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오피니언
[사설]檢 ‘수심위’ 묵살하고 기소한 이재용, 19개 혐의 전부 무죄
입력 2024-02-05 23:57업데이트 2024-02-06 09:05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굳은 표정으로 나서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분식회계와 주가 조작을 지시했다는 등 19개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등 13명도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20년 9월 검찰이 이들 14명에 대해 총 23개의 혐의를 적용해 기소한 지 3년 5개월 만에 모두 무죄라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2015년 제일모직 주식 1주와 삼성물산 주식 약 3주를 바꾸는 조건으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결의한 것이 이 사건의 발단이 됐다. 검찰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이 회장이 지분을 갖고 있던 제일모직에 유리하게 합병 비율이 결정됐고, 그 결과 삼성물산 주주들은 손해를 봤다고 판단했다. 제일모직의 기업 가치를 부풀리기 위해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를 부정하게 처리했다는 혐의도 포함됐다. 하지만 재판부는 하나의 혐의도 인정하지 않았다. 1심 판결이기는 하지만 검찰이 완패한 것이다.
검찰이 이 사건을 수사하고 기소할 때부터 무리수라는 지적이 많았다. 검찰은 2018년 12월 본격 수사를 시작한 이후 삼성 전현직 경영진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 끝에 이 회장을 두 차례 소환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이후 2020년 6월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는 위원 13명 중 10명의 압도적 다수 의견으로 이 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다. 검찰이 수심위 권고를 반드시 따를 의무는 없지만 이 사건 전까지는 8차례 수심위가 권고한 내용을 검찰은 100% 수용했다.
하지만 당시 이복현 부장검사(현 금융감독원장)가 이끌던 수사팀은 기소를 강행했다. 수심위의 권고를 거부한 첫 사례였다. 수사팀이 전문가의 의견과 비판 여론을 무시하고 기소를 고집한 결과가 ‘전부 무죄’다. 검찰로서는 자업자득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기소를 밀어붙인 이 원장은 무죄 판결에 대체 뭐라고 할 건가.
재판부는 이 회장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의 근거가 됐던 ‘부정한 청탁’과 합병 논란은 별개라고 봤다. 하지만 일반인은 삼성이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불법적으로 합병을 추진했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줬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국내외에 이런 잘못된 이미지가 형성돼 삼성에 치명적 타격을 줬다. 이에 더해 총수가 이 사건 공판에 96차례 직접 출석하는 등 재판에 발이 묶이면서 삼성의 글로벌 경쟁력에 큰 장애가 됐다. 무죄가 확정되더라도 이미 발생한 피해는 돌이킬 수 없다. 막강한 기소권을 함부로 휘두르지는 않았는지 검찰이 자성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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