규사건 확대, △포리교회분규사건 후보
중외 1930-02-15 03 01 철원교회 분규, 거익 심각화, 질문까지 생기어
중외 1930-02-24 04 01 점차 확대되어 가는 성진야소교회의 분규, 논전의 계단을 넘어 폭력으로, 구△ 선사건을 계기로 하여, 우리는 우리 손으로 교회를 키우고자
중외 1930-03-14 04 01 쇠퇴하는 교회, 사회상을 암시
중외 1930-03-17 04 04 북하동교회, 교사 배척 분규, 노회의 처벌로 일단락
중외 1930-05-01 03 03 탄포교회의 분규 尙 계속
중외 1930-05-08 04 09 탄포리교회의 분규 去益 험악, 예배일마다 풍파가 일어
중외 1930-08-09 04 01 검속자 전부 석방, 10일씩 구류당코, 신천교회 분규 후문
중외 1930-09-20 03 10 김화교회 내에 교역자간 추문
ꊳ 중앙일보
중앙 1932-02-11 03 01 만주동포구제에 참가학생을 처벌, 보신학교의 가혹한 처사, 욱정 중앙교회 분립
중앙 1932-02-11 03 01 구정 원일에 성진교회 풍파, 학생 출학한 것이 원인, 遠因은 교회내 대립
중앙 1932-02-12 03 08 문제의 안상필씨 구타한 불상사 발생, 중앙교회청년이 구타, 경찰이 출동인치하 여, 성진교회의 분규 후문
중앙 1932-02-13 03 00 경찰경계리에 함중노회를 소집, 방청 절대로 금지하여서 일반비난이 없지 않다 고, 성진교회 분규후보
중앙 1932-03-04 03 06 기부한 토지를 반환, 순천교회 박목사가
중앙 1932-03-22 03 05 전주 신흥교 다수 선생들이 혈성 경영, 교도간에는 시비가 나서 교회 경영이 절 망되었다, 보육학원 확대, 성경원도 확장
중앙 1932-04-16 03 03 평양교회에 추문, 목사가 집사 간통, 여집사의 남편은 7년 전에 미국 건너가, 금번 노회에서 면직, 조사간 목사를 다짜고짜로 구타, 최여사를 대질시키어 결국 자백하고 망신
중앙 1933-01-03 04 01 신천교회 목사 불신임 운동
중앙 1933-01-30 02 07 예배당 종소리가, 安眠방해라고, 평양서에서 경고하여, 문제되는 교회의 鐘聲
중앙 1933-02-04 03 05 신천장로교회, 분규 거익확대
중앙 1933-02-08 03 08 개복동교회의 년래계속튼 분규, 결국정식분교로 해결
ꊴ 조선중앙일보
조중 1933-03-28 03 06 교회간 분규로 양보모를 해임, 군산부 개복동 교회에서, 일반의 비난이 자자
조중 1933-04-10 02 01 성경 해석상 문제로 신도 이십여 명을 처벌, 老會서는 이설을 주창하는 이단자라고 쇄신파에서는 기독 해석의 부흥이라고, 안주교회 분규 격심, 개과 안하면 단연 黜敎, 목사 최지화씨 담, 기독교의 부흥 위하여 끝까지 노력
조중 1933-04-11 02 05 평양기독교회에서 팔백 신도 대난투, 변목사의 부정사건이 도화선, 옹호 배척의 양파의 분립 충돌, 경관이 출동 해산
조중 1933-04-11 02 01 이단자로 규정한 노회의를 배격, 혁신파 성명을 발표, 안주교회 분규 後聞
조중 1933-04-12 02 06 변목사 배척과 길목사 옹립이 분규 동기, 대난투극 출연 찰나에 이 청년 부상, 평양교회 소동 진상, 상보를 탐문, 변목사 반대, 군중은 소동, 신성한 교당에서 교인 구타했다고 피해자는 고소 준비 중
조중 1933-04-26 03 03 대립 항쟁하던 안주교회 드디어 분열, 쇄신파는 결속 탈퇴하야 전안주읍에 교회 신설, 양파 분립은 당연
조중 1933-05-05 03 06 8명 처분으로 또다시 육탄전, 평양 △△교회 분규, 경찰 출동 선동자 검거
조중 1933-06-05 04 01 당회원 사표는 수리, 고소장은 취하하기로, 지난 삼십일 평양노회에서 결정, 장 대현교회분규 후문
조중 1933-08-09 04 11 울산지방에 잇는 장로교회도 분규, 혁신파 구파를 종빙
조중 1933-08-27 04 07 울산교회 신도 백여 명, 탈퇴성명을 선언, 전조선 각 교회에 성명서를 발송, 주목 되는 금후 진전
조중 1934-01-06 04 01 평양창동교회의 예배당이 수파장화, 청년교도들이 절기하여 교회ꡐ팟쇼ꡑ화를 반 대, 자벌의 전횡을 청산탕기하라, 당일 성명서의 대의
조중 1934-01-19 05 03 모교회 전장로가 절도하다가 피체, 1백여원 어치 주단을 훔쳐, 필경에는 유치장 행
조중 1934-02-28 05 00 빈발하는 종교계의 불상사, 평양성결교회분규, 목사에 대한 신도들의 불신임태 도 노골화, 난투극까지 연출
조중 1934-04-25 02 03 신의주모교회 목사로 금밀수사건에 관련? 모여학생유린한 사실까지 발로, 범인 본정서에 피체
조중 1934-05-31 04 05 紛△에서 分裂로! 각 교회 분리 분산, 聖潔 교회는 四散
조중 1934-11-25 02 01 조선장로교회의 총회와 노회 알력, 박, 이 양목사 停權 문제 확대, 경성노회 성명 발표
조중 1935-01-21 03 07 부회장 선거로 교회에서 분쟁
조중 1935-02-06 02 06 유처남, 유부녀의 무궤도 애욕행각, 교회당내에 얽크러진 4각연애의 가는 곳
조중 1935-02-28 03 03 린인안면을 방해하는 모교회의 기도회, 해괴망칙한 소문도 있어서 금후를 엄중 히 감시
조중 1935-04-15 03 02 교역자가 고리대금, 담양있는 미국 선교사, 이장로 걸어 고소중
조중 1935-05-03 03 07 정신치료하든 신자, 상해치사죄로 遂 송국, 예산군 성결교회의 四名등
조중 1935-06-23 03 04 신성한 교회에서 양파로 분열하여 투쟁, 강릉감리교회 불상사
조중 1935-07-07 02 09 개성 중앙유치원, 폐원비운에 봉착, 선교회의 보조금 중단으로, 후원회에서 존속
운동
조중 1935-07-27 03 05 분쟁의 강릉감리교회, 필경 양파로 분열, 세력의 투쟁이 주요한 원인, 전도는 갈 수록 암담
조중 1936-01-15 02 05 기독교계 비판강연
조중 1936-03-09 04 06 성스러운 교회에 桃色遊戱의 醉態, 아내있는 모장로의 아들 방탕, 墮胎 혐의로 경찰 취조
조중 1936-04-07 02 04 피로 물들인 성단, 인천 內里교회에서 신도간에 유혈극, 監理師 배척의 烽火가 발단, 마침내 경찰출동, 검속했던 사람은 경찰이 즉시 석방
조중 1936-04-10 02 08 이 무슨 추태뇨, 정복경관 감시 하, 불온 공기 중에 예배, 내리교회 분쟁 속보
조중 1936-04-11 03 01 기독교의 타락상, 장로, 집사 등 一團, 토지투기에 전업, 토지매매 문제로 같은 신도간에 격투소동의 추태
조중 1936-04-18 02 04 인천교회 분쟁 확대, 파쟁이 학교에 파급, 불안 중의 4백 학동, 5 6학년은 마침내 휴학!, 인천 영화교에 불상사
조중 1936-04-19 01 01 사설/조선기독교도들에게, 그 타락적 지향에 대하여
조중 1936-04-28 02 01 성결교회의 내분, 간부 불신임과 교역자 배척 등, 파문은 전조선에
조중 1936-05-03 02 05 병자까지 발행해도 법적 해결만 주장, 말썽된 여자선교회 소유집 홀부인 태도 강경, 원고 홀부인은 강제수단을 계속, 또 김창진의 집 봉쇄, 공탁금 3백원
조중 1936-05-15 02 07 종교의 神聖파괴는 간부에게 책임 있다, 최근 교회측의 분쟁 속출로 엡윗청년연 합토의
조중 1936-05-23 05 01 기독교의 타락상, 비행 목사 축출코저 천여명 교도 궐기, 목사로서 고리대금과 토지매매, 사리원 서부교회에서
조중 1936-06-26 02 05 기독교 정화운동, 목사나 신도로서 고리대금업은 불가, 내막을 조사하여 배격하 기로, 함흥교회 청년 궐기
조중 1936-07-23 04 04 30년 역사도 수포, 楚山 培信學校 폐교?, 경영난으로 교회측에서 결의, 생도들은 실망에 울어
조중 1936-07-29 07 04 永柔 聖經학원에, 돌연 해산명령! 성경이외 과목을 가르쳤다고, 교회에선 대책 강구
조중 1936-08-02 04 03 진남포 성결교회 동양 선교회를 탈퇴, 이사회와 총회와의 대립으로 교회내의 추 태 폭로, 吳癸植 목사 談
조중 1936-08-08 07 05 종교의 알력상, 순안의 안식교회, 신구 양파로 분립, 보수파에 반대의 기치들고 혁신파 분리 예배, 항쟁의 원인은 교정과 지도문제, 최후적 태도 결정은 회장 오벽씨 귀래 후, 혁신파 참가의 14교회 손금 불납
조중 1936-08-09 07 07 파란일과 후의 순안교회 풍경, 숙조감만 자아낼 뿐
내용별 기사 목록
ꊱ 분규
분규 시대 1924-05-17 01 03 교회소송 연기
분규 시대 1926-01-07 03 06 통영교회 신년부터 修羅化, 김만일 목사 유임문제로
분규 시대 1926-07-09 02 01 영천교회에 일풍파, 목사는 교인을 책벌하려 하고, 교인은 목사를 질책하여 야단
분규 중외 1926-12-09 02 09 마산교회 분규, 내용진술서 공시, 공동처리회에서
분규 중외 1926-12-24 02 07 서강교회 장유회의 풍파, 직원간 충돌도
분규 중외 1928-08-17 04 01 분규로 시종한 慶東部會학생대회, 사회자의 실언으로, 어일교회 기권 퇴장
분규 중외 1928-10-08 04 01 마산기독교회의 분규를 논함
분규 중외 1929-04-04 03 04 주광 용천만평, 용암기독교 문제 중외일보
분규 중외 1929-05-04 02 05 분규 첩출하는 경북노회, 회기를 목전에 두고서 각 교회 목사 배척
분규 중외 1929-06-04 03 04 용암포 기독교회 분규, 익익 노골화
분규 중외 1929-08-29 03 09 항구 계속 중의 용암포 교회분규, 쌍방의 양보로 원만 해결
분규 중외 1930-01-09 04 01 정목사 고소문제로 분규사건 확대, △포리교회 분규사건 후보
분규 중외 1930-02-15 03 01 철원교회 분규, 거익 심각화, 질문까지 생기어
분규 중외 1930-02-24 04 01 점차 확대되어 가는 성진 야소교회의 분규, 논전의 계단을 넘어 폭력으로, 구△선 사건을 계기로 하여, 우리는 우리 손으로 교회를 키우고자
분규 중외 1930-05-01 03 03 탄포교회의 분규 尙 계속
분규 중외 1930-05-08 04 09 탄포리 교회의 분규 去益 험악, 예배일마다 풍파가 일어
분규 중외 1930-08-09 04 01 검속자 전부 석방, 10일씩 구류당코, 신천교회 분규 후문
분규 중앙 1932-02-11 03 01 구정 원일에 성진교회 풍파, 학생 출학한 것이 원인, 遠因은 교회내 대립
분규 중앙 1932-02-12 03 08 문제의 안상필씨 구타한 불상사 발생, 중앙교회청년이 구타, 경찰이 출동 인치하여, 성진교회의 분규 후문
분규 중앙 1932-02-13 03 00 경찰경계리에 함중노회를 소집, 방청 절대로 금지하여서 일반비난이 없지 않다고, 성진교회 분규후보
분규 중앙 1933-01-03 04 01 신천교회 목사 불신임 운동
분규 중앙 1933-02-04 03 05 신천장로교회, 분규 거익확대
분규 중앙 1933-02-08 03 08 개복동교회의 년래 계속튼 분규, 결국정식분교로 해결
분규 조중 1933-03-28 03 06 교회간 분규로 양보모를 해임, 군산부 개복동 교회에서, 일반의 비난이 자자
분규 조중 1933-04-10 02 01 성경 해석상 문제로 신도 이십여명을 처벌, 老會서는 이설을 주창하는 이단자라고 쇄신파에서는 기독 해석의 부흥이라고, 안주교회 분규 격심, 개과 안하면 단연 黜敎, 목사 최지화씨 담, 기독교의 부흥 위하여 끝까지 노력
분규 조중 1933-04-11 02 01 이단자로 규정한 노회의를 배격, 혁신파 성명을 발표, 안주교회 분규 後聞
분규 조중 1933-04-11 02 05 평양기독교회에서 팔백 신도 대난투, 변목사의 부정사건이 도화선, 옹호 배 척의 양파의 분립 충돌, 경관이 출동 해산
분규 조중 1933-04-12 02 06 변목사 배척과 길목사 옹립이 분규 동기, 대난투극 출연 찰나에 이 청년 부상, 평양교회 소동 진상, 상보를 탐문, 변목사 반대, 군중은 소동, 신성한 교당에서 교인 구타했다고 피해자는 고소 준비 중
분규 조중 1933-04-26 03 03 대립 항쟁하던 안주교회 드디어 분열, 쇄신파는 결속 탈퇴하야 전안주읍에 교회 신설, 양파 분립은 당연
분규 조중 1933-05-05 03 06 8명 처분으로 또다시 육탄전, 평양 △△교회 분규, 경찰 출동 선동자 검거
분규 조중 1933-06-05 04 01 당회원 사표는 수리, 고소장은 취하하기로, 지난 삼십일 평양노회에서 결정, 장대현교회 분규 후문
분규 조중 1933-08-09 04 11 울산지방에 잇는 장로교회도 분규, 혁신파 구파를 종빙
분규 조중 1933-08-27 04 07 울산교회 신도 백여명, 탈퇴성명을 선언, 전조선 각 교회에 성명서를 발송, 주목되는 금후 진전
분규 조중 1934-02-28 05 01 빈발하는 종교계의 불상사, 평양성결교회 분규, 목사에 대한 신도들의 불신 임태도 노골화, 난투극까지 연출
분규 조중 1934-05-31 04 05 紛△에서 分裂로! 각 교회 분리 분산, 聖潔 교회는 四散
분규 조중 1934-11-25 02 01 조선장로교회의 총회와 노회 알력, 박, 이 양목사 停權 문제 확대, 경성노회 성명 발표
분규 조중 1935-01-21 03 07 부회장 선거로 교회에서 분쟁
분규 조중 1935-06-23 03 04 신성한 교회에서 양파로 분열하여 투쟁, 강릉감리교회 불상사
분규 조중 1935-07-27 03 05 분쟁의 강릉감리교회, 필경 양파로 분열, 세력의 투쟁이 주요한 원인, 전도 는 갈수록 암담
분규 조중 1936-04-07 02 04 피로 물들인 성단, 인천 內里교회에서 신도간에 유혈극, 監理師 배척의 烽火 가 발단, 마침내 경찰출동, 검속했던 사람은 경찰이 즉시 석방
분규 조중 1936-04-10 02 08 이 무슨 추태뇨, 정복경관 감시 하, 불온 공기 중에 예배, 내리교회 분쟁 속 보
분규 조중 1936-04-18 02 04 인천교회 분쟁 확대, 파쟁이 학교에 파급, 불안 중의 4백 학동, 5 6학년은 마침내 휴학!, 인천 영화교에 불상사
분규 조중 1936-04-28 02 01 성결교회의 내분, 간부 불신임과 교역자 배척 등, 파문은 전조선에
분규 조중 1936-08-02 04 03 진남포 성결교회 동양 선교회를 탈퇴, 이사회와 총회와의 대립으로 교회내 의 추태 폭로, 吳癸植 목사 談
분규 조중 1936-08-09 07 07 파란일과 후의 순안교회 풍경, 숙조감만 자아낼 뿐
분규 조중 1936-08-08 07 05 종교의 알력상, 순안의 안식교회, 신구 양파로 분립, 보수파에 반대의 기치 들고 혁신파 분리 예배, 항쟁의 원인은 교정과 지도문제, 최후적 태도 결정은 회장 오벽씨 귀래 후, 혁신파 참가의 14교회 손금 불납
ꊲ 비행
비행 시대 1925-01-10 01 04 기독교 청년회장의 갖은 추태와 비행, 취중에 일녀를 능욕하려다, 애꿎은 단장만 세 개나 훔쳐
비행 시대 1925-07-08 03 06 기독교인이 成群하여, 본보지국에 殺到, 어린 학생을 상여고에 구금한 유치 원 교사의 기사를 냈다고
비행 시대 1925-08-18 03 03 구제사업 방해하는 무도한 교회諸職,, 목사와 집사가 附和하여 가지고, 여자 청년회 성의까지 저지해
비행 시대 1926-07-07 03 05 목사 처 김씨, 비인도적 행위, 교회에서 긴급회의
비행 중외 1928-01-19 02 08 以德服人할 종교단체, 以力服人으로 초가사면, 우물을 독점하여 음료수로 대곤란, 비신자는 도저히 몸부처 살 수 없다, 덕원천주교회의 처사
비행 중외 1929-04-01 02 05 기독교 신도로 절도 감행, 본정경찰서에 체포된 中村시계점 절도
비행 중외 1930-09-20 03 10 김화교회 내에 교역자간 추문
비행 중앙 1932-03-04 03 06 기부한 토지를 반환, 순천교회 박목사가
비행 중앙 1932-04-16 03 03 평양교회에 추문, 목사가 집사 간통, 여집사의 남편은 7년 전에 미국 건너가, 금번 노회에서 면직, 조사간 목사를 다짜고짜로 구타, 최여사를 대질시키어 결국 자백하고 망신
비행 조중 1934-01-19 05 03 모교회 전장로가 절도하다가 피체, 1백여원 어치 주단을 훔쳐, 필경에는 유 치장행
비행 조중 1934-04-25 02 03 신의주모교회 목사로 금밀수사건에 관련? 모여학생유린한 사실까지 발로, 범인 본정서에 피체
비행 조중 1935-02-06 02 06 유처남, 유부녀의 무궤도 애욕행각, 교회당내에 얽크러진 4각연애의 가는 곳
비행 조중 1935-04-15 03 02 교역자가 고리대금, 담양있는 미국 선교사, 이장로 걸어 고소중
비행 조중 1935-05-03 03 07 정신치료하든 신자, 상해치사죄로 遂 송국, 예산군 성결교회의 四名등
비행 조중 1936-03-09 04 06 聖스러운 교회에 桃色遊戱의 醉態, 아내있는 모장로의 아들 방탕, 墮胎 혐의 로 경찰 취조
비행 조중 1936-04-11 03 01 기독교의 타락상, 장로, 집사 등 一團, 토지투기에 전업, 토지매매 문제로 같은 신도간에 격투소동의 추태
비행 조중 1936-05-23 05 01 기독교의 타락상, 비행 목사 축출코저 천여명 교도 궐기, 목사로서 고리대금 과 토지매매, 사리원 서부교회에서
ꊳ 선교사
선교사 시대 1924-06-28 02 07 미의 배일과 평양 선교사단, 유감의 뜻을 지사에게
선교사 시대 1924-10-24 01 02 의정여교 교육위원들이 선교사를 불신임, 교인전체 모욕하고 전조선민족 무시해, 횡폭자의를 감행한 백인
선교사 시대 1924-12-08 01 08 英대사관원과 米선교사가 도박, 일본에서 급행열차 식당 안에서
선교사 시대 1925-06-19 03 03 재연되는 정명여교의 분규, 금전으로 학생사는 선교사의 구타, 축출, 무소 부지의 폭행
선교사 시대 1925-07-15 03 02 목포 貞明校 문제로 老會席에 질문전, 다른 선교사 배척운동이 可慮
선교사 시대 1926-07-02 02 05 미 선교사 죄상 사과, 위자료도 지불
선교사 시대 1926-07-04 02 05 米人 선교사 만행으로 경성 안식교 청년 분기, 그러한 자를 그대로 둠은 교회의 불명예라고, 만행자 축출과 사죄받기를 결의
선교사 시대 1926-07-05 01 01 민족적 가치를 보존하라, 평원△ 선교사 폭행을 보고
선교사 시대 1926-07-06 02 01 미국 선교사 만행과 경성학련의 결의, 교회 학교의 분리운동 제창, 학생데 이를 정하여 선전
선교사 시대 1926-07-21 02 04 米신문지, 許時模罪, 이후에 △△ 선교사△△
선교사 시대 1926-07-31 02 03 私刑한 米人선교사 허시모 공판 상보, 초최한 얼굴로 법정에 나타난 허시 모, 冒雨還至한 방청자로 법정만원, 사실을 일일 시인
선교사 중외 1928-08-06 02 04 원산선교사 소년 구타를 사과, 자복서도 발표
선교사 조중 1936-05-03 02 05 병자까지 발행해도 법적 해결만 주장, 말썽된 여자선교회 소유집 홀부인 태도 강경, 원고 홀부인은 강제수단을 계속, 또 김창진의 집 봉쇄, 공탁금 3백원
ꊴ 학교
학교 시대 1924-10-02 01 01 봉명교 분규, 학교당국자와 교회목사의 의사충돌로
학교 중외 1928-06-25 02 03 폐문의 비운에 방황하는 숭덕교, 교회에서도 돕지는 않고 폐리같이 보는 관 계목사
학교 중외 1928-08-07 02 07 검사원 보고 끝에 교회당 수라장화, 김교장 횡령사실이 전혀 없음을 알게 된 옹호파가 반대파를 공격, 숙천양신학교 분규해결 在遷
학교 중외 1930-03-17 04 04 북하동교회, 교사 배척 분규, 노회의 처벌로 일단락
학교 중앙 1932-02-11 03 01 만주동포구제에 참가학생을 처벌, 보신학교의 가혹한 처사, 욱정 중앙교회 분립
학교 중앙 1932-03-22 03 05 전주신흥교 다수 선생들이 혈성경영, 교도간에는 시비가 나서 교회경영이 절망되었다, 보육학원 확대, 성경원도 확장
학교 조중 1936-07-23 04 04 30년 역사도 수포, 楚山 培信學校 폐교?, 경영난으로 교회측에서 결의, 생도 들은 실망에 울어
학교 조중 1936-07-29 07 04 永柔 聖經학원에, 돌연 해산명령! 성경이외 과목을 가르쳤다고, 교회에선 대책 강구
ꊵ 유치원
유치원 시대 1925-07-14 02 11 대남유치원의 椿事, 교회 집사가 원감을 폭행,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을 수용하는 유치원이 수라장
유치원 시대 1926-06-28 03 02 종지에 어그러진다고 유치원을 내몰아, 길주 야소교회에서
유치원 시대 1926-07-18 03 01 유치원문제로 곽산교회 대풍파
유치원 조중 1935-07-07 02 09 개성 중앙유치원, 폐원비운에 봉착, 선교회의 보조금 중단으로, 후원회에 서 존속운동
ꊶ 청년
청년 조중 1934-01-06 04 01 평양창동교회의 예배당이 수파장화, 청년교도들이 절기하여 교회ꡐ팟쇼ꡑ화를 반대, 자벌의 전횡을 청산탕기하라, 당일 성명서의 대의
청년 조중 1936-05-15 02 07 종교의 神聖파괴는 간부에게 책임 있다, 최근 교회측의 분쟁 속출로 엡윗청 년연합토의
청년 조중 1936-06-26 02 05 기독교 정화운동, 목사나 신도로서 고리대금업은 불가, 내막을 조사하여 배 격하기로, 함흥교회 청년 궐기
ꊷ 소음
중앙 1933-01-30 02 07 예배당 종소리가, 安眠방해라고, 평양서에서 경고하여, 문제되는 교회의 鐘聲
조중 1935-02-28 03 03 린인안면을 방해하는 모교회의 기도회, 해괴망칙한 소문도 있어서 금후를 엄중 히 감시
ꊸ 김익두
시대 1926-05-28 03 01 이리 기독교회 항쟁책 결의? 김익두 목사 성토 주최측과 사실 보도 양신문을 적 대시, 개인옹호? 고의도전?
시대 1926-06-23 03 02 이리교회 金목사 도주
중외 1930-01-07 02 05 김익두 목사 강연하다 봉변, 청중은 여관까지 습격, 철원교회의 소동
ꊹ 기타
기타 시대 1925-12-08 03 01 용천입암교회 장노들에게
기타 시대 1926-05-23 05 02 언쟁하고 상해로 고소, 진해 교회 집사
기타 중외 1929-02-16 03 03 지방시론-숙천야소교회에 일언으로 충고, 숙천지국 일기자
기타 중외 1930-03-14 04 01 쇠퇴하는 교회, 사회상을 암시
기타 조중 1936-04-19 01 01 사설-조선기독교도들에게, 그 타락적 지향에 대하여
첫댓글 오랜만에 오셨구만요..어디 첩이라도 생겼나요?
헉~ 동포님 정말 어디 외국이라도 다녀오셨나요?
소문에 성전환 수술 하시고 회복기 가지시느라....ㅋㅋㅋㅋㅋ=3=3=3=3=3=3=3=3=3=3=3=3=3
헉 동포님 목욕탕 같이 가봐야 겠군요 ^^
"개종"카페에 누가 "동포"란 이름으로 글을 올렸는데, "반기련" 어쩌고.... 마치 진짜 동포님이 올린 것처럼 올려서 동포님이 욕을 먹게시리.... 아마도 어느 종교를 바로 잡느다고 떠드는 사람이 하지 않았을까? 동포님 오래 사시겠우.
도대체 이런 자료들을 어디서들 그렇게 잘도 구하시는지 안티들의 정보력 순발력에 저는 또 놀라지요...동포님은 오랜만에 뵙는것 같네요^^
80-90 년이 지나도록 회개 는 커녕 더 많은 범죄 비리를 저지르는 개독 무리들은 이 지구상에서 박멸 해야 합니다...
암튼 개독무리속에서 살아남아 돌아온 동포님을 환영합니다.ㅋㅋ
다아~ 주님의 인도하심 입니다....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