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2박4일 마운트 워싱톤 종주산행
2012년 뉴욕의 겨울산은 눈이 없어 계절을 잃어버린 듯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프레지던트 공휴주간은 잃어버린 겨울을
찾아 미 동북부 산악지존인 뉴햄프셔 주에 소재한 마운트 워싱톤(6288피트, 1917미터)을 찾았다. 마운트 워싱톤의 겨울등반은
기상에 따라 변화가 무쌍하다. 북극의 한랭한 저기압은 고기압을 쫒아 남하하다보면 첫 관문인 미동북부 최고봉 마운트 워싱톤
산맥을 넘어야한다. 그때마다 강도는 다르지만 마운트 워싱톤 정상과 능선일대를 산행하는 하이커들은 때론 살인적으로 몰아치는
바람과 낮은 체감기온을 극복하여야만 한다. 그러나 프레지던트 릿지의 종주산행의 성공여부는 기록적인 강풍은 물론 또한 년 중
약 100일 정도 나타나는 일기불순에 있다. 일기불순으로 화이트아웃이 되면 능선 트레일을 안내하는 케른(돌무더기)만으로는
시계가 막히거나 주변 자연 발생한 돌무더기들과 혼란이 생겨 정식등산로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런저런 환경으로 마운트
워싱톤 정상을 남북으로 가르는 프레지던트 릿지 동계종주산행은 성공률이 낮아진다. 어느 산행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마운트
워싱톤 종주산행을 시도하는 하이커들은 예상치 못한 기상변화를 대처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준비를 해야만 한다. 한편 프레지던트
릿지는 미동북부를 가로 지르는 아팔라치안 트레일이 경유하는 코스로도 잘 알려져 있다.
첫째, 둘째 날: 어제 날밤을 꼬박 달려 여명에 앞서 겨우 출발지에 도착했다. 약 2시간 눈을 붙이고 2명은 도착 예정지에 차를 벌려
놓고 한쪽은 짐정리와 아침준비를 하며 산행준비를 마쳤다. 8시30분 루트 2에서 시작하는 AL(Air Line) 트레일을 따라 산행을
시작했다. AL 트레일은 우선 수림한계선까지 약 2.5마일 여를 가며 약2,800피트(850미터)의 고도를 가파르게 올라야한다.
AL 트레일의 수림한계선까지의 마지막 1마일은 짙은 침엽수림으로 응달진 트레일은 이미 빙판이 되어 크렘폰을 착용해야 했다.
그러나 빽빽한 침엽수림에서 끊임없이 분출되는 신선한 음이온이 산행기운을 북돋우어 주었다. 이어 하늘이 터지는 수림한계선에
다다르면 트레일에 대한 경고판이 나타난다. ‘이 지점을 지나면 모든 것이 하늘에 노출이 되어 미국에서 가장 최악의 기상상태가
되는 곳이다. 날씨가 안 좋으면 여기서 돌아가라, 때론 한 여름에도 죽을 수 있다’라 하는 경고문이다. 12시30분이다.
이제 까지의 AL 트레일과는 전혀 다른 칼날능선의 오름길이다. 칼날능선은 신기하게도 지금까지 울창했던 삼림은 사라지고 나무
한그루 없는 무림지대가 펼쳐진다. 여기서 부터는 케른이 길잡이다. 때론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으로 고글을 쓰고 시선을 집중하여야 다음 케른이 보인다. 아담스 봉 정상까지 연결되는 AL트레일 선상의 칼날능선은 약 0.8마일 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의 AL
컷 오프(Cut off)트레일은 좌측으로 0.2마일 거리에 매디슨 헛(Hut)으로 연결된다. 이 지점이 첫 번째로 이번 산행의 갈등 포인트가 됐다. AL 트레일을 따라 곧 바로 아담스 봉으로 직등을 할까? 하다가 그러나 매디슨 헛으로 일단 방향을 잡았다. 아무래도 노출이
심한 AL 트레일은 이날의 기상상태로는 1마일에 1000피트를 올라야 하는 등산로에 대한 최악의 상황이 가름이 안 되었다.
갈림길에서 매디슨 헛까지의 0.2마일은 한겨울동안 인적이 없었는지 적설은 무릎에 허리까지 빠져 럿셀을 해야만 했다. 오후 1시30분 매디슨 헛에 도착했다. 건물에 바람을 등져 보지만 사방에서 몰려드는 바람이 피해지지는 않는다. 간단히 중식을 하며 상의를 했다. 다시 0.5마일 수림지역으로 내려가 편안히 야영을 하고 내일 일찍이 마운트 워싱턴으로 갈지? 아니면 아담스 봉을 넘어 가는데 까지 가다가 비박을 할지? 두 번째 갈등 포인트였다. 결국 이번 등반대의 젊은 세대의 주장에 따라 후자를 택해 오후 2시 스타 레이크 트레일을 따라 아담스 봉(5799피트) 정상을 향했다. 헛에서 아담스 정상까지는 1마일 거리다. 오후 3시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아담스 정상이 멀리 있다. 경사가 급해지고 정상부는 구름가스가 끼어 등산로 찾기가 쉽지 않다. 등산로를 찾는 동안 뒤 쫒아오던
K가 지도를 들고 이쪽저쪽 비교적 완만한 경사면을 찾아다니지만 길은 가운데 제일 가파른 곳에 있었다. 3시30분이 되어서야 정상에 도착 했다. 정상은 바람이 세차고 가스가 잔득 끼어 사진 한 장 못 찍었다. 서둘러 탈출하듯 오늘 야영지를 찾아 아담스 봉에서
마운트 워싱톤까지 연결되는 걸프사이드(Gulfside) 트레일을 따라 내려오자 정상 밑 0.3마일 거리의 선더서톰 갈림길을 알리는
이정표를 만났다. 이미 오후 4시가 지나고 있었다. 이제는 일몰이 가까워져 막영지를 결정해야 했다. 어느 방향으로 갈까? 세 번째
갈등 포인트였다. 내일 가야 할 걸프사이드 트레일은 노출이 심해 1마일 떨어진 크레그 캠프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트레일을 쫒아 내려가다 케른을 놓쳤다. 4시30분이 지난다. 어쩔 수 없이 약간 구릉진 아래턱을 찾아 겨우 텐트를 치자 이미 어둠이다. 바람 골을
벗어나지 못해 밤새 텐트는 요동을 치지만 깊은 잠을 잤다.
셋째 날, 날이 밝아오자 옆 텐트에서 버너 소리가 들려온다. 동계산행은 아침을 마치면 텐트를 걷고 짐을 꾸리면 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움직여 몸에 열기를 돋워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서다. 8시 준비 된 사람부터 길을 찾아 출발한다. 어제의 발자국은 간밤에 다 지워졌다. 트레일을 찾아 직등을 했다. 쉽게 찾을 것 같았던 트레일은 45분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오늘산행은 목적지 마운트 워싱톤 하단 Lakes of the Cloud Hut 까지 6마일 여만 가면된다. 그러나 오늘 핑캄너치 코스로 하산하기로 3명 A조의 안전 하산을 위하여 오후 2시 까지는 목적지에 도착해야만 했다. 날씨는 어제처럼 흐렸다. 그래도 능선 길은 걸을 만 했다. 다만 에드몬드 콜(Col, 계곡)을 지날 때 너무 눈에 빠져 눈 위에 배를 깔고 5미터 정도는 수영을 하듯 설영을 해야만 했다. 11시경 약 2.5마일 산행을 하며 제퍼슨 봉 정상부 가까이 올라섰다. 이정도의 속도라면 오늘 목적지까지는 시간계획대로 도착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상 밑 8부 능선을 따라 산행을 지속했다. 갑자기 돌무더기 케른이 안 보인다. 방향을 찾아 위아래 왔다갔다하다보니 순식간에 20~30분을 허비한다. 시간적인 여유가 조금씩 없어진다. 제퍼슨 봉을 지나 다음 봉우리인 클레이로 가기위해 스핑크스 클레이 콜을 내려 올랐다. 13시35분 걸프사이드 트레일은 클레이 봉 옆을 지났다. 이제 프레지던트 릿지의 왕봉인 마운트 워싱톤 영향권에 들어섰다. 상왕봉의 위엄을 보이려는지 이곳은 심한 안개로 시계가 10~15미터 정도로 떨어져 아차 하는 순간에 길을 놓친다. 한동안 이어지는 다음 케른을 찾을 수가 없어 선두와 후미는 무전교신을 하며 서로의 연결고리를 이어야 했다. 약 30여분 헤맨 끝에 약 70여 미터 전방에서 눈에 묻힌 케른을 찾아 산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잠시 후 구름의 호수 헛을 알려주는 이정표를 만났다. 아직도 0.9마일을 더 가야하는데 시간은 이미 15시를 지나고 있었다. 20여분 걸어 내려 올 즈음에 북풍과 남풍이 서로 휘말리면서 순간적으로 시야가 터지며 신기루처럼 호수구름 헛(AMC)이 바로 코앞에 모습을 드러내곤 다시 환영인양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10분 후 헛에 도착했다. 헛에 도착하자마자 뒤쪽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응급 대피소는 비어 있어 오늘밤은 편안하게 신세를 질 수가 있었다. 이미 15시30분이 지나고 있었다. 오늘 핑캄너치 코스로 하산하기로 3명 A조는 어떻게 해야 할지? 네 번째 갈등을 시작했다. 아직도 기상이 안 좋았다. 결국 안전을 위해 H와 K는 잠시 고민하다가 하산을 포기했다. 좁은 공간의 대피소지만 여기서는 이보다 나은 숙소는 없다.
넷째 날, 8시 기온이 낮아 벙어리장갑과 고글에 모자를 뒤집어쓰고 다운재킷을 껴입은 채
크로포드 패스를 따라 산행을 시작했다. 오늘 목적지인 루트 302까지는 7마일이다. 날씨는 맑아 길 잃을 염려는 없어도 세찬 바람은 잠시 넋을 놓으면 휘청거리게 한다. 30분 후 아슬아슬한 사면을 트레바스하며 몬로(5372프트) 봉을 벗어났다. 여기서 부터는 바람이 잦아들고 고도를 낮추어 가는 내리막길이라 한결 수월해 졌다. 9시15분 출발지에서 약 1마일 남짓 거리의 프랭클린(5001피트) 봉을 지났다. 잠시 후 저 멀리 1마일 거리의 아이젠하워(4760피트) 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10시경 아이젠하워 봉에 도착했다. 아직도 무림지대의 연속이지만 삿갓형의 아이젠하워 봉 동쪽남면의 사면은 북풍을 등지고 들어찬 침엽수림과 그 숲을 덮은 엄청난 적설은 신비로운 포근함이 느껴진다. 다시 남쪽을 향해 약 1.5마일 트리라인을 따라 가면 릿지의 마지막 봉우리인 피어슨 봉이 바라보인다. 11시30분이 됐다. 크로포드 패스 트레일은 우측 숲길로 들어선다. 이 갈림길에서 3.1마일 내려가면 도착지인 루트. 302를 만난다. 오후 1시에 전장 약 19마일 산행을 마쳤다.
첫댓글 이처럼 간략하면서도 실감 나는 요점 위주의 산행기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산악회의 큰 자랑으로, 한줄 한줄 되새기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