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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마이클 조던(Michael Jeffrey Jordan, 1963년∼)
미국의 前 농구 선수, 야구 선수, 현 사업가이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슈팅 가드. 現 NBA 팀 샬럿 호네츠와 NBA G 리그 그린즈브로 스웜의 구단주 겸 사업가이다.
NBA를 비롯해 그 누구도 이견이 없는 독보적인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미국 역사상 최고의 스포츠 스타 1위에 선정된 인물이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운동선수 중 한 명이다. 또한 농구를 넘어 1990년대 전세계 대중문화의 아이콘 중 하나였으며, 대중음악계의 마이클 잭슨과 더불어 미국의 인종차별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 중 한 명으로 자주 거론된다.
별명은 Air, His Airness, MJ, Black Cat, Black Jesus 등으로 불리고, 한국에선 농구 황제, '그 분', 마 사장, 쪼잔왕, 미카엘 요르단, 역사상 최고의 소인배, 조틀딱, 신발 장수 아저씨 등으로 불린다. 그리고 단순 저지넘버에 지나지 않던 23번을 그 자체로 상징으로 만들어버린 사람이기도.
2. 특징
선수 시절 등번호는 23번. 워낙 그가 유명해서 농구의 23번 하면 100% 조던. 농구가 아니더라도 조던 세대들은 숫자 23을 조던 넘버라고 부르기도 한다. 농구인들끼리는 암묵적으로 23번이 축구에서 10번이 가지는 상징 그 이상으로 여겨지거나 아예 부담으로 느껴지는 경우도 있는 만큼 조던이 아무 의미 없던 특정 백넘버에 이 정도 의미를 부여했을 정도로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남겼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그의 시그니처 농구화로는 에어 조던이 있다.
지금도 NBA를 비롯하여 역대 최고의 농구 선수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슈퍼 스타로 농구 그 자체를 대표하는 선수. NBA를 지금의 위치로 올려놓은 두 인물 중 하나로, 나머지 한 명이 커미셔너를 역임한 데이비드 스턴임을 감안할 때, 선수인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 봐도 좋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농구 선수 역대 탑1이다.
순수기량과 커리어 자체도 정상에 있지만, 거기에 계약서에 "상기에 명시된 경기 이외에 몇 경기를 그저 농구가 좋아서(for the love of the game) 돈을 받지 않고 뛰어줄 수도 있다"고 할 정도로 그야말로 '농구에 미친 사람'이었고, 더불어 미디어에 자신을 포장할 줄도 알았으며 이미지 메이킹에도 천부적인 소질을 발휘, 즉 실력도 실력이지만 조던이라는 사람 자체의 스타성과 상품성이 매우 뛰어났다. 매직 존슨, 래리 버드의 라이벌리 시대가 끝나가는 시기인 1990년 초에 최정상 자리를 차지하면서 자연스럽게 NBA 대표스타로 떠오를 수 있었고, 그 당시부터 위성 방송으로 라이브 경기를 세계에서 비교적 싼 값에 송출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기 때문에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지금과 같이 인터넷이나 스마트 기기들로 활발히 정보 교환이 되는 시기도 아니라 이미지 메이킹에 더욱 편리한 시대였기도 했다. 물론 미디어의 발달 차이로 인해 조던의 경우 현재 스타들에 비해 노출도에서 훨씬 떨어지기에 이득이 되는 건 오직 이미지 메이킹 하나 때문인데, 사실 조던은 본인의 소심하고 지독하기까지 한 승부근성이 다 까발려진 이후인 2010년 이후에도 계속해서 농구 선수들 중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했다.
압도적인 실력과 시대적 배경을 떠나도 그의 생애 자체가 마치 짠 것처럼 너무나도 드라마틱한 것 역시 그의 인기에 한몫하고 있다. 잘하는 선수야 많았지만, 이렇게 각본을 쓴 것처럼 농구 인생이 드라마틱하고 극적인 요소가 많은 농구 선수는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팀 선발에서 탈락, 이후 실력을 갈고닦아 전미 최고 수준의 유망주가 됨
대학 1학년 때 당시 기준으로 농구 역사상 가장 많은 유료 관중들 앞에서 역전 위닝슛을 터트려 팀을 우승으로 이끔
프로 2년차, 부상당하고 복귀한지 얼마 안되어 역대 최고의 팀 중 하나이자 당대 최강팀을 상대로 터트린 플레이오프 최다득점(63점) 기록
NBA 역사상 최초로 시리즈 최종전에서 지고 있는 팀이 버저 비터로 역전승한 The Shot
리그 최하위권 팀에 데뷔해 한 단계 한 단계씩 성장하며 리그 최강이던 피스톤즈를 상대로 레벨업을 하듯 2승 4패, 3승 4패로 매해 1승씩 더 거두다가 결국 디펜딩 챔피언이던 피스톤스를 4:0으로 스윕하고 결승 진출
80년대를 양분하여 지배한 매직의 마지막 파이널과 맞물린 그의 첫 파이널, 대관식을 하듯 매직과 비슷한 방식으로, 매직보다 더 뛰어난 활약을 하며 승리해 첫 우승
같은 포지션의 라이벌이었던 클라이드 드렉슬러와 맞붙어 모든 면에서, 심지어 약점이라 여겨졌던 3점슛에서조차 그를 능가하며 두 번째 우승
동년배들 중 처음으로 MVP 투표에서 조던을 제낀 절친 찰스 바클리를 압도하며 한 세 번째 우승
모든 걸 이룬 바로 그 해 찾아온 아버지의 피살이라는 비극, 이로 인해 정상의 자리에서 미련없이 은퇴, 아버지와의 추억이 서린 야구라는 스포츠로 도피
야구계 파업과 함께 복귀, 그러나 첫 해 겪은 좌절
좌절을 딛고 이뤄낸 NBA 사상 한 시즌 역대 최다승 기록, 복귀 후 네 번째 우승을 아버지의 날에 이뤄냄
다시 오른 파이널 무대에서 2:2로 팽팽히 맞선 승부처, 하필 그 때 식중독에 걸려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안 좋은 몸 상태를 딛고 팀을 승리로 이끈
커리어 마지막 파이널 무대의 마지막 경기에서 믿었던 2인자의 부상 재발, 동료들의 단체 부진을 딛고 원맨쇼로 꾸역꾸역 따라가다가 마지막 순간에 스틸+역전 위닝샷
리그 최고의 선수로 우승까지 거머쥔 상태에서 다시 한 번 정상에서 미련없이 은퇴
웬만한 선수들은 커리어에 몇 번 있는 정도인 극적인 사건이 거의 매 시즌마다 있을 정도로 엄청난 드라마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사실 짰나 싶을 정도로 극적인 일을 겪은 것이 그의 커리어를 전설로 만드는 데 한몫은 했지만, 순수하게 스포츠 커리어 측면에서만 보면 손해도 많이 봤다. 조던은 명성에 비해 비교적 짧은 선수생활을 보낸 선수이다. 특히 그는 신체와 기량이 정점에 달한 30세에 아버지가 살해당해 갑자기 은퇴를 해 한 시즌 반, 다른 스포츠에 적응하느라 낭비한 시간을 합하면 거의 2년을 허비했다. 또한 98시즌에는 비록 하락세이긴 했지만 리그 최고의 기량을 유지하던 MVP가 돈 문제로 팀을 해체하고자 한 구단주로 인해 35세 나이에 은퇴를 했다. 이미 굵직한 커리어에 무언가를 더 추가할 기회를 두번이나 날린 셈.
이 점 때문에 그의 워싱턴 복귀를 안 좋게 보는 팬들도 많다. 물론 워싱턴 시절에도 커리어 로우 득점을 한 이후 비판의 시선을 잠재우는 51점, 역대 유일하게 40점을 넘긴 40대 선수, 버저 비터 게임 위닝샷 이후 해설자의 "Michael Jordan, the greatest player of all time!"이란 외침 등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많았지만, 시카고 시절만큼 극적인 순간은 없었다. 사실 51점이나 40대 40점은 모두 경기력 면에서 보면 굉장히 극적이지만, 이런 식으로 극적인 사건은 꽤나 흔하다. 조던이 더 특별했던 것은 조던 본인의 개인사나 스포츠 외적으로 봐도 극적인 면모가 더해졌던 것이다. 정상에서 은퇴하는 선수들은 종종 있지만 아버지의 피살로 인해 은퇴하는 이들이 얼마나 있는가? 또한 그 비극을 딛고 복귀했는데 하필 아버지의 날에 정상에 복귀하는 건 또 얼마나 극적인가? 조던과 다른 "역대급으로 잘하는" 선수들을 구분짓는 그런 드라마가 워싱턴 시절엔 없었던 것.
또한 시카고 불스는 조던 이전 9시즌 동안 2시즌 밖에 플레이오프를 못 간 약체팀이었는데, 조던은 불스에 뽑히면서 "내가 이 팀에 가는 이상 반드시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겠다"라고 선언했고 정말로 그 약속을 지켰다. 조던이 불스에서 활약한 전 시즌 내내 불스는 플옵에 진출했다. (13시즌, 1984-1993, 1995-1998)
마이클 조던의 위대함은 그가 경력을 통해 쌓은 실적과 기록, 그리고 아직까지도 채 식지 않은 인기로 증명되고 있지만, 더욱 대단한 것은 다음과 같은 영향을 아직까지도 NBA에 남기고 있다는 점이다.
슈팅가드 포지션의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자세한 건 마이클 조던/플레이스타일 문서 참조.
NBA 패러다임 변화의 중심 인물 중 한명이다. 역대 NBA를 지배했던 것은 조지 마이칸 ~ 빌 러셀과 윌트 체임벌린 ~ 카림 압둘 자바로 대표되는 빅맨들이었으니, 가드인 매직 존슨과 포워드인 래리 버드로부터 시작된 변화의 정점을 찍은 게 바로 조던이라고 볼 수 있다. 예전에는 큰 선수들은 당연히 골밑 플레이를 익혔으나 빅맨의 체격으로 퍼리미터에서 뛰는 매직의 등장은 70년대생 선수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기존의 센터급 선수들이 다재다능한 포워드가 되는 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 이후 태어나 매직보다는 조던을 보며 자란 코비 브라이언트, 트레이시 맥그레디 등 스윙맨들이 난립하게 된다. 한편 이러한 변화가 지속되며 빅맨이건 윙플레이어들이건 너나할 것 없이 골밑 기본기와 풋워크보다는 화려한 외곽 플레이를 연습하는 트렌드가 자리를 잡았다. 또한 매직과 버드는 본인이 팀의 명확한 1인자였지만 뛰어난 센터가 곁에 있었던 것에 비해, 센터 슬롯이 악체였음에도 리그를 지배한 조던 역시 당시 패러다임에서 아주 벗어난 케이스였던 셈.
수많은 팀들이 외곽 중시 트렌드로 인해 탁월한 센터 없이 농구를 하는 방향으로 전술을 짜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현재와 같이 센터에 의존하지 않고 외곽에서의 볼과 선수들의 움직임이 중요한 시스템 농구, 퍼리미터 위주 농구가 대세가 되었다. 또한 가드나 포워드들 사이에서 훅슛 등 골밑에서 득점기술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돌파에 이은 레이업과 다른 개념이다) 대신 3점슛이 기본 소양으로 자리잡아, 현재 3점을 아예 못 쏘는 1~3번은 매우 드물고, 반대로 3점을 수준급으로 쏘는 빅맨들이 많아졌다. 즉, 무게 중심이 골밑에서 외곽으로 바뀌었다. 물론 조던 개인은 3점을 선호하지도, 특출나게 잘 쏘지도 않았지만 이러한 '압도적인 골밑 플레이어에 대한 의존도를 탈피'한 현 트렌드에는 매직, 버드 등과 함께 영향을 미친 셈이다.
핸드체킹룰의 변화 또한 그의 간접적 영향. 빅맨 중심의 농구라면 지향할 수 없었던 룰의 변화는 조던의 은퇴 후 조던과 같은 스타를 양성하기 위해 상대적인 이득을 스윙맨에게 부여함으로써 경기의 재미를 극대화하고자 했던 NBA의 노림수였다. 그러나 정작 이 룰은 조던의 1차 은퇴 후에 도입되었다. 물론 2차 복귀 후에는 예전보다 하락한 운동 능력에도 NBA를 지배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NBA의 세계화에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 사실 드림팀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처음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NBA 선수들이 참가하는 것을 처음에는 데이빗 스턴이 막으려 했다. 처음에는 마이클 조던도 비시즌 + 84년에 한 번 나갔는데 또? 라는 이유로 미온적이었지만 스폰서인 나이키의 설득과 매직 존슨, 래리 버드 두 선배가 자진해 드림팀에 합류한 뒤 마이클 조던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면서 결국 드림팀이 완성되었고, 마침 그 시기에 절묘하게 미디어 시장이 폭발적으로 확대되어 이미 올림픽에 합류하기 전부터 조던을 포함한 드림팀은 명사가 되어 있었다. 실제로 바르셀로나 시내에 건물 전체를 덮는 조던의 나이키 광고 사진이 걸려 있었을 정도. 게다가 드림팀이 보여준 충격과 공포의 퍼포먼스 덕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관심을 갖게 된다. 이것에 자극을 받은 NBA는 마이클 조던을 앞세워 세계에 NBA를 홍보했고 마이클 조던의 나이키, 경쟁자인 리복, 아디다스 등 세계적 스포츠용품 메이커가 여기에 편승해 어마어마한 투자를 했고, 그 덕에 농구가 지금의 국제적인 겨울스포츠이자 하계올림픽의 대표적인 시청률 제조기라는 위상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가 끼친 영향력이 농구를 넘어서 세계 곳곳에 끼친 영향력은 정말로 지대해서 ESPN에서 조사한 20세기 가장 위대한 스포츠인에서 그 유명한 베이브 루스나 무하마드 알리 등을 제치고 1위를 했다.
에어 조던 브랜드도 빠질 수 없다. 스포츠 웨어 시장의 '상품성' 측면에서도 역대 가장 성공한 스포츠 선수인 셈.
강팀이 아닌 약팀의 선수로 데뷔하여, 자신의 힘으로 그 팀의 수준을 끌어올리면서 온갖 장애물을 극복하고 6번의 우승을 이끌고, 왕조를 건설한 후 프랜차이즈 스타로 정점에서 은퇴하는 업적을 이룩하여, 이후 NBA 스타가 이뤄내는 업적에 대한 평가의 기준을 끝없이 상향시켰다. 단적으로 그의 업적을 따라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이던 르브론 제임스가 마이애미 히트로 더 디시젼 쇼와 함께 이적하자 마자 나온 얘기가 "조던 되기는 글렀다"였다. 농구팬들은 아직까지 포스트 조던을 기다리고 있으며 조던과 같은 왕도를 걷는 드라마를 다시 한번 더 보고싶어하기 때문이다.
스타 한 명이 소속팀과 리그를 넘어선 독보적 인지도를 확보했다. 은퇴하고 시간이 한츰 흘렀으나 그는 당연하게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농구선수라는 데에 아무런 이견이 없고, 과장을 좋아하는 팬들은 "농구라는 종목보다 유명한 선수"라는 비약적인 말을 하기도 한다.
새로운 스타가 나타날 때마다 수없이 비교기사와 논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현 시대의 선수들이 기록 하나씩 세울 때마다 3~5위권 이내에 하다못해 10위권 이내에 반드시 이름이 들어가있어 NBA팬들을 늘 경악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하는 선수이기도하다. 이렇게 기록지에서 갑자기 불쑥 튀어나오는 사람들로는 조던과 압둘 자바, 체임벌린이 가장 유명하다.
현역 시절 상당히 강한 힘을 지녔는데 이 기사에 따르면 숄더프레스로 101kg(225파운드)을 여섯번 들어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숄더보다 더 무거운 무게를 들 수 있는 벤치의 경우 리포터 아마드 라샤드가 그가 265파운드를 들었다고 했다거나 225파운드를 33화나 했다는 말이 있다. 또한 종아리의 근육 탄성을 유지하기 위해 숙소에서도 뒷꿈치를 들고 생활했다고 한다.
단, NBA 드래프트 컴바인에서 쓰는 185파운드 벤치프레스를 27회 들어올린게(2003년 제이슨 킵) 역대 기록이란 걸 생각하면, 아무리 힘이 세도 100KG이 안되는 조던이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벤치를 들었단 건 신빙성이 낮다. 물론 컴바인은 00-01 시즌부터 시작된 것이라 그 이전 선수들 기록은 업고, 참여하지 않는 신인들도 있어 역대 신인들 중 킵이 가장 힘이 셌다고 단언할 순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근육질 파워포워드, 센터들보다 조던이 벤치를 훨씬 더 잘했다고 보긴 힘들다. 원체 이런 종류의 일화는 과장되는 경우가 많아 어느정도 걸러 들을 필요는 있는 편.
그의 경력 중엔 영화출연도 있다. 벅스 바니를 비롯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들과 함께 나와 농구를 하는 영화였다. 워너브라더스의 스페이스 잼. 이 이후로 농구 선수들이 영화에 많이 출연했다. 다만 평가는 필두였던 조던부터 이미 최악...이란 건 오해로 사실 미국 현지에선 평가가 갈리는 범작 정도였다. 자세한 건 항목 참고. 한국에서는 더빙을 홍시호가 맡아서 엄청나게 조던이 멋지게 보인다!
유타 재즈 팬들에게는 스티브 커와 함께 철천지원수같은 존재. 이게 유타에서 어느 정도냐면, 1998년 NBA 파이널 20주년을 맞은 2018년에 나온 유타 지역신문 기사를 보자.
나홀로 집에 1편에서 케빈이 도둑들을 속일 때 조던의 입간판이 잠시 등장한다. 나홀로 집에는 일리노이주를 배경으로한 영화이며 영화 촬영 당시 조던은 '득점왕은 우승을 못 한다'라는 말을 듣던 1989-90시즌을 치른 뒤였다. 영화 개봉 이후에 맥컬리 컬킨과 조던이 실제로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 개봉후 1년도 안된 1991년 마이클 조던은 처음으로 우승을 달성했다.
생일이 2월 17일이라 그 즈음에 NBA 올스타전이 열리기 때문에 겸사겸사 생일 축하를 받곤 한다.
마이클 잭슨이 1991년 발매한 앨범 Dangerous의 수록곡 Jam 뮤직 비디오를 찍을 당시 첫 우승을 하고 주가가 한창 올라가던 조던이 비중있게 출연했다. MJ & MJ 체육관에서 혼자 춤추고 있는 잭슨에게 조던이 찾아와 농구와 춤으로 한판 붙는 내용. 조던이 잭슨을 농구로 농락하고 잭슨이 조던 등에 업혀 슛을 쏘는 등 두 슈퍼스타들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모습이 담겨있다. 이때 뮤직 비디오가 끝나고 짧은 메이킹 비디오가 붙어있는데 잭슨이 조던에게 춤을 가르쳐주는 장면이다. 근데 정말 못 춘다. 문워크를 가르쳐줬더니 "아 이제 요령 알겠는데요."하더니 뒷걸음을 슬슬 치는 수준이다. 사실 접지력이 뛰어난 농구화를 신고 문워크를 추는건 불가능하다. 참고로 뮤비에서 보여준 마이클 잭슨의 농구실력도 완전 꽝이었다.
EA의 유명한 농구게임 NBA 라이브 시리즈에는 시카고 불스 23번의 이름이 Roster Player였었다. 이는 EA가 마이클 조던 개인의 초상권료가 원체 고가라 지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96년도에 조던이 나온 최신 농구게임을 하려면 NBA 라이브가 아닌 스페이스 잼 게임을 사야 했다. 결국 학생들은 스카티 피펜과 패스를 주고받고 패트릭 유잉 위로 슬램덩크하는 조던 대신 벅스 바니와 패스하고 외계인 위로 팔이 미친듯이 늘어나 덩크하는 조던의 안습한 모습을 봐야만 했다... 그래도 은퇴 후 NBA 라이브 2000부터 조던에게 초상권료를 지불, 2004년까지 게임에 나오게 했다. 허나 그 이후 계약이 결렬되었고 그간은 아예 올스타 팀에서 빠지거나 하다가, NBA 2K 시리즈로 유명한 테이크투에서 조던의 초상권을 획득, 드디어 최신 시리즈인 NBA 2K11에서 실명 마이클 조던과 그의 얼굴을 가진 캐릭터를 다시 플레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때문인지 NBA 2K11와 2K12의 표지모델은 마이클 조던.
다만 위에 언급된 스페이스 잼이 조던의 실명이 등장하는 첫 번째 게임은 아니다. 아직까지도 PC용 고전 게임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EA의 "Lakers versus Celtics and the NBA playoffs"(PC용 1989년 출시, 메가드라이브용 1991년 출시)에도 조던의 실명이 등장하며, 이 게임이 바로 NBA 인증을 받은 첫 번째 게임이다. 이외에도 아예 조던의 이름을 타이틀로 내세운 건 물론이고 조던을 직접 게임 제작에까지 참여시킨 PC 게임인 "Michael Jordan in Flight"(1993)도 있었고, 북미 NES용으로 나온 "Jordan vs. Bird: One on One"(1991)이라든지... 스페이스 잼이나 NBA 라이브 시리즈 이전에도 조던을 정식으로 등장시킨 게임은 꽤 여럿 존재했다. 게임 속에서 등장한 조던의 변천사는 이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80년대 게임들에서 조던의 그래픽과 모션이 참 안습하다.
2013년에 2K 게임즈에서 제작한 NBA 농구게임인 NBA2K14의 프로모션 행사에 참석하여 한 발언이 이슈를 몰고 왔다. 자신이 최전성기의 기량이라는 전제하에 현재 NBA 리그의 최전성기를 찍고 있는 에이스들과의 대결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 카멜로 앤서니 등의 선수들에게 전부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근데 "코비 브라이언트한테는 장담까진 못하겠다" 라는 파격적인 사족을 붙여 화제가 된 것 이다.
유독 코비만을 제외한 이유는 "그는 나의 모든 것을 보고 훔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 발언에 현재 리그에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에이스들이 보낸 답변도 가지가지인데, 르브론 제임스는 "매치업을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누구도 확신은 할 수 없다. 게임 홍보에 도움은 되겠다" 라며 직접적인 언급을 피한 반면, 코비는 "내가 그의 플레이를 훔쳤지만, 지금 세대들은 내 플레이를 훔치고 있다" 라고 했다고. 그러니까 쉽게 말해 나도 지금 너님 명성만큼 올라왔음.
이 기사에 네티즌들의 반응도 가지가지인데, 베플만 몇 가지 꼽아보자면 '코비가 1:1은 잘 하지. 근데 팀 우승은 못 시키지' 라든가 'MJ가 이긴다에 내 손모가지와 전 재산 건다', '확실히 코비가 조던의 페이더웨이를 따라할 수 있으니 조던의 말이 맞긴 하네', '조던은 너무 코비를 예뻐해~'라는 반응 등등. 40세에 복귀한 걸 빼고 최전성기에서 은퇴한지 17년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의 발언 하나하나가 이런 이슈를 몰고 온다는 것은 그만큼 맨 윗 문서에도 설명되어 있듯이 그가 아직도 농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슈퍼스타임을 증명하는 일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코비만큼은 장담할 수 없다."라는 위의 발언이 화제가 되는 이유는, 조던은 그냥 본인이 다 쳐바른다고 말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No.1의 위치이며 애초에 그쪽이 조던의 성격 및 이미지와도 훨씬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자신만을 오롯이 치켜세워도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는 위치인 조던이 굳이 코비라는 단 하나의 예외를 스스로 언급했기에 코비에 대한 조던의 리스펙트가 더 확실하게 전달되는 것. 그 외에도 르브론vs코비를 논하는 주제에서 "게임을 지배하는 능력은 르브론의 우위, 우승하는 능력은 코비의 우위"라고 평가하며 '코비는 자신과 같은 저주받은 사람'이라고 말한 바도 있다. 이렇듯 조던은 후배 레전드 중 유독 코비를 의식하고 인정하는 모습을 수차례 보여주었는데, 샤크나 던컨, 르브론 등 코비와 동급 이상의 커리어를 쌓은 선수들에게도 이렇게까지 유별난 관심과 애정을 두지는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코비에게 굉장히 우호적인 셈이다. 리그를 지배하던 시절의 자신에게 다른 루키들과 달리 거리낌없이 다가와 조언을 구하던 코비의 당돌함 덕분에 처음부터 그를 유심히 지켜보았으며, 자신의 아성에 근접하지는 못했을지언정 자신을 닮은 플레이스타일과 승부욕을 기반으로 단순 포스트 조던을 넘어 또다른 레전드가 되어 리그를 호령한 점이 조던의 시각에서 보기에도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본인은 위대한 선수였지만 선수보는 눈은 놀림거리가 되는 일이 많다. 전설의 망한 1픽 콰미 브라운이라든가 당뇨병 환자 애덤 모리슨이라든가. 어쩌면 본인이 정신력과 노력, 기술 등 비신체적인 부분에서 만렙이었기에, "피지컬이 되는데 정신력과 의지가 약하고 노력이 부족해 실패하는 것" 자체를 이해 못할 수도 있다. 실제로 콰미는 약간 작은 손을 제외하면 좋은 신장, 긴 팔, 좋은 운동능력 등 원석으로서는 매우 뛰어났고 농구에 대한 감각도 뛰어났다. 여기에 본인의 노력만 기울인다면 레전드 선수로 성장하기 충분했다. 문제는 누구나 다 압박한다고 성장하는 건 아니란 점. 사실 조던은 본인의 성격 자체가 너무나도 불같고 참을성이 없는데다가 기준이 높아서 지도자로서 좋은 인물은 아니다. 본인도 이걸 알고 있어 감독직은 고려도 하지 않고 있지만.
마이클 조던은 코트 밖에서 매너에 대해서도 좋냐, 좋지않냐 여러 설이 있다. 일례로 흑인 래퍼인 Chamillionaire가 동영상으로 자신이 왜 마이클 조던을 싫어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한 동영상이 있는데 한마디로 팬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형편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1992년 드림팀에 코치로 있었던 마이크 슈셉스키 듀크 감독은 이와 반대로 마이클 조던이 매너가 아주 좋았다고 한다. 슈셉스키는 조던이 매우 유명한 프로선수이기 때문에 자신을 무시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드림팀이 첫 훈련을 마친 직후, 조던이 아주 정중하게 자신에게 다가와 "함께 훈련하는 것을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라고 요청했다는 것. "그는 '코치님', '부탁드립니다'는 식으로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제 생각엔 그는 나름 저를 편하게 (making me comfortable)해주려고 노력한 듯 했습니다."라고 슈셉스키는 말했다. 참고로 이 인터뷰가 나온 것은 2010년이고 조던의 병적인 승부욕 등에 대해 이미 다 까발려진 상태였고, 슈셉스키는 조던과 개인적 친분도 없는지라 쉴드쳐줄 이유도 없다. 그러나 위에 나온 래퍼와 정반대로 슈셉스키는 조던과 대표팀 생활을 몇주간 하면서 조던의 성격에 대해 상세히 경험을 했다는 것을 생각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