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에의 그리움
전혜린(田惠麟) 수필
그것이 헛된 일임을 안다.
그러나 동경과 기대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무너져 버린 뒤에도 그리움은 슬픈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나는 새해가 올 때마다 기도 드린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해 달라고…… 어떤 엄청난 일, 무시무시하도록
나를 압도시키는 일, 매혹하는 일, 한마디로 '기적'이 일어날 것을 나는 기대하고 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모험 끝에는
허망이, 여행 끝에는 피곤만이 기다리고 있는 줄은 잘 안다.
그리움과 먼 곳으로 훌훌 떠나 버리고 싶은 갈망, 비하만의 시구(詩句)처럼 '식탁을 털고 나부끼는 머리를 하고' 아무
곳이나 떠나고 싶은 것이다. 먼 곳에의 그리움(Fernweh)! 모르는 얼굴과 마음과 언어 사이에서 혼자이고 싶은 마음!
텅 빈 위(胃)와 향수를 안고 돌로 포장된 음습한 길을 거닐고 싶은 욕망, 아무튼 낯익은 곳이 아닌 다른 곳, 모르는 곳에
존재하고 싶은 욕구가 항상 나에게는 있다.
포장마차를 타고 일생을 전전하고 사는 집시의 생활이 나에게는 가끔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노래와 모닥불가의
춤과 사랑과 점치는 일로 보내는 짧은 생활, 짧은 생, 내 혈관 속에서 어쩌면 집시의 피가 한 방울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고
혼자 공상해 보고 웃기도 한다.
내 영혼에 언제나 고여 있는 이 그리움의 샘을 올해는 몇 개월 아니, 몇 주일 동안만이라도 채우고 싶다. 너무나 막연한
설계―아니 오히려 '반설계(反設計)'라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플랜은 그것이 미래의 불확실한 신비에 속해
있을 때만 찬란한 것이 아닐까? 이루어짐 같은 게 무슨 상관 있으리요? 동경의 지속 속에서 나는 내 생명의 연소를 보고
그 불길이 타오르는 순간만으로 메워진 삶을 내년에도 설계하려는 것이다.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는 특권이야말로 언제나 새해가 우리에게 주는 아마 유일의 선물이 아닌가 나는 생각해 본다.
****
새해가 되어 한 해의 소만을 말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수필이다.
그러나 '건강'이나 '행복'과 같은 일상적인 소망이 아니라, 모든
굴레로부터 벗어니 낯선 곳으로 떠나고자하는 갈망을 말한 것에
이 작품의 개성이 있다. 어어울러 '돌로 포포장된 음습한 길'이나
'집시'의 삶에 대한 동경 등 이국적인 정취에 탐닉하는 경향도 보인다.
1934∼1965. 수필가·번역문학가.
평안남도 순천 출생. 법률가인 전봉덕(田鳳德)의 1남 7녀 중 장녀이다
1953년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같은 해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였으나
1955년 3학년 재학 중 전공을 독문학으로 바꾸어 독일로 유학하였다.
1959년 독일 뮌헨대학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이 학교 조교로 근무하였다.
유학 중 1955년 가톨릭에 귀의하여 막달레나(Magdalena)라는 영세명으로 영세를 받았으며,
이듬해 법학도인 김철수(金哲洙)와 혼인하였다.
전혜린(田惠麟)
1965년 1월 11일 31세로 자살하였으며,
뜻하지 않은 죽음은 전혜린의 총명을 기리는 모든 이에게 충격과 아쉬움을 남겼다.
독일 유학 때부터 시작된 전혜린의 번역작품들은 정확하고 분명한 문장력과 유려한 문체의 흐름으로
많은 독자들에게서 사랑을 받았다.
사강(Sagan,F.)의 <어떤 미소>(1956),
이미륵(李彌勒)의 <압록강은 흐른다(Der Yalu Fliesst)>(1959),
루이제 린저(Rinser,L.)의 <생의 한 가운데(Mitte des Lebens)>(1961) 등 10여 편의 번역 작품을 남겼다.
그밖에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66)와 『미래완료의 시간 속에』(1966)가 있다.
순수와 진실을 추구하고 정신적 자유를 갈망하던 전혜린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당대의 새로운 여성상으로 평가받는 한편,
완벽한 정신세계를 지향하는 지성적인 현대 여성의 심리로서 분석되는 등 관심의 대상으로 지속되고 있다.
첫댓글 文人이라면 소싯적에 한번쯤 푹 빠졌을 작품,
작품보다 더 그녀의 자유분방한 삶에 심취했던
시절을 떠올리시리라 생각하면 요렇게 소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