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넘쳐 병원 앞뜰이 공동묘지로
의약품 창고 털리고 무덤엔 콜라병 묘비
14일 바그다드 서부 에스칸 지역의 아동중앙병원. 총을 든 자경단원 두 명이 약탈자들을 막으려 정문을 지키고 있다.
병원 근처에 사는 카이스 압두 사데(31)는 이라크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다. 그는 밤새 병원을 지키고 집에 가서 잠시 눈을 붙이는 일을
20여일째 계속하고 있다. 그를 포함해 자경단원은 모두 16명이고 10자루의 총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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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4일 이라크 바그다드 아동중앙병원에서 미군의 집속탄에
부상한 헤세인 알리 헤세인이 손과 다리에 붕대를 감은 채 어머니의 간호를 받고 있다. [바그다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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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석 의사인 카심 알라히의 안내를 받아 병원을 둘러볼 수 있었다. 2층 병실에는 여러 종류의 환자들이 누워 있었다. 4인용 병실에
병상 두 개를 더 넣었는데 전쟁 중에는 병상이 모자라 아우성이었다고 한다.
한 병실에 누워 있는 헤세인 알리 헤세인(13)은 두 다리와 양 손, 몸통 등에 중상을 입었다. 바그다드시 도라 지역에 있는 집 앞에서
미군이 투하한 불발 집속탄을 밟았던 것이다. 아버지와 두 형, 사촌형제들까지 다쳐 병원으로 실려 갔다. 의사 알라히는 "치료가 끝나도 헤세인의 몸이 온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병실을 나오면서 머리에 손을 얹고 "마살라마"라고 작별 인사를 했다. 아무런 표정없이 헤세인은 여전히 공포에 질린 두 눈만
껌벅였다.
계단에서 한 여인이 울고 있었다. 아이가 아침에 죽었단다. 그녀가
너무 구슬피 울어 차마 "왜 죽었습니까"라고 묻질 못했다.
알라히에 따르면 요즘에도 이 병원에선 하루에 1~2명이 죽어나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루 사망자가 수십명이나 됐다. 연고자가 없는 시신도 많았다. 시신 안치소가 넘쳐 병원 측은 그들을 정원에 묻었다. 정원 한 구석의 임시 공동묘지에는 무려 1백여구가 가매장돼
있었다.
깊이가 1m도 안되는 구덩이에 시신을 넣고 흙을 덮었다. 그 위에 콜라병이나 생수병이 거꾸로 꽂혀 있다. 병 속에 들어 있는 종이에는 사망자의 이름과 사망 날짜, 인상착의 등이 적혀 있다. 이름과 신원이 없는 이도 있다. "신원불명. 젊은 시리아인. 모스크에서 발견…." 이런 표지판도 서 있다.
무덤마다엔 비극적인 사연이 있다. 한 어머니는 미군의 폭격을 받고
두 아이를 끌어안은 채 신음하다 병원으로 옮겨졌다. 세 사람은 같은
무덤에 묻혔다고 한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느 이라크 병사의 시신
주머니에선 '나의 동생 아흐마드 알 하이더에게'라고 적힌 편지가 발견됐다.
병원 의약품 창고는 약탈자들에게 털려 거의 비어 있었다. 다행인
것은 약탈자들이 팔려고 가져간 의약품들을 동네 의사들이 대부분 되가져온 것이다. 지금 이 병원에서 시급히 필요한 것은 전기와 물이다. 발전기 용량이 모자라고 물이 부족하다.
전날 국제적십자사 요원들이 찾아와 물.전기 지원을 약속했지만 언제 해결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응급환자용 산소도 거의 소진되고
있다.
바그다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