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 투쟁으로 얻은 노조 깃발] (3)깜깜이 교섭
정재은 기자
금속노조는 2014년 6월 29일, 블라인드 교섭을 통해 삼성전자서비스지회(아래 삼성서비스지회) 임금 및 단체협약(기준협약)을 체결했다. 삼성서비스지회에서 보인 금속노조의 교섭행태는 교섭상대와 교섭일시, 내용을 공개하던 금속노조의 교섭과 달랐다. 그것도 금속노조 중앙이 직접 챙긴 교섭에서 말이다.
금속노조는 당시 ‘실무교섭이 결렬되었다가 재개됐다’는 보도자료만 한 차례 냈을 뿐이었다. 현재까지 교섭상대가 원청인 삼성전자와 삼성서비스인지, 중간착취 구조의 협력사인지, 이를 대리한 경총인지 금속노조는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삼성이라는 특수성과 당시 상황에 대한 금속노조의 판단을 존중해 블라인드 교섭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1년이 지난 현재까지 평가에서조차 교섭상대와 과정을 밝히지 않는 것은 민주노조운동뿐 아니라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다. 교섭상대와 교섭과정이 불투명한데 무엇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비공개 1대1 교섭’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금속노조 상무집행위원회에 올해 2월 9일 ‘삼성전자서비스 염호석 열사 투쟁 및 2014년 임단협 투쟁평가안(아래 평가서)’이 제출됐다. 평가서에 따르면, 서울 서초동 삼성 본관 앞 ‘무기한 농성이 시작된 다음날인 5월 20일부터 사측의 물밑교섭 접촉’이 있었다고 한다. 그날은 염호석 열사의 유골함마저 탈취된, 사실상 장례절차가 마무리된 날이다. 사측은 6월 28일 최종 타결될 때까지 총 7차례 제시안을 제출했다고 한다. 당시 실무교섭 상황에 대해 평가서는 시기별로 기술하고 있다.
‘1대1 비공개 독대교섭’ 평가에서 금속노조는 “삼성자본은 원청의 사용자성이 드러나는 것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보였다. 이런 이유에서 삼성자본은 비공개교섭을 선호했다. 한편 노조 내부에도 ‘삼성공포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삼성자본이 교섭에 나왔다는 것 자체에 무게를 두었다. 삼성자본이 혹시라도 교섭에 나오지 않았을 때 장기투쟁으로 돌입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비공개 교섭을 거부하기 어려웠다. 교섭을 관장하는 노조는 적절한 방안을 찾지 못한 채 이런 교섭구조에 끌려가는 상황이 됐다”고 밝혔다.
이어 “노조는 원청이 막후에 존재하는 비공개 교섭을 용인했다. 원청이 어떤 식으로든 개입된 것에 대해 내부에서 어느 누구도 거부하기 힘들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교섭에서 원청이 막후에 등장한 것도 투쟁의 성과라면 성과라고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금속노조는 “비공개 교섭은 많은 문제점을 낳았다. 교섭에 대한 전적인 책임은 노조에 있다”면서 “삼성이 원청의 사용자성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이 있는 상황에서 교섭에 진척이 있으려면 원청이 요구하는 비공개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것은 의도치 않게 내부의 소통 문제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평가서에 따르면, 비공개 1대1 교섭은 첫째 현장 소통에 적절하지 못했고, 둘째 공개교섭, 집단교섭, 교섭회의록 등 기존 금속노조의 교섭관행을 완전히 파괴했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누구와 교섭했는지는 밝히지 않는다.
▲ 2014년 6월 29일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사 단체협약 조인식 모습. 왼쪽부터 우원식 새정치연합
의원, 윤욱동 민주노총 금속노조 사무처장, 박종길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 남용우 경총 노사대책본부장,
은수미 새정치연합 의원.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실체 없는 교섭
‘금속노조의 교섭관행을 완전히 파괴’한 ‘주체가 빠진’ 비공개 1대1 교섭에 대해 금속노조의 평가는 교섭상대의 실루엣만 보였을 뿐이다. ‘막후 존재 용인’이라는 드라마에서나 볼 법 한 교섭에 대해 현재까지 취재한 결과는 금속노조 위원장조차 이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평가에 따른 후속 논의나 조치는 없었으며 앞으로도 이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1대1 독대교섭으로 진행되었고 실무교섭팀은 이 교섭에 대한 보고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이에 교섭간사가 거의 교섭대표 역할을 하다시피 했다’, ‘원청의 막후교섭이라는 점에서 노사가 의견 대립시 이를 확인할 교섭회의록 한 장 있지 않았다’면서도 ‘원청과 가짜사장 이중 장벽에서 원청이 개입한 합의’라거나 ‘원청이 막후에 등장한 교섭’이었다는 평가를 덧붙이고 있다.
여기서 확인되는 유일한 사실은 ‘금속노조는 교섭회의록 한 장 없는 교섭결과를 가지고 체결권 행사를 위한 총회를 소집하고 이를 조합원에게 물었다’는 것이다. 긴 시간동안 삼성서비스지회 투쟁과 교섭을 하면서 금속노조의 이런 평가가 금속노조와 삼성서비스지회, 또 민주노조운동진영에 어떤 신호를 주게 될지? 금속노조의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기자는 알 수가 없었다.
비공개 교섭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취재해도 이와 관련해선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었다. “블라인드 교섭을 직접 한 교섭간사가 알고 있습니다. 저도 누가 나왔는지 모릅니다”, “제가 드릴 말은 없습니다”, “제가 교섭당사자가 아니고 정확히 묻지 않아서 모릅니다”는 담당 임원 및 실무담당자들의 답변만 들을 수 있었을 뿐이다. 직접 블라인드 교섭을 했다는 금속노조 교섭간사도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반면 삼성서비스 협력사를 대리한 것으로 알려진 경총의 황용연 노사대책팀장은 당시 비공개 1대1 교섭에 나온 삼성 사측이 본인이라고 주장한다. 황 팀장은 “나와 노조 교섭간사 둘이 만났다. 교섭장 주변에서 집회하는 등 교섭을 저해하는 환경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당시 교섭장소를 알리지 않았다”면서 “협력사와 협의 부분, 비용 등 원청이 부담해야 할 것에 대한 협의 부분은 있을 수 있지만 원청이 뒤에 있다는 블라인드 교섭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사실관계에 대해서도 노조 교섭간사는 “함구하겠다”며 확인을 거부했다.
‘어쩔 수 없었다’지만 뭘 어쩔 수 없었는지?
평가서에 따르면, “지회 전체 쟁의권을 가진 1천여 명의 조합원들 절대 다수가 서울 서초동 삼성 본관 앞 노숙농성(41일)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 가운데 비공개 1대1 교섭이 용인된 이유는 삼성이라는 특수성과 ‘노조 내부의 삼성공포증’이라고 표현되는 투쟁력에 대한 현실문제로 보인다. ‘원청이 개입되었다는 것을 알리지 말라는 사측의 요구가 있었기에 이것이 알려지면 교섭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노측 교섭단 내부의 불안감이 있었다’, ‘교섭에 진척이 있으려면 원청이 요구하는 비공개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다’는 평가에서 이는 충분히 확인되며 무엇보다 ‘사측이 요구하는 비공개 1대1 교섭’이 우선했음도 드러난다. 최소한 금속노조 실무교섭팀은 그랬던 것 같다.
출처: 정운 현장기자/ 미디어충청 자료사진
하지만 평가서에는 여전히 삼성자본의 특수성을 당연시할 뿐 민주노조운동, 금속노조가 추구한 가치 측면은 담겨있지 않다. ‘삼성 공포증’의 실체도 확인되지 않는다. 적어도 투쟁동력이 떨어지기 전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비공개 교섭으로 ‘노조 깃발 꽂자’고 주장했다면 투쟁으로 지켜낸 민주노조의 역사와 정체성이 반영된 교섭의 원칙,
훼손된 노조 내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과 문제제기는 담겨야 하지 않을까. 이런 측면에서 ‘주체(지회)가 교섭에서 주변적 역할을 하면서 결정적 문제’를 ‘투쟁요구와 교섭결과의 차이’로 분석한 평가는 책임문제를 회피한 것으로 보인다. 혹시 노동자들의 노조결성, 교섭, 쟁의행위라는 노동권의 문제를 ‘요구와 결과’라는 욕구충족의 문제만으로 금속노조가 바꿔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금속노조 스스로를 자판기로 착각하고 평가하는 것은 아닌지.
블라인드 교섭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에게
‘원청이 개입한 교섭’이었다고 하지만 2014년 6월 29일 삼성서비스 노사 기준협약을 체결하고 합의 1주일 내에 각 지역 센터별 교섭을 통해 마무리한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협력사가 합의서 이행을 위한 후속교섭에 응하지 않고 협의를 고의적으로 지연, 회피한다고 해서 다시 논란이 됐었다.
삼성서비스지회는 기준협약 체결 7개월이 넘은 올해 1, 2월에도 기자회견을 갖고 “단체협약 제26조에 따라 발생하는 폐업회피의무에도 불구하고 작년 10월과 올해 1월, 각각 진주센터와 마산센터가 폐업됐고, 올해 2월 서수원센터의 폐업도 예정돼있다. 단체협약 제56조에 따라 지급하기로 한 작업공구 역시 지급되지 않았다. 단체협약 제21조에서는 해고, 정직, 감봉, 견책 이외의 징계는 가능하지 않음에도 어디에도 규정이 없는 징계인 경고를 아무렇지도 않게 도입했다. 이미 80여 장의 징계장이 남발됐다” 등 삼성 사측의 단체협약 위반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렸다. 그러면서 “무엇보다도 중대한 단체협약 위반은 바로 임금 체불이다. 사측의 행태는 단체협약의 파기에 가깝다”며 “이로 인한 고통은 모두 삼성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의 몫이었다”고 했다. 이런 삼성서비스지회의 주장에 대해 당시 기준협약의 ‘막후 존재였다’는 삼성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최근엔 5월 삼성서비스 울산센터 사장이 직원들의 노조탈퇴를 압박하기 위해 노조간부인 울산센터 분회장을 ‘지심도라는 섬으로 사실상 납치해 노조 탈퇴를 노골적으로 요구’한 증언이 폭로됐고, 충남의 천안두정, 쌍용, 아산센터 3곳은 조합원의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는 등 부당노동행위 혐의의 취업규칙 개정이 시도됐다. 기준협약은 체결됐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측의 협약 위반, 노조탄압이 계속되면서 천안두정센터 한 조합원은 자결을 시도하기도 했다.
금속노조는 ‘특히 2014년 가장 논란이 되었던 민주적인 교섭구조와 현장과 소통하는 주체적 교섭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을 과제로 삼기 전에 블라인드 교섭 실체를 확인하고,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 이 교섭의 최대 피해자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에서 평가를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1년이 지난 평가서에서조차 교섭의 실체를 밝히지 않는 것은 노조활동과 투쟁의 주체인 조합원은 여전히 주변화 시키며, 삼성 사측의 이해에는 부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할 일이다.
덧붙이는 글
정재은 기자는 미디어충청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미디어충청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