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장의 세월
임정화
밀란 쿤데라는 죽음의 두 가지 측면에 대해 이야기했다.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비존재이면서 또한 시체라는 무시무시한 물질적 상태이기도 하다고. 젊었을 때는 죽음의 허무한 측면, 즉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막연한 죽음의 시간에 대해 공포를 느끼게 되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그것과는 다른 물질적인 측면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시체가 된다는 것이 참을 수 없는 모욕이라고 말했다. 방금 전까지 인격을 가졌던 존엄한 가치에서 추락하여 아무렇게나 다뤄질 고깃덩어리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을 터이다.
나는 살면서 아직까지 죽음을 가까이서 접한 적이 별로 없다. 어려서 죽음을 한두 번 목도했지만, 그게 뭘까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정도였다. 맏이인 내가 먼저 결혼해 딸들을 낳았고, 동생들도 곧이어 같은 길을 걸었다. 축복의 탄생이 이어졌고, 내 삶에서 죽음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우리 집에는 9년하고도 5개월 된 개와 그보다 두 달 늦은 고양이가 산다. 초등학생이었던 딸아이들이 일 다니는 엄마 없이 빈집에 들어오는 게 안쓰러워 가족으로 맞이한 녀석들이다. 말티즈와 페르시안 친칠라는 모두 흰색의 장모종이다. 고만고만한 체격에 온몸이 하얀 털로 감싸인 아가들 덕에 나와 두 딸의 십 년이 기쁘고 풍요로웠다. 그런데 얼마 전 느닷없이 고양이에게 시한부 선고가 내려졌다. 비대성 심근증은 심장벽의 근육이 점점 두꺼워지며 굳어가는 불치병이다. 유전인자를 가진 고양이들에게 발생하는 병인데 대개는 두 살이 되기 전에 발견된다고 한다.
양쪽 폐에 물이 가득 차 호흡이 가쁜 고양이는 응급실을 통해 즉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지금은 퇴원해 집에서 돌보고 있다. 일단 위급상황을 면한 녀석은 언제 아팠냐는 듯 전처럼 가구 위로 뛰어오르며 집안을 휘젓고 다니려 한다. 매우 위험한 병이라 언제 죽음에 이를지 모르는데다 커다란 혈전이 뒷다리로 향하는 도중 혈관을 막기라도 하면 그 고통이 너무 심해 결국 안락사 외에는 다른 처치방법이 없다고 하니 제멋대로 활보하게 놔두지도 못한다. 할 수만 있다면 선고받은 3개월, 6개월이 아니라 6년까지 함께 살고 싶은 우리 모녀들의 욕심 때문이다.
비슷한 병을 내 나이 스물아홉에 겪은 적이 있다. 승모판 협착증이라는 병은 심장의 혈관 하나가 눌러붙어 심장이 비대해지고 폐에 물과 가래가 가득 차게 한다. 둘째를 임신하며 생긴 병이었는데 의사와 나, 아무도 몰랐다.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했으나 당사자인 나는 실감하지 못했다. 대단치 않은 시술 후 이렇게 멀쩡하지 않은가.
나이가 들면서 이따금씩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밀란 쿤데라가 말한 대로라면 나는 아직 젊은 모양이다. 내 육신이 시체가 되고 함부로 처리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모욕감도 들지 않는다. 그저 막연하게 두려운 것은 퓨즈가 나가듯이 갑자기 모든 것이 깜깜해지고 끝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허나 그마저도 짐작이 가지 않는, 전혀 알지 못하는 세계이지 않나. 의외로 죽고 난 뒤 내 육신에 대해서는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 내가 생각할 때 결국 인식이 중요한데 죽은 뒤에야 아무런 지각이나 감정이 없을 테니 어찌 보면 내 육신이지만 나랑은 별 상관이 없어진다. 그래서인지 죽은 사람의 묘를 파헤쳐 그 사체를 훼손하는 형벌도 그리 끔찍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주름살을 비롯해 기능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는 늙음의 병들도 크게 속상하지 않은 이유다.
최근엔 법으로 반려동물들의 사체를 아무데나 묻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반려동물장례식장을 이용한다. 사람에게 하듯 장례를 치르고 화장을 해 납골묘에 안치한다. 고개를 흔들고 혀를 내두르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테지만 10년 가까이 가족으로 살아온 이들에겐 매우 당연한 일이다. 요즘 우리는 죽음을 준비하며 장례식장도 알아보고, 하루 네 번 주사기로 꼬박꼬박 시간을 지켜 약물을 투여하고, 멀쩡히 장난치는 녀석이 귀여워 손뼉을 쳐가며 웃기도 하고, 그러다가 뜬금없이 슬프고 아파져 엉엉 울기도 한다. 그건 아마도 시한부 생을 감당해내야 하는 가족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일 것이다.
우리 고양이는 법대로 화장을 하지만―물론 나도 그렇게 해야 할 테지만―아무도 막지 않는다면 나는 풍장을 해달라고 우기고 싶다. 그 많은 살육을 통해 고기를 먹고, 무식하게 모피를 걸치고, 더 건강해지기 위해 영양제를 먹었던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마음도 있지만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자연이 되고 싶은 바람이 그 첫째 이유이다. 쉬파리가 내 몸속에 구더기를 만들고 산짐승과 벌레들이 내 살을 파먹고 바람과 비와 먼지들에 깎이고 뭉개지다 나중엔 누군가에게 밟히고 부러져서 산산이 흩어지는 그런 죽음이고 싶다. 처음엔 그 모든 과정이 낳게 될 고통을 인식하지 못할 것이므로, 지켜볼 수 없을 것이므로 안심하거나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들이, 만약 영혼이 있다면 이제는 풍장으로 점점 흉측하게 변해가다 종국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는 과정을 조용히 느끼며 지켜보고 싶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우리 고양이가 살다간 흔적도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다. 세월은 우리 고양이뿐 아니라 나와 내 가족도 그렇게 삼켜버릴 것이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시간의 망각현상이다. 먼저와 나중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동물이나 벌레들의 도움과 풍화, 퇴화를 거쳐 우리 예쁜 아가들과 나는 하나의 커다란 자연 속에 섞이게 될 것이다. 헤어짐이 아프고 슬프지만 지금도 여전히 함께여서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자연의 부분 부분으로 서로가 한데 어우러질 거란 생각에 또 괜찮다. 소중한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지만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이 시간들이 무(無)가 아닌 기뻤던 삶으로 남아 무시로 꺼내볼 것이기에 정말이지 우리는 괜찮고 또 괜찮다.
─계간 『시에』 2012년 가을호
임정화
서울 출생. 2011년 『한국산문』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