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5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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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성 바오로의 개종 축일
축일: 1월 25일
성 바오로(67년경)는 벤야민 지파의
유다인으로서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유명한 랍비 가믈리엘의 문하생으로
예루살렘에서 공부했던 분이다.
그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 전까지는
사울이라 불렀고, 막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엄격한 바리사이파였으며 크리스찬의 열렬한
박해자였고,첫 순교자이신 성 스테파노의
순교 현장에도 있었다.
그는 크리스찬들을 박멸할 목적으로
다마스커스로 가던 도중에 유명한 환시를 보는데
(34-36년 사이),
이것이 그의 극적인 개종과 더불어 이방인의 사도로
만드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 후 그는 3년 동안 아라비아에서 지낸 다음,
설교하기 위하여 다마스커스로 돌아오면서부터
그의 파란만장한 선교사 생활이 막을 올린다.
그는 39년경에 바르나바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을 만나고 공식적으로 크리스찬 공동체에 입적한 후,
43년경에 안티오키아로 파견되어 그곳에서 교회의
교사가 되는데, 이것이 이방인을 상대로 하는 그의
대 전교활동의 서막을 올린 결과가 되었다.
그 이후로 바오로는 세 차례의 전교 여행을 한다.
그들은 안티오키아에서 출발하여 키프로스 섬에
머물렀고 그 다음 지금의 터어키를 통과했다.
사도들의 예루살렘회의 후에 바오로 사도는 제2차
여행을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명백하게
’12 사도들의 파견’이라고 표현한다(사도 15,36-18,22).
터어키를 다시 횡단하여 프리기아와 그가
아팠던 갈라디아(갈라 4,13)에서 복음을 전한다.
그 다음 루가와 함께 유럽으로 들어와서 필립비 공동체를
세운다(희랍 남부). 한 동안 감옥 생활을 한 후
희랍에서 복음을 전한다.
아테네에서의 복음 전파는 철학자들 앞에서 좌절된다.
고린토에 가서 공동체를 세우는데 그 교회는
바오로 사도를 매우 성가시게 하였다.
그후 안티오키아에 되돌아 왔다.
제3차 여행 동안 바오로 사도는(사도 18,23- 21,17)
현재 터어키 지역에 속하는 교회, 특히 에페소 교회,
그 후 희랍에 속하는 교회와 고린토 교회를 두루 다녔다.
밀레도스를 지나면서 바오로 사도는 장로들에게
자기가 당한 고난을 말해준다.
이 말 그대로 예루살렘에 돌아온 후 얼마 안되어
그는 히브리인들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다(사도 21장).
그는 로마 시민이므로 로마에 항소하였다.
이렇게 로마를 향하여 4번째 여행이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자유의 몸이 아니다(사도21-26장).
60년 아니면 61년에 도착하여 63년경까지 감옥에 갇혔다.
한편 좀 자유스런 몸이 되면서 로마의 그리스도 신자들과
자주 만나면서 ’옥중 서간’을 쓴다.
63년경 감옥에서 해방되어 아마도 스페인을 향하여
마지막 여행을 했는지도 모른다(로마 15,24-28).
아니면 다가올 자기 운명을 편지로 써서 알려준
디모테오와 디도의 공동체를 향하여 갔을지도 모른다.
그후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고 67년경 순교를 당하신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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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도나토(Donatus)
성 사비누스(Sabinus)
성녀 아가페(Agape)
축일 1월 25일
성 도나투스(또는 도나토), 성 사비누스(Sabinus)와
성녀 아가페(Agape) 세 순교자에 대해서는
이름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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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유벤티우스(Juventius)
성 막시모(Maximus)
축일 1월 25일
성 유벤티우스(Juventius)와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는
배교자 율리아누스(Julianus) 황제의 관리였다.
그들은 유해 공경을 금지하는 황제의 칙서를
비난하여 물의를 일으켰고, 이 소문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자 먼저 토지와 재산이 몰수되고,
심한 고문을 받다가 끝내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Joannes Chrisostomus, 9월 13일)는
그들을 기리는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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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브레탄니온(Bretannion)
축일 1월 25일
흑해 연안 스키티아(Scythia) 지방 토미의 주교인
성 브레탄니온이 아리우스주의(Arianism)에 대항하여
그리스도의 신성을 용맹하게 수호했을 때,
아리우스파의 발렌스 황제는 그를 그의 주교좌에서
쫓아내고 유배를 보냈다.
그러나 성 브레탄니온 주교는 그의 양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발렌스 황제는
대중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주교를 다시
불러들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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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나니야(Ananias)
축일 1월 25일
주님의 명을 받고 사울을 찾아 나섰던
다마스쿠스의 성 아나니야(또는 아나니아)는
사울에게 손을 얹어 눈을 뜨게 하였고
또 사울에게 세례를 베풀었다(사도 9,10-19).
전설에 의하면 성 아나니아는 다마스쿠스와
엘레우테로폴리스(Eleutheropolis)의 선교사로
활약하다가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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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르테마(Artemas)
축일 1월 25일
성 아르테마의 생애는 알 수 없으나 이탈리아
카푸아(Capua) 교외 산 프리스코(San Prisco)
대성당의 모자이크 속에 그의 이름과 생애가
묘사되어 있다. 불행히도 이 모자이크는
소실되었지만 500년대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성 아르테마는 카푸아와 멀지 않는 포추올리에서
순교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소년들을 가르치는
사람이었는데 제자들이 그를 그리스도인으로
고발하여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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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라이젝투스(Praejectus) 또는 프릭스(Prix)
성 아마리노(Amarinus)
축일 1월 25일
성 프라이젝투스(Praejectus)는 프랑스 중남부
오베르뉴(Auvergne) 출신으로 성 게네시우스
(Genesius, 6월 3일)의 보호 아래 교육을 받고
교회에 봉사하게 되었다. 그는 성서와 교회사에
있어서 뛰어난 지식을 갖추었다. 666년경에 그는
처음에는 주민들로부터, 그 다음에는
아우스트라시아(Austrasia)의 국왕으로부터
오베르뉴 지방 클레르몽의 주교로 천거되었다.
그 후 그는 클레르몽의 주교직과 관련되어
반대파의 음모에 의해 보주 산맥(Vosges Mountains)의
볼빅(Volvic)에서 그곳의 수도원장이던
성 아마리누스(또는 아마리노)와 함께 괴한에게
살해되었다. 성 프라이젝투스는 프릭스(Prix)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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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폴로 Apollo)
축일 1월 25일
오랜 동안 은수 생활을 경험한 성 아폴로는
80세의 고령에 이를 즈음에 제자들을 모으고
헬리오폴리스 교외에 수도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들은 같은 복장을 하였고, 매일 성체를 모셨으며,
원장이 그들의 영신적 이익을 위하여 매일같이
권고의 말씀을 하였다. 그는 이처럼 수도회
역사에 있어 남다른 빛을 비추었다. 수많은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은 주위의 주민들이 4개월 동안
먹을 수 있는 빵을 많게 한 기적이라고 한다.
이 성인은 성 베드로니우스(Petronius, 10월 4일)의
방문을 받고 감격해 하였으나 임종의 순간이었다고 한다.
그는 90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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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폴로요엘(Joel)
축일 1월 25일
성 요엘은 마테라(Matera)의
성 요한(Joannes, 6월 20일)의 제자로
이탈리아의 풀사노에 베네딕토회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는 그 수도원의 세 번째 원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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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포포(Poppo)
축일 1월 25일
성 포포는 벨기에 플랑드르(Flandre) 출신으로
프랑스 베르됭(Verdun)에서 수녀로서 죽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 젊을 때에는
군인생활을 했던 그는 자주 묵상에 빠져들었고,
감각의 쾌락을 멀리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예루살렘의 성지 여기저기를 순례했고,
거룩한 유품들을 수집하여 겐트(Gent) 근방
데이즈네(Deisne)에 있는 성모 성당을 꾸미기도
하였다. 그 후 다시 로마(Rome)를 순례한 뒤부터
랭스(Reims) 교외 생티에리(Saint Thierry)에서
수도복을 입었다.
당대의 최고 수도원 개혁자인 생반(Saint-Vannes)
수도원의 원장인 리카르두스(Richardus, 6월 14일)는
포포를 맞이하여 지도하였다. 그 후 스승 곁을 떠난
포포는 스타벨로트(Stavelot)의 원장으로 활약하였다.
그는 성 헨리쿠스 2세(Henricus II, 7월 13일)
황제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살다가
70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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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폴로푸블리오(Publius)
축일 1월 25일
성 푸블리우스(또는 푸블리오)는 유프라테스 강변의
제우그마에 살던 원로원 의원의 아들이다.
그는 자기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뒤 처음에는 은수자로 지냈다.
그 후 많은 제자들이 몰려들었을 때 큰 공동체를
이루어 그들을 지도하는 원장이 되었다.
그는 자기 수도자들에게 채소와 거친 빵만 먹게 했고
치즈, 포도, 기름 등은 부활절부터 사백주일
(부활주일 다음 첫 주일)까지만 허용하였다.
테오도레트에 의하면 그는 그리스인과
시리아인을 위한 공동체를 별도로 세워 지도했으며,
성무일도와 미사 때에는 자국어를 사용토록 했다고 한다.