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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인가?
1) 제6계명을 완전케 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고 오셨습니다(17절). 예수님이 완전케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20절)입니다. 그리고 5장 21-48절은 예수님이 율법을 완전케 하시면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데이비드 터너가 잘 요약했습니다.
"5장 21-48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이 율법과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 비추어 자신의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더 높은 의를 설명한다."
양용의 교수님도 이것을 잘 설명했습니다.
"본 단락과 바로 앞 열쇠 단락(17-20절) 사이의 긴밀한 관계는 부인할 수 없다. 마태가 여섯 대조법으로 구성된 본 단락을 열쇠 단락 바로 뒤에 위치시킨 것은, 열쇠 단락에서 제시된 예수님의 율법 성취(17절)와 제자들의 더 나은 의(20절)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예들을 제공해 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21-48절을 통해 계명들의 문자가 아니라 정신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 후 아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자들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20절).
예수님은 여섯 가지 계명들을 다루면서 제일 먼저 살인하지 말라는 제6계명을 다루셨습니다. 사람에 대한 계명 중 가장 무거운 계명입니다. 하지만 살인은 우리와 상관이 없는 죄처럼 보입니다. 바리새인도 외식하며 기도할 때 살인은 아예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살인은 가장 큰 죄이고 쉽게 일어나는 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살인이 일어나면 뉴스에도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물론 일반 유대인도 살인이 자기들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살인이 우리와 무관한 죄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마태복음 5:21-26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이처럼 주님이 보실 때는 사람을 죽이는 것뿐 아니라 화를 내고 욕하는 것도 살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살인하는 자들은 구원받은 자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요한일서 3:14-15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또한, 살인하는 자들은 천국에 갈 수 없다고 경고합니다.
요한계시록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 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요한계시록 22:1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분노하고 욕하는 것도 살인입니다. 따라서 놀랍게도 분노하고 욕하는 자들도 지옥 불에 던져집니다.
마태복음 5:21-22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정말 두려운 일이지요! 그러나 신자들 중 이것을 알고 있는 자가 얼마나 될까요? 그래서 성경을 바르게 배우고 제대로 아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먼저 제6계명은 나와 상관이 없다는 생각부터 버리십시오. 또 이 설교를 끝까지 잘 듣고 내가 살인자는 아닌가? 진지하게 자신을 점검해보십시오. 그리고 만약 그런 죄를 범하고 있다면 즉각 회개하고 돌이키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 유대교는 제6계명을 어떻게 잘못 가르쳤는가?
마태복음 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이곳과 33절에 보면 "옛 사람에게 말한 바"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옛 사람"은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예수님과 동시대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6계명을 인용했습니다. 때문에 프란스는 이 구절이 율법의 계명을 그대로 소개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이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옛 사람에게 말한 바"라는 첫머리뿐 아니라 "너희가 들었으나"라는 뒷부분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면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라는 말이 옛사람에게 말한 것을 그대로 말한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이 들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계명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 들어있습니다. 로이드 존즈는 그것을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에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살인하지 말라'고 가르쳤다면 그들은 분명히 율법을 가르치고 있었던 것입니까? 이 점에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어떤 비판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이렇게 물어볼 유혹을 이 점에서 받습니다.
그 대답은 그들이 이 말씀에 그 무언가를 추가시켰다는 데 있습니다. 즉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율법에서도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고 하지 않습니까?라고 말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율법이 사실 그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민수기 35장 30, 31절에서 그것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에 잘못된 것은 무엇입니까? 잘못은, 바리새인들이 이 두 가지를 병치시킴으로써 '살인치 말라'는 계명의 뜻을 감소시켜 실제 살인을 범하는 문제로 격하시켰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들은 둘째 것을 첫째 것 바로 뒤에 덧붙임으로써 이 명령을 약화시켰던 것입니다. 그들이 둘째로 한 일은, 이 명령에 붙어 있는 재가를 치안판사의 손에 벌하는 것으로 격하시키고 제한해버렸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에서 '심판'은 지방 재판소를 의미합니다. 그 결과 그들은 단순히 이렇게 가르치고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즉 '너희가 살인하면 치안판사에게 형벌 받을 위험이 있기 때문에 살인하면 안 된다'라고 말입니다.
'살인치 말라'는 이렇게 큰 계명에 대한 그들의 해석이 이러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들은 이 계명에서 참된 내용을 비워서 한낱 살인의 문제로 격하시켜 버렸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는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지방재판소의 심판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계명을 순전히 법적인 것으로 만들었으므로 '네가 살인을 범하면 어떤 결과가 따를 것이다'라는 하나의 법조문에 지나지 않게 했습니다. 그 결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기네가 살인을 범하지 않는 한 이 점에 있어 율법에 대해 완전히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두말할 것도 없이 사람이 살인을 범하는 것은 그들에게 무서운 일이었기 때문이며 만일 살인을 범하면 법정에 소환을 받아 이 죄에 상당하는 판결을 받아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살인죄를 범하지 않는 이상 만사는 잘돼 가고 있었고, '살인치 말라'는 계명을 태연하게 대면하여 '나는 율법을 지키고 성취한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은, 예수님과 부자 청년 사이에 오간 대화 중 일부입니다.
누가복음 18:20-21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부자 청년은 자신이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그리고 그 외 계명들을 다 지켰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랍비들을 통해 이 구절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 똑같은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심히 안타까운 것은, 여전히 교회에 다니는 많은 이들이 같은 착각에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살인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두렵고 안타까운 일인지 모릅니다.
이동원 목사님은 이런 경고를 했습니다.
"아마도 그 당시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스스로 성경을 읽어서 이 말씀을 알기보다는, 바리새인들로부터 듣는 것에 의존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많은 성도들이 스스로 성경을 읽고 스스로 말씀을 취하여 이 말씀을 자기의 삶 속에 적용하기보다는,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가서 설교자가 증거하는 말씀에 의존하여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그런 모습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 빠지게 되는 위험한 함정이 있습니다. 만약 서기관이나 바리새인의 성경해석이 바르지 못할 경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못한 길로 인도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매우 필요하고 중요한 경고입니다. 우리가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스스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주일학교 때부터 한 일입니다.
주일학교 때 교회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개근상으로 기드온에서 나온 포켓용 하늘색 신약성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성경책이 없었습니다. 가슴이 얼마나 두근거리고 성경책을 받을 그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전날 갑자기 고열이 났습니다. 몸이 얼마나 아팠는지 생전 처음 있었던 일인데 앞이 안 보였습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열이 너무 심하게 나서 눈이 완전히 뒤집혔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일날 교회에 갈 수가 없었고 성경책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실망이 크고 속상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어머니께 목사님께 연락해서 기도를 받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해주셨고 그 뒤 성경책도 받았습니다. 돌이켜보면 마귀가 내가 성경책을 읽는 것을 얼마나 싫어했으면 눈까지 안 보이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귀는 저와 여러분이 성경책을 읽는 것을 무지 싫어합니다.
그 뒤 저는 마귀에게 복수라도 하듯 성경에 푹 빠져서 열심히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제가 있게 된 것입니다. 저는 주일학교 때부터 청년이 되기까지 줄곧 장로교 합동과 통합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처럼 장로교의 그릇된 교리에 조금도 세뇌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읽어서 성경이 저의 기준이 되었고 분별력의 원천이 되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성경을 열심히 읽으시기 바랍니다.
불행하게도, 예수님 당시에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반인들은 성경을 쉽게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계속 "들었으나"를 반복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큰 특권이고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읽기를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설교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베뢰아 사람들처럼 성경을 시금석으로 삼아 분별하고 성경적인 것만 받아들이십시오. 절대 이단사설과 사람의 계명에 속지 말고 스스로 영혼의 안전을 확보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 예수님은 잘못된 가르침을 어떻게 바로잡으셨는가?
찰스 피니는 『그리스도인의 순종의 원리』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율법에는 문자(letter)와 정신(spirit)의 요소가 있다.
율법의 명제들에 대한 개괄적인 진술은 그 문자에 있으며, 현실의 모든 상황에 그 율법을 실제로 적용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그 율법의 참된 취지와 의미는 그 정신이 된다.
한편, 세상은 하나님의 율법의 참된 의미와 관련해서 전적인 무지 가운데 있다. 예를 들면, 첫 계명은 '내 앞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이다.
자, 이 계명은 문자와 정신 둘 다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계명이 또한 그러하다. 이 계명의 문자적 의미는 모든 우상숭배를 금하는 것이다. 또한 이 계명에 담겨 있는 율법의 정신은 신자가 매일의 거룩한 행실을 통해서 나타나는 거룩한 애정을 품고 하나님께 대한 최고의 사랑, 사심 없는 사랑, 보편적이고 영구한 사랑을 나타낼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랍비들은 율법의 계명들의 문자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계명들의 정신을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은 다음 구절에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마태복음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옛말에 참을 인 자가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분노는 살인의 시작입니다. 캠벨 몰간의 말대로 "결코 노를 발하지 않으면 결코 살인하게 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을 말슴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인 행위뿐 아니라 화내고 욕하는 것도 살인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터너는 이렇게 썼습니다.
"예수님은 살인하지 말라고 한 것은 살인에 이르게 하는 분노와 모욕적 언사를 암묵적으로 금지하고 있음을 가르친다. 성경이 분노를 묵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초월적 가르침은 분노를 중죄와 관련시킨다. 분노와 분노에 찬 말은 살인에 해당한다(5:21-26)."
또, 양용의 교수님은 이렇게 썼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살인 행위 자체를 정죄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취적 가르침은 살인 행위의 이면으로 들어가서, 살인 행위를 일어나게 하는 마음의 분노와 그로 말미암은 욕설까지 문제 삼는다. '라카'(아람어: 문자적 의미는 텅 빈, 실질적 의미는 골빈 놈에 해당하는 욕설)나 '바보'(모레)는 그렇게 대단한 욕설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소한 욕설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욕설을 사용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증오심을 드러내 보여준다. 이처럼 형제에게 화를 내는 것과 증오심을 표현하는 것이 인간 법정에서는 살인 행위와 동등한 유죄 판결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러한 분노와 사소한 욕설까지도 제자에게는 살인 행위에 해당하는 유죄 판결 요건이 된다고 단호히 선언하신다. 특히 '바보'라는 욕설에 대한 형벌이 '불타는 지옥에 던져지는 것'이라는 예수님의 선언(22下)은 제자들에게 화를 내는 감정 표현과 사소한 욕설까지도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되는지를 매우 인상적으로 강조해 준다."
이처럼 분노와 욕설도 살인입니다. 그러므로 살인은 우리와 무관한 죄가 아닙니다. 누구나 지을 수 있는 죄입니다. 그렇다고 가벼운 죄가 아닙니다. 심각한 죄입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지옥 불에 던져질 정도로 큰 죄입니다.
한편, 예수님의 말씀에 보면 "심판을 받게 되고 ...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이 중 "심판"은 학자들 대부분 지방법정에서 받는 심판을 뜻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세상 법정은 내면적인 분노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래서 심판이 하나님의 심판을 뜻한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면 그 뒤 나오는 공회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주관적인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래야 마땅하다는 뜻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또, "공회"는 지방법보다 위에 있는 산헤드린을 뜻합니다. 그리고, "지옥 불"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을 뜻합니다. 점점 표현이 강해지지요! 그래서 『IVP 성경난제주석』은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심각한 정도가 점차 상승하는 것 같다. '심판을 받게 되고 ...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공회'(산헤드린)는 명실 공히 지방 법정과 대비되는 국가의 최고 법정을 가리킨다. 따라서 자기 형제를 모욕하는 것은 그에게 분노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이 점은 분명하다. 분노한 생각은 억누를 수 있지만, 한번 뱉은 모욕은 철회할 수 없고 잔혹한 원한을 야기할 수도 있다. ... 예수님이 언급하시는 실제 목욕은 개역개정의 표현대로 '라가'라는 단어다. '라가'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 단어는 아마 '얼간이'와 비슷한 뜻의 아람어였으나 분명 치명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라가'의 의미가 무엇이든, '미련한 놈'이 '라가'보다 훨씬 치명적인 목욕임을 알게 된다. '지옥 불' 혹은 '불의 지옥'(RSV)이 이 중에 가장 무거운 처벌이기 때문이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해석이지요! 그런데 데이비드 터너는 이와 반대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심판에 대한 세 가지 서술들('심판을 받게 되고',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지옥 불에 들어가리라')은 격렬함의 상승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와 모욕적 언사의 결과들에 대해 더 점진적으로 생생한 묘사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또, 스캇 맥나이트도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예수님은 살인 배후에 있는 것, 말하자면 욕구로 눈을 돌리면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 혹은 자매에게 화가 난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 여기서 예수님은 각 행위의 결과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데 '심판'과 '공회'(또한 10:17을 보라), '지옥 불'이 그것이다. 여기 나오는 두 범주(범죄와 그 결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이를테면 범죄의 심각도가 커지는 것에 상응하여 그 결과의 심각도도 (심판에서 영원한 파멸로) 증가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 제시된 범죄들고 결과들 각각은 서로 비슷한 의미일 가능성이 더 크다."
또한, 헤르만 리델보스도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랍비들의 재판 형식에 따라 예수께서는 세 단계로 이 진리를 표현하신다. 그러므로 22절의 삼중적인 경고는 각각 구별되는 죄의 삼 단계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언급하신 세 가지 죄는 노하는 것, '라가'라 하는 것 - 이것은 '바보'라는 의미의 남발하는 용어임 - 그리고 형제에 대하여 어리석은 놈이라고 칭하는 것으로써, 이들은 모든 동등한 심판을 받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서로 해석이 다르지요! 둘 중 어느 견해가 옳을까요? 저는 후자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한 세 가지 중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는 실제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앞의 두 가지는 이 땅에서 실행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무죄입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그러므로 앞의 두 가지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닙니다.
그럼 어떤 뜻일까요? 먼저,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세상에서는 분노했다고 심판을 받지 않지만 그것은 분명히 심판받을 죄다, 그 다음 '공회에 잡혀간다'는 것은 라가라 하는 것은 죄일 뿐만 아니라 사소한 죄가 아니라 매우 심각한 죄다, 그 다음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은 미련한 놈이라 하는 것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 죄냐 하면 지옥 불에 던져질 정도로 큰 죄다! 이렇게 점진적으로 그 죄들이 심판받아 마땅한 큰 죄이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지옥에 던져지게 만드는 죄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셋 다 지옥에 던져지게 하는 죄들입니다.
이 구절이 실제로 그런 의미라는 것을 보여주는 몇 가지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첫째, 두 가지 욕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라가'라 하는 것과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비슷한 죄입니다. '라가'는 아람어인데, 문자적 의미는 '텅 빈', 실질적 의미는 '골빈 놈'에 해당하는 욕입니다. 골빈 놈이나 미련한 놈이나 도낀개낀이지요!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두 욕에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라가'라 하면 공회에 잡혀가는 것으로 끝나고, '미련한 놈'이라 하면 지옥 불에 던져지게 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더구나, 공회에는 사람을 사형시킬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산헤드린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긴 것입니다.
요한복음 18:31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그러니 더욱 형평성에 맞지 않지요. 그러므로 그런 의미일 수가 없습니다.
둘째, 세 가지 다 살인죄에 해당됩니다.
'노하는 것'과 '라가라 하는 것'과 '미련한 놈이라 하는 것!' 세 가지 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입니다. 셋 다 주님이 보실 때는 살인입니다. 왜냐하면 셋 다 6계명을 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셋 중 하나만 지옥 불에 던져질 수 있겠습니까? 셋 다 지옥에 던져지게 됩니다.
셋째, 셋 다 '더 나은 의'와 관련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단언하셨습니다(20절). 더 나은 의는 율법의 문자가 아니라 정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셋 다 제6계명의 정신을 보여준 것입니다. 셋 다 어느 것을 범하든 더 나은 의가 없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가 아니라 셋 다 지옥행입니다.
넷째, 바울도 분내면 지옥에 간다고 했습니다.
'노하는 것'은 제일 처음에 나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욕하는 자들뿐 아니라 노하는 자들도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19-21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그러니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자만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이 아닙니다. 노하고, 라가라 하고, 미련한 놈이라고 말하는 자 모두 지옥 불에 던져집니다. 그러므로 이 중 어느 하나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참으로 충격이지요! 죄에 비해 처벌이 너무 무겁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싱클레어 퍼거슨은 실제로 그리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죄들이 하나님 나라에 부적합할 만큼 중대하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죄들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하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맞는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분내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고, 고린도전서 6장 9-10절에는 모욕하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요한일서 3:14-15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여러분, 왜 예수님이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22절)고 하셨는지 아십니까? 살인은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생겨납니다. 그런데 그 미움에서 분노와 욕설이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가르침은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라는 말씀과 정확히 같은 뜻입니다. 따라서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하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라는 말씀처럼 그런 자들이 지옥 불에 던져지게 되는 것 역시 마땅한 것입니다.
희한한 사실은, 싱클레어 퍼거슨도 마음으로 간음한 결과가 지옥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분명하게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떤 죄가 더 큽니까? 살인입니까? 간음입니까? 당연히 살인이지요! 그러므로 퍼거슨의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고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도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다행히 많은 학자들이 이 구절을 그와 다르게 해석합니다. 예를 들어, 본회퍼는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형제에게 노하는 자, 욕하는 자, 공공연하게 헐뜯고 멸시하는 자는 곧 살인자요 따라서 하나님 앞에 설 곳이 없는 자다. 형제에게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에게서도 떨어져 나간 사람이다. 그에게는 하나님께 오는 길이 있을 수 없다. 그의 제물, 그의 예배, 그의 기도가 모두 하나같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한다."
또한, 헤르만 리델보스도 이렇게 썼습니다.
"여섯 번째 ... 계명은 그것은 단지 살인 행위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 살인으로 유도할 수 있는 모든 감추어진 동기에도 적용된다고 가르친다. 또한 지상의 처벌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한다. 지옥 불만이 그 죄에 대한 적절한 심판이다. ...
예수께서는 이것들이 별로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죄들의 예이기 때문에 살인 행위와 같은 수준에 두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이러한 '사소한' 죄라도 랍비들이 살인에 부가한 것과 동일한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하신다. 그래서 그는 본문 중반절에 지상의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 공회를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셔서 그것을 부가하신 것이다. 심지어 그럴 경우에라도 죄가 대단히 가볍게 취급될지도 모른다. 모든 죄는 그것이 인간의 눈에는 아무리 하찮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궁극적으로 지옥 불의 형벌을 받기에 충분하다(22절 하반절)."
어떻습니까? 이제, 그동안 사소하게 여겼던 화를 내거나 욕하는 것이 결코 사소한 죄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아셨지요! 그것은 제6계명을 범하는 살인죄입니다. 그런 죄를 계속해서 짓고 살면 지옥 불에 던져집니다. 그런데 그 죄들은 저절로 떨어져 나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심각한 죄로 인식하고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철저히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어영부영 살다가 지옥에 가지 않고 반드시 천국에 들어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