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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동남아시아 각국의 여성의 날 풍경
국가별로 알아보는 여성의 날 풍경과 2016년 동남아시아 여성의 인권 실태
작성: 난파
지난 3월 8일은 국제 여성의 날이었습니다. 한국의 여성 인권이 제대로 자리잡지 않은 지금, 국경을 넘어 동남아시아의 여성 문제를 관심있게 바라보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도외시할 일도 아닙니다. 동남아시아는 여성의 날을 어떻게 보냈는지 국가별로 살펴봅니다.
1. 캄보디아
캄보디아의 상황은 제일 심각했습니다. 캄보디아에서는 여성 활동가들이 여성의 날을 맞아 수도 프놈펜에서 이륜차 행진을 진행했는데요. 행진이 캄보디아 여성부(Ministry Of Women's Affairs) 바로 앞에서 공권력에 의해 막히고 말았습니다. 경찰은 참가자들의 행진을 2시간이나 막고 서있었고, 참가자들은 결국 여성부 앞 벽에서 구호를 외친 뒤 해산했습니다.
UN 여성 기구와 캄보디아 기획부의 공동 조사에 따르면, 캄보디아 여성 5명 중 1명이 성적/육체적 폭력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캄보디아에서는 남성 집단의 여성 성폭행 바욱(bauk)이 암암리에 유행했습니다. '바욱'이라는 말의 뜻은 크메르어로 '덧셈'을 의미합니다만, 이는 캄보디아의 젊은 층 사이에서는 집단 성폭행의 은어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의 일부 남성들은 이를 강간행위가 아닌, 오락처럼 여기고 있는데요. 관련 기사는 여기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공산당의 전통으로 캄보디아의 여성의 날은 공휴일입니다. 때문에 기업에서는 캄보디아 중상류층 여성들을 공략한 다양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캄보디아의 여성 노동 현실은 암담합니다. 캄보디아의 핵심 산업 중 하나는 의류, 봉제 산업인데요. 이러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90%는 여성 노동자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한 달 꼬박 일해서 받는 돈은 160달러 남짓이며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합니다.
(사진) 2016년 여성의 날 퍼레이드에 참가한 캄보디아 의류, 봉제 노동자들이 월 최저임금을 177달러로 인상하라는 피켓을 들고 있습니다. 몇몇 한국 기업도 캄보디아에서 봉제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4년 1월 2일에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이 한국 의류업체 약진통상 앞을 행진할 때에, 캄보디아 정예 특수부대가 노동자들을 습격, 5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적 있습니다. / aa.com
2년 전, 봉제공장 여성 노동자들은 여성의 날을 맞아 월 최저임금을 160달러로 인상하라는 내용의 시위를 벌일 계획이었으나 소총으로 중무장한 진압경찰이 바리케이트 라인을 설치해 끝내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50만여 명의 여성 의류, 봉제 노동자들이 힘든 삶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투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2016년에 이들은 177달러로 인상하라는 피켓을 들고 퍼레이드에 등장했습니다.
2. 베트남
(사진) 새 베트남 국회부의장으로 임명된 응웬 티 킴 응언 / giaoduc.net.vn
베트남도 여성의 날은 공휴일입니다. 베트남은 지난 12차 전당대회에서 이례적인 결정을 내렸는데요. 바로 국회 부의장으로 여성인 응웬 티 킴 응언(61)을 임명한 것입니다. 베트남 최초의 여성 국회의장입니다. 보수적인 베트남 공산당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꽤 이례적입니다. 3월 8일에 맞아 베트남의 영자매체는 (많은 한계가 있지만) 변화하고 있는 베트남의 여성 역할에 대해 주목했습니다.
지도자가 여성으로 바뀌었다고 그 나라의 여성인권이 신장되겠다 기대하는 건 큰 오산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매-우' 가까운 사례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공산당 새 지도부의 임기가 시작된지 얼마 안 되었고, 응웬 부의장이 국회 부의장이라는 직책으로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음은 감안해야겠습니다. 그래도 베트남 정부는 2015년 1월 혼인가족법에서 ‘동성혼 금지 조항’을 폐지했으니 앞으로 지켜볼 만 하다 생각합니다.
여성 문제로 한국과 베트남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베트남전 성폭력 피해자와 라이따이한 문제, 결혼 이주 여성 인권 문제 등입니다. 이 두 문제에 있어 한국(인)은 오랫동안 가해자에 위치에 서있었고, 오랜 세월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들어서야 이러한 주제가 한-일 위안부 문제와 함께 성찰되고 있습니다. 작년 한국 활동가들이 베트남 '평화기행'을 위한 모금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최근에는 소녀상에 이은 '피에타' 건립을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입니다.
이런 활동이 일어나고 있어 앞으로 미래는 밝다 전망해봅니다. 하지만 이런 활동의 대부분은 민간의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고, 정부는 한국과 베트남 사이의 여성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3. 태국
태국은 '그나마' 젠더 문제에 대해서는 개방적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태국은 '트렌스젠더'의 천국이었고, 방콕은 '게이들의 수도'였습니다.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지 2년이 지났고 태국의 정세는 격변했습니다. 다양한 사건사고가 일어나 태국의 정치, 사회, 문화 뉴스는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었는데요. '바깥에서 보았을 때' 태국의 젠더 인권은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태국은 2015년 9월, 태어났을 때의 성과 다른 외모를 한’사람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며, 젠더 표현에 따른 차별에 대한 법적 보호를 명시한 내용의 <젠더 평등법>을 통과시켰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차별금지법 정도의 위상을 지닌 법인데요. 한국의 차별금지법은 참여정부 시절부터 준비됐지만, 매번 혐오세력의 반대에 부딪치며 통과에 실패했습니다.
(사진) 치앙마이의 여성의 날 행진 / AIPP
현재 엄숙한 태국의 사회 분위기 탓인지 방콕에서 매년 열리던 여성의날 퍼레이드 관련 정보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대신에 유엔 아시아 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UN ESCAP)와 유엔인구기금(UNFPA)에서는 방콕 ESCAP 사무실에서 성평등에 관한 포럼을 개최했습니다. 치앙마이 시내에서도 AIPP(The Asia Indigenous Peoples Pact) 활동가들이 퍼레이드를 진행했습니다.
영국 런던에서 매년 이 무렵 진행하는 대규모 여성 행동 'Million Women Rise'에서는 NGO Thailand Human Rights Campaign UK가 참가해 태국 여성 정치범들을 석방하라 주장했습니다. 태국 레드셔츠 행동 당시 구속된 여성 운동가들은 아직도 수감되어있으며, 유럽으로 망명한 한 여성 운동가는 태국 당국이 불법 감금 및 고문을 자행했다고 진술하기도 했습니다. 앞서 말한 <젠더 평등법>이 통과됐어도 정치적, 종교적으로 탄압받는 여성들을 보호할 수 없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태국이라는 국가 시스템 자체가 지니고 있는 한계입니다.
4. 미얀마
(사진) 양곤의 한 공원에서 진행된 여성의 날 페어 / The Women’s Organization Network of Myanmar
군정을 일단락시키고 아웅 산 수 지(Aung San Suu Kyi) 의 민주주의 민족전선(NLD)이 승리한 미얀마에서도 수도 양곤을 비롯한 다양한 도시에서 여성의 날을 축하하는 페어, 토론회 등을 개최했습니다. 라카인족 여성 단체들도 북부에서 자체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3월 8일, 이러한 행사들을 소개하면서 미얀마의 여성 인권 현실과 새 집권당 NLD의 과제에 대해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NLD는 여성 인권과 거리가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작년 3월 대다수의 NLD 의원들은 대해 '인종 및 종교 보호'에 관한 논란의 법안 네 개 중 두 개를 통과시켰습니다. <인구통제법>(Population Control bill)과 <불교도 여성 결혼 특별법>(Buddhist Women’s Special Marriage bill)이 통과된 법이었는데, <인구통제법>은 정부가 여성의 출산권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이고, <불교도 여성 결혼 특별법>은 불교도 여성이 이교도 남성과 결혼할 시 지역 당국의 사전 허가를 받도록 하는 법률입니다. 국제엠네스티는 이러한 법안들이 차별과 폭력 부추기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사진) 고된 노동을 사는 소녀의 모습 / AP
한편, <AP통신>에서는 여성의 날을 맞아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14세 소녀가 석회가루 부대 3개를 한꺼번에 나르는 사진을 비롯한 게재했습니다. 이 소녀는 하루 종일 고된 화물 상하차 작업을 하고 고작 4달러를 받는다고 하네요.
5. 라오스
(사진) 2014년 라오스 연맹 주최의 여성의 날 행사
라오스 역시 캄보디아, 베트남과 비슷한 이유로 여성의 날이 공휴일입니다. 외신 정보도 주변국에 비교하면 매우 적은 편입니다. 매년 공산당 통제의 라오스 여성 연맹(Lao Women's Union)이 주최하는 관제 행사가 열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2014년 여성의 날에 라오스 여성 연맹은 1,000명이 모인 대규모 집회를 열었는데요. 이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에어로빅을 했습니다.
(사진) 보고서에 따른 캠페인 포스터 / 유엔인구기금
사진 속 라오스 여성들이 행복해보이나요? 유엔인구기금 보고서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엔인구기금은 어제(3/11) 라오스 정부와 합동 실시한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는데요. 15세에서 64세 사이의 현지 여성 2,997명을 조사한 결과, 이들 여성의 3분의 1가량이 동거 남성에 의한 신체적·성적 폭력이나 정서적 학대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피해 여성의 20%만이 관계 당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경찰에 신고한 경우는 4%에 불과했습니다.
6. 필리핀
필리핀에서 3월 8일은 공휴일이 아닙니다. 대신에 3월 은 필리핀에서 여성의 달입니다. 필리핀은 3월에 아시아에서 가장 큰 여성의 날 축제를 엽니다. 정부 산하 필리핀 여성위원회(Philippine Commission on Women)는 3월 1일에 <Include Women in the Agenda>를 개최했습니다. 외부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아시겠지만, 정말 큰 행사입니다. 정부 주도로 이런 행사를 한다니 라오스와 비교되는군요.
시민사회도 수도 마닐라에서 여성 임금 인상과 직장내 성차별 반대를 주장하는 집회와 여성의 날 축하 행진을 개최했습니다. 행진에서는 하이힐을 신은 남성들이 등장하기도 했는데요. 이들보다 더 주목을 받은 건 정치인 그레이스 포(Grace Poe)였습니다. 그레이스는 2016년 5월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뒤 현재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배우 출신의 여성 상원의원인데요. 그녀는 집회 중 대중 앞에 등장해 마이크를 잡고,
(사진) 발언 중인 그레이스 포 대선 후보 / Rauters
"여성의 역할은 가정을 돌보는 것을 넘어섰다. 여성은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 2016년은 여성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을 보여주자."고 발언하며 환호를 받았습니다.
7. 인도네시아
(사진) 인도네시아 프로 축구팀 유니폼의 세탁 주의표. SNS를 통해 이 사진이 퍼지고, 비판 여론이 더해지자 제작 회사 salvo sports는 3월 6일이 되어서야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뒤이어 잘못 세탁하느니 아내에게 맡기는 게 낫다는 것을 간단하게 말해주고 싶었다는 투의 변명을 달았습니다. / 트위터 @idnavO
인도네시아는 성폭행 피해 여성에게 불륜을 저질렀다며 공개 태형하고, 여경과 여군의 '처녀성'을 검사하며, 여성할례와 조혼 풍습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여성 인권 후진국입니다.
(사진) 인도네시아 여성 노동자들의 여성의 날 행진 모습
인도네시아에서도 여성의 날 행진이 진행됐습니다. 자카르타에서 모인 600여 명의 여성노동자들은 여성 인권 신장을 구호로 외쳤습니다.
— 여기까지 동남아시아 각 국가의 여성의 날 모습과 여성 인권의 현재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영어와 약간의 현지어 구글링 검색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온라인을 통해 작성된 글이므로 별도 출처를 남기지 않고, 외부 링크로 대체합니다. 오류 수정 의견은 환영입니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브루나이는 찾아봐도 많은 정보가 없기도 했고 제가 게으르기도 한 탓에 특별한 정보를 찾지 못했습니다. 세 나라의 여성 인권이 정확히 어떤 단계인지 속단하는 것은 피하겠습니다. 세 국가에서도 여성 인권 침해 사례가 끊임없이 보고되고 있다는 사실로 의견을 대신합니다.
긴 시간 정리하며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시아의 여성 인권은 여성의 날 행진 정도로는 나아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첫댓글 내용이 정말 잘 정리됐습니다..
정말 수고 하셨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축제를 좋아하는 캄보디아에서는 이 날 여성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