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겨진 이 만원의 행복

[현주]

▒삶의에세이▒




▲101218 충북 단양 / 휴식(休息)- 수많은 사과 열매를 배출한 과수목이 긴 휴식을 취합니다



구겨진 이 만원의 행복



지난 주 여수에 출장 갔습니다.
일 마치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어딘지 모를 좁은 도로를 따라 무작정 달렸습니다.
와우~~
서울은 눈 내리고 춥고 움츠리며 지내는데..
여수 땅은 일상적인 겨울과는 먼 거리에 있네요.
파란 바다..아기자기한 섬들..큰 배. 작은 배. 통통배들이 그려 놓는 하얀 포말의 그림들..
선창가에 나부끼는 울긋불긋 깃발들..
그물 수리하는 어부들이 바쁜 손놀림..
비릿한 바닷내음, 낮게 비상하는 갈매기 무리들의 어린애 울음소리 같은 화음들..
가로수로 심어진 이름모를 상록수 잎새들의 반짝거리는 윤기..
가지마다 호드러지게 달린 동백나무 꽃망울..


논에는 이모작으로 파종한 보리가 파릇한 싹을 틔우고
밭에는 김장용 배추와 무우가 가득가득 청록 싱그러움 그 자체입니다.
도로를 경계선으로 한 쪽은 남해바다가 끝없이 펼쳐지고
한 쪽은 농경지와 주택들이 아기자기 멋스런 풍경화 그 자체입니다.


해풍(海風)이 내 몸을 두루 감싸줍니다.
세계지도 펼쳐놓고 한반도를 찾아보면 새끼 손가락보다 작은데...
이 땅에 살면서 이구석 저구석 다녀보니 한국 땅이 작거나 협소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방방곡곡 출장다니는 행운이 주어졌으니,
난 복많은 남자..하늘이 내린 남자..땅이 보살피는 남자.. 늘기쁨, 늘행복,늘함박웃음 입니다.


오밀조밀 비탈 밭 마다 가득한
결구배추(속이 꽉 찬 배추), 쫙 벌어진 봄똥같은 배추를 보면서 군침이 돌았습니다.
염분있는 바닷바람과 내리쬐는 햇살과 땅심좋은 밭에서
농민의 땀과 정성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란 배추니까
그 맛이 얼마나 고소할까..얼마나 단 맛일까..
김치 담구어 먹기보다는 그냥 깨끗하게 씻어 쌈장에 싸 먹고픈 마음이 솟구칩니다.


얼마를 달렸을까..
작은 밭에서 배추를 뽑고 있는 젊은 아낙이 보입니다.
차를 세웠습니다. 밭으로 갔습니다. 젊은 아낙이 의아한 듯 쳐다봅니다.


그 앞에 가서 공손하게 인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서울서 내려온 사람입니다.
고향이 시골이다 보니. 바닷바람 머금고 자란 배추가 넘 고소할 것 같네요.
쌈 사먹을 것 몇 포기 살까 합니다."


젊은 아낙 패시시 웃습니다.
"아, 그렇세요? 이곳 배추가 맛 좋기로 소문 났어요.
밤에 날씨가 추워진다 해서 김장하려고 뽑는 중인데..잠깐 기다리세요."


쫙 벌어진 배추가 당당하다.
먹을 나이 다 먹은 배추니까 잎새도 빳빳하고 윤기 자르르..
속 잎새 하나 따서 입안 가득 씹는다..
세상에~~~~씹을수록 물이 많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한 잎새 더..한 잎새 더....작은 배추 한 포기 게 눈 감추 듯 했다.


그 사이 젊은 아낙은
비료푸대에 쫙 벌어진 배추와 결구 잘된 배추를 가득 담아 주신다.
난..지갑에서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어 아낙에게 건네는데 막무가내다.
억지로 잠바주머니에 돈을 넣어드리려 애를 썼지만
아낙의 저항 또한 필사적이다.


"아저씨, 시골 인심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이 드린것도 아니고 쌈으로 먹고 싶다 하셔서 조금 드린 것인데..
돈을 받는다면 내가 나쁘지요.
맛나게 드시면 저의 기쁨도 되잖아요."


돈받아라.. 아니다 못받는다..실랑이(?) 하는 사이 빳빳하던 지폐가 많이 구겨졌다.


서울로 돌아 오는 차 중에서
배추 한 포기 조수석에 올려놓고 입안 가득 씹어 먹는데
그 맛이 밭에서 먹을 때 보다 더 고소하다.
그 아낙의 이쁜마음이 포개진 배추 맛이니 당연할 밖에..


젊은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당신의 맑은 모습을 보면서 행복했습니다.
건강하세요. 오래 사세요. 당신 가족 모두 잘 풀리기를 바랍니다.


101220 월천이귀인
♪Solo Hay Una Para Mi (오직 나만을 위해 있어주오) / Semino Rossi




▲101218 충주휴게소 / 기지개- 밤새도록 추위에 떤 소나무가 여명 속에서 기지개를 폅니다



▲101218 충북 단양/ 가는 길- 자신을 태워 겨울을 녹인 연탄이 마지막으로 꽃상여를 탑니다



▲101218 충북 단양/ 기다리는 마음 - 페목재들이 추위를 녹이기 위한 불쏘시개가 되어 대기 중..



▲101218/ 기도(祈禱)- 수확물을 쏟아낸 과수목이 긴 선정에 들어 수행 기도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