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댄 베이커, 캐머런 스타우스 지음
- 출판사
- 뜨란 | 2012-09-15 출간
- 카테고리
- 인문
- 책소개
- 삶은 바뀌는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분투, 웃음, 그리고 지금...
『인생치유』라니 책 제목이 뜬금없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인생을 통째로 치유한다는 뜻으로 와 닿았기 때문이었다. 그간의 심리학 서적들은 삶에서 일어난 어느 한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내면아이, 성인아이 등등의 서적은 한결같이 사건의 영향을 제거하거나 희석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허먼의 트라우마 이론 역시 그런 식이었다.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은 전쟁이나 강간과 같은 큰 사건으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학대로도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론이 득세한 결과 정상인 부모는 5프로 정도 밖에 안될 정도로 드물다는 것이 요즘의 대세이기도 하다. 정신적인 상처는 대물림한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사람이 비정상이 되고 비정상인 사람이 대세이니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흐름이 생겨났다.
이런 이들을 지칭하는 이름은 이 두 단어로 대표된다. '내면아이', '성인아이' 성인이라면 삶을 잘 꾸려갈 것이라는 생각이 이러한 수식어들을 만들어낸다.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무언가가 부족하거나 서투르므로 아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이다. 이 호칭에는 함정이 있다. 성인은 모든 일을 완벽하게 잘 해내는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닌 선입견은 저 호칭에 빠져들도록 하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은 거의 프로이트의 영향이다. 어릴 때 겪은 어느 사건, 혹은 어른이 되어서 겪은 충격적인 사건이 살아가는 내내 영향을 준다는 것, 그러니 그 영향을 제거하는 것이 치료의 목적이다. 그런 치료의 내용은 과거의 사건, 잊혀졌거나 고의로 억압했던 사건을 직면하라는 것이 핵심이다. 그 사건들이 꿈이나 생각의 파편으로 끊임없이 떠올라 일상에 영향을 주고 장본인을 피폐하게 하거나 병들게 하므로 그 원인을 알고 맞서면 영향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런 이론들을 무수히 읽어오다가 생활강화훈련이라는 그가 운영했던 프로그램의 명칭답게 삶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치료를 논하는 이론을 만나니 낯설었던 게 당연하다. 익숙치 않은 것은 늘 반발을 불러 일으킨다. 단순명쾌한 문체도 거슬렸다. 명쾌한 논리에는 언제나 함정이 있다. 일부 세계에게만 적용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첫 부분 페이지 몇쪽을 읽어나가면서 언제 그만둘까를 갈등하고 있었다. 대부분 앞부분에서 결정이 나기 때문이다. 한데 언제부터인가 노트에 옮겨적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마지막쪽을 읽고 나서는 저자의 다른 책은 없나 혹은 저자와 같은 이론을 연구하는 다른 학자의 책은 무엇일까를 찾고 있음을 깨달았다.
돌이켜보니 이미 이런 류의 책을 여러 권 읽어왔다. 미하이칙센트 미하이의 <<몰입>> 시리즈는 일에서 느끼는 진정한 행복이 무언가에 관한 연구였고 삼십여년간 동일 대상을 연구한 조지 베일런트의 <<행복의 조건>>이 그랬으며 행복을 연구하는 친구 또한 동일부류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또한 나 자신이 그 행복 연구의 대상이 되었던 적도 있었음을 기억해냈다. 그들은 한창 더운 2011년 8월, 살렘요양원으로 찾아왔었고 우리는 등나무 그늘 아래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발견한 나의 행복지수는 다른 누구보다도 높았다. 누구보다도 악조건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암에 걸려 모든 것을 그만두고 가족마저도 떠나 요양원에 있는 환자에게서 발견하는 행복지수. 그 일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보통 사람도, 환자도.
책은 삶의 신조를 논하고 있다고 보여질 정도로 단순해보였다. 종교가 말하는 교리와도 통한다고 여겨질 정도로 지혜로운 말들이었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인간의 뇌에서부터 시작했다. 뇌 생리학을 들어 감정이 뇌의 어느 부위에서 솟아나는가에 관한 설명으로 시작하다보니 primal theraphy, 특히 primal fear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닐 듯 싶었다.
공포는 그 어떤 감정보다도 먼저 생겨난 감정이다.'파충류의 뇌'라고 부르는 이 부분은 뇌간에 자리잡고 있어 본능적인 공포를 느낀다. 그처럼 원초적인 감정이기에 어느 상황에서건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 공포는 생존하고자 하는 기능이다. 우리의 삶 전체는 생존하고자 하는 갈등이다. 따라서 공포의 근원이 뿌리깊고도 광범위해 우리 삶과 생활 어디에서건 자리잡고 있으므로 공포를 다스리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그 방법으로 저자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방법들을 들여다보면 약점 대신 강점을 강조하라는 것이 대표로 꼽힌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은 실패라는 약점을 들여다보지 말고 무엇이 그 사업을 번성시켰는가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 사업을 만든 것은 흔히 생각하듯 자신의 완벽주의가 아니다. 이상과 비전이 사업을 일으켰던 것이므로 그 장점을 다시 기억해내라는 것이다.
소중한 사람이 죽었다면 그 사람의 상실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자신이 품었던 사랑을 생각해내라고 한다. 저자 자신도 아들의 죽음을 겪었으므로, 그는 그 상실의 감정에 대해 너무도 잘 알았다. 상실은 그를 절망하게 만들지만 사랑은 그를 살아나도록 만든다. 사랑은 공포의 반대이고 감사도 공포의 반대다. 쾌감 또한 공포의 반대가 된다. 결국 긍정적인 생각들은 공포를 이겨내도록 해준다.
그런 일들은 감정의 선택이기도 하다. 그는 기회의 창, 우리 뇌가 어떻게 반응할까를 결정하는 0.25초를 잘 활용하라고 말한다. 동일한 상황에 대해 화를 낼 것인가 미소 지을 것인가 가 행복의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결정권이기도 하다. 프랑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그 경험을 활용해 이론을 정립했다.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에게는 자신의 태도를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이 남아 있다는 것으로, 나치가 강요한 인간이하의 생활도 인간의 존엄성을 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 프랑클이 터득한 진리이며 이론이었다.
그가 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낯설지 않았다. 언어가 삶에 미치는 영향도, 부정성의 홍수도, 긍정적 태도도, 현재를 즐기라는 이야기도. 그럼에도 그 모든 긍정을 총합한 듯한 그의 이야기는 인상적이었다. 다 읽고 나니 What happy people know 라는 원서의 제목을 인생치유로 옮긴 번역서 제목이 공감이 갔다. 그러나 왜 이 책이 뜨지 않았을까 의아하기도 했다.
우리는 부정적인 것에 쏠린다. 대부분의 뉴스가 부정적인 것으로 채워져 있음을 보면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문학서와 심리서적은 행복한 인간보다는 불행한 인간을 이야기한다. 결국 행복은 생활, 의미가 얕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어서가 아닐까. 아니면 몰입시리즈처럼 행복을 이야기하되 보다 본격적이고 학구적으로 여겨지는 책들이 더 가치 있다는 판단을 받고 있어서이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결론은 도저히 잊히지 않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그동안의 모든 이야기를 한줄로 정의하고 있었던 것이다. 삶의 의미는 사는 것, 삶이란 잃는 것, 곧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행복의 비밀은 잃어버리는 것을 한탄하기보다는 매 순간을 좀 더 사랑하기를 배우는 것이다(387)는.
프랑클은 삶의 의미는 죽는 순간 결정된다고 말한다. 매순간 우리는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만 그 의미는 확정적이지 않은 것, 그가 살았던 의미는 더 이상 시간이 쌓이지 않은 죽음에 이르러 고정된다는 것인데.
삶의 의미는 사는데 있다는 이 명쾌하고 단순한 말이 어쩌면 이리도 마음을 울리는지 모르겠다.
첫댓글 과거의 사건에 직면한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늘 문제가 생기는 거겠지요. 맞아요. '사는' 게 중요해요.
오늘 병원에 가면서 가벼운 책 한 권을 들고 갔어요. 신경숙의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문학동네)였어요.
뭐 자잘한 삶의 이야기였습니다.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 한번 뒤돌아보아야 할 그런 것들.
근데 희야 님 글 속의 낱말이 하나 잘못된 듯... 아래에서 넷째 줄 '삶의 의미는 사는 것, 삶이란 잃는 것, 곧 사라지는 것이다.'에서
뒤의 '삶'은 '죽음'이 맞을 듯한데요.^^
^^ 삶이란 잃는 게 맞습니다. 매일 사라지고 있는 것이지요. 과거 사건의 직면만으로 문제가 풀리는 건 아니에요. 각 사건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고 연결고리를 찾아야 하고 그 사건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답니다. 그런데 병원에는 왜 가셨어요?
아하, 그렇네요. 내가 연결을 잘못했어요. 병원 안과에 갔어요. 황반변성 때문에 갔는데 평생 병원 신세를 져야 할 것 같아요.
그때 말씀하신 거네요. 시력에는 관련없지요? 그래야지요.
긴 글 잘 읽었는데 ..
전 무슨 말인지 의미를 몰겠네요
삶은 곧 사는 것
삶은 잃어 버린다는 것
그리고 삶은 사라진다는 것
정신 분석학자 프로이드도 나오고 ...
이명님의 행복지수가 누구 보다도 높았다는 것도
악 조건에서도 ..
어디에서 오는 걸까 ?
높은 행복지수가 ..
아마도 누구보다도 긍정적인 마인드가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까 싶네요
정말 대단하신 이명님 존경합니다
잃어버리는 것을 한타나하기보담 메순간을 사랑하라! 참 좋습니다. 저도 이 글을 읽을 수 있으니 행복지수가 올라간 거네요? 고맙습니다. 허나 슬픔과 아픔도 삶의 큰 보람이 되는 수도 있잖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