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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릴 때부터 앞으로 4~50년 후면 석유가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배우곤 했다. 20여 년 전 필자가 중학교 때나 지금이나 ‘앞으로 4~50년’ 이라는 말에 변함이 없는 것을 보면 별로 정확한 수치는 아닌 것 같지만,
여하튼 금세기 중반 경에 석유가 쫑난다는 것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이것은 경고의 목소리이기도 하지만, 다시 말하면 아직은 그만큼 많은 석유가 남아 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 유가는 엄청난 속도로 폭등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텍사스 중질유 기준으로 140달러에 육박했으니 40불 전후이던 2006년경에 비해 무려 3배 반이 오른 셈이다.
40불 넘던 시절에도 고유가 시대 운운했으니 지금이 얼마나 엄청난 상황인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말 그대로 3차 오일 쇼크의 문턱에까지 도달해 있는 것이다.
이런 무서운 유가 상승세의 이유에 대해서는 투기 자본의 유입, 달러화 약세 등 다양한 분석과 주장이 있고 그런 것들 역시 분명 현 상황에 한 몫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석유를 포함하여 천연 자원이던 공산품이던 농산물이던 가격 상승의 가장 일반적인 원인은 수요과 공급이 불균형해질 때이다. 그리고 진지한 석유 전문가들의 상당수가 현재 바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불안해 하고 있다.
그럼 왜? 4~50년 쓸 석유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데 대체 왜 벌써부터 이런 현상이 일어난단 말이냐. 그리고 이 상황은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며 우리는 또한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오늘부터 몇 회에 걸쳐 이 문제에 대해 심도 깊게 함 알아보자.
‘40년 남은 석유’의 허상
일단 40년간 쓸 석유가 남아 있다는 것이 대체 무슨 말인지부터 정확히 알고 넘어가자.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우리 대부분은, 앞으로 40년 동안 계속 풍족하게 석유가 뿜어져 나오다가 어느 특정한 날이 되면 뚝 끊기게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마치 자동차 기름 탱크처럼, 경고등이 들어와도 아랑곳없이 계속 잘 나가다가 기름이 아예 바닥나면 그 순간 푸드득… 하면서 퍽 꺼지는 그런 상황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우리의 어설픈 상상과는 전혀 다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유전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유전을 지하 깊은 곳에 형성된 석유의 호수 같은 것으로 그리곤 한다. 종유석이 흘러 내리는 거대하고 음산한 지하 동굴과 그 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검은 석유의 바다… 여기에 빨대만 꽂으면 이제 석유가 지상으로 솟구쳐 나오는 그런 광경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 석유의 바다 속에는 어쩌면 기름만 먹고 사는 형태로 진화한 공룡 같은 괴생물이 헤엄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실제로 어려서 이런 것을 소재로 한 만화책을 본 적도 있다.
그러나 이런 석유 호수 따위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전은 이런 것이 아니라, 지하의 암석군 속에 고열고압상태로 조밀하게 스며들어 있는 기름띠 지역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기름에 젖어 있는 돌덩어리들이 모여 있는 곳이 유전이라고 보면 된다. ‘석유’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닌 거다.
비록 이렇게 어정쩡한 반액체 상태로 묻혀 있지만, 땅 속 깊은 곳에는 매우 높은 압력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파이프를 올바른 위치에 꽂게 되면 바위 주변에 붙은 액체 성분인 석유와 주변 지하수 등이 강한 압력을 받아 함께 솟구치게 된다. 그런 것이 바로 여러분이 제임스 딘이 열연한 ‘자이언트’ 같은 영화에서 본 석유가 뿜어져 나오는 광경이다.
위 그림처럼 석회암층과 사암층 등에 섞여 있는 석유가 물과 함께 뿜어져 나오는 것이며, 석유의 호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석유를 빼 내면 빼 낼수록 지하 유전 내부의 압력은 빠져 나간 석유의 부피만큼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동차 기름통처럼 석유가 액체로 고여 있는 구조라면야 펌프로 계속 뽑아낼 수도 있겠지만 바위 사이에 늘러 붙은 석유는 자체 압력이 없을 때는 제대로 끌어낼 수가 없다.
따라서 약해진 압력만큼 석유가 나오는 속도도 약해지며, 이는 다시 말하면 유전의 나이가 어느 시점을 지나면 일일 석유 생산량이 조금씩 감소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전 밑에 바닷물을 집어 넣어 부족한 압력을 채워 넣는 방식 등이 사용되고 있지만 그것 역시 한계가 있다.
결국, 석유는 우리가 배워 온 것처럼 앞으로 40년간 콸콸 쏟아지다가 어느 순간에 툭 끊기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시점 이후로 조금씩 조금씩 그 생산량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석유 문제를 이해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석유 정점 (Oil Peak)
현재 지구상의 하루 석유 생산량은 8500만 배럴로서, (1 배럴은 158.9 리터로 200리터 드럼통의 3/4 이상을 채우는 양이니 대략 6천 4백만 드럼의 석유가 ‘매일’ 생산되고 쓰이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위와 같은 형태의 수많은 유전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생산량의 총합이다.
그 유전 중 일부는 이미 생산량이 줄어 들고 있고, 또 어떤 유전은 새로 발견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새로 발견되는 유전들은 비교적 소규모이고 사우디 아라비아의 가와르 유전과 같은 거대 유전은 1940년대부터 채굴이 시작되어 이미 노후 현상이 뚜렷한 실정이다. 비록 기술 개발 등으로 지금까지는 전체적인 석유 생산량이 매년 조금씩 늘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가면 조만간 생산량이 더 이상 늘지 못하는 한계 시점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이 시점을 석유 정점(Oil Peak)이라고 부르고, 에너지 위기를 걱정하는 석유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것도 40년 후의 석유 고갈이 아니라 바로 이 석유 정점 이후이다.
왜? 함 생각해보자. 기본적으로 문명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에너지 소비량은 증가하고 따라서 석유 사용량도 늘어나게 되어 있다. 이때까지도 계속 그래왔지만 특히 최근에는 합쳐서 20억이 넘는 인구를 지닌 중국과 인도가 발흥하고 있어서 그 속도와 규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예컨대 13억 중국 인구가 집마다 차 한대씩을 갖는 미래를 상상해 보면 그때의 기름 소비량이 얼마나 클 것인지는 대충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석유 생산량 예상 그래프. 맨 위의 꼭지점이 바로 석유 정점(Oil Peak)이다. 정점의 정확한 시점이 언제냐는 것은 학자나 조직에 따라 판이하지만 ‘바로 지금’ 지나고 있다는 설도 있다.
이렇게 전지구적으로 급증하는 석유 수요를 따라 잡으려면 그만큼 생산량도 늘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런데 앞서 설명한 이유로 인해 석유의 연간 생산량 증가 곡선은 점차 완만해지게 되고, 정점에 도달하면 그때부터는 위 그래프의 우측 절반에서 보듯이 영원한 감소세로 돌아서게 된다. 이때부터 석유의 수요와 공급은 역전의 가능성이 없는 본질적이고 만성적인 불균형 형태로 진행되게 된다.
이때는 물론 유가도 엄청나게 상승하겠지만 문제는 거기에만 있는 게 아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 상승과 함께 석유 수급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즉 돈과 힘을 가진 세력들이 석유를 선점하기 때문에 돈 없고 힘 없는 나라는 돈을 주고도 석유를 살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 피해는 강대국보다는 제 3세계 국가들이 보게 되는데,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 차원이 아니라 한 나라 내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이 일찌감치 석유를 독점하고 일반 서민들에게는 돌아올 양이 충분히 남지 않는 사태가 일어나게 된다. 에너지 불평등 현상이 전면적으로 도래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길거리에는 최고급 승용차만 돌아다니고 우리의 준중형과 소형은 주차장에서 썩어가게 될 지도 모른다.
석유 공급의 부족은 돈이 있어도 기름을 살 수 없는 현상을 초래한다. 이때 가장 고통을 받는 것은 일반 서민들이다.
그럼 지금의 이 사태는 대체 무엇일까? 유가 140불을 넘나드는 현재, 전세계 하루 석유 생산량은 8500만 배럴인데 비해 수요는 8700만 배럴 전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즉 매일 200만 배럴씩의 석유가 모자란 것인데, 우리는 모르지만 분명 세계 어느 구석에서 누군가가 필요한 만큼의 석유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부족한 200만 배럴의 석유를 산유국이 증산하여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달 사우디 아라비아는 미국 부시 대통령의 긴급한 석유 증산 요구를 냉정하게 거절했다. 미국과 사우디의 전통적 밀월 관계로 비추어 볼 때 이는 의외의 상황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 그 전후 석유수출국기구 OPEC 또한 ‘석유 증산은 필요 없다’ 는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한편 지난 달 내한하여 서울대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던 ‘세계 석유 대통령’ 알 나이미 사우디 아라비아 석유 장관의 경우 파이낸셜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는 ‘현재의 유가 상승은 산유국의 증산 능력 부족에 의한 근본적인 것’ 이라고까지 이야기했다가 얼마 후 ‘증산은 필요 없다’ 며 OPEC과 입을 맞추는 등 아리송한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과연 증산이 정말 필요 없는 것인지, 아니면 산유국의 증산 능력이 한계에 도달한 것인지의 부분이다. 전자가 사실이라면 현 유가 폭등의 원인은 전적으로 투기 자본이나 달러화 약세 등에 있다는 뜻으로 일시적인 문제일 뿐이지만, 후자의 경우라면 인류가 이미 석유 정점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나 다름 없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석유 정점에 도달한 것인지 아닌지는 산유국들이 현재 석유 생산량을 더 늘려 가격을 조정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소장파 석유 전문가와 학자들은 석유 정점이 2007~8년경에 도래할 수도 있다고 오래 전부터 주장해 왔다. 만약 이미 우리가 정점에 도달한 것이라면 앞으로 석유 가격은 사실상 다시는 내려가지 않으며, 내려간다 하더라도 일시적인 것일 뿐 금방 다시 반등하게 된다. 다시 말해 인류가 지난 백여 년간 누려온 값싼 석유의 세상은 완전히 끝나는 거다.
그 경우 아직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우리 인류가 겪어야 할 충격은 과거의 2차에 걸친 오일쇼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재앙에 가까운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1970년대 오일 쇼크의 경우는 석유의 절대량이 부족한 것이 아닌, 정치적인 문제 등에 의한 일시적인 공급 부족 현상이었음에도 그 국제적 충격은 엄청났었다. 앞으로 올 석유 정점에 의한 3차 오일 쇼크는 매장량과 생산량의 본질적인 한계로 인해 생겨난다는 점에서 그 경우들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르며, 일부 학자들은 현대 문명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극단적인 비관론까지 내 놓고 있다.
사정이 이럼에도 대부분의 오일 메이저와 산유국들은 각자의 경제적, 정치적 이익과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 석유 정점이라는 말 자체를 금기시하며 인정하지 않고 있고, 실제로 우리가 언제 정점에 도달할지, 또는 언제 석유가 고갈될지 등의 필수적인 예측 역시 정보의 광범위한 통제와 조작으로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일상적으로 쓰이는 에너지이자 현대 문명의 동맥이라고도 할 석유 자원의 실체와 미래에 대해서 그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더도 덜도 아닌 21세기 초 현재 우리 인류의 수준이자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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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설명 드렸듯, 비록 우리가 현재 석유 정점에 도달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앞으로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그날이 도래할 가능성은 거의 100%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석유뿐 아니라 석탄이나 구리 같은 광물 등 소위 ‘고갈성 자원’ 모두에 해당하는 사항이지만 석유의 문제는 단기간에 너무 많은 양을 소비해 왔다는 점에서 그 문제가 빠르고도 긴박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하루 8700만 배럴이라는 수요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인류가 소비하는 석유의 양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1배럴이 159리터 정도이니 석유의 비중을 생각해서 대략 200킬로그램이라고 본다면, 8700만 배럴은 1740만 톤, 즉 8톤 트럭으로 217만 5천대가 실어 날라야 하는 규모다. 이런 양의 석유를 우리는 ‘매일’ 쓰고 있는 거다.
이런 무시무시한 양 만큼이나 석유 사용의 분야 역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자동차나 비행기, 선박 등등의 연료나 난방유, 발전용 기름, 각종 기계 오일류 등등이 직접적으로 떠오르는 부분들이지만 이런 것은 사실 일부에 불과하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여러분이 눈을 들어 고개를 돌리는 모든 곳에 석유가 존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플라스틱인데 이것이 우리 일상에서 얼마나 많이 쓰이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석유를 괜히 문명의 동맥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따라서 이런 석유의 부족은 단지 ‘에너지’의 문제만이 아니라 철과 함께 현대 문명을 지탱하고 있는 기본 재료인 합성 수지의 부족이라는 사태로 직결될 수 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많은 플라스틱 제품을 값싸게 쓰고 또 함부로 버릴 수 있는 것은 모두 값싼 석유 자원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그 값싼 석유가 사라진다면 마치 당연한 듯 느껴지던 그 모든 것들은 180도로 변할 수 밖에 없다.
만약 우리가 석유 정점을 지나게 되어 유가가 200, 300달러를 넘어서면, 지금 필자가 타이핑하고 있는 노트북 키보드에서부터 마우스, 모니터, 프린터, 아답터, 의자 등등의 생산에는 치명적인 차질이 오게 된다. CD나 DVD, 휴대폰, 볼펜, 선풍기, 테레비, 신발 밑창, 나일론 점퍼와 스타킹, 오디오, 자동차 인테리어, 타이어, 인조가죽 소파, 변기 뚜껑, 전선 피복, 라이터 등등은 물론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있는 페트병과 매일같이 산더미처럼 소비되는 비닐 백 등도 마찬가지다.
이 현상은 처음에는 가격이 상승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아예 물자의 부족으로 이어지게 된다. 즉 돈을 주고도 살 수가 없게 되는 거다. 그렇다면 그때 우리는 마우스나 신발 밑창을 나무나 금속 등으로 만들어야 할까? 가능이야 하겠지만 그러기 시작하면 이제 그 재료들 역시 얼마 안 가서 심각한 부족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전세계에 컴퓨터가 10억대 있다면 마우스도 10억 개가 필요하고, 신발이 100억 켤레 있다면 고무 밑창은 200억 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놀랍게도 석유는 이런 식의 수요를 현재까지 모두 충당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우리가 즐겨 씹는 껌에도 석유가 들어 있다. 하루에 전세계에서 씹히고 버려지는 껌의 숫자는 대체 몇 개나 될까?
물론 언젠가는 석유를 쓰지 않은 값싼 합성수지 대용품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너무나 값싼 석유와 이를 원료로 한 플라스틱 가격으로 인해 그런 부분의 기술 투자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왔다. 따라서 전문가들의 예상처럼 갑자기 석유 정점이 도래하게 되면 모든 합성수지 제품의 가격과 수급에 반드시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 상황을 좀 버티고 시간이 다소 지나면 기술 개발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과연 그 기술이 정착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할 경제 구조가 석유가 부족한 상태에서 멀쩡히 존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플라스틱 문제도 실은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글로벌 경제 하에서 원자재 가격 및 운송비의 상승으로 인해 석유와 직접 관련이 없는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도 물가의 극적인 상승과 수급 불안이 빚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필자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말레이시아 제이며 타이핑하고 있는 컴퓨터는 중국에서 만든 것이다. 냉장고의 야채도 중국과 동남아, 와인은 칠레, 쇠고기는 호주 등등… 이제 국내에서 만든 공산품이나 식자재를 찾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점은 다들 경험하시는 바와 같다.
이것들이 국내에서 이렇게 잘 팔리는 단 한가지 이유는, 수천 킬로미터를 옮겨오고 여러 번의 중간 마진이 붙은 상태에서도 여전히 국내산보다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가능한 배경은 바로 값싼 석유 에너지를 통한 저렴한 운송비이다. 제 아무리 현지의 인건비나 재료비가 싸다 하더라도 운송비가 턱없이 많이 들면 충분히 싼 가격으로 공급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운송의 중심에는 엄청난 기름을 먹지만 한편으로 엄청난 양을 운송할 수 있는 거대한 선박들이 존재하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석유 값이 오르면 오를수록 모든 수입 공산품과 식품, 식품과 공업 원자재 등의 가격도 동반 상승할 수 밖에 없다.
만약 기름값이 너무 올라 수지타산이 맞지 않던가, 혹은 이 화물선들을 채울 수 있는 충분한 기름을 확보할 수 없게 된다면 결국 배는 멈추게 될 것이다. 이때는 진정한 재앙이 시작된다. 예컨대 국내에 들어오는 밀가루의 양이 지금의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이것은 단지 라면 가격의 상승이 문제가 아니라 라면의 생산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는 뜻이다. 물론 운송이 안되니 수출길도 막힌다. 그렇다면 라면 업계들은 조만간 줄줄이 도산하게 될 것이며 그것 한 가지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밀가루 관련 업계 전체가 받는 타격과 그 여파는 얼마나 될 것인가. 또 밀가루 하나가 이럴진대 나머지 모든 것들이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우리 사회, 경제, 정치, 일상 생활은 과연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
최근 발생한 화물연대의 파업은 이런 현상의 전초전일 뿐이다
물론 석유 정점을 지난다고 해도 당분간 화물선이 멈추는 극단적인 일까지 일어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식재료와 원자재의 가격 상승은 이미 시작되고 있으며 유가가 내려가지 않는 한 그 여파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유가가 내려가고 밀가루 값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라면 값은 다시 떨어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것은 라면 업체들의 몰염치와 비양심보다는, 가격이 올라간 상태에서 새로 만들어진 라면을 둘러싼 생산과 유통, 소비의 각종 경제 구조들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것들도 물론 다 마찬가지다.
암튼간에, 이처럼 우리가 현재 건설해 놓은 글로벌 경제, 혹은 세계화는 석유 가격과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그 순간 폭삭 가라앉을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것이다. 그래서 어떤 연구가들은 지난 100년간의 석유 문명이 인류 역사상 매우 드물고도 유별난, 말하자면 ‘신의 축복’을 받은 시기였으며, 이제 그 축복을 마구 남용한 결과 그 모든 거품들이 일거에 사라지고 조만간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렇다. 거리를 뒤덮은 수많은 자동차의 물결도, 한나절이면 한국에서 미국까지 날아갈 수 있는 놀라운 속도도, 함부로 쓰다가 아무렇게나 버리는 일회용품의 홍수도, 전세계의 산해 진미를 동네 수퍼에서 맛볼 수 있는 물자의 교환도 모두 꿈처럼 사라진 세상, 바로 20세기 이전의 모습으로 세계가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것도 짧게는 몇 년 내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거다…
석유 정점과 전세계 석유 및 에너지의 현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식의 예상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을 보내곤 한다. 물론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바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지 않는다고 해서 과연 오지 않거나 쉽사리 막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 생각해 봐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반론 중 하나는 대체 에너지의 개발 등으로 이 모든 문제가 거의 자동적으로 해결되어 갈 거라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대게 자유시장 경제 원칙과 기술 발전에 대한 낙관론이 자리하고 있다. 값싼 석유 에너지의 경쟁력이 떨어지면 지금까지 비싼 개발비나 공급비 등으로 시장 가치가 적었던 새로운 에너지, 즉 신재생 에너지 부분의 경쟁력이 올라가고, 경제 원리에 의해 자동적으로 이 분야에 대해 많은 투자가 되고 기술 혁신이 이루어져서 그 결과 석유의 빈 자리를 충분히 메꾸고도 남을 만큼의 공급량을 충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로 경제학자들이 견지하는 관점이다.
우리는 자본의 투입과 기술의 발전을 통한 에너지와 재화가 넘쳐나는 미래를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곤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사실 이런 법칙은 상당히 많은 경우에 유효하다. 유효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경제가 지금처럼 나름대로 동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석유의 경우에도 이런 공식이 그처럼 단순하게 적용될 수 있을까?
물론, 이미 인류는 화석연료 외에 다양한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미 상용화되어 있는 수력과 원자력(사실 원자력은 우라늄 매장량의 한계 – 약 5,60년 분량이 남았다고 봄 - 로 인해 조만간 화석 연료의 경우와 비슷한 미래를 맞이하게 된다)이다. 그리고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태양력, 풍력, 지열, 조력, 수소 등 다양한 다른 방식들도 있다. 미국 모하비 사막의 거대한 태양열 발전 시스템이나 높이 100미터가 넘는 거대한 풍차가 수십 기씩 모여 있는 강원도의 풍력 단지의 장관을 보고 있노라 면 에너지 문제와 환경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신재생 에너지의 미래에 대해 부푼 희망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 지구상의 에너지 현실은 그런 순진한 희망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일단 많은 분들이 혼동하는 부분부터 먼저 짚고 넘어가자면, 이런 시설들은 거의 대부분이 ‘전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란 점이다. 그리고 석유는 전기 생산의 주 연료가 아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전기는 주로 석탄이나 다른 화석 연료에 의해 생산되고 있으며 석유가 차지하는 양은 그리 많지 않다.
이것은 다시 말해, 태양력 발전이나 풍력 발전 같은 것들이 충분히 늘어난다 한들 실제 석유의 쓰임과 관련되어서는 중심적인 영향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석유의 중심 수요는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자동차, 항공기, 선박 등의 운송 수단과 각종 건설 기계, 중장비, 농기계의 연료, 난방연료, 그리고 온갖 합성 수지와 석유 화학 제품이다. 풍력이나 태양력이 대체할 수 있는 쪽과는 좀 다르다.
그럼 아마도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합성 수지야 뭐 다른 걸로 대체하면 되고, 연료는 요즘 여기저기서 많이 나오는 바이오 디젤이나 바이오 에탄올, 수소, 전기 같은 것으로 바꾸어 가면 되지 않나? 뭐가 그리 큰 문제냐?
물론, 이런 기술들을 집중적으로 개발해야 하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늦은 감이 있지만 아주 열심히 개발해서 빨리 상용화 해야 한다. 그러나 그래서 ‘아무 문제 없다’ 라고 한다면 그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다음 시간에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바이오 디젤과 바이오 에탄올부터 짚고 넘어가 보자. 폐식용유에서 유채 기름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원료를 통해 만들어질 수 있는 바이오 디젤은 분명 좋은 아이디어고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훌륭한 경유 대체 연료로 쓰일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지구상의 모든 석유’를 대체해 가는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폐식용유와 유채 기름 같은 방법으로 세계는 고사하고 한 나라의 경유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양이 필요할 것인가?
유채나 해바라기씨 같은 작물을 통해 세계의 디젤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3억 7천만 헥타르의 땅에 디젤 연료가 되는 식물만을 심어야 한다. 3억 7천만 헥타르는 3백 70만 제곱 킬로미터이니 22만 제곱 킬로미터인 한반도 전체와 비교한다면 얼마나 넓은 땅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비록 이런 규모의 경작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경작지의 확보에서 수확에 이르기까지 그 전반적인 작업은 그야말로 엄청난 규모이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다른 곡물을 위한 땅이 사라지므로 수확량이 줄어들 수 밖에 없어 식량난을 부추기게 된다. 그리고 방대한 양의 경작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이 크게 훼손되며 결과적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크게 늘어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현상은 이미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바이오 에탄올도 마찬가지다. 사탕수수나 옥수수 같은 일반 곡물에서 추출이 가능하니 비록 바이오 디젤보다는 대량 생산에 용이한 것은 사실이지만, 역시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무지막지한 양이 필요하다. 그럼 구체적으로 석유를 대체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바이오 에탄올이 만들어져야 하는가?
미네소타 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 미국의 옥수수가 모두 에탄올로 만들어진다 해도 미국 내 석유 소모량의 12퍼센트만이 충당 가능한 수준이다. 다시 말해 현재도 엄청난 미국의 옥수수 수확량을 지금보다 8배 늘려야 미국 내의 석유 수요만 겨우 충족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전세계적인 규모에서는 대체 얼마나 많은 옥수수가 필요할 것인가.
물론 이렇게 되면 사람에게 가는 옥수수는 이제 하나도 없다. 25갤런의 SUV 연료 탱크 하나를 채우기 위해서 한 사람이 1년간 먹을 수 있는 양의 옥수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그것은 사람의 1년 식량을 차의 1주일 분 먹이로 주는 결과다. 그깟 옥수수 좀 안 먹으면 어때… 할 분도 있겠지만 그거야 말로 정말 큰 착각이다.
멕시코를 필두로 옥수수를 주식에 가깝게 섭취하는 인구는 전세계적으로 근 20억 명에 달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슈퍼마켓에서 사먹는 포장된 음식류의 거의 대부분에 옥수수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들어간다. 사실 옥수수가 주식이 아닌 나라에서의 가장 큰 쓰임새는 설탕을 대신하는 값싼 감미료이고, 이것은 과자에서 청량음료까지 안 들어가는 곳이 없다. 옥수수의 가격 상승 및 품귀 현상은 결국 이 모든 음식의 가격 상승을 의미하게 된다.
그럼 사람의 주식이 아닌 관계로 옥수수보다 나은 평가를 받고 있는 브라질의 사탕수수를 살펴보자. 현재 세계 가솔린 (디젤 제외) 소모량을 사탕수수 에탄올로 충당하기 위해서는 3억 2천만 헥타르, 즉 320만 제곱 킬로미터의 경작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브라질의 ‘전체’ 농경지는 6천만 헥타르에 불과하며, 에탄올용 사탕수수 경작지는 3백만 헥타르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3백만 헥타르의 사탕수수 밭을 3억 2천만으로 100배 이상 팽창시키는 것은 1~2년에 되는 일이 아니라 수십 년이 소요되는 대 역사다. 그러나 석유 정점은 분명 그 이전에 온다는 점이다.
또 옥수수던 사탕수수던 이런 규모의 농경을 위해서는 엄청난 수의 농기계와 그에 상응하는 양의 농약과 비료가 투입되어야 하고, 이 모든 장비와 화학약품들은 기본적으로 석유로 움직이고 만들어진다. 이것은 악순환이다.
결국 바이오 디젤과 바이오 에탄올의 문제는 그 기술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쓰이고 있는 석유의 양이 너무 엄청나기 때문에 이를 효과적으로 대체하기에 역부족일 뿐 아니라 식량 부족이나 환경 파괴, 화석 연료의 더 빠른 고갈 등 심한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럼 전기나 수소의 경우는 어떤가? 공해 없고 소음 없는 전기 자동차와, 우주에서 가장 많은 원소라는 수소를 사용하여 물만을 배출하는 수소 자동차야 말로 이 모든 가솔린과 디젤을 대체할 수 있는 이상적인 방법이 아닌가?
얼핏 분명 그렇게 보인다. 특히 수소는 에탄올과 함께 미국이 차세대 연료로 지목하고 육성하고 있는 분야다. 2004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아놀드 슈왈츠네거는 캘리포니아의 수소 고속도로 네트워크에 착수했다. 이건 2010년까지 1억불을 들여 200개의 수소 공급소를 고속도로 상에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아놀드는 개인적으로 거대한 연료 전지 ‘허머’ 자동차를 몰고 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기 전에 전기 자동차와 수소 연료전지 자동차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는 이 두 가지 형태의 자동차를 전혀 다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전자는 전기로 동작하고 후자는 수소로 동작하는 것 같으니 그럴 법도 하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 둘은 모두 전기를 동력으로 모터를 돌려 운행하는 방식이다. 단지 그 전기를 얻는 방법이 일반 전기 자동차의 경우는 콘센트에 선을 꽂아 배터리에 충전을 하는 방식이고, 수소 자동차는 연료 탱크의 수소와 대기 중의 산소의 화학 반응을 통해 전기와 물(그래서 배기구로는 물이 배출된다)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차이뿐이다. 즉 수소 자동차는 중 고등학교 때 배운, 물(H2O)을 전기 분해하여 산소(O2)와 수소(H)를 만들어 내는 것의 반대 원리를 통해 전기를 생산해 내는 것이다.
산소야 공기 중에 널려 있는 것이니 별 문제가 없다. 그럼 수소는 어디서 오는 걸까? 앞서 우주에서 가장 흔한 원소가 수소라고 말씀 드렸지만, 문제는 이 수소라는 넘은 그 자체로서는 자연계에서 거의 구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목성 같은 곳이 아닌 한 지구상의 대기 중에 포함된 수소의 양은 매우 적기 때문에 우리는 수소를 뭔가에서 분리해 내서 사용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수소를 구할 수 있는 길은 크게 몇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탄화수소요 또 하나는 물이다.
이때 탄화수소는 다시 말해 화석연료를 이야기한다고 해도 별 무리가 없다. 실제로 현재 공업용 수소의 95%는 값싸고 간단한 고온 열공정을 거쳐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 등에서 생산되고 있다. 물론 이래가지고는 화석연료 대체 효과가 전무하며 지구상의 수많은 자동차들에 이런 방식으로 수소를 공급하려 한다면 그저 화석 연료의 고갈을 부채질할 뿐이다.
또 다른 방식은 바로 물을 전기 분해 하는 거다. 잠깐… 이렇게 되면 뭔가 모순이 느껴지지 않으신가? 그렇다. 물을 전기 분해해서 수소와 산소를 만들고, 그 수소를 차에 넣어서 다시 물과 전기를 만든다…. 결국 공정이 순환하게 된다. 그냥 순환하면야 좋지만, 문제는 이때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리해 내기 위한 에너지가 수소 자동차 내에서 발생하는 전기 에너지보다 3배 이상 크다는 거다. 따라서, 수소 자동차를 움직이기 위한 수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딘가에서 이미 만들어진 전기를 다량 투입해야만 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전기 자동차와 수소 연료 전지 자동차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것이 된다. 단지 그 전기를 저장하기 위해 배터리를 사용하느냐 수소 형태로 저장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이 전기의 대부분은 석탄 등 화석 연료가 주종인 발전소에서 만들어진다.
그럼 지구상의 자동차들을 수소 연료 전지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수소, 또 이 수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전기가 필요할까?
영국을 예로 들어보자. 지난 2004년 영국의 자동차와 택시(트럭 등 제외)의 총 운행 거리는 4천억 마일, 즉 6천 4백억 킬로미터였다. 포드의 연료전지 차량인 포커스는 수소 1킬로그램당 52마일을, 혼다의 FCX는 57마일을 달린다고 알려져 있다. 평균 55마일이라고 봤을 때 영국 운전자들이 2004년과 같은 거리를 달린다면 73억 킬로그램의 수소가 필요하다.
그런데 1 킬로그램의 수소를 만들려면 65kWh의 전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73억 킬로 그램의 수소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총 4,730억 kWh의 전기가 든다. 전체 kWh 양을 일년의 시간수로 나누어 보면 결국 영국은 시간당 54 기가 와트만큼의 전기를 여분으로 생산해야 하는 셈이 된다. 화물차까지 포함하면 대략 81기가 와트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전력량은 현재 영국의 총 전력 생산량보다 더 크다.
이런 전력을 추가 생산하기 위해서는 영국 전역에 ‘9만개’ 의 키 100미터가 넘는 풍력 발전기를 세우던가, 잉글랜드 지역의 상당 부분의 땅을 몽땅 태양광 패널로 뒤덮던가, ‘67기’ 의 대형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해야 한다.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미국 땅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풍력 단지는 일리노이 주보다 커야 하고 태양광 단지는 메사추세츠 주 전체를 뒤덮는 크기가 된다. 설사 이런 땅을 사용할 수 있고 건설 비용을 마련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같은 초거대 전력 단지를 짓는 공사에 드는 기간은 언제 닥칠지 모를 석유 정점을 대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고 위의 모든 이야기는, 그리 크지 않는 영국이라는 한 나라에서 움직일 수소 자동차에 대한 것일 뿐이다. 그러니 전세계의 자동차를 수소 연료전지 차량으로 바꾼다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한 이야기냐. 이를 위해서는 아마도 미국이나 호주, 중국, 인도 같은 나라 전체를 ‘발전 전용’ 국가로 바꿔야만 가능할 거다.
이렇게 우리가 그간 과학 다큐나 책에서 보아 왔던 대체 에너지들은 명백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대체 에너지의 미래는 그리 장미빛이 아니며, 지난 100여 년간 팽창할 대로 팽창한 석유 및 화석 연료의 소비량을 대체할 수 있는 준비는 현재 거의 되어 있지 않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그 때는 이미 인류는 석유 부족의 직간접적인 여파로 인한 엄청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심지어 석유 확보를 위한 군사적 충돌과 문명의 존폐 위기 마저 겪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런 미래에 대한 우려는 그저 우리 후손을 위한 걱정거리가 아니다. 이 모든 상황은 빠르면 몇 년 후에도 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시간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