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시장 사람들>
우리 동네 재래시장 단골집 중에는 ‘영광건어물’ 가게가 있다. 건어물 가게는 부인이 운영하고 맞은 편에서는 남편이 뻥튀기 가게를 운영한다. 부부가 두 개의 가게를 운영하는 것을 보면 경제적 뿌리가 튼실한 집으로 보인다.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아주머니의 고객 대하는 마음이 무언가 다르다.
그녀는 우선 얼굴을 마주치는 순간 무척이나 반가워한다. 마음이 왠지 모르게 무거운 날도 그녀의 반가워하는 표정과 밝은 말투와 활발한 몸놀림을 대하면, 잠자던 의식이 번쩍 깨어나는 기분이다. 일주일에 한 번꼴로 장을 보는 일정 중에 제일 먼저 그 집을 들러는 편이다. 대개 몇만 원어치의 물건을 사면 꼭 보너스 선물을 준다. 보너스 선물은 주로 뻥튀기이지만, 여의치 않을 때는 김이나 구운 달걀 등, 다른 무엇이라도 집어 준다.
그런 선물에 대한 나의 고마움은 마음속 의지와는 달리 실제 표시는 참 궁색하다. 처음 방문 때부터 시작하여 회가 거듭될수록 점입가경이 되어야 하는데, 매번 받다 보니까 새로운 말로 감사 표시를 하기가 힘이 들 정도다. 버릇이 관습이 되어 아예 은근히 선물을 기대하는 마음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처음에는 ‘안 주셔도 되는데요’가 몇 번 반복되었다. 그다음에는 ‘이러다 버릇되겠어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다음은 ‘완전히 관습이 되었네요.’였다. 매주 한 번씩 계속되는 멘트는 더욱 진화한다.
“네, 아이고 참, 뭔가 주지 않으면 몸살이라도 납니까?”
“하하하! 드리고 싶어 서요!”
“이왕 주시려거든 양파 깡으로 주세요.”(그날의 보너스 품목은 과자였다)
“예, 예 잠깐만요”(맞은편으로 뛰어가서 부리나케 바꾸어 온다.)
그다음 주에 갔을 때 나의 애어행(愛語行)은 다시 진화한다.
“오늘은 창문 밖에서 언뜻 보이는 모습이 모델인 줄 알았어요.”
실제로 그날은 머리 모양과 복장이 유달리 깔끔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하이고! 깔깔깔…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다음 주에는 이런 대화를 하였다.
“이 글씨는 누가 썼어요?”
“제가요”
“예술입니다!”
‘여수 돌산 갓김치 있어요.’라고 노란 배경에 검은 매직펜으로 쓴 글씨가 실제로 내공이 느껴지는 달필이었다.
“깔깔깔… 하하하! 예술이요?!”
그다음 주에는 이 집을 제일 먼저 들러는 이유를 밝히며 나는 이렇게 말인사를 건넨다.
“밝고 활기찬 사장님의 기운을 받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장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나의 말 보시(布施)에 대한 그녀의 반응은 늘 모닥불에 휘발유를 뿌린 듯하다. 웃음과 기꺼움과 온몸의 움직임 등이 뒤섞여 활기가 넘친다. 장을 보다가 캐리어가 무거워지면 그 집에 맡겨 놓고 돌아다니는 일도 생기고, 친구들과 시장 안에서 막걸리 한잔을 하고 나오다가 산보를 하자는 친구의 말에, 주전부리를 구하러 그 집에 들러 뻥튀기를 내 것처럼 얻어가는 일도 있다.
지난주에는 아내가 시장 입구에서 참외를 미리 샀다. 그 집을 향해 가면서 나보고 참외를 하나 주란다. 본인이 직접 주면 될 것을 굳이 나보고 주란다. 평소 그 집에서 주고받는 나와 주인의 대화와 분위기를 익히 아는 터라 아내는 좀 더 오지랖이 넓은 나를 배려한 마음에서다.
참외 하나를 꺼내주고 가방을 맡겨 놓은 뒤 시장 안을 돌아 나오면서 아내에게 참외를 몇 개 샀었느냐고 물었다. 만원에 아홉 개를 샀다고 한다. 그러면 그 집에 하나를 더 주자고 하니 아내도 같은 생각을 한 것 같다. 캐리어를 찾고 나서 참외 하나를 더 꺼내주면서 보시(布施)의 애어(愛語)를 날렸다.
“두 분이니 하나를 더 드려야겠어요. 하나만 드린 것이 다시 생각해 보니 양심에 가책이 되어서요.”
흥정을 하던 손님과 안주인이 말뜻을 알아듣고 함께 기분 좋게 웃어젖힌다. 과묵하던 그 집 남편도 더 싹싹해지고 인사가 능동적으로 변했다고 느껴진다.
영광건어물집 안주인의 고객을 대하는 상냥한 마음이 나의 말 보시[愛語行]를 부르고, 이렇게 해서 더 좋은 인연이 확대 재생산되는 기분이다. 모든 사람의 인간관계가 이렇게 유지된다면 분명 걱정과 번뇌가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웃음과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받으면 건강한 면역세포가 왕성해지고, 그러면 암세포를 얼씬도 못 하게 한다는데!
오늘(2020.5.24./일)도 나는 말 보시(布施) 하나를 실천했다. 아내가 쉬는 날이므로 여느 때와 같이 둘이서 장 보는 캐리어를 끌고 길 건너 재래시장엘 갔다. 마트를 들러 식품들을 사고, 이불 가게를 들러 나의 베개를 사고, 다음 코스로 아내는 철판구이 식 매대에서 떡갈비를 구워서 파는 단골집 앞에 줄을 선다. 이전과 같이 매운 것을 하나 섞어서, 네 개에 현금으로 만원이다. 점원인지 주인인지 분간이 안 가는 아주머니는 아내 옆에 서 있는 나를 보고 한마디 던진다.
“사장님, 오늘은 왜 그렇게 멋있게 하고 나오셨어요?”
장사꾼이 단골손님에게 건성으로 인사치레하는 말이라고 그냥 흘려듣기에는 무언가 진심의 무게가 느껴졌다. 칭찬 듣고 기분이 좋지 않을 사람 없듯이, 나는 순간적으로 한마디 말로 은혜를 갚지 않을 수 없었다. 철판구이 매대 쪽으로 상체를 약간 기울이고 큰 소리로 말한다.
“저는 멋있는 사람의 눈에만 멋있게 보여요!”
“오오! 그래요?”
일이 초의 시차를 두고 그녀의 얼굴에 떠오르는 환한 미소를 보면서 나는 앞에 멀어져가는 아내를 서둘러 따라갔다.
사실 떡갈비 아주머니의 말 보시(布施)는 오늘이 처음이 아니다. 그녀의 특별한 관심과 언행은 일주일 전에 이미 내 마음 안에서 빛을 발한 적이 있었다. 그날도 아내가 주문하는 사이 나는 옆에서 장본 캐리어를 세우고 경호원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주머니는 바쁜 손놀림 중에도 나를 두 번이나 유심히 살피더니 한마디 했다.
“금슬이 너무 좋아 보여서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이 말을 두 번이나 연이어 말하면서 2,500원짜리 하나를 더 준 것이다. 나는 순간 그냥 있을 수 없어서, 호응하여 대답한다.
“아주머니가 엄청 예뻐요!”
사실 아주머니는 떡갈비를 구우면서 김을 쏘여서 그런지, 얼굴에 윤기가 흐르고 살결이 뽀얗게 보이는 사람이다. 이번에는 아주머니의 말이 정말 보살처럼 아름답다.
“아이!, 사모님이 더 예쁘죠.”
아내와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장을 보러 가는 편이다. 단골집 사람들의 뇌리에 우리 부부가 항상 같이 다니는 모습이 긍정적으로 새겨진 모양이다. 혹시라도 두 사람 중 혼자 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왜 혼자 오셨어요?’라는 질문을 꼭 받는다. 그럴 때 우리가 받는 관심은 나쁘지 않다. 같이 다니는 것은 어쨌든 좋은 점이 많은 것 같다.
첫댓글 술잔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바구하고 싶은 수모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