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멘붕에 빠져 중얼중얼 헛소리를 읖조리던 리엔은 그녀의 말에 벌컥 화를 내며 말했다.
"이건, 변장이라고! 내가 무슨 취미로 이러는 줄 알아?"
"언제부터 체스가 여장이 공식 업무가 된건가요? 그리고 화장 수준을 보니 눈썹이며 제모까지 제대로 한걸 보면 그냥 일로 변장한 수준이 아닌데요. 솔직히 말해봐요. 원래 그쪽 방면에서 일하시던 분 아니예요? 체스는 원래 일반 시민들을 정보원으로 활용한다고 들었는데… 남자가 맞긴 한건가요? 혹시 무슨 불의의 사고로…"
"나 남자 맞다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내 가랑이 쳐다보지 마! 제대로 달려 있으니깐! 난 제국 7영웅인 루이 느베리의 4남인 리엔 느베리다. 더 이상의 모욕은 참지 않겠고 자꾸 함부로 말하면 가만두지 않겠어."
나는 아그네 공주가 조용히 에스더에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다행이다. 난 우리 비잔틴에서 뭔가 사고치고 벌받아서 저렇게 된줄 알았는데 그냥 개인 취미인가봐. 우리한테 뭐라고 해꼬지 하진 않겠지?"
취미 아니래잖아요. 아그네 공주는 왠지 신나서 에스더에게 그의 피부 상태나 화장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고, 에스더는 좀 난감한 얼굴로 그녀의 말을 애써 외면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근데 그러고 보니 조금 궁금해지는게 있었다. 루이 느베리경의 아들이라고? 나는 케두스에 의해 풀려나서 손목이 아픈듯 조인 곳을 주무르고 있는 리엔에게 물었다.
"루이 느베리경의 아들… 이라고 했죠?"
"그냥 아들이면 아들이지, 아들 뒤에 붙은 …은 뭡니까?"
"아, 실례… 아무튼 좀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나도 제국 7영웅분들의 가족들을 모두 다 만나 본건 아니지만 그대로 당신의 또래들은 대충 안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에 대해서는 처음 들었습니다."
나의 말에 에라드도 궁금한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초면인 것 같은데? 루이 느베리경의 자식들 중에 군터형, 베니형, 로잘린 누님은 만나본적도 있는데… 난 나보다 연하인 루이 느베리경의 자제분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는데? 군터 형이 우리 어머니랑 나이차이가 별로 안나는데 내 또래의 아들이 있었다고? 대체 언제 자식을 보신겨?"
멜리장드도 좀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하기는 하네요. 루이 느베리경은 저희 할아버지와 같이 보수파이기는 했지만 제국 건국 이후 실질적으로 체스를 마틸다 위체에게 물려줘버리고 조기 은퇴해서 낙향했었죠. 그리고 살아 있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지 알려진바가 없었죠. 하지만 그분의 자제분들은 다들 체스의 중간 간부로 활약하고 있어 제국 내에서도 잘 알려진 편이어서 종적을 감춘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생전 처음 들어보는 아들이라니… 당신 정말 루이 느베리 경의 아들이 맞기는 한건가요?"
리엔은 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제 아버지는 틀림없이 루이 느베리경이고 제 어머니는 로사 느베리 부인으로 저는 군터 형님, 베니 형님, 로잘린 누님과 같이 저희 부모님의 자식이 맞습니다. 제가 태어날 당시에 너무 늦둥이를 낳았다고 주변에서 하도 놀려서 아버지께서 절 세상에 드러내기를 꺼리 셨기도 하셨고, 저 역시도 어렸을때 하도 많이 아파서 어른이 될때까지 살수 있을지 몰라 세상에 크게 알리지 않은 덕에 제 존재가 잘 안알려졌을 뿐입니다."
그리고 에스더가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거기다 저런 취향이니 대놓고 세상에 자기 자식이라 말하기 부끄러웠을지도…"
"다 들리거든요! 아무튼 전 틀림없는 루이 느베리의 아들입니다."
그의 항변에 나는 좀 반신반의 하면서 물었다.
"좋아요. 그럼 어렸을때는 그렇다 치고… 요즘은 왜 이름을 처음 들은 거죠? 보아하니 에라드 형의 또래로 보이는데, 아무리 그래도 제국 7영웅의 자식이면 좋건 싫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텐데요."
"그건… 제 직무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체스 요원입니다. 기밀을 취급하는 저의 조직과 업무의 특성상 저는 함부로 신분을 드러낼 수가 없었습니다."
"들어보니 당신의 오빠… 아니 형과 누님들도 체스라면서요. 그분들은 그럼 왜 알려져 있는거죠?"
"자꾸 변태 취급하실겁니까? 저희 오빠… 아니, 형님들… 아오, 왕자님 때문에 저까지 헷갈리잖아요. 하여간 형님들과 누님들은 화이트 요원입니다. 하지만 저는 블랙 요원이구요. 그래서 제 신분은 함부로 노출시킬수가 없었던 겁니다."
용어에 대한 의아함을 풀어준 것은 에스더였다.
"화이트는 첩보부에서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고 공식 업무를 수행하는 요원을 말해요. 블랙은 첩보국장 및 극소수의 고위층만 신분을 알고 평소에는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잠입해서 필요한 시간이 되면 임무를 받아 수행하는 요원을 말하죠. 정말로 블랙이었다면… 존재가 드러나지 않은 것도 말은 되네요. 잠입을 주업무로 하는 블랙들은 신분 노출이 곧 죽음과 직결되니깐요. 화이트 요원들에 비해 엄격한 훈련과 기밀 교육 및 신분 은닉을 거친 자들만이 블랙이 될수 있으니 체스 정도의 조직이었다면 가능한 얘기이기는 하네요."
과연 비잔틴의 마지스트리아노스 답게 에스더는 설명했다. 에스더의 말에 조금 기운을 차렸는지 리엔은 말했다.
"하, 마지스트리아노스였죠? 일하면서 종종 부딪칠때마다 재수없는 놈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동종업종이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나니 눈물이 앞을 가리는 군요. 들으셨죠? 저는 체스에서도 가장 혹독하게 훈련을 받고 신분을 은닉한 다음 조국을 위해 아무런 대가도 원치 않고 묵묵히 싸우는 블랙 요원입니다. 이제는 제 능력과 신분을 좀 믿으시겠습니까?"
그러나 아그네 공주가 살짝 한마디를 거들어 그의 심기를 망쳐버렸다.
"네에… 블랙이라는 건 확실한듯 하군요. 원래 이런 버리는 말로 화이트는 외교적 문제가 되니 항상 신분 확인이 불가능한 블랙을 미끼로 남겨두죠. 버림받은 말로 사용된걸 보니 블랙이 확실하네요."
그녀의 말에 리엔은 다시 멘붕에 돌입했다.
"으앙… 스승님… 어떻게 저를 이렇게 버림수로 쓰실수가… 아버지가 스승님을 어떻게 대하셨는데… 그리고 오랫동안 저를 개인 교육 시키면서 키우실때는 절 후계자 정도로 생각하시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스승님이 저를 버리실수가 있어요. 엉엉엉…"
역시나… 오랫동안 일한 조직에 버림받은 것도 충격이지만 마틸다 아주머니에게 뒷통수 맞은 것이 그에게도 엄청난 충격인듯 했다. 나는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그에게 말했다.
"자, 이제 그만하고 이만 우리 쪽에 합류하도록 해요."
그러자 리엔은 물론 내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놀라는 눈치였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지금 왕자님을 따라 이 작전에 동참하라구요?"
"달리 도망칠 방법있어요? 어차피 당신도 혼자서 여기서 살아 돌아가기는 글른 것 같은데? 이 작전에 멤버로 합류하도록 해요. 상관없잖아요. 이미 체스에서도 버림받았는데…"
그는 내 말에 조금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의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 에스더가 말했다.
"괜찮겠어요? 작전을 제대로 망쳐버리고, 왕자님에게도 위협을 가한건 둘째치고라도, 그렇게 쓸만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첩보 관련 업무라면 저로도 충분하지 않을가 싶은데요."
"뭐… 아무데도 쓸데없는 저도 참여하고 있는걸요 뭘… 그리고 갈곳도 없다는데 받아주죠 뭐… 어차피 그래봐야 백만명 중에 20여명 추가되는건데요 뭐."
"뭐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당신에게 모든걸 다 맡기고 홀로 위험에 내몰고 싶지는 않다는 말은 마음속으로만 했다. 그리고 리엔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고민한듯 한 리엔은 인상을 찌푸리며 마지못한듯 말했다.
"왕자님, 정말로 이 무지막지한 작전 추진하실겁니까? 몽고메리 대사를 취조해서 들었을때는 막연해 보였는데 정작 제대로 접하니 너무 규모가 커서 더 비현실적이군요. 이거 정말 가능하리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순간, 리엔은 뭔가 계산하는 듯한 복잡한 표정을 비추었다. 뭐지? 뭔가 좀 이상한데… 그러나 곧 깊이 한숨을 쉬고선 그는 다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다른 방도가 없을 듯 하군요. 저도 왕자님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데네브 작전에 오게 된걸 환영합니다. 일은 그대로 이동중에 발생할 첩보 관련으로 담당해줘요. 자 어찌되었건… 어머니는 사라지셨지만 대신 새로운 동료를 받았군요. 뭐 기분전환도 할 겸해서 환영파티라도 한번 할까요? 아아… 표정들을 보아하니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하군요. 리엔경도 구석에 숨을 곳 찾지 말아요. 일단은 당장 시급한 일들에 대해서 논의해 보도록 하죠. 자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의견있는 사람 손!"
다들 서로 눈치만 볼뿐 이렇다 할 의견을 내는 사람은 없었다. 뭐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당장 엉망진창이 된 작전을 그냥 불씨만 죽이지 않았을 뿐이지 앞으로의 일이 막막해진건 변함이 없으니깐. 어머니라면 뭔가 여기서 그들을 독려할 방법을 잘 알고 계실지도 모를텐데… 갑자기 어제 뵈었던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워 지는 것을 느꼈다. 결국 무거운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어쩔수 없다는 듯이 손을 든 것은 멜리장드였다.
"당장은… 실마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계획서 상당히 그래도 황제 폐하를 외면하지 못한 제국이 중간 개입을 해주리란 기대를 엄청 담아서 만든 부분이 많은 지라… 폐하가 안계시고 제국의 기조가 저리도 강경한 시점에서 계획서를 갈아 엎는 것부터 해야 하는데… 도무지 해법이 보이지 않는군요."
그녀의 말에 의견을 제시한건 케두스 왕자였다.
"뭐, 솔직히 좀 지나치게 제국 의존적인 진행이었던건 부정하기 힘들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못써먹을 건 또 아니겠죠. 일단 제국의 개입을 상정하고 짠 시나리오 부분을 좀 수정하고, 현시점이 기존 계획에서 틀어진 변수들을 하나씩 고려해보면서 계획안을 다시 전면적으로 수정해 보도록 하죠."
믿음직한 소리이기는 했지만 마음의 그늘이 가시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때, 뭔가 생각이 난듯 아이샤가 손을 들었다.
"저기… 케두스 왕자님이 말씀하신 기존 계획에서 틀어진 변수라는 점에서 문득 생각이 들었는데요… 한가지 사실 확인을 좀 하나 해야 할것이 있는데, 왕자님 괜찮을까요?"
"응? 사실확인? 그게 뭔데? 뭐든 일단 말해봐바."
"조금 의문스러운게 있어서요. 리엔 지부장님, 한가지 여줘볼께요. 대체 어떻게 그렇게 빨리 황제 폐하를 엠프레스호로 이송할수 있었죠?"
그녀의 말에 다들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시선이 리엔에게 모여졌다. 리엔도 당황한듯 말했다.
"어떻게라니? 내가 직접 호송하지는 않았으니 상황을 알수는 없지만, 계획대로 진행이 됐다면 밤새도록 말을 달려 아크레로 쉬지 않고 달렸으니 빨리 도착했겠지. 그게 뭐?"
"아뇨, 저는 이동속도가 아니라 승선에 대해서 물어본 거예요. 엠프레스호는 해상에 정박하고 있었어요. 황제 폐하를 태우러 아크레 항에 정박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해상 대기 중이었다가 그대로 출발해버렸어요. 어떻게 황제 폐하를 배에 태우신건가요?"
"응? 그… 그건…"
"황제 전용선이라고 해도 제국 동지중해 함대의 기함인 엄연한 군함이 중립국에 허가없이 입항할 수는 없었겠죠. 그리고 한번 입항한 배가 출항을 하여 항구를 빠져나가려면 상당한 시간을 소요하기에 빠른 출발을 위해 해상 체류를 한 것도 이해는 가요. 하지만 그렇다면… 황제 폐하를 배에 모시기 위해 해상으로 이동할 항구의 소형 연락선이나 바지선을 사용해서 옮겼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지금 아크레 항에서는 정말로 연근해밖에 못가는 배가 아니면 대부분 이곳을 먼저 탈출한 부자들에 의해 사용되어 아크레가 텅빈 상태예요. 물론 일부 작은 배를 썼을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첩보 작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런 종류의 기밀을 요하는 일에 그냥 항구에 굴러다니는 아무 배나 사용해서 이동하는 계획을 세웠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렵군요. 삼류 밀수업자도 그보다는 더 믿음직한 수단을 확보해서 장물을 나르는걸요.
자, 여기서 다시 한번 여쭤보겠어요. 누구죠? 체스와 황제 폐하의 이송에 대해 거래를 한 사람, 엠프레스호에 근접하는 것에 큰 부담을 가지지 않을만큼 체스와 제국에 우호적이면서 긴밀한 관계를 가진 사람, 지금 항구가 폐허처럼 되어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잘 정비된 함선들을 움직일수 있는 사람… 누구죠? 말씀해 주세요."
나는 예상치 못한 아이샤의 예리한 지적에 놀라 다시 한번 리엔을 쳐다보았다. 리엔 역시 예상치 못한 핀포인트 공격이었는지 땀을 뻘뻘 흘리며 당황해하고 있었다. 아아… 그제서야 알수 있을 것 같았다. 아까전에 우리쪽에 합류하라고 했을 때 도망칠 수단에 대해 그가 보인 위화감… 뭔가 역시 있었구나. 그는 우물쭈물하며 말을 흐렸다.
"그… 그건 이번 일과는 관계가…"
"있어요!"
그의 우물쭈물거림과는 반대로 아이샤는 단호하게 소리쳤다.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가 제대로 몰랐던 만약의 수단이 있다면 계획에 변수를 우리쪽에 유리하게 쓸수있어요. 선편만 확보할수 있다면 미미하더라도 물자의 이동과, 중환자의 신속한 이탈과 VIP의 안전 확보를 전제로 한 계획을 세울수 있어요. 우리의 동료가 되겠다고 했죠? 대답하세요. 지금 우리는 쓸수 있는 모든 수단은 가리지 않고 써야해요. 누군가요? 이곳에서 당신들 체스에 협력하고 있는 파트너가 누구인가요? 대답하세요."
나는 멜리장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친구의 강한 압박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더 밀어 붙이라고 말없이 격려하고 있었다. 이 녀석들 아직도 경우에 따라서는 나를 먼저 어디론가 보내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은건가? 그리고 리엔은 대단히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뭔가 저 지경이 되어서도 말하기 힘든 사정이 있는 건가? 나는 조금 분위기를 풀어보기로 했다.
"리엔경, 얘기해주시죠. 우리와 함게 하기로 한거 아니었나요? 그렇다면 숨기는 것 없이 정보를 공유해야 하지 않을까요? 대답해주세요. 나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이 혹시라도 데네브 작전에 변수가 될수 있다면 말해서 도움을 주길 바래요. 아니면… 혹시 뭔가 말하기 어려운 이유가 따로 있는 건가요?"
리엔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말하기는 어렵지 않겠죠. 하지만… 말한다고 해도 딱히 볼일은 없을 듯 합니다만… 아니, 오히려 그 변수는 잘못 건드리면 우리에게 해가 될수도 있는 변수라서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그가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어쩔수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마지못한듯 무겁게 입을 열었다.
"혹시… 씨서펜트(Sea Serpent)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
그게 뭐지? 바다뱀? 나는 내 주변에 똑똑한 나의 동료들의 의견을 물으려 고개를 돌렸을 때… 그들의 표정을 보고 놀랄수 밖에 없었다. 전원 모두 경악스러운 표정… 뭐야? 다들 아는 거야? 나만 모르는거야? 아이샤가 당혹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설마 지금… 말하는게 흑해의 악마라고 불리우는 그 씨서펜트를 말하는건가요?"
리엔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왜 망설였는지 이제 이해하겠죠?"
그러자 멜리장드가 탄식하듯이 말했다.
"맙소사… 그 자가 제국과 라인이 있다는 건 그냥 적성국에서 제국을 음해하기 위한 억지 주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비선 연결이 있었다니. 하여간 체스는 정말 만악의 근원이야."
그리고 어지간해서는 아무리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좀처럼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던 라드도 분노를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라께서 분노하실겁니다. 그런 자가 이곳 성지의 코앞에 있었다니… 그 무도한 자가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받고 참회하는 형벌이 내려지기를…"
나는 결국 두손들고 멜리장드에게 물어보았다.
"대체… 그게 누군데 그래?"
"사상 최악의 해적입니다. 에게해와 키레나이카 서쪽 연안 지역에서는 그 이름만 들어도 우는 아이가 울음을 그친다는 악명높은 자입니다. 잔인무도하고 교활하며 해상에서 악마처럼 처절하게 맹위를 떨쳐 단한번도 패배한적이 없다는, 어떤 사람은 사탄의 세례를 받은게 아니냐는 말을 했는데 진지하게 교회가 그 부분에 대해 연구를 했을 만큼 흉악한 해적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거칠고 잔혹한 것을 넘어서서… 그자의 악명을 높이고 있는 것은 바로 그의 사업입니다."
"응? 뭘 취급하는데 그래? 마약? 무기?"
"아뇨… 인간이요."
"!!!!!!"
"그자의 사업은 바로 노예 사업입니다. 사람들, 특히 저항할 힘이 약한 여성들을 상품으로, 지중해를 돌아다니며 곳곳에 여성들을 강제로 납치해서 팔아넘기는 걸 주요 사업으로 삼는 자입니다. 아시겠지만… 제국에서는 노예는 금지입니다. 그 이전에 인간으로서도 사람이 사람을 사고 파는 짓은 용서 받을 수가 없는데, 그는 그런 짓을 태연히 저지르고 관련 사업에 종사하는 경쟁업자들을 모조리 몰살시켜 사업을 독점하고 부와 욕망을 차지한 용서받을수 없는 악인입니다."
"맙소사… 근데, 체스는 그런 자랑 거래를 한건가요? 아니 애초에 어떻게 그런자랑 연이 닿아 있는 건가요?"
나는 당황해서 리엔에게 되물었다. 리엔은 좀 머뭇거리며 말했다.
"뭐… 체스가 사람 가려가며 거래하나요? 필요하다면 마틸다 스승님은 루시퍼랑 지옥에 임대 계약 맺고 공증받고 가격할인에 경품까지 받아올 양반인거 다들 잘 아시잖아요. 뭐 거기다가 그 자는 제국이 금기시 하는 사업을 하고, 무슬림 국가들의 타도해야 할 1순위 후보로 꼽히고 있기는 하지만… 의외로 제국에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는 않고 있습니다. 항상 그의 범행 대상은 무슬림들에 맞춰져 있을뿐, 제국과 비잔틴, 기타 기독교 국가들에게는 먼저 덤비지만 않으면 별로 부딪칠일이 없어요. 그리고 사실 그 역시도 제국 출신이고 우리가 모른척 할수 없는 사람이기도 하니깐요."
"뭔가 우리가 아는 사람이라는 듯 들리는데요."
"뭐, 이왕에 여기까지 깠으니 기밀이고 나발이고 다 공개하죠. 씨서펜트의 이름은 안젤모, 안젤모 그라치아니… 여러분들도 익히 잘알고 계실 제국 7영웅중의 하나인 안젤모 로시니의 대자이며, 그의 제자 로베르 그라치아니 재무부 총리의 아들입니다. 아마도, 기억은 잘 안나겠지만 여기 있는 멜리장드, 에라드, 그리고 왕자님이 분명 어렸을 때 한번 정도는 만나봤을 겁니다."
나는 그의 입에서 나온 어처구니 없는 말에 어이를 잃을뻔 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말에 황당해서 다시 물었다.
"우리가… 만난적이 있다고요?"
접어든 길은 어느덧 어둠이 내려 깔리는 어두운 도시의 뒷골목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이탈하고 남은 사람들도 피난 준비를 하느라 흉흉한 분위기에서도 일부 술집들은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었다. 멜리리장드와 아이샤는 퇴폐적인 그런 분위기에 눈살을 찌푸리며 걸음을 재촉하면서도 연신 돌아가길 바라는 눈치였다. 역시 좀 무리수였나? 라드와 루치아는 결국 동행하지 않고 그곳에 머무르기로 하였다. 나는 조금전의 일을 회상했다.
"한번 만나보고 싶군요."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아우성을 쳤다. 상황이 막장으로 치닿는 중에 더 어처구니 없는 걸 끌어들이지 말라는 항의가 이어졌다. 어지간해서는 인상을 찌푸리는 걸 보기 힘든 라드 역시도 나를 적극 만류하며 자신이 직접 접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통해 납치되고 살해당한 무슬림 백성들이 너무나 많다고 한탄을 하며, 혹시나 그가 자신의 앞에 나타나면 자신과 동행할 수십만 무슬림 백성들이 이성을 가지고 그를 대할수 있을지 자신할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뭐랄까나… 위화감이랄까? 기시감이랄까? 내가 뭘 모르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꼭 알아야 할 것 같은 기이한 기분… 왠지 이번 일에 대해 그를 만나야만 뭔가 실마리를 볼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어린 시절에 나와 인연이 있었다는 내 기억속에 잊어버린 그 인물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아이샤가 처음에 언급한 탈출에 함선을 가진 변수를 만나볼 필요가 있다고 강변하여 난처해하는 리엔을 앞세우고 그를 만나러 출발했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리엔이 부연 설명을 하였다.
"제국에서 가장 촉망받는 인재 중에 하나였습니다. 제국 해군사관학교 1기 졸업생이었고, 로시니 학파 36기로, 군사 분야, 경제 분야에 있어서 어느 한쪽도 빠짐없이 재능이 뛰어난 인재였었죠. 이후 제국을 이끌어갈 차세대 인재로 주목받는 인물이었습니다. 폐하께서도 그런 그를 총애하셔서 수행 무관으로 한동안 데리고 다니셨고, 그 와중에 분명히 왕자님과 다른 사람들과의 접점이 있었을 겁니다. 너무 어린 시절이라 기억은 안나시겠지만요."
"그러고 보니… 언젠가 프로방스에서 나랑 놀아주던 형이 하나 있었는데… 난 그게 에라드 형인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무등을 태워줬었죠. 다리가 불편한 에라드형이 할수 있을리가 없었겠군요."
"아마 맞을 겁니다. 아무튼 그렇게 출중한 재능 덕에 폐하 뿐만 아니라 제국의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로시니 학파에서도 기대가 컸죠. 로베르 재무관은 그에게 오랜 시간 애증의 관계였던 스승의 이름을 붙였고, 안젤모 전임 재무관도 그를 기특히 여겨 오랫동안 직전 제자로 가르침을 주었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이베리아 종교 전쟁이 발발했을때도 그는 과감하게 당시에는 아직 열악하던 제국 함대를 효율적으로 동원해 프랑스의 모든 항구와 이베리아 반도를 모조리 봉쇄하는 일명 '대륙봉쇄령'을 해군본부에 제안하였고 구체적인 실행안을 제출하여 그것을 현실화 시켰습니다.
알려진 것처럼 이베리아의 신성동맹이 쥐와 나뭇껍질을 벗겨먹으며 싸울수 밖에 없는 전략의 근간을 만들고, 이어진 마요르카 해전에서 봉쇄를 뚫으려는 아라곤 해군을 몰살시켜 제독의 자리에 올랐죠. 마침 당시 진수된 황제 폐하의 기함 엠프레스호의 초대 함장으로도 임명되어 당대 최고의 인재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아니… 근데 그런 사람이 어쩌다가 그렇게 된거죠?"
"그게 참 미스터리입니다. 너무 승승장구하는 것에 견제가 조금씩 들어오고 마침, 그때쯤 해군에서의 이력은 충분하니 이제 재무성에서 일해보라는 폐하의 권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전역하고 바로 갈아타기는 좀 그렇고 해서, 잠시 안식년을 겸한 셀주크 대사로 발령을 받아 그곳에 부임하게 되었죠. 그곳에 있던 와중에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엄청난 사고가 터졌습니다."
나는 그의 말에 긴장하며 물었다.
"그게 뭔가요?"
"현지 처녀와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을 한겁니다."
그의 말에 나는 왠지 한대 때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의 연인은 셀주크에서 우리 제국과의 외교를 전담하고 있는 카운터 파트너인 이브라힘 파샤의 조카딸이었습니다. 우연히 그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갔다가 만나서 한눈에 반해버렸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끈질긴 구애를 하고 마침 그와 절친한 사이였던 이브라힘 파샤의 권유도 있어 결국 그 아가씨는 결혼을 승낙하고 혼인이 성사되었습니다.
제국의 수많은 처녀들이 그의 혼인 사실에 울고 불고 좀 심각한 처자들은 죽겠다고 난리쳐서 민폐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그의 부친인 로베르경도 조금 탐탁치 않아 하긴 했지만 황제 폐하께서 적극 그를 두둔하시고 몸소 축복을 하시는 지라 크게 반대하지는 않고 허락하엿습니다. 결혼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느덧 셀주크 현지 결혼식이 일주일 남은 날 사고가 터졌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데요?"
"그건 저희 내부에서도 마스터 외에 일부 고위급들만 정보 접근이 제한되어 저도 구체적인 경위는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그저 결과만을 말씀드리면… 그날밤 그는 신부의 집에 난입하여 신부와 그녀의 가족들 일가를 모조리 몰살하였습니다. 그리고 신부의 집안 뿐만 아니라 그의 절친이자 중매자이며 신부의 작은 아버지인 이브라힘 파샤와 그의 가족들 역시도 잔혹하게 살해해 버렸습니다."
"엥? 아니 왜 그런 짓을…"
"그걸 모르니 미스터리랄수 밖에요. 하여간에 그 어처구니 없는 사태에 당시 결혼 도우미로 가장해 일부 파견되어 있던 체스 요원들이 황급히 그를 끌어내 제국으로 도피시키기는 했지만, 사태의 여파는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자국의 외교 책임자를 살해당한 셀주크는 그 미치광이 살인범을 넘기라는 강경한 요구를 하였고, 제국 국무부는 어쩔수 없이 그를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왠일인지 제국 감옥에 구금된 그와 면회를 마친 황제 폐하는 그의 인도를 거부하셨습니다. 대신 그의 제국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박탈하여 추방하는 것으로 벌을 대신하였습니다.
그러자 셀주크는 제국이 포기한 그를 체포해 심판을 받게 하려고 했으나… 그는 그 일이 있은 이후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반 미치광이가 되어 예전 자신을 따르던 부하들과 살려주는 대가로 수하로 부리던 자들, 그리고 기타 일부 사람들을 모아 해적단을 결성하고, 자신을 추격하는 셀주크의 추격자들을 잔혹하게 처단하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한걸음 더 나아가, 한때 무슬림 여성과 결혼하려던 사람이 맞는지 의심될만큼 잔혹한 무슬림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노예 사업을 시작했죠.
그가 쏟아버린 적들의 피와 납치당한 여성들의 눈물로 흑해는 한때 무슬림의 죽음의 바다로 불리며, 안젤모 그라치아니의 허락 없이는 숨도 쉬지 말라는 말이 사실처럼 뱃사람들 사이에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점점 그의 사업장을 넓혀서 흑해의 일대와 아나톨리아에 접한 에게해, 그리고 키레나이카 서쪽의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거대한 해상에 자신만의 사략 함대를 구성해 세력권을 형성하고 지금까지 공포의 존재로 군림하고 있는 거죠."
"참나… 어쩌다가 그 정도의 사람이 그렇게까지 타락을 해버린걸까요? 리엔경은 보아하니 우리와는 다르게 나름 그 사람과 친분이 있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라도 한번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나요?"
"뭐… 저도 그와의 친분만 따지면 역시 왕자님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훈련만 받다가 실전 투입된지 얼마 안되었고, 그와 만나게 된것도 이번 작전과 관련해서 처음으로 상부 지시로 현지 협력자라는 얘기만 듣고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약력만 들었는데, 만나보니 그쪽에서 먼저 저를 안다는 투로 오랜만이란 식으로 말하더군요. 그런 식으로 몇번 마주치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눌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흠… 뭐 자세한건 그 사람을 직접 만나보면서 알아 봐야겠군요. 여긴가요?"
나는 리엔의 발걸음이 멈춰진 곳에 어느 건물 입구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 여깁니다. 이곳 지하에서 항상 접선을 했습니다."
나는 물끄러미 건물을 바라보았다. 나름 유흥가의 퇴폐적인 분위기를 잃지 않은 뒷골목에서, 다른 가게들과는 달리 눈에 별로 띄지 않는 다소 허름한 입구였다. 어라? 근데 여기 혹시… 알아 차린 것은 나뿐이 아닌듯 했다. 에라드가 말했다.
"여기 그때 거기 아닌가?"
그리고 케두스가 대답했다.
"맞습니다. 틀림없군요. 여기였었죠."
두 사람의 말에 궁금해진 멜리장드가 말했다.
"뭐죠? 여기 알고 있는 곳이었어요?"
그녀의 질문에 에라드가 좀 난처해하며 대답했다.
"아… 그러니깐, 뭐라고 말해야 하나. 전에 한번 밤놀이 다닐 때 왕자님이랑 케두스 왕자랑 같이 오려다가 못와봤던 가게… 라고 할까요?"
"이런 허름한 곳은 어떻게 알고 찾아오신거죠?"
"여기가 말이죠… 그러니깐 입구는 좀 허름해보여도 나름 이곳에서 유명한 곳이라고 하더라구요. 겉보기와는 다르게 저 안에는 통과만 되면 별천지가 펼쳐진다나 뭐라나… 하여간 그래서 한번 궁금해서 찾아오려고 했는데 입구에서 맡기고 들어가는 보증금만 해도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라서 그냥 발걸음을 돌린 남자들의 눈물과 아쉬움이 담긴 그런 곳이죠."
그리고 그의 말을 케두스 왕자가 받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살면서 남자라면 꼭 한번 죽기 전에 와봐야 하는 곳이, 성묘 교회랑 이곳이라고 하던데… 참 이런 식으로 오게 될줄은 몰랐네요. 여기가 들어가면 뭔가 할짝할짝 하는게 끝내준다고 하던데…"
나는 온도가 급속하게 냉각되는 기분을 느끼며 뭔가 감회에 잠긴 에라드와 케두스를 외면하고 멜리장드와 아이샤를 바라보았다. 둘다 뭔가 더러운 오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우리 세사람을 싸잡아 보며 눈을 흘기고 있었다. 우왓! 시선 만으로도 상처 받을 것 같아. 그리고 멜리장드가 말했다.
"할짝할짝은 무슨 망할놈의 할짝할짝입니까! 그딴거 하러 이딴 곳이나 돌아다니는 줄 알았으면 늦게 돌아오실때마다 폐하께 일러바칠 걸 좀 봐드리다니 제가 너무 물렀네요. 그냥 폐하에게 보고하고 큰 아들 죽었다고 말씀드리고 편안히 보내드릴것을…"
"할짝할짝이 무슨 행위인지는 대충 상상이… 아휴, 머리속에 쓰레기가 쌓이는 기분이네요. 토박이 입장으로서 여기가 그런 거시기한 곳이란 곳은 이미 잘알고있습니다. 근데 여길 오셨었다고요. 하아… 저 지금이라도 유대인 대표 안하면 안될까요?"
야, 니들 그런 식으로 보지 말라고. 들어간 적 없다고 하잖아. 그리고 대체 할짝할짝이 뭔줄 알고 다들 이래. 케두스가 전에 물담배 얘기하면서 꺼냈던 묘사였구만. 멜리장드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이라도 그만두시죠. 이런 곳에 제대로 정신 박힌 놈이 있으리라곤 생각하기 어렵네요. 뭔가 폐하가 실종되신 상황에 중압감을 느끼고 정신줄을 놓으셨던지, 아니면 그냥 엄마 없으니 기회는 이때다 하고 일탈을 시작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전 절대 이곳에 들어가는 걸 추천하고 싶지 않군요. 마지스트리아노스께서도 같은 의견 아니신가요?"
멜리장드는 지원을 요청하듯 에스더에게 물었다. 에스더는 말없이 팔짱낀 팔을 풀며 대답했다.
"네, 말리고 싶군요. 여기… 좀 위험한 곳이네요."
"그렇죠? 이런 곳에 남자들 보내놨다가는 뼈도 살도 혼도 다 녹아내려서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
"아뇨, 그런 점에서 위험하다는게 아니고, 정말로 위험하다는 말이예요."
그렇게 말한 에스더는 등에 찬 작은 가방에서 향수병 같은걸 꺼냈다. 그리고 건물의 옆 건물 사이에 난 어두운 길에 그 향수병 같은 것을 뿌리며 말했다.
"리엔, 당신이라면 이게 뭘 말하는 건지 이해할수 있겠죠?"
나는 리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경악스러운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의 시선이 닿아 있는 그녀가 그 향수의 물질을 뿌린 곳에서는 파랗게 빛나는 뭔가가 벽과 바닥과 모퉁이 여기저기에 뭔가 흐르거나 튀긴듯한 자국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리엔이 말했다.
"저건 일종의 혈액 검출 시약입니다. 저렇게 분무식으로 개량된건 저도 처음 봅니다만… 아무튼 혈액이 존재했던 곳에 뿌리면 그 혈액이 지워졌어도 얼마동안을 그 흔적을 보여주는 첩보원들의 도구입니다."
"우와… 그런게 다 있었구나. 어? 그럼 뭐야 지금 저기 골목을 가득 채운 파랗게 빛나는 것들이 설마 모두…"
대답한 것은 에스더였다.
"제법 험한 곳이라는 건 확실한듯 하군요. 생긴지 얼마 안된 자국들이 이 정도라니… 들어가면 체포한 쪽이든 체포당한 쪽이든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콘스탄티노플의 마지스트리아노스 비밀 심문소도 저 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 정말 이곳에 꼭 들어 가셔야겠어요?"
멜리장드와 아이샤는 안무를 맞춘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나는 뭔가 오기 같은 것이 생겼다.
"위험하다는 것은… 뭔가 값어치 있는게 저곳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지금, 우리는 뭔가 현상을 타개할만한 획기적인 방법을 도모해야 합니다. 폐하께서 없는 상황에서 불안한 구심점으로 계획을 진행하다가는 불안함을 그대로 끌어안고 가야 할겁니다. 이곳에 상황을 엎은 존재가 있다면 우리는 그걸로 현재의 불리한 상황을 엎을 실마리를 찾을수 있을지도 모르죠. 들어가겠어요. 가서 만나보고 방법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폐하라면 분명 그렇게 하셨을꺼예요."
나는 굳은 다짐을 다시 한번 동료들에게 말했다. 다들 못내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 마지못한듯 한숨들을 쉬었다. 동의라고 봐도 되겠지? 나는 보무도 당당당하게 앞장서서, 건물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를 막아서는 엄청나게 거대한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다.
"어서오세요. 입장하시려면 이곳에 보증금 예치하셔야 합니다."
"……"
아, 맞다. 저번에도 이래서 못들어왔었지. 난 입구를 막아선 경비원들의 정중한 요구에 꿀먹은 벙어리가 된채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물어봤다.
"혹시 돈있는 사람… 손!"
아마도 리엔이 나서서 말리지 않았다면 나는 경비원들의 손에 건물 밖 길바닥에 내동댕이 쳐지기 직전까지 갈뻔했다. 아무튼 리엔은 얼마전 일관계로 온 자신을 그들에게 확인시키고 마찬가지로 다시 일 얘기를 하러 왔다고 설명하며 씨서펜트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잠시 망설이고 지시를 기다리던 경비원들은 곧 나타난 책임자의 지시를 받고 길을 열어줬다.
황제, 에라드, 마틸다, 필립, 안젤모, 루이의 자식 또는 제자가 나왔으니 이제 남은 건 앙리 추기경이네요. 사생아는 그분 성격상 아닐테고, 제자이었다가 이맘이나 랍비가 된 친구가 등장할려나요? 아니면 이베리아 종교전쟁에서 살아남은 수녀가 뒤를 이을 최초 여자 추기경이 되나요?
@현대선비헉... 쿠폰이요? 그러고 보니 명칭이 아이디어가 좋습니다. 남들은 두려워하는 울티넘을 심드렁하게 쿠폰이라고 부르며 휙 던지듯 발의하는 인물이 나오면 재밌을 것 같네요. 그리고 울티넘을 이어받는 자라... 그것도 좋은 아이디어네요. 나중에 써먹을 곳이 생각났습니다. 조금 막혀있던 부분이 풀린듯 하네요. 조언 감사합니다.
결국 혈통이란 무의미한 거니깐요. 바보한테 천재가 태어날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죠. 그래서 역사속의 장자 상속은 결국 초심과 역량을 상실한 후계자들에 의해 국가를 위기로 몰고가죠. 사실 이 작품은 그런 너무나 타당한 역사속의 진리에 대해 살짝 비틀기를 해본겁니다. 쉽게 말해서... 뭔가를 얻고 싶다면 천재 트레잇 의 확률보다는 일단 굴러야 한다는거죠.
첫댓글 1등이다!
이 이야기는 전작의 7명의 위인들의 자식들, 그것도 아웃사이더 수준의 사람들이 주인공인 이야기군요. 과연 그들은 새 세상을 만들 수 있을련지...
정확하게 말하면 조안까지 8명이죠. 아웃사이더라는 의견에는 글쎄요... 부모 세대처럼 정말 밑바닥부터 올라온 친구들은 아닌지라 그렇게까지는 아닌듯 싶은데요...
오오 씨써펜트. 뭔가 더블 주인공의 포스가 느껴지네요 ㄷㄷㄷㄷ 그나저나 왕자가 저리 위험감각이 없어서야 ㅜㅜ
다음편에서는 씨서펜트 원맨쇼가 벌어집니다.
황제, 에라드, 마틸다, 필립, 안젤모, 루이의 자식 또는 제자가 나왔으니
이제 남은 건 앙리 추기경이네요. 사생아는 그분 성격상 아닐테고, 제자이었다가 이맘이나 랍비가 된 친구가 등장할려나요?
아니면 이베리아 종교전쟁에서 살아남은 수녀가 뒤를 이을 최초 여자 추기경이 되나요?
그러고 보니 이 양반... 에피소드가 아직 정리가 안되었네요. 전편에서도 설정 안잡고 등장시켰다, 원래 악역이던 양반이 갑자기 급 군기반장 아군이 되었는데... 역시 종교 관련 인물은 쓰기가 힘들어서... 아! 그러고 보니 이미 죽었죠. 저도 잠시 까먹고 있었다는...
@k8086 황제에게 한 유언이자 최종권고를 지키는 캐릭터를 등장하는게 어떨지. 사실 쿠폰 안 쓰고 폐점하면 허전하듯이, 최종권고 안 쓰고 돌아가시면 독자와 작가 입장에서 아까우니까.
@현대선비 헉... 쿠폰이요? 그러고 보니 명칭이 아이디어가 좋습니다. 남들은 두려워하는 울티넘을 심드렁하게 쿠폰이라고 부르며 휙 던지듯 발의하는 인물이 나오면 재밌을 것 같네요. 그리고 울티넘을 이어받는 자라... 그것도 좋은 아이디어네요. 나중에 써먹을 곳이 생각났습니다. 조금 막혀있던 부분이 풀린듯 하네요. 조언 감사합니다.
크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 얼마전에 정주행 했는데, 크 글 잘쓰시네여
감사합니다. 이런 감상이 글쓴이에게 힘이 됩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지금 21화 쓰고 있는 중인데... 좀전에 쓰던 내용에서 나온 이 녀석을 생각해보면 뭔가 위화감이... 그리고 안젤모의 후계자는 엄밀히 말하면 로베르죠.
삭제된 댓글 입니다.
결국 혈통이란 무의미한 거니깐요. 바보한테 천재가 태어날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죠. 그래서 역사속의 장자 상속은 결국 초심과 역량을 상실한 후계자들에 의해 국가를 위기로 몰고가죠. 사실 이 작품은 그런 너무나 타당한 역사속의 진리에 대해 살짝 비틀기를 해본겁니다. 쉽게 말해서... 뭔가를 얻고 싶다면 천재 트레잇 의 확률보다는 일단 굴러야 한다는거죠.
csi 예루살렘 시즌1 : 제 1화 피의 골목 (농담입니다)
매일 매일 다음화가 올라왔는지 체크합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