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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인가 멀리 떠나고 싶을 때 1박2일 여행지로 추천하고 싶은 곳. 굳이, 갈 곳을 정하지 않고 떠나도 좋다.
여자도 가는 길은 발걸음이 닿는대로 마음이 와 닿는 곳으로 목적지를 변경해도 좋다.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승용차 한대로 훌쩍 떠나면 전국 어디나 1박2일로 가능하다.
서울에서 새벽 일찍 떠나 여수항 앞바다를 바라보면서., 복지리국 아침을 즐기면.,참 좋다.
여수.
선사시대부터 일본과 교류한.,한 중 일 해상항로. 기원 전 4~5세기경 연안을 따라 요동반도와도 교류.
삼한시대 철 무역을 통해 왜, 낭랑, 대방과 교류 옛부터 여수는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구축한 항구.
신석기시대 패총과 문헌 기록에 따르면 남해안의 중심 항구로 크게 번성한 여수. '고려~조선시대 조운로'의 거점항이었다.
동아시아 해상실크로드 마지막 종착지.,일본. 여수는 일본을 오가는 해상실크로드 국제항구. 한반도 내에서는 남해안의 중심 항구였던.,여수. ............................. ..............................
겨울에도 따뜻한 전남 남쪽 미항.,여수 여수(濾水)는 “물이 좋다”는 뜻 지명이다. 우리나라 대표적 미항이자 손꼽히는 휴양지.
고려 왕건이 삼국 통일 후에 전국 순행 중 여수에 들러, “이 곳이 인심 좋고 여인들이 아름다운 이유가 무엇이냐?” 묻자 신하들이 “물이 좋아 인심 좋고 여인들이 아름답습니다”
여수 영취산.,진달래.
여수 - 한화 아쿠아플라넷.
여수(濾水)라는 지명의 유래가 흥미롭다. 고서(古書)에 여수(呂水)라는 지명도 있다. 여수의 지형을 쏙 빼 닮은듯한 한자어.,呂水.
呂水 바다 위에 연꽃처럼 내려앉아 넓은 바다에 꽃이 피어난듯.. 그 아름다움이 극치를 보여주는.,화려한 물의 도시.,여수(濾水)
2012년 세계 박람회를 유치 개최한.,여수. 면적이 가장 좁은 섬., 광양만 소륵도(0.02km2)
사람이 가장 많이 사는 섬., 돌산도 3,700 여 가구에 4,275명이 거주하며, 거문도는 331여 가구에 7,304명이 거주.
금죽도와 부도의 주민은 단 두 명뿐 '유인도'라는 명맥을 겨우 이어가고 있다.
백도
여수 한가운데.,방파제로 연결된 오동도, 남해 먼 바다에 떨어져 있는 거문도와 백도.
그외 사도 추도 금오도 안도 개도 등 보석처럼 아름다운 섬은 헤일 수 없어 휴가를 보내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여수.
삼국시대 백제 원촌현(源村縣) 통일신라 757년 해읍현(海邑縣) 승평군(昇平郡:순천) 영현이었고 고려 초 940년(태조 23).,여수현(麗水縣)
1018년 순천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350년(충정왕 2) 다시 여수현으로 독립
1396년(태조 5) 이성계에게 불복했던.,현령 오흔인 조선 왕조에 불복했다 하여 현을 폐지해, 순천에 병합 1479년(성종 10) 내례포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영' 설치
조선시대 전라도 해안 방어 중심지가 되었던.,여수.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이끈., '전라좌수영' 중심 역활 1593년 '경상,전라,충청' 삼도 수군 통제영이 설치되었다.
1601년 통영은 경상도 거제로 옮겨갔고 1725년(영조 1) 도호부로 승격했던.,여수. 전라좌수사를 겸하게 했으나 1년 만에 폐지.
1895년 병영·수영·진영·진보를 폐지함에 따라 전라좌수영 폐지 1896년 돌산군(突山郡)을 신설하면서 도서지역이 돌산군에 이관 1897년 순천군 여수면·율촌면·소라면·삼일면을 나눠.,여수군 신설
1914년 군면 폐합 당시 돌산군 폐지. 돌산군 두남면·남면·삼산면은.,여수군, 화개면과 옥정면은 여수군 화정면으로 통합
1931년, 면에서 읍으로 승격된.,여수.
1948년 10월 19일 여수지역에 주둔했던 국군 제14연대가 일으켰던.,여순반란사건. 그로인해 여수 주민들이 많은 상처를 입었다.
1949년 여수읍이 시로 승격·분리되면서 나머지 지역은 여천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98년 여천군과 여천시를 통합해 여수시로 출범.
여수는 높은 산이 없는.,소백산맥 말단부.
천성산(460m)·호랑산(460m) 고락산(335m) 시내에 봉화산(422m)·호암산(280m)·마래산(385m) 장군산(325m)·구봉산(389m)·종고산(199m) 등이 있다.
남해안에 접한 남부와 동부 해안선은 드나듦이 복잡하고, 대경도·소경도·야도·풍락도·노량도 섬들이 천연방파제 구실. 여수시 북서부 호랑산에서 발원한 연등천이 여수만으로 흐른다.
하천 상류 일대에는 좁은 충적평야가 분포 중류와 하류는 거의 시가지가 조성되어 있다. 겨울이 온난한 남해안 기후지역이라 비가 많다.
연평균 강수량 1,413.3㎜.
연평균 기온 13.9℃ 내외, 1월평균기온 1.6℃ 내외, 8월평균기온 25.9℃ 내외,
오동도를 중심으로 한 여수시 동쪽 해상은 한려해상국립공원 수려한 해안과 유물·유적이 많다.
한려수도
오동도는 여수시 동쪽으로 약 1km 거리 여수시와 768m 방파제로 연결되어 있고 동백나무·대나무 난대성 식물이 무성하다.
오동도는 철새가 많아 여수시 대표적 관광자원.
여수는 검은 모래로 유명한 만흥동., 만성리 해수욕장 여수항 앞바다 장군도.,수중석성, 이량 장군 방왜 축제비. 오동도와 여수항이 한눈에 바라 보이는., 종화동 자산공원.
'세계 최초 잠수함' 거북선 모델이.,여수 돌산.
1984년 완공된 연륙교., 돌산대교 (남산동~ 돌산읍) 2006년 통계 상, 매년 559만 관광객이 방문하는.,여수. '돌산' 갓 김치 & 돌산 게장백반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돌산도 향일암.
화정면
여수시 화정면 일대에서 가장 큰 섬은 개도(蓋島). 작은 섬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뜻에서.,덮을 개(蓋).
개도 최고점은 섬 남쪽 봉화산(338m)이며, 천제봉(320m)을 비롯, 해발 200m 산들이 있고 동백나무 숲이 무성하며 다도해 전경이 병풍 같다.
주변 풍경과 산세가 수려해 등산 코스로 인기 높은.,개도.
산행을 하다보면 임진왜란 때 말 목장이 있고 매년 삼월 삼짓날 제를 올리는 천제봉 제단이 있고 봉화산 정상에는 임진왜란 당시 봉화대 터가 남아있다.
개도 봉화대 - 금오도 봉화대 -돌산 봉화대 - 여수 종고산 봉화대 -좌수영 본영에 급보 연락. 여수 서남해 왜구의 침략을 감시하는 군사 요충지.
가막만과 여자만을 사이에 두고 두 바다를 품은듯 안고 있는.,개도
서대기 양태 멸치 게 문어 등이 많이 잡히며 참전복, 김, 굴, 미역 등의 양식이 활발한.,개도. 조선시대부터 유명한 개도막걸리 & 천혜의 낚시터.
조선시대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전에는 공도정책으로 사람이 살지 않았던.,개도.
여수반도의 끝자락인 가막만과 여자만이 만나는 곳에 있는 백야도 백야도 백호산에는 봉화대와 말목장터.
옛날에는 백야도에 들어가려면 배를 이용했지만 2005년 4월 14일 백야대교 개통 후 출입이 쉬워졌다. 몽돌밭, 잠막골 해수욕장, 화백 해송림, 등 여름 피서지.
1928년 세워진.,백야등대. '여수 ~ 목포' 항로 길잡이. | ||||||
옛부터 여자도 주민 생활권은 순천만, 순천, 벌교에 가까웠다. 겨울철 여자도 주민 수입원은 꼬막 .
옛부터 여수와 순천은 밀접한 생활권역. 조선시대 '여자도'는 낙안군 남아면 관할 순천만 옛 이름은., 여자만(汝自灣)이었다.
여수반도와 고흥 반도 사이에 있는.,여자만.
.....여자만 갯벌 노을축제 (2013. 6. 21~23).......... 여수시 소라면 사곡리에서 열린., 다양한 체험 행사. 개매기 체험, 새꼬막 바지락캐기, 뻘배타기, 맨손고기잡이,
2만7550명이 방문하고 2258명이 참여, 전국적으로도 높은 관심도를 나타냈다. ..........................................................
. 여자만(汝自灣)은 '汝' 형태로 생겨 명명된 만(灣). 여자리는 대동, 마파, 송여자 세 마을로 구성되었다.
본래, 여자도 이름은 넘자섬 ‘넘’은 '넘는다'라는 의미이며 '자'는 산을 말하는 고어(故語).
'넘자'란 말은 섬의 높이가 낮아 파도가 산을 넘는 곳 이란 뜻.,지명.
‘넘’은 남이란 뜻의 ‘너 여(汝)’로 표기하고 자는 ‘스스로 자(自)’로 표기하여 ‘여자(汝自)’. 그 남쪽에 마파람이 부는 마을.,마파지 '여자도의 작은 섬' 송여자도.,송여자마을
송여자도 본래 이름은 솔넘자섬이다. 솔은 작은 섬이란 의미를 갖고 있지만 소나무 송(松)으로 표기해 오해하기 쉽다. 붉은 바위의 해변인 붉은독, 길이 만나는 곳의 의미인 질고지,
활처럼 휜 해변이라 하여 활꼬밭, 효성 깊은 며느리 전설의 고향 각시바, 왜적으로부터 마을을 지킨 최장군 고향 샘북넘
그외 장사바구 지명 및 마을 유래가 흥미롭다. 대동마을은 초계 최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초계최씨 후손들이 많이 사는 곳.
해안선 7.5㎞ 여자리는 대여자도와 소여자도 두 개의 섬. 가장 높은 곳이 41m로 섬 대부분 낮은 구릉과 평지이다. 여자도 주변의 여자만은 반폐쇄성 해역인 리아시스 해안. 총 131가구 349명 주민이 산다.
순천만, 득량만, 여자만 중심에 있는 여자리 면소재지 백야리 북서쪽 27.5㎞ 지점에 있다.
여자리 북서쪽으로 벌교읍, 서쪽에는 고흥반도.
고구마·보리·무·마늘·땅콩 등이 생산되고, 참조기·멸치·낙지·새우·붕장어 등이 잡힌다. 피조개와 키조개를 비롯해, 각종 어종이 풍부.
여수시 소라면 섬달천마을 입구 도선장. 여수와 여자리를 오가는 정기선 & 부정기선. 2013년 현재, 편도 5,000원이고 왕복 10.000 원.
여객선은 하루에 4번 운행. 08 : 50, 12 :20, 14 :30, 17 :30
20명 넘는 단체는 선장에게 연락을 하면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다.
1941년에 개교한 초등학교는 주민이 줄어 1984년부터 분교
현재 교사 한명에 학생 한명이 있다. 옛부터 여자리 물 사정은 좋지 않은 편. 그래서, 장수하지 못한다는 원주민 이야기.
특히, 나이 많은 주민들은 '넘자만(汝自灣)'이라 한다. 여자(汝自)가 우리의 옛말 넘자(汝自)로 읽히고 있는 것. |
순천시 벌교는 1922년 경전선 개통 후.,교통의 요지 일제 강점기에 전남 농수산물을 일본으로 실어나른 창구 이에 따라 급격히 인구가 증가해 1937년 읍으로 승격했다.
벌교는 보성군 인구의 30% 이상이 거주.
작가 조정해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무대.,벌교. |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요람이라 불리우는 순천.
순천 조계산은 송광사 선암사·정혜사 동화사 등
낙안읍성민속마을·곡천유원지·주암호·죽도봉공원·
순천 주암댐 수몰지구에서 구석기 유물이 출토되고,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선사시대 주거지 등이 발굴되어
이 지방에서의 인간의 거주가 오래 되었음을 보여준다.
숭성전(崇聖殿)과 고려시대 누각인 연자루가 있다.
죽도봉은 임진왜란 당시 화살대를 많이 만들었던 곳.
이곳 산세가 섬과 같다 해서 유래된 지명.,죽도봉.
숭성전은 호남에 사는 많은 박혁거세 후손들이
경주 숭덕전까지 참배하러 가는 것이 너무 멀어서
이곳에서 매년 음력 4월 1일과 10월1일에 춘추대제.
죽도봉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 도래지로 추정되는 곳.
옛부터 여수와 순천은 중국 한국 왜를 잇는 국제 무역항.
기원 전부터 한반도에 선진문명이 유입되어 꽃피웠던 곳.
"여수에 가면, 돈 자랑하지 말고
벌교에 가면, 주먹 자랑하지 말고
순천에 가면, 인물을 자랑하지 말라."
그 말이 마음에 와닿는.,1박2일 여행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