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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은 국회를 대표하고 의사(議事)를 정리하며 질서를 유지하고 사무를 감독한다.' 국회법 10조가 규정한 국회의장의 직무이다. 국회의 대표인 박희태 의장에게 새해 예산안 처리를 둘러싼 12·8 국회 난투극 사태에 대해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여당의 예산안 졸속 처리 파문 그늘에 가려져 있지만 절대 그냥 넘겨선 안 되는 문제들이다.
첫째, 의사당에서 또 폭력을 휘두른 의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18대 국회는 그렇지 않아도 '역대 최악의 폭력국회'라는 비난을 받아 왔다. 여야는 지난 2년여 동안 한·미 FTA 비준동의안, 미디어법 등을 둘러싸고 의사당 안에서 주먹질과 멱살질을 했고, 망치와 전기톱 쇠사슬을 동원해 싸웠다. 국회 윤리특위에는 이미 이런 폭력 의원 20여명의 징계안이 걸려 있다. 그러더니 이번에 다시 여야 의원 수백명이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주먹다짐을 하고 발길질과 욕설을 주고받으며 집단 패싸움을 벌였다. 국회가 바닥으로 떨어진 권위와 체면을 조금이라도 되찾으려면 반드시 이들을 벌해야 한다. 국회법 156조에 따라 징계 대상의원을 윤리특위에 넘길 책임은 국회의장에게 있다. 박 의장은 이 책임을 다할 의지와 계획이 있는가.
둘째, 박 의장이 예산안과 함께 정부·여당이 '긴급의안'이라며 요청한 법안·동의안 10여건의 본회의 직권상정을 받아들인 일에 대해서다. 친수(親水)구역특별법, 서울대 법인화법, 과학기술기본법, LH공사법, UAE 파병동의안 등이 핵심이다. 4대강 사업이나 서울대의 경쟁력 강화, 빚더미에 앉은 LH의 경영정상화 같은 법안 추진 배경을 생각하면 입법 필요성 자체는 공감할 수 있다. 민주당이 집권 시절에는 전쟁터인 이라크에까지 군대를 보냈다가 이제 야당이 되자 전투 가능성이 거의 없는 UAE 파병을 반대하고 나선 건 자가당착이다.
그렇다 해도 친수구역법과 UAE 파병안은 모두 소관 상임위에 상정만 된 채 토론 한번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서울대 법인화법과 과학기술기본법은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의원들 간에 단 1초의 토론·심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안건들이 예산안에 섞여 날림 처리된 것이다. 의정사에서 의장 직권상정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한 경우는 무척 드물다. 박 의장은 무슨 이유와 판단으로 이들 안건에 대한 국회의 심의권을 원천적으로 포기하기로 했나. 그런 변칙을 써야 할 만큼 절박하고 시급한 사정은 무엇이었나.
셋째, 의원 보좌진들의 폭력 문제다. 지금까지 의원 보좌진들 사이에는 여야의 행동대로 동원되더라도 본회의장 출입문 안까지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그러나 야당의 일부 남녀 보좌진들은 지난 8일 본회의장 출입문 안쪽 복도까지 난입해 여당 의원들의 출입을 막음으로써 이 묵계(默契)를 깼다. 이회창 선진당 대표는 본회의장에 들어가려다 다른 야당 보좌진들에게서 "쥐XX" "X구멍이나 핥아라" 같은 막말까지 들었다. 이들은 국회 내 폭력배와 다를 게 없다. 박 의장은 이들에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박 의장은 8일 국회 대변인을 통해 "죄송하다, 안타깝다"고 하곤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다. 박 의장은 이 세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 해명을 하든 사과를 하든 개선책을 내놓든 해야 한다. 지금도 늦었지만 그래도 입법부 수장으로서 해야 할 일은 하고 넘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