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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헤세의 노래
가톨릭대상 수상 소감
어린 시절 어른들로부터 '말을 조리 있게 잘 하니 아나운서나 변호사가 되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런데 60이 되어 돌아보니 ‘말을 잘 하는 사람은 말을 많이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는 속담이 있습니다만 확률 논리로 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할 말이 많아도 길어지면 안 되겠기에 아예 소감문을 적어왔습니다.
제 어린 시절은 누구나 가난했고, 경제성장을 담보로 독재정치가 정당화되던 시절이었기에 늘 사회적 혼란이 있었습니다. 4.19혁명과 5.16군사 쿠테타 그리고 5.18광주 민주화 민중항쟁 등을 대부분 직간접으로 겪었고, 대학생 때는 통일과 민주화를 위한 학생운동에 가담했었습니다. 가난과 억압이라는 두 굴레 속에서 허덕이는 이웃들을 일상처럼 바라보고 살아야 했던 삶은 고스란히 내면의 고통이 되었고, 미처 삭이지 못한 고통은 한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내 곁에 책과 음악이 있었고 틈만 나면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음악실에서 피아노를 치는 것으로 고통과 한을 달래었습니다.
13살이라는 나이는 내게 매우 특별합니다. 헤르만 헷세의 ‘흰 구름’이라는 시 한 편이 내면의 치유(healing)을 가져다 준 때이고, 내게 평생 동안 고통의 멍에가 되는 희귀난치병이 시작된 해이기도 합니다. 또한 샤를 드 푸꼬의 전기를 읽고 예수를 따라 살기로 결심한 해이기도 하지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극심한 통증이 수시로 엄습해 올 때마다 늘 내 곁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께서 내 고통을 함께 겪어 주신다고 믿었고, 그 믿음과 감사의 기도는 오롯이 노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게서 떠오른 600편의 노래는 크게 두 장르입니다. 헷세의 시에 의해 치유된 이후 떠오른 시 노래와 항상 내 곁에 함께 해 주시는 임마누엘 하느님과의 대화를 담은 찬미와 기도노래가 그것입니다.
1975년 전남대학 캠퍼스송 경연대회(대학가요제의 효시가 된)와 1978년 제 2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자작곡으로 수상했지만 대중연예계에 진출하여 그 스펙을 상업적 가치로 환원시키거나 그걸 활용해서 개인의 입지를 굳히려 하기보다 우리 사회의 공동선에 이바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결과 시민연대에서 15년 전인 2000년에 <생활 속의 신지식인>으로 선정해 주었고 1996년에는 민주화 실천가족운동 협의회(이하 ‘민가협’)에서 주최하는 ‘양심수 석방을 위한 시민가요제’에서 <열린감옥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고교 졸업반 때 ‘광주고등학교 개교 25주년 기념 마라톤대회’에 출전하고 완주하여 받은 준우승 상장, 이렇게 세 개의 상장은 내 삶의 좌표를 말해줄 수 있는 자랑거리입니다. ‘생활 속의 신지식인 선정’은 ‘자신과 이웃의 삶의 질을 높이는 창조적 생활인’임을 확인한다는 내용이었고, ‘민가협’에서 받은 ‘열린감옥상’은 ‘양심수의 아픔과 가족의 희망을 감동적으로 아름답게 노래’한 공로로 받은 것이며, 마라톤 준우승 상장은 육상 전문인이 아닌데 첫 출전에서 끝까지 달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국가톨릭 성음학 문화를 크게 발전시켰고 음악을 통해 교회 공동체와 사회 공동선에 이바지 해온 공로로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이하 ‘평협’)에서 받은 이 상이 또 하나의 자랑이 될 것이며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을 앞으로도 잘 살아내라는 격려와 위로로 삼겠습니다.
대학가요제에서 자작곡으로 4번 수상했고 가톨릭창작성가 공모에서 4번 수상했으며, 다양한 장르에 걸쳐 600여 곡을 작곡하여 26개의 음반을 냈기에 많은 분들이 저를 음악가로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제 자신의 정체성을 인문학도이자 사회운동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닦고 익히고 연구한 인문학,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학을 매개로 세상과 소통할 때, 혹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이웃들에게 알리고 동참을 독려하는 과정에서 음악이 통로 혹은 메신저 역할을 했을 뿐이기에 예술창작인일 수 있지만 음악가는 아닙니다. 음악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 해 왔고 앞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은 ‘음악과 인문학이라는 문화예술창작을 통한 하느님 나라 회복운동’인데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됩니다. 하나는 ‘생태보전환경과 인권회복으로 지칭되는 사회운동’(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돕기 포함)이고 또 하나는 ‘인문학을 토대로 한 힐링운동’입니다.
참고삼아 잠시 제가 살아온 궤적을 짚어보겠습니다.
1. 대학가요제에 나간 것은 당대의 학생운동을 뒤에서 지원하는 레지스탕스(resistance-프랑스어 / 지하 저항운동)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하다 수감된 친구들이 한복을 입고 싶어 했기에 노래를 불러 모금한 돈으로 마련해주거나 영치금 등을 넣어 주었던 것이 가요제 참가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2. 가톨릭 매스컴위원회의 반예문 신부님과 함께 한국 대중가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잘 알려진 노래들을 영문으로 번역하여 당대 탑 가수들의 음성으로 음반을 만들어 국내보다는 해외에 널리 보급했던 것과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부르는 노래 ‘나의 친구에게’라는 음반을 만들어서 듣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보청기를 끼워주는 일을 해 왔습니다.
3. 민주화 실천가족운동 협의회(이하 ‘민가협’)에서 주최하는 양심수 석방을 위한 시민가요제에 나가 ‘열린감옥상’을 받았습니다.
4. 백혈병과 심장병 어린이들을 비롯하여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돕기 위한 ‘명동성당 앞 거리공연’을 1987년부터 박준(토마스)와 함께 해 왔습니다.
5. 노래공연을 통해 ‘새만금갯벌 살리기 운동’과 ‘부안 핵 폐기장 반대 운동’등 환경과 생태보전 운동을 해 왔고, 사형폐지와 감염인 돕기, 군 의문사 문제제기와 양심수 석방 등 ‘인권회복을 위한 대(對)사회운동’, ‘용산참사’‘촛불시위’‘시국미사’등을 지원했고, 시국기도회를 진행했습니다.
6.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서 1992년부터 24년째(1207회) 매주 수요일마다 진행해 온 ‘수요시위’에서 3번 당번을 했고,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한 미사, 재능교육 사태, 강정마을 길거리미사 음악진행 지원 등을 비롯하여 교도소나 나환자마을 그리고 장애인 단체 등을 돕기 위한 자선공연 혹은 재능기부 공연을 해 왔습니다.
7. <한국 헷세학회><한국인간발달학회><심리상담학회> 등과 연대하여 ‘인문학을 통한 삶의 치유’라는 노래가 있는 강의를 진행해 왔고, 초중고교와 대학에서 ‘노래로 풀어보는 교육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8.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국내외 전체 사회 안에서 6,000여 차례 이상의 대중강의와 콘서트 혹은 방송과 매스컴을 통한 활동을 했습니다.
공적을 나열하고 기리자는 뜻이라기보다는 내 문화운동의 좌표가 음악이 아니라 좋은 삶, 보다 나은 삶이며 그것도 나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함께’라는 반증으로 삼고 싶어서입니다. 이런 삶의 내용을 15년 전에 알아차린 시민연대에서 ‘자신은 물론 이웃들의 삶을 향상시킨 공로로 ’생활 속의 신지식‘으로 선정해 주었던 것입니다.
문화는 곧 삶이기에 삶을 배제한 문화는 의미가 없다고 여깁니다. 그러므로 제가 해 온 문화운동은 삶의 운동입니다. 또한 이 운동은 ‘믿음은 곧 삶’이라는 기독교의 원영성과 상통하며 예수께서 살아내셨던 삶의 방식을 따라 삶으로써 예수운동의 핵심인 ‘하느님 나라 회복운동’에 동참하는 것이 됩니다.
가톡릭대상 수상의 진정한 의미는 ‘공동선에 이바지한 숨은 그리스도인 찾기’입니다. 그러므로 문화기능자라거나 전문가를 문화부분 수상자로 가려 뽑자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지닌 문화의식 혹은 문화적 소양으로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사람을 찾아 공로를 치하하는 것입니다. 부족한 제게서 이런 내용을 가려내주고 짚어내 주신 ‘평협’의 귀한 안목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그 대상자가 될 만한 업적을 남겼다’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삶의 가치로 살아왔다는 것을 알아차려 주셨기에 계속 그렇게 살라는 격려로 삼겠습니다.
아쉬운 것은 전체교회가 평협의 안목을 따라 교회가 세속화되는 것을 막으며 글로벌화 된 자본과 상업주의에 맞섬으로써 팽창과 안주보다 공동선에 기여해 가기를 바라고 싶습니다. 교회는 이런 일을 선도해 가야할 소명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회는 본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여야 한다는 원영성(原靈性)을 회복해 가길 소망합니다. 성서 안에서 ‘가난하다는 것’은 물질적으로 궁핍한 것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로 하는 것이 있는 사람’을 말하기에 하느님 나라를 갈망하는 사람들이지요. 하느님 나라를 갈망하는 하느님 백성들이 갈 곳을 잃고 헤매지 않도록 ‘쉼과 위로’, ‘회복과 평안’을 주는 교회가 되길 바라고 싶습니다. 이런 좋은 날 이런 제안을 드리는 이유는 평신도에게는 이런 기회가 잘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의 주인은 평신도이기에 교회란 곧 우리 혹은 나 자신임은 물론입니다.
내 노래를 아끼고 사랑해 주신 고 김수환 추기경님과 염수정 추기경님,
내 가슴에 가난을 새겨준 프랑스 쌩드니 교구의 오영진 올리비에 대주교님,
내 노래를 통해 성소를 선택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수많은 성직자와 수도자,
또한 묵묵히 힘든 일상을 살아내면서(받아들이면서) 내 노래를 통해 위로와 회복을 이루고, 아이오니오스 조에(αιωνιος ζωη/永生/다른 삶/거듭나는 삶)를 살아가는 계기로 삼아준 수많은 평신도 수용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분들의 수용이 내게 가장 큰 격려와 위로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힘들고 까다로운 삶을 살아가는 나를 잘 도와준 내 아내와 세 아이들 그리고 가족 형제들과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13살 때 나를 회복시켜 평생을 ‘인문학을 통한 치유의 삶’을 살게 도와준 헤르만 헷세가 기도시를 남겼고 제가 곡을 붙였습니다. ‘헷세의 기도’를 들려드리는 것으로 제 소감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헷세의 기도 헤르만 헷세 시/ 김정식 곡
나로 하여금 나 자신에게 절망토록 하소서
그러나 당신을 향해 절망하지 않게 하소서
방황의 탄식을 모조리 맛보게 하시어
온갖 고뇌의 불꽃으로 나를 사르시고
나로 하여금 온갖 욕됨을 받게 하소서
내가 자신을 유지하는 일을 돕지 않게 하시고
내가 자신을 확대하는 일을 돕지 않게 하소서
하지만 내 자아의 모든 것을 소멸했을 때면
그것을 행하신 분은 당신이라는 사실과
당신께서 불길과 고뇌를 만드셨다는 사실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왜냐하면
나는 기쁘게 멸망할 수 있고 기쁘게 죽겠으나
당신의 품이 아니고서는 죽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목요일에 상받는것 못 뵈었지만, 이렇게 동영상으로 보니 명동가톨릭회관에 참석한 기분이 들어요~^^
한결같은 심성을 지닌 로제님께
하느님께서 복을 내리셨습니다^^
다시한번 축하드려요^^*
로제선생님 긴장 많이 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로제리오 형제님께 진심 축하 드립니다.
(정프코)
마음 다해 축하드려요 로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