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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치 제1대탑(산치 스투파)은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에 이르기까지 약 300여 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확장·증축되면서 완성된 인도의 대표적인 불교 성지이다.
산치 대탑(산치 제1스투파)의 건립 배경에는 아쇼카왕의 청년 시절 사랑 이야기와 왕비에 대한 애틋한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아쇼카왕이 아직 왕위에 오르기 전인 왕자 시절, 아버지 빈두사라 왕의 명을 받아 탁샤실라(Takshashila)의 반란을 진압하러 가던 길(또는 우장/우자인 지역의 총독으로 부임하러 가던 길)에 산치 근처의 상업 도시인 비디샤(Vidisha)를 지나게 되었다.
이곳에서 아쇼카 왕자는 '베스나갈'이라는 상인 가문의 딸인 데비(Devi, 또는 마하데비/비디샤 데비)라는 여인을 만나 한눈에 반해 결혼하게 된다.
데비는 장사꾼 집안의 딸이었지만 열성적인 불교 신자였다.
훗날 아쇼카가 마우리아 왕조의 왕으로 즉위하여 수도인 파탈리푸트라(Pataliputra)로 떠났을 때, 데비는 화려한 궁전 대신 고향인 비디샤에 남아 아이들을 키우며 조용히 불도를 닦는 삶을 택했다. 아쇼카왕의 스리랑카 전법으로 유명한 마힌다 왕자와 상가미타 공주가 바로 이 데비 왕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이다.
아쇼카왕이 칼링가 전쟁의 참상을 겪은 후 깊이 뉘우치고 불교에 귀의했을 때, 자신이 청년 시절 가장 사랑했던 데비 왕비의 고향이자 그녀가 거주하던 비디샤 근처의 아름다운 산치 언덕을 떠올렸다.
데비 왕비의 불심과 권유,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애틋함과 추억을 기리기 위해 아쇼카왕은 기원전 250년경 산치 언덕 위에 최초의 소형 벽돌 스투파와 사자석주를 건립했다.
데비 왕비는 산치 대탑이 세워지자 대탑 근처에 사원(Vihara)을 짓고 스님들을 모시며 대탑을 정성껏 보살폈다고 전해진다.
산치 대탑은 단순히 정복 군주로서 세운 통치 치적물이 아니라, 정복군주 아쇼카왕의 "청년 시절 순수한 사랑의 추억"과 "왕비 데비의 깊은 불심"이 결합하여 탄생한 성지라는 전설적인 스토리를 품고 있다.
산지대탑 복원 도면의 연대 표기(CIR. 250 B.C., 150 B.C., CIR. 50 B.C.)와 고고학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건립 과정을 3대 단계로 명확히 정리할 수 있다.
1단계인 성지의 개창과 소형 벽돌 탑 및 석주 건립은 마우리아 왕조 아쇼카왕 시대(기원전 3세기 중엽, CIR. 250 B.C.)에 이루어졌다.
아쇼카왕(Ashoka)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기 위해 산치 언덕 위에 진흙과 벽돌(Mud-brick)을 쌓아 반구형의 아담한 소형 흙탑을 축조했다. 당시 돔 지름은 약 20m 내외로 현재 크기의 절반 수준이었다.
제1대탑 바로 북동쪽에 서 있는 제3탑(부처님의 두 대제자 사리불·목건련의 사리를 모신 탑)의 크기가 아쇼카왕이 기원전 3세기에 처음 쌓았던 소형 벽돌 탑의 직관적인 모습과 가장 가깝다.
제3탑의 규모가 지름 약 15m (또는 약 49.5피트) 높이 약 8.2m (상륜부 제외)이고
아쇼카왕 시절 제1대탑(초기 벽돌탑)의 예상 규모가 지름 약 18~20m 내외(현재 36.6m의 절반 수준) 높이 약 8m 안팎이니
아담한 공간감이, 바로 2,200년 전 아쇼카왕과 데비 왕비가 처음 이 언덕에 흙벽돌을 쌓아 세웠던 성지의 첫 풍경이었던 셈이다.
아담했던 소형 스투파의 겉면을 약 100년 뒤 슝가 왕조에서 돌로 감싸 피복하면서 오늘날의 웅장한 대탑으로 커졌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제3탑은 당대 초기 스투파의 건축적 원형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고고학적 기준점이 된다.
탑 옆에 통돌을 깎아 만든 아쇼카 왕 석주(사자석주, SINHA STAMBHA, CIR. 250 B.C.)를 세웠다. 기둥 상단에는 사방을 바라보는 네 마리의 사자상(사사자주두)과 그 머리 위에 부처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대형 석조 법륜(CHAKRA)을 얹어 불법(佛法)과 왕권의 정통성을 선포했다.
산치 성지의 최초 개창 단계(BC 250년경)에는 '아담한 벽돌 흙탑 과 사자석주'가 하나의 완벽한 성지 세트를 이루고 있었던 셈이다.
기원전 250년경 아쇼카왕이 세운 산치 석주의 네 마리 사자상 머릿장식(사자주두)은 세월이 흐르며 기둥에서 떨어져 손상되었으나, 현재 산치 현지 박물관(Sanchi Archaeological Museum) 제1전시실에 안전하게 수장·전시되어 있다.
사자 머리 위에 놓여 있던 커다란 법륜(Chakra, 석조 바퀴)은 오랜 세월 풍화와 충격, 혹은 파손 과정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따라서 완형의 법륜 형태가 아니라 법륜의 조각(파편)들만 발굴되었으며, 이 파편들과 관련 유물 부조들이 산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가장 유서 깊은 사르나트(녹야원) 아소카 석주의 경우에도 네 마리 사자상(현재 인도의 국장)은 '사르나트 박물관'에 완벽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지만, 그 사자 머리 위에 올려져 있던 32개 살의 대형 법륜은 파손되어 바퀴살 파편 일부만 박물관에 보관·전시되어 있다.
산치 대탑의 석주 역시 동일한 구조였기 때문에, 복원도상에 표현된 법륜은 당시 석주가 완성되었을 때의 원형을 고증하여 복원 추정한 모습이다.
산치 대탑의 석조 탑문(토라나) 기둥 안쪽에 새겨진 석주 부조는 후대 학자들과 복원 연구가들이 아쇼카 석주의 원래 구조(사사자주두 위에 올려진 법륜)를 입증하고 복원도를 작성하는 데 핵심적인 미술사적 근거가 되었다.
하단(기둥 및 연꽃 대좌)은 둥근 통돌 기둥(Shaft) 위에 아래로 꺾인 연꽃잎 모양의 주두(Bell/Lotus Capital)가 설치되어 있다.
중단(사사자상 / Four Lions)은 연꽃 받침 위에서 네 마리의 사자가 등(지붕)을 맞대고 동서남북 사방을 바라보며 서 있다. (측면과 정면 사자의 입체적인 모습이 선명하다.)
상단(대형 법륜 / Dharmachakra)은 네 마리 사자상의 머리가 단단히 받쳐 올린 커다란 석조 바퀴(법륜)가 솟아 있다.
실물 아쇼카 석주(산치 석주 및 사르나트 석주)는 발굴 당시 중량감 때문에 최상단의 법륜 부분이 깨져 파편으로만 발견되었다.
"과연 사자 머리 위에 대형 법륜이 실재했는가?"에 대한 답을 준 것이 바로 기원전 1세기 무렵 탑문을 만들던 당대 조각가들이 자신들이 직접 눈으로 보았던 아쇼카 석주의 원형을 탑문 기둥에 부조로 묘사해 둔 이 기록이었다.
산치 대탑 전체 복원도나 아쇼카 석주 원형 복원도에서 사자상 위에 법륜을 얹어 그려낸 것은 고고학자들의 자의적인 추측이 아니라, 바로 이 토라나 기둥 부조라는 명확한 1차 사료(in-situ 고증 자료)를 바탕으로 복원했기 때문이다.
2단계인 대탑의 석조화 및 2배 규모 확장은 슝가 왕조 시기 (기원전 2세기 중엽, 150 B.C.)에 이루어졌다.
기존의 소형 벽돌 탑을 부수지 않고, 그 겉면에 잘 가공된 정밀한 기와·석재를 덧씌우는 석조 피복(STONE CASING) 공사(150 B.C.)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현재와 같은 거대한 석조 돔 안다(ANDA / 돔) 형태로 배 이상 확장되었다.
돔 꼭대기에 네모난 석조 난간인 하르미카(HARMIKA / 평두)와 중심 기둥인 찰주(CHHATRAYASHTI), 그리고 3층 우산 구조인 차트라발리(CHHATRAVALI / 삼중 산개)를 얹었다.
하르미카(Harmika)는 대탑의 거대한 둥근 돔(안다, Anda)의 최정상부에 위치한다. 네모난 상자/울타리 모양의 석조 구조물이다.
하르미카의 외벽은 아래쪽의 난간(베디카)과 마찬가지로 목조 울타리 양식을 돌로 본뜬 격자/난간 문양(Vedika Pattern)이 새겨져 있으며, 상부로 갈수록 조금씩 넓어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하르미카'는 원래 '작은 궁전' 또는 '평상/제단'을 뜻한다.
부처님의 사리와 신성함이 담긴 스투파의 최고 정점에 위치하여, 천상 세계(신들의 세계)이자 부처님의 깨달음이 펼쳐지는 가장 거룩한 경계를 물리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스투파의 아랫단(하층 탑돌이길과 돔)이 인간이 살고 있는 현세와 참배의 공간이라면, 하르미카는 부처님의 깨달음이 머무는 천상(불국토)의 영역을 상징한다.
이곳은 돔 한가운데서 하늘로 솟아오르는 우주축(야스티)과 삼층 양산(챠트라)을 단단히 받쳐주는 자리로서, 스투파 전체를 하나의 '우주'로 볼 때 가장 핵심이 되는 정점이다.
하층과 상층의 탑돌이길은 순례자와 승려들이 직접 걸으며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공간이지만, 하르미카와 그 위의 양산은 오직 눈으로만 우러러보며 경배하는 절대적 성소였다.
신도들은 지상이나 상층 기단에서 하르미카를 향해 합장하고 탑돌이를 하며, 그 안에 담긴 부처님의 법과 가르침을 마음속에 깊이 새겼다.
하르미카의 중앙에는 우주의 축을 상징하는 기둥인 '야스티(Yasti)'가 우뚝 솟아 있으며, 그 기둥 위로 존귀함과 왕권을 상징하는 3층의 우산 모양 장식인 '챠트라(Chattra / 산개)'가 얹혀 있다.
즉, 하르미카는 우주축(Yasti)과 챠트라를 견고하게 받쳐주는 중심 받침대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르미카는 탑돌이길(프라닥시나 파타)을 돌며 참배하는 순례자나 일반 승려들도 직접 올라갈 수 없는, 오직 시각적으로만 올려다보며 경배하는 지상의 가장 높은 성소였다.
하르미카는 스투파 건축의 구조적·영적 정점이자 가장 성스러운 공간이다. 2천 년 전 산치 대탑의 순례자들이 거대한 돔을 돌며 시선을 마지막으로 향했던 곳 역시 바로 이 하르미카와 그 위의 찬란한 양산이었다.
하르미카 위로 우뚝 솟아 있는 양산 구조물(우산 모양의 장식)은 불교 미술사 및 건축학에서 ‘챠트라(Chattra / 傘蓋 / 산개)’라고 부르며, 이를 관통하여 받치는 기둥을 ‘야스티(Yasti / 刹柱 / 찰주)’라고 한다.
고대 인도에서 뜨거운 햇빛을 가려주는 양산(Chattra)은 단순한 생필품이 아니라, 왕권(Royalty)과 신성함, 그리고 최고 존엄을 나타내는 핵심 상징물이었다.
왕이나 고승, 성자가 이동할 때 시종이 뒤에서 커다란 양산을 씌워주는 것이 최고의 예우였다.
무불상 시대 산치 대탑의 부조(예: 동문의 유성출가 장면)에서도 부처님의 모습 대신 말 등 위에 둥근 양산만 떠 있는 형상으로 부처님의 존재와 태자로서의 존귀함을 표현했다.
산치 제1대탑 최상부에는 3단의 석조 양산이 차례로 올려져 있다. 이 3단 양산은 불교 교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다.
의불교의 세 가지 보배인 불(佛, 부처님) · 법(法, 부처님의 가르침) · 승(僧, 스님들의 공동체)의 삼보(三寶)를 상징한다.
중생이 윤회하는 세 가지 세계인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를 벗어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나타낸다.
양산을 꿰뚫고 있는 중심 기둥인 야스티(Yasti)는 땅(사리탑/안다)과 하늘(천상)을 연결하는 ‘우주축(Axis Mundi)’을 의미하며, 양산은 그 우주축의 최정상에서 전 우주로 퍼지는 부처님의 신성한 덕목과 은혜의 그늘을 상징한다.
탑 주변을 돌며 예배할 수 있도록 높인 기단 통로(BERM), 계단(SOPANA), 그리고 탑 둘레 전체를 감싸는 석조 난간인 베디카(VEDIKA / 欄干)를 세워 성스러운 탑돌이 길(PRADAKSHINA PATHA)을 정식 구획했다.
산치 대탑의 난간(베디카, Vedika)에 의해 형성된 탑돌이길(프라닥시나 파타, Pradaksina Patha)은 인도 불교 건축에서 의례와 예배(Pradaksina, 오른쪽으로 탑을 도는 순례)를 위한 핵심적인 공간적·도상학적 장치이다.
기원전 2세기경(슝가 왕조 시기) 석조 피복 공사 및 증축과 함께 정교하게 정비된 산치 대탑의 탑돌이길은 서로 다른 높이에서 탑을 돌 수 있도록 설계된 상하 2중 구조로 조성되어 있다.
하층 탑돌이길 (Lower Pradaksina Patha)은 지상 바닥면, 석조 난간(외곽 베디카)과 돔(안다) 사이의 원형 길로 대탑 외부 전체를 둘러싼 높이 약 3m의 대형 석조 난간(Outer Vedika)이 거룩한 영역과 세속의 영역을 구별해 준다. 동·서·남·북 4대 탑문(토라나)을 통해 이 하층 탑돌이길로 진입하게 된다.
목조 건축의 울타리 구성을 돌로 그대로 옮겨 놓은 형태(기둥, 가로대, 덮개돌 구조)로, 초기 불교 석조 건축의 이행 과정을 보여준다.
상층 탑돌이길 (Upper Pradaksina Patha)은 돔(안다) 하단부를 약 4.9m 높이의 원형 기단부(베름, Berm / 기단)로 조성하여 그 위에 만든 탑돌이 길이며 남문 옆쪽에 설치된 double계단(소파나, Sopana)을 통해 올라갈 수 있다.
상층 탑돌이길 외곽에도 소형 석조 난간(Upper Vedika)이 둘러져 있어, 순례자가 대탑의 높은 위치에서 돔과 상륜부를 바로 곁에 두고 시계 방향으로 돌며 우경(右繞)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탑돌이길을 지날 때 순례자는 반드시 탑을 자신의 오른쪽에 두고(시계 방향) 걸어야 한다. 이는 부처님이나 사리탑에 대한 최상의 존경을 표하는 고대 인도의 전통 예법이다.
탑돌이를 하며 4대 탑문에 새겨진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자타카)와 불전도 부조를 자연스럽게 시선에 담으며 부처님의 가르침과 시련, 성도를 시각적으로 체화하는 일종의 '시각적 수행 공간' 역할을 했다.
거대한 석조 난간(베디카)은 바깥의 세속적 공간과 안쪽의 신성한 공간을 물리적으로 구별하는 결계(結界) 역할을 했다.
난간 기둥과 가로대에는 신도들의 보시(기부) 명문과 연꽃 문양, 동물/신장 부조가 새겨져 있어, 이 난간 자체가 수많은 사부대중의 공덕으로 세워진 결정체임을 나타내고 있다.
산치 대탑의 상층 탑돌이길(메디, Medhi / Upper Pradaksina Patha)과 하층 탑돌이길(Lower Pradaksina Patha)의 사용 계층에 대해 미술사학 및 불교 고고학계에서는 승려와 재가 신도(일반인)의 공간적 구분이 존재했던 것으로 해석한다.
상층 탑돌이길 (메디 / Berm)은 승단(승려) 및 높은 계급/왕족의 전용 수행·의례 공간으로 남쪽 계단(소파나, Sopana)을 통해서만 오를 수 있는 높이 약 4.9m의 폐쇄적이고 신성한 공간이다.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진 돔(안다, Anda)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부처님을 직접 시교(侍敎)하며 명상하고 탑돌이(우경)를 수행하던 승려(출가자)들의 정진 공간이었다. 또한 왕족이나 거액의 보시를 한 고위 후원자들에게 예외적으로 접근이 허용되던 곳이기도 하다.
하층 탑돌이길(지상 회랑)은 일반 재가 신도(신중·평민·순례자)의 광범위한 경배 공간으로 4대 탑문(토라나)을 통해 세속 공간에서 바로 들어오는 넓은 지상 통로이다.
일반 신도들이 석조 난간(베디카) 안쪽을 따라 돌며 탑문에 새겨진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자타카)와 생애(불전도) 부조를 바라보고 법문과 경외감을 배우던 대중적 신행 공간이었다.
승려들의 핵심 수행은 묵언 상태에서 부처님의 상징물 바로 곁을 돌며 행하는 ‘보행 명상(Walking Meditation / 경행)’이었다. 따라서 일반 대중의 소음이나 번잡함과 격리된 높은 기단(상층)이 필요했다.
반면 일반 신도들은 기부, 찬탄, 부조 감상, 기원 등 외적 행위 중심의 예배를 드렸기에 4대 탑문과 부조로 둘러싸인 하층 공간이 적합했다.
수직적 높이는 인도 전통 사회와 불교 세계관에서 성스러움의 차등(위계)을 상징한다.
지상(세속) \rightarrow 하층 회랑(결계에 들어섬) \rightarrow 계단을 통한 상층 기단(부처님과 가장 가까운 신성 영역)으로 단계적으로 상승하는 구도는 순례자가 위계적 성소로 진입하는 미학적·종교적 경험을 유도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3단계인 화려한 탑문(토라나) 건립 및 최종 완성은 샤타바하나(안드라) 왕조 시기 (기원전 1세기 중엽, CIR. 50 B.C.)였다.
기원전 1세기 후반에 이르러 대탑의 동서남북 사방 외곽에 화려하고 정교한 석조 정문인 토라나(TORANA / GATEWAY / CIR. 50 B.C.) 4개를 최종적으로 덧붙여 세웠다.
토라나에는 부처님의 본생담(자타카)과 생애, 불전도(佛傳圖), 동물과 식물, 양류상(야크시) 등의 조각이 빽빽하게 새겨져 부처님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고대 인도 불교 미술의 정점을 이루게 되었다.
4대 석조 탑문(TORANA)은 네 방향이 한꺼번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약 수십 년에 걸쳐 일정한 순서대로 하나씩 건립되었다.
미술사학 및 고고학 연구(명문 분석 및 양식 발전 단계)에서 통용되는 건립 순서는 남문 → 북문 → 동문 → 서문 순이다.
남문(Southern Torana)은 산치 대탑의 주문(主門, 정문) 역할을 하는 문이다. 아쇼카왕이 기원전 250년경 세운 사자석주(SINHA STAMBHA)가 남문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아쇼카왕의 상징적 유산과 주 진입로를 가장 먼저 정비하고자 남문을 제일 먼저 세웠다.
남문의 기둥 하단은 석주의 사자상과 호응하듯 네 마리의 사자상이 기둥을 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보존 상태가 가장 완벽한 북문 (Northern Torana)은 남문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졌으며, 현재 4대 탑문 중 조각의 섬세함과 보존 상태가 가장 뛰어난 문으로 꼽힌다.
부처님의 대표적인 본생담(자타카)과 악마 마라의 유혹을 물리친 '항마성도(降魔成道)' 장면, 부처를 상징하는 보리수와 대좌 등이 입체적으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북문과 동문의 기둥 하단은 사자가 아닌 코끼리상이 지탱하고 있다.
동문(Eastern Torana)은 북문 이후 세 번째로 건립된 탑문이다.
불교 미술사에서 매우 유명한 나무 정령 여신인 '샬라반지카(Shalabhanjika / 야크시)'의 풍요로운 조각상이 아치(가로 보) 가장자리에 완벽하게 조각되어 있어 당시 인도 조각 예술의 정점을 보여준다.
부처님이 왕궁을 떠나 출가하는 '유성출가(踰城出家)' 장면 등이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서문(Western Torana)은 4대 탑문 중 가장 마지막으로 완공된 문이다.
부처님의 유골(사리)을 두고 여덟 나라가 다투다 분배하는 '사리분쟁(Relic Partition)' 장면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법륜, 칠불(과거 일곱 부처님)의 상징 등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다.
서문의 기둥 하단은 사자나 코끼리가 아닌 뚱뚱한 난쟁이 신인 '야크샤(Yaksha / 구반다)'들이 기둥을 짊어지고 있는 독특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처럼 약 300여년에 걸친 축조와 확장증축 그리고 탐문의 추가설치 등을 통하여 완성된 대탑의 위용을 우리는 감상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