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대사(臺詞)>
일전에 종영된 ‘뿌리 깊은 나무’ 라는
드라마를 기다리며 보았다.
한글 창제의 세종대왕의 고뇌와
그를 돕는 사람들의 역사극이다.
물론 역사적 사실보다는 픽션에
더 치중한 것이지만 근래 보기 드물게
마음 깊이 본 주말 드라마이다.
사실 나는 그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
한 마디 때문에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는 세종대왕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호위무사 내금위
대장인 무흘이 한 말 때문이다.
내금위 대장은 요즈음으로 말하면
경호 실장, 보디가드 대장 격이다.
그 무흘의 대사 중에
“주상께는 주상의 길이 있고,
무흘에게는 무흘의 길이 있습니다.
주상은 주상의 길을 가시고,
무흘은 무흘의 길을 갈 것입니다.”
즉 각자의 갈 길과 할 다르다는 것이고,
각자의 길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종은 한글 창제의 길이,
무흘에게는 경호의 길이 있다.
목숨을 바쳐 자기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일부 금융인들은 금융의 길을 가지
않고 뇌물의 길을 갔고,
일부 정치인들은 자기의 길을 가지 않고
부정부패의 간다.
우리나라에는 도처에서 제 갈 길을
가지 않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길을 가지 못했다고 야단이고,
국회의원은 200가지나 되는
특권만 누리는 길을 간다고,
대학은 졸업장 장사에 몰두한다고
그렇게 믿게 하고 있다.
교사는 교사의 길을 가지 못하고 학생은
학생의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학생의 책가방에 소주를 가지고 등교하다니…….
세종은 임금의 길을 갔기 때문에
조선 최고의 무사 무흘은 무사의
길을 갔기 때문에 뿌리 깊은 나무가 될 수 있었다.
무사 무흘은 자기의 길을 올곧게 가다가 장렬하게 죽는다.
작금의 우리는 무사 무흘처럼,
임금 세종처럼 자기의 길을 올곧게
가다가 죽는 사람이 별로 없다.
청와대는 청와대대로,
국회는 국회의원대로 이전투구하고,
사법부는 사법부대로 제멋대로고,
행정부는 행정부대로 정명(正明)하지 못하다.
서로 엇박자만 놓고 올바른 제 갈 길을 가지 못한다.
어느 탈북자의 탈북자 인권을 위해
단식 투쟁한 여성 국회의원은
“탈북자들은 도롱뇽보다 못하단 말인가?
도롱뇽을 살리고자 단식하는 사람들,
탈북자엔 왜 그리 침묵하나?”
우리 정치인들은, 정치교수들, 정치노조들은,
역대 무슨 회장들은 이당 저당 기웃거린다.
마치 문전걸식하듯이…….
그나마, 어느 여성 국회의원은
탈법적인 부산 저축은행에 유일하게
반대하였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양당의 대표도 탈북자의 인권이나
저축은행법에 대해 가타부타 이야기를 안 한다.
표의 향방에 이 눈치 저 눈치 계산을
주판알을 튀기며 마치 좌광우도처럼
광어나 도다리가 된 꼴이다.
대개 정치인들이 한쪽만 보는 광어나
도다리가 된 꼴이 아닌가?
하기 어렵겠지만, 아니 것은 “아니오!”하고,
인 것은 “예!” 할 수 있는 소신과 정치철학을
가진 정치인은 없단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한 성철 스님이나,
할 말은 하고 산 김수환 추기경이 그립다 .
- 文霞 鄭永仁 -
Sad Lisa - Chyi Yu

2012 . 03 .10 osh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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