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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동균은 뛰어난 골키퍼의 첫번째 조건으로 수비진을 이끄는 능력을 꼽는다.
사진 김수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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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월드컵을 준비하면서 거스 히딩크(62) 감독이 한국축구의 미래를 위해 국가대표팀과 함께 훈련하도록 배려했던 정조국, 최성국, 여효진 등 4명의 선수 가운데 한 명이었던 염동균(25,전남 드래곤즈)이 마침내 6년 만에 대한축구협회 엠블렘을 가슴에 달았다.
협회가 1월 17일 26명의 허정무호 1기 최종명단을 발표했을 때 염동균은 전남 광양에서 팀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김봉수(38) 골키퍼 코치가 구단 관계자와 얘기를 나눈 뒤 곧이어 염동균을 불렀다.
"대표팀 최종명단에 네 이름이 있다. 이번에 한번 네 실력을 발휘해 봐라." 훈련이 끝난 뒤 숙소로 돌아온 염동균은 아버지에게서 축하 전화를 받았다. "아들아, 축하한다"로 시작한 아버지의 전화는 "이제부터 더 잘해야 한다"로 끝이 났다.
1월 25일 광양에서 만난 염동균은 대표팀 최종명단 발표가 있었던 1월 17일 느낌을 이렇게 털어놨다.
"그동안 대표팀 얘기가 계속 있었지만 실제로 뽑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표팀 명단에서 빠져도)섭섭한 마음은 없었다. '내가 부족한 거겠지'라고 겸허하게 생각했다. 김코치님에게 대표팀에 뽑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그저 덤덤했다. 곧이어 여기저기서 축하 전화가 오고 아버님과 통화를 하고 나니 비로서 실감이 났다.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어렵게 잡은 기회인 만큼 열심히 잘해 볼 생각이다."
염동균과 김영광한때 전남의 수문장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얼굴은 대표팀 골키퍼 김영광(25,울산)이었다. 전남 고흥 출신인 김영광은 전남의 클럽 유소년 팀인 광양제철고를 거쳐 2002년 전남에 입단했다.
일찍부터 이운재(35,수원)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평가받은 김영광은 붙박이로 전남의 골문을 지켰다. 그러나 2006년 시즌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김영광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던 동갑내기 염동균이 광주 상무에서 돌아와 쾌조의 컨디션을 보이고 있었다.
전남의 허정무(53) 감독은 주전 골키퍼 경쟁에 불을 지폈다. 염동균과 김영광을 번갈아 경기에 내보냈다. 시즌 초반에는 김영광의 대표팀 일정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김영광이 대표팀에서 돌아온 뒤에도 허감독은 둘의 경쟁 구도를 유지했다.
염동균은 2006년 시즌을 앞두고 브라질로 전지훈련을 갔다. 김영광은 대표팀 일정 때문에 함께 가지 못했다.
염동균은 "브라질에서 이를 악물고 정말 열심히 뛰었다. 브라질에서 나름대로 자신감을 얻고 돌아왔는데 정규리그 2차전인 울산 원정경기 때 황선홍 코치님이 조용히 불렀다. '몸 상태가 어떠냐'고 물으시길래 '좋다'고 했다. 이어 허감독님께서 '잘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다. 감독님이 확실한 태도를 좋아하셔서 '네, 자신있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 경기에서 전남이 1-0으로 이겼다. (김)영광이와 경쟁이 시작된 것은 그때부터"라고 설명했다.
염동균은 2006년 시즌 컵대회를 포함해 25경기에 나서 18골을 내줬다. 경기당 평균 실점이 0.72골이다.
김영광은 2006년 시즌 컵대회를 포함해 13경기에 출전했고 16골을 내줬다. 경기당 평균 실점이 1.23골이다. 허감독은 선택을 해야 했다. 마침 울산에서 김영광의 영입을 원했고 전남은 실리를 챙겼다.
허감독은 2006년 12월 21일 광양 백운대에서 열린 전남 비전 선포식에서 "전남의 연간 예산 규모로 봐 김영광을 계속 데리고 있을 수 없었다"며 "(김)영광이를 대신할 염동균이라는 좋은 골키퍼가 있다. 사실 두 선수가 함께 있으면 서로에게 좋지 않다. 이운재와 김병지가 같은 팀에 있는 것과 같은 모양새"라며 김영광의 이적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염동균은 하루 아침에 떠오른 스타는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김영광과 골키퍼 랭킹 1,2위를 다투던 기대주였다. 강릉상고를 졸업하고 전남에 입단할 때 만해도 김영광보다 높게 평가받았다.
둘의 관계가 역전된 것은 2002년 10월 카타르에서 열린 19세 이하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였다.
정조국(24,FC서울), 최성국(25), 김동현(24,이상 성남) 등의 활약에 힘입어 한국이 우승을 차지한 이 대회에서 염동균은 벤치에 앉아 김영광의 활약을 지켜봐야 했다.
염동균은 "(김)영광이는 승부욕이 굉장히 강하다. 2006년 시즌 경기에 자주 나가지 못하자 나를 의식적으로 경계하는 눈치가 보였다. 친구이자 라이벌로 보면 된다. 우리는 서로의 자존심은 꼭 지켜주는 사이다. 광주 상무에 있을 때 대표팀에서 뛰는 영광이를 보며 부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대표팀에 뽑힌 이제서야 영광이와 같은 출발선에 선 느낌이다. 영광이가 이번 대표팀에는 빠졌지만 다음에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넘버 원' 골키퍼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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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감독은 칠레전에서 수문장으로 김병지와 정성룡을 투입했다. 그러나 김병지의 부상으로 골키퍼 주전 경쟁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염동균(오른쪽)에게도 기회는 있다.
사진 이휘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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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6일 투르크메니스탄과 치를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1차전을 앞두고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그동안 대표팀 골문을 지켰던 이운재(35,수원 삼성)는 음주 파문 징계를 받아 당분간 대표팀에 뽑힐 수 없다.
대표팀의 주전 수문장이 없는 상태다. 26명의 최종명단에 이름을 올린 골키퍼는 김병지(38,FC서울), 염동균, 정성용(23,포항) 등 3명이다.
경험이 많은 김병지의 우세가 예상되지만 염동균과 정성용의 도전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팀의 김현태(47) 골키퍼 코치는 "이름으로 축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고 최고의 컨디션을 보이며 경쟁에서 살아남는 선수가 주전 골키퍼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혹을 바라보고 있는 김병지의 대표팀 발탁은 극적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벤치를 지켰던 김병지는 그해 11월 브라질전에서 교체 투입된 이후 5년2개월 동안 대표팀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대표팀에서는 이운재, 김용대(29), 정성용 등에 밀려 잊혀진 이름이 됐지만 K리그에서는 500경기 출전에 도전하는 등 변함없는 기량을 뽐냈다. 꾸준하게 몸을 관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K리그의 활약을 바탕으로 대표팀 명단을 짰다는 허정무호 1기 엔트리에 그의 이름이 들어간 것은 당연한 결과다.
염동균에게 이런 김병지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다. 염동균은 "다른 선수라면 몰라도 (김)병지 형과는 경쟁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우상이었다. 병지 형이 있어 골키퍼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염동균이 김병지를 처음 만난 것은 연습생 신분으로 2002년 한일월드컵대표팀에 합류했을 때다. 염동균은 대선배인 김병지와 한 방을 썼다. 둘은 이때 부쩍 가까워졌다.
염동균은 대선배에게 골키퍼에 관한 많은 내용을 배웠다. 염동균은 김병지의 애정어린 조언을 기억하고 있다.
"(김)병지 형이 한번은 이런 얘기를 했다. '네가 성장하다보면 어느새 높은 자리에 올라가 있을 텐데 그럴 때일수록 초심을 잊지 말아야 오랜 기간 선수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을 절대로 잊지 마라'라고. 오래 전 얘기인데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염동균은 "뛰어난 골키퍼는 어떤 골키퍼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김병지에게서 찾는다.
"골키퍼는 동물적인 방어 감각이나 뛰어난 순발력이 있어야 잘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선 골키퍼고 제대로 된 훈련을 꾸준히 받은 골키퍼라면 경기력은 엇비슷해지게 된다. 내 기준으로 뛰어난 골키퍼의 첫 번째 조건은 수비진을 이끄는 능력이다. 수비진과 꾸준한 대화를 통해 수비수들의 위치를 잡아주고 상대 공격의 흐름을 알려줘야 한다. 또 동료 선수들이 지쳐 있다고 판단이 되면 일부러 경기 속도를 늦추는 플레이도 할 줄 알아야 한다. 국내에서 이런 플레이를 가장 잘하는 선수가 바로 (김)병지 형이다."
염동균 vs. 김병지염동균은 자신의 본보기로 삼은 김병지(38,FC서울)와 맞대결에서 6번 만나 6번 모두 진 악연이 있다.
염동균은 6차례 대결에서 10골을 내줬고 김병지는 1실점했다. 김병지는 한 골을 내준 한 경기를 빼면 염동균과 대결에서 5경기 무실점의 우위를 보였다.
2005년 시즌 염동균이 광주 상무 소속일 때 김병지는 포항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둘은 그해 3차례 맞붙었는데 염동균이 3패했다. 3월 13일 경기에서는 1-2로 졌고 6월 12일 경기에서는 0-1로 무릎을 꿇었다.
10월 23일 경기에서는 0-3으로 완패했다. 염동균이 전남으로 복귀하고 김병지가 서울로 이적한 2006년 시즌 이후에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염동균은 2006년 10월 21일 열린 전남-서울전에서 팀의 0-2 패배에 고개를 숙였고 지난 시즌 두 차례 맞대결에서는 모두 0-1로 졌다.
팀의 패배가 골키퍼 만의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염동균은 김병지와 맞대결에서 한번쯤은 이겨보고 싶다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염동균은 "(김)병지 형과 맞대결한 경기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난 단 한 번도 병지 형을 이겨보지 못했다. 2008년 시즌에는 꼭 한번 이겨보고 싶다. 아마 병지 형도 그러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염동균
생년월일 | 1983년 9월 6일
신체조건 | 189cm/85kg
소속팀 | 전남 드래곤즈
포지션 | 골키퍼
K리그 성적 | 62경기 62실점
약력 | 2002년 전남 드래곤즈 입단
2004년 광주 상무 입대
2006년 전남 드래곤즈 복귀 SPORTS2.0 제 89, 90호(발행일 2월 11일) 기사
첫댓글 김영광은 타고난 피지컬에 승부근성까지 갖춰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던 선수이고 염동균은 기복없고 안정적인 선수. 거기다 군복무까지 해결 했으니 무조건 염동균승!!ㅋㅋ 김병지, 이운재 하고 비슷한 경쟁구조가 계속 될거 같네요.
청대시절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실수가 진짜 좋은경험이있얼듯..병역도 일찍 해결했고 정말 기대되는 골키퍼 ㅎㅎ
와 병역문제도 해결됬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