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영화화 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화제가 되지 못한다. 할리우드에서는 일찍부터 [배트맨][스파이더맨] 등 코믹마블스의 원작만화가 블록버스터로 제작되어 대중드의 사랑을 받았다. 일본에서도 만화의 영화화는 매우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이후 국내에서도 허형만의 [식객][타짜] 강풀의 [아파트][순정만화][바보] 등 많은 인기작가들의작품이 영화되었다. 활자문화이면서도 시각적 비주얼을 담고 있는 만화 장르의 특성상 앞으로도 원작만화의 영화화는 지속될 것이다. 특히 만화는 인쇄만화와 TV 애니메이션, 극장판 영화, 게임 등 매체를 달리하면서 고부가가치를 획득할 수 있다. 원 소스 멀티 유스 시대의 콘테츠 제작 핵심에 만화가 있는 것이다.
원작만화의 영화화는 만화 고정팬들을 극장으로 유인하면서 동시에 그 지명도를 극대화하여 영화제작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더구나 이미 인쇄화면으로 영화 콘티까지 짜여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만큼 제작상의 어려움도 줄어든다. 만화산업이 발달한 일본에서는 관객 1천만을 돌파한 애니메이션 영화가 여러 편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일본내에서 2천 4백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더 이상 화제거리가 되지 않는 만화 원작의 영화화지만, 우라사와 나오키 원작의 [20세기 소년]의 영화화에는 많은 팬들이 흥분하고 있다.
일본의 국민만화가 호칭을 듣는 우라사와 나오키는 [해피][몬스터][야와라!][미스터 키튼] 등의 작품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이 있는 지명도 높은 만화가이다. 그의 대표작인 [20세기 소년]은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연재되었으며, 전 22권의 만화책으로 출간되었다. [21세기 소년]이라는 만화도 상,하권으로 출간되었으니까 영화 [20세기 소년]은 총 24권의 원작만화를 스크린에 옮긴 것이다. 총 발행부수 2천만부, 국내에서도 80만부가 팔린 [20세기 소년]은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중 첫번째로 영화화되는 작품이다. [트럭]을 만든 츠즈미 유키히코 감독은 이 방대한 작품을 총 3부작 영화로 만들었다. 일본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인 60억엔이 투입된 3부작 중 1부 [강림]이 먼저 개봉된다.
츠즈미 유키히코 감독의 영화 [20세기 소년]은 거의 모든 장면이 만화의 장면과 흡사하다. 원작만화의 영화에는 상상력의 재한이 뒤따른다. 카메라의 각도, 프레임까지 이미 만화에 그려져 있는 것이다. 감독의 독창적 상상력으로 만화를 해석하고 인물을 배치해서 컷트를 나누어 영화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도 츠즈미 감독은 너무나 원작만화와 흡사하게 각 쇼트를 찍었다. 마치 만화를 오려서 필름으로 만든 것처럼 영화를 만든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영화 [20세기 소년]의 결말 만큼은 원작과 전혀 다르다고 예고되고 있다.
소년시절,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들고 그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세계와 자신의 삶에 대한 비밀스러운 사고를 펼쳐나갔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20세기 소년]은 우리가 성장과정에서 겪는 유년시절의 비밀아지트에 토대를 두고 전개된다. 9명의 친구들이 함께 모여 갈대를 엮어서 비밀아지트를 만들고 거기에서 미래의 세계를 그림 그려가며 예측했던 일들이 수 십년 후 실제로 똑같이 벌어진다. 주인공 겐지(카라사와 토시아키 분)는 한때 세계를 뒤흔들 록커를 꿈꾸던 기타리스트였지만 지금은 늙은 어머니와 함께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다. 40대 중반이 된 겐지의 유년시절인 1960년대부터 2018년까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원작의 방대함은 영화 [20세기 소년] 속에 허겁지겁 옮겨져 있다.
원작은 1960년대부터 20세기말인 1999년, 그리고 2015년 등 과거 현재 미래가 종횡무진 뒤얽히면서 미스터리 구조로 전개된다. 하지만 원작만화에서 강화된 미스터리 구조는 이미 연재가 끝난 상황이기 때문에 독자들에게는 결말이 알려져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영화는 만화의 미스터리 구조를 약화시키고 악의 세력과 맞서 싸우는 겐지라는 캐릭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99년 샌프란시스코와 런던 등지에 무서운 세균이 퍼트려지면서 세계는 혼란에 빠진다. 이어서 도쿄의 하네다 공항이 폭파된다. 겐지는 이 모든 일들이 자신의 유년시절, 9명의 친구들과 함께 비밀아지트를 만들어서 미래의 세계에 대해 장난삼아 예언하며 만화로 그렸던 예언의 서와 똑같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세계 정복에 나선 악의 무리들은 정치적으로 거대한 조직을 만들어서 일본 사회를 지배한다. 우민당 당수 만조베는 하수인에 불과하다. 비밀스러운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은 겐지의 어린시절 친구 중 한사람이다. 그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세계정복의 야욕을 갖고 있다. 겐지는 어린시절 9명의 친구들을 불러 모은다. 제일 먼저 의심스러운 사람은 오쵸, 그리고 후쿠베 등이 차례로 용의선상에 떠오른다. 원작의 미스터리 구조 대신 [20세기 소년] 1부 강림은, 2000년 12월 31일 죽음의 바이러스를 파프리는 원자 로봇과의 대결로 피날레가 마련되어 있다. 영화에는 복잡한 시간구조와 유년시절 친구들간의 보이지 않는 대결, 그리고 악에 맞서는 평범한 소시민들의 활약을 통해 삶의 불가해성을 전달하는 매혹적인 철학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다.
서사구조는 2시간 20분의 런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불친절하게 압축되어 있다. 만화 원작을 본 사람들에게는 큰 무리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이야기의 비약과 끊김을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 만화의 힘은 영화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거칠고 불친절한 압축에도 불구하고 서사의 힘이야말로 영화를 끌고 가는 원동력이다. 원작만화에서 독자들을 흥분시켰던 미스터리 구조 대신 박진감 넘치는 액션이나 스케일이 큰 전투장면이 등장하는 덧도 아니다. 후반부 거대로봇의 등장이 시선을 끌기는 하지만 원작 만화가 갖고 잇던 흥분에는 미치지 못한다. [20세기 소년]은 만화의 서사구조와 스케일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영화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이야기의 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