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이 매번 마주치는 커다란 '벽'에 대하여
장 폴 사르트르의 소설을 읽기로 했다. 같은 프랑스 태생의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까뮈의 소설 ‘이방인’을 읽고 실존주의 철학과 부조리한 삶에 대해 그린 작품에 감명받은 나로썬 사르트르의 소설과 인문 서적을 알아보기 위해 그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보았을 때 그가 까뮈와 같이 실존주의 철학과 부조리한 인간의 삶에 대해 극명하게 그려 낸 작가라는 점에서 매우 흡족했다. 우선 사르트르의 장편인 ‘구토’를 읽고 싶었지만 첫 단편 소설인 ‘벽’을 선택했다.
나는 책을 구입하기 위해 현재 보수공사 중인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지 못하고 종각역의 영풍문구에 방문했다. 교보문고가 문을 닫아서인지 사람이 많아 보였다. 우선 단편집인 ‘벽’을 찾아 헤맸으나 30분 전에 재고가 다 나갔다는 소리에 까뮈의 단편 ‘전락’등이 담긴 소설집을 구입한 뒤, 재학 중인 추계예술대학교 도서관을 찾아갔다. 우선 읽고 있던 토마스 만의 ‘토니어 크뢰거’를 반납하고 책을 찾아 30분을 헤맨 끝에 조교의 도움을 받아 책을 손에 쥐었다. 2005년에 출간된 책이건만 많이 낡아보였다. 언뜻 조교의 컴퓨터로 본 대출자 명단에는 며칠 전인 3월 말에도 이 책을 대출되었던 걸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 만큼 문학을 공부하는 이들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찾아 읽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한층 더 기대감에 부풀었다.
소설의 표면적 줄거리는 그리 길지 않다. 스페인 내란의 주동자를 숨겨주었다는 죄목으로 잡혀간 파블로가 사형을 앞둔 마지막 하루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섬세한 심리적 묘사로 끌고 가는 내용이다. 파블로, 같이 사형을 받기로 된 톰과 후안은 내일 새벽에 행해질 사형선고에 공포를 느끼고 불안해한다. 공포에 질려 소리치는 후안과 오줌을 지리는 톰과는 달리 파블로는 짐짓 공포에 태연한 듯 애써 차분한 모습을 보이지만 점점 다가오는 죽음 앞에 옛 기억을 회상하지 못하고 벽 앞에 세워진 자신의 모습과 총성을 떠올리며 그가 앞으로 다가올 죽음에 얼마나 겁에 질려있는지 보여준다. 사형을 집행하는 당일 날, 파블로를 뺀 나머지가 끌려 나가고 파블로는 혼자 남겨져 장교와 대면하게 된다. 장교는 내란의 주모자인 라몬 그리스가 숨어있는 곳을 알려준다면 파블로를 살려주겠다고 약속하지만 파블로는 ‘그에 대한 우정은 콘차에 대한 사랑과 함께, 삶에 대한 욕망과 함께 새벽이 되기 조금 전에 사라져버렸다’면서도 라몬을 팔지 않는다. 심지어 그는 야릇한 즐거움까지 느끼며 라몬이 있을 라몬의 사촌 집이 아닌 엉뚱한 묘지에 그가 숨어있다고 알려준다. 그런데 어처구니없이도 사촌과 싸운 라몬이 묘지에 숨어들었다가 군인에게 발각되어 죽은 것이다. 파블로는 기막힌 반전의 슬픔에 웃으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사르트르의 단편소설 ‘벽’은 30쪽 가량의 짧은 분량임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그 중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작품 속에서 드러난 ‘벽’의 의미와 내용 상 주를 이루게 되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다. 우선 사르트르의 ‘벽’에서의 벽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먼저 직접적으로 죽음의 벽이 있을 것이다. 죽음의 공포가 몇 번이고 벽 앞에 끌려와 총살을 당하는 것으로 나타냈으며, 넓게 의미를 확대할 때 불안한 시대의 상황과 그로인한 부조리한 상황들을 사르트르는 인간이 죽기 전 얼마간의 시간을 나타낸 것이다. 그것은 세상은 언제나 부조리한 커다란 ‘벽’이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또 두 번째로 죽음에 대한 생각이다. 작품 속 죽음에대해 사유하는 과정에서 우선 오상원의 ‘유예’를 떠올렸다. 죽음이란 것을 극명하게 나타낸 소설이었고 또 ‘벽’의 파블로와 ‘유예’의 화자가 죽음에 초연해지는 것이 닮아 있었다. 그리고 까뮈의 ‘이방인’이 떠올랐다. 타의에 의한 죽음이라는 점에서,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점에서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벽’이 앞의 작품들과 달리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성찰이 아닌 삶의 부조리함에 다루고 있기에 다른 작품들과 구별된다. 그 구별이란 앞의 작품들의 주인공들은 어떠한 선택에도 그들의 죽음에는 변화가 없지만, 파블로는 사형집행을 받지 않고 하얀 벽의 방에 갇히고 지하에 갇히면서부터 시작된 죽음에 대한 공포는 소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죽음의 유예’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렇게 사르트르의 ’벽‘은 죽음이라는 극단 적인 상황을 심리적으로 섬세하게 표현함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주는 작품이었다. 벽이라는, 우리 인간들이 현실의 삶에서 매번 마주치게 되는 대상들. 사라트르가 살았단 시대적 배경을 생각지 않더라도 그 벽이란 확실히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와 닿는다. 여러 가지 모습의 벽들이 있을 수 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벽으로 다가와 절대 뛰어넘을 수 없도록 보이게 하기도 하며, 예술가의 경우 어떤 한 수준, 자신의 재능과 노력의 마지막 부분에서 좀 더 발전할 수 없는 커다란 벽이 생길 수도 있다. 그것은 필연적인 것이라 우리는 그것이 생기는 것을 어찌 막아볼 능력이 없다. 단지 그 무너지지 않는 벽을 조금이라도 허물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게, 또 죽음이라는 벽을 대비하여 좀 더 무엇을 남기고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 아닐까.
- 애들아 나 올렸어
돌은 던지지 말구, 자 모범을 보였단다 ㅋㅋㅋ
첫댓글 진짜 모범을 보이시면...;;
삭제된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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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