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다 바닥에 주저 앉은 채로,나는 담벼락에 지민은 내 어깨에 기대서 그렇게 몇 년만의
해후를 했다.
"그럼...너도 나 기다린거야?"
"그걸 말이라고 해?기다려 달라며!"
"그럼 결혼 얘긴 뭐야."
"내입으로 한 얘기도 아니잖아 어떻게 남한테 들은 얘기로 나를 의심해?"
"그럼 아냐?"
"이것봐...또 이럴거면 나 더이상 할 얘기..."
"그래,다른거 필요 없어.내가 너 사랑하고 또..니가 아니래도 이제는 내가 너 못보내.
그동안 너 힘들게 한거 나니까..내가 멋대로 오해 했으니까."
"..."
"미안해....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우..우욱...왜 이제야 말해.내가...얼마나...기다렸는데..."
"또 울어?이제 그만 울어.다 안다니까.
"아앙...바보 서태지야 니가 알긴 뭘 알어...니가 알기나 해?"
"그래,그래.모른다 됐지?근데 그거 알어?"
"...모.."
"너 마스카라 다 번졌어."
"아악-정말?"
후다닥 두 손으로 얼굴을 다 가려 버리는 그녀가 이제야 좀 솔직해진거 같아 마음이
놓인다.내 앞에서 이제...더 이상 괜찮은 척 강한 척 하지말고 지금처럼만 해.
아프면 울고 힘들면 기대고 나 맘에 안 들면 소리도 지르고 욕도 막 하고...정 미우면
때려도 돼.니 주먹으로 맞아서 아파봐야 얼마나 하겠니...설마 니 마음 보다 더 아플라구...
"뭘 가리고 그래.다 봤는데...그 쪽 아냐 이리와봐."
"시..싫어."
"싫긴 뭐가 싫어.어차피 나 밖에 안봤어."
이제는 무릎까지 세워서 얼굴을 아예 가려 버린다.팔은 두다리를 꽁꽁 감싼채로.
내게 안 보이려 바둥 대는게 꼭...뒤집어진 강아지 마냥 사랑스럽다.
"지민아~"
"그게 싫어."
"뭐가."
"오빠밖에 못 봤다는거 싫어.오빠만 못 봤음 좋겠어."
야...한지민...
너 이렇게 귀여운 애였어?이렇게 한 없이 어리고 순진한 애였어?
그러면서 여태 숨겨온 거야?아...한지민 너 정말...
"아...한국가기 싫다."
"왜."
"돌아가면...너랑 이렇게 못 있을거 아냐."
"...맞다!머리!"
"머리...모?"
"아앙...난 몰라.오빠 머리 해야 되는데..."
"헤헤..."
"왜 웃어?"
"다 봤다.마스카라 번진거."
"치...치잇.얼른 가."
이렇게 웃어서 오빠가 편하면...그냥 나 이대로 웃어줄 수 있는데.
나야말로 이젠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어.정작 오빨 믿고 있지 않았던건 나일지도 몰라...
모르겠어...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우리 사이 불안해.이렇게 갑자기 모든게
풀려 버리는 것도...이렇게 함께 있는 시간도 다 거짓말 같애.
날 못믿었잖아.사랑한다면서 내가 현석오빠한테 갈꺼라 의심 했잖아.
나야말로...내 전부를 걸만큼 당신을 믿지 못하겠어.내가 무너지면 당신을 구할 수 없거든.
내 전부를 걸고 무너질 수 없거든...
아직 잘..모르겠어.오빠 말대로...오빠가 온전한 내 사람인지.아니...내가 온전히 당신께
될 수 있을런지.다음번 오해엔...내가 견뎌낼 수 있을는지.
"...다들 기다리겠다.얼른 가자."
"그래."
당신의 따뜻한 손에 의지해도 되는지...이대로 맞잡아도 되는지.
"아...미안.너무 갑자기라 놀랬어."
"아니야.손 잡아도..돼?"
"늦었어 빨리 뛰어가자."
사랑하는건 변함이 없어.단지...곁에 있어도 불안해.
그것 뿐이야.
"알고있어?처음부터 널 사랑한건 나야!형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였어!"
멀찌감치 뛰어가던 지민의 발목을 잡은건 그의 절규 였다.지민이 불안하고 초조해 하는 만큼
그저 웃고만 있는 것도 버거운 건...그도 마찬가지이기에 그것 조차 모를리 없는 지민 이기에
더욱더 이 순간이 위태롭게 느껴졌다.
"알아.알고 있어."
"근데 뭐야!대체 왜 그래!오해 였잖아.이제 다 풀고 너도 나도 사랑한는 일만 남았어!
근데 왜 난...달라진게 없다고 느껴지는 거야.너...왜 내게 그대로니."
불안한 듯 떨려 오는 그의 목소리는 지민의 머리 속에서 다시 한번 울렸다.
아스라히 퍼져가는 그의 목소리의 끝을 붙잡아 내안 어딘가에 깊숙히 파묻고 원할 때면
꺼내들고 다그치고 싶었다.왜..왜...사랑하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힘이 드냐고.
그 어두운 끝자락에 대고 뺨을 부비고 입을 맞추며...애원하고 싶었다.
오만하고 도도한 자태로 그의 시선을 외면 하는 지금의 내가 아닌 한지민 그 본질
속으로 되돌아가...그의 바지 자락을 잡고...울며 매달리고 싶었다.
...날..버리지 말아요.
이제 더 이상 혼자 남겨져 일어설 자신이 내겐 없다.그래서 더더욱 그에게 나를 맡길 수가 없다.
이렇게 그에게 기대고 의지하다 나를 모두 잃고 그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건 아닌지.
하지만...그에게 부담이 되는 말들이..왜 나에겐 절실한 말들로 다가 오는지.
가끔씩 나도 잊고마는...그는 서태지라는 것.
다른 연인들에겐 문제가 될 수 없는 것들이...우리에겐 가장 큰 문제라는게 지금의 결론이야.
나는 사랑 받길 원하고 영원하길 바라는데...서태지는 그게 너무도 어렵다는거...
당신에게 난 사랑해달란 말을 할 수 없어.
...당신...서태지잖아.내가 그토록 원하던...아니,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서태지 잖아.모두가 원하지만 결국 얻게 되면 죽음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서태지 잖아.나...배겨낼 자신이 없어.
"...사랑해."
"지민아..."
"사랑하는데...나 미칠거 같애.솔직히 말해서...나 너무 무서워."
아무도 없는데로 도망가서...우리 둘만 해가 떠서 질 때까지 지겹도록 바라보고 있는거야.
하루종일 끌어안고 간간히 사랑한단 말도 좋겠지...
하지만...내가 사랑한건 정현철 만이 아니야.
난 뮤지션으로서의 태지를 사랑했어.누구보다 그를 기다리는 팬들의 맘을 안다고.
연인의 자리도 팬의 자리도...어느것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
"그래도...사랑해.오빠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일을 하든지...사랑하는 맘은 변함이 없어.
근데 왜 자꾸만..."
"사랑해...그것만 생각해."
태지는 힘있게 지민을 끌어안았고 지민은 더 이상 울지 않았다.그가 주려는 확신은 그
어느때보다 강한 것이었고 지민 또한 그 맘을 어느때 보다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보고싶었어.아주 많이."
"응.나도 그래."
"아니야,내가 더 많이 보고 싶었어."
"억지부리지마.내가 훨씬 많이 보고 싶어 했어."
"토달지마,서태지,이제 내 맘대로 할꺼야.그동안 오빠가 나한테 얼마나 나쁘게 했어?"
"그래 니가 더 많이 보고 싶어했다고 쳐.그대신 내가 더 많이 사랑해."
"좋을대로 해.어디 많이 사랑 안해주기만 해봐.나 현석오빠 한.."
누그러진 기분에 얼떨결에 나온 현석의 이름이 지금의 알콩달콩한 분위기와는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다는걸 알지만 벌써 뱉어버린 말에 지민은 그나마 조금 살아났던 기분이
땅을 파고 도로 들어가버리는 것처럼 느껴졌다.왜 하필 그런 농담이 나오는 거야.
..아...씨.분명...태지오빠 미안해할텐데.하지만 태지는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을 뿐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지민의 눈을 맞췄다.
"형한테 가서 다 일러버려.서태지 그 나쁜 놈이 거짓말만 잔뜩 한다고."
"오..빠.."
"그래야 나도 긴장하고 너한테 더 잘하지."
"멋있는 척 하는거지 지금?"
"멋있는 척이 아니라 멋있는 거야.그나저나 어쩌나 우리 이쁜이 노리는 놈들이 한둘이 아닐텐데."
"놀리지마."
"아니야.진짜루 이뻐졌어.겨우 몇 년 떨어져서 이렇게 이뻐지는 줄 미리 알았으면
한 10년 있다가 오는 건데."
"근데...뭔가 이상하지 않어?"
"응..?모가.?"
"왜 우리가 지금 여기 있는거...아악!공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